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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미동 비석마을.. 무덤 위에서도 살아냈다]

뚝섬 2025. 3. 3. 10:18

무덤 위에서도 살아냈다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에 갔다
일본인 공동묘지 석물을
축대·담장 삼아 집을 짓고
피란민들이 고난을 견뎌냈다

 

부산 아미동에 다녀왔다. 비석마을이라 부르는 곳이다. 부산역 건너편에서 87번 버스 타고 남서쪽으로 20분 달려 까치새길 입구 정류장에서 내렸다. 경사가 45도 이상 될 듯한 가파른 산비탈이다. 슬레이트 기와 지붕을 인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곳을 찾은 건 서울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작품을 보고나서였다. 홍이현숙 작가가 연출한 13분 42초짜리 영상 ‘아미동 비석마을’. 염지혜 작가와 2인전으로 열고 있는 ‘돌과 밤’ 전시작 중 하나다. 이달 30일까지 열린다. 

 

아미동 비석마을은 식민지 시기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다. 일제 패전 후 일본인 유족들은 무덤을 그대로 둔 채 서둘러 부산을 떠나야 했다. 5년 후 6·25전쟁이 일어나자 피란민들이 전시 수도 부산에 몰려들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무덤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판잣집을 지었다. 비석과 석물은 축대가 되고 골목길 계단이 되고 담장이 되고 댓돌이 되고 빨래판이 되었다. 

 

아미동 비석마을 축대에 박혀있는 일본인 무덤의 묘비.

 

지금도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동네 어귀 교회에서 마을로 들어섰다.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이 비탈 위로 어지럽게 이어진다. 집은 사라지고 축대만 남은 곳에 한자 적힌 비석이 박혀있다. ‘明治 四十二年 五月卄七日 歿’. 메이지 42년(1909년) 5월 27일 죽은 이의 비석이다. 이름은 축대 안쪽에 들어가 박혀 확인할 수 없다. 다이쇼(大正) 2년인 1913년 8월 12일 것도 있다. 죽은 날짜는 담장 속에 박히고 무덤 주인 이름이 보이는 비석도 있다. ‘國分治之墓’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일본인 고쿠분 오사무(國分治). 혹시 알 만한 사람일까? 일본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넣으니 1964년 영화 ‘동경오륜음두(東京五輪音頭)’의 각본가라는 동명이인(同名異人)만 검색된다.

 

홍이현숙 작가는 영상 작품에서 상상을 펼친다. 무덤 아래 있었을 한 일본인 병사를 떠올린다. 영상 속에서 일본인 배우(사토 히로무)가 웃통을 벗은 어린 병사로 분장하고 무덤 위로 나와 마을을 돌아다닌다. 작가 자신은 마을 주민을 연기했다. 영상에는 우리말과 영어 자막이 흐르고 전시장에는 낮은 소리로 읊조리는 병사의 일본말이 울려 퍼진다. “내가 땅속에서 당신을 더 잘 본다면 (중략) 밥 태우는 냄새 때문이고 시큼한 수건 냄새 때문이다” “내가 당신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은 차디찬 돌의 육신뿐이었지만, 당신은 거기에 기대어 맘껏 울었다” “당신이 내게 준 것은 눈물방울의 따뜻함이었고 엉덩이의 체온이었다”…. 

 

서울 노원구 북서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홍이현숙 작가의 영상 작품 '아미동 비석마을'.

 

일본인 묘지 위에 들어선 피란민 마을이라는 이 신산스러운 사실(史實)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자국민 무덤도 지키지 못한 침략자의 패퇴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통쾌한 기분을 느껴야 할까, 식민지도 전쟁도 이겨낸 우리네 민초(民草)의 끈질긴 생명력을 읽어야 할까. 작가는 한 차원 넘어서 있다. 작품 설명에 피란민들은 죽은 사람 위에 산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거처를 내어준 데 미안함과 고마움이 들어 제사나 위령제를 함께 지내주었다고 한다. 여기 묻힌 사람들이 지배층이 아니라 서민이나 하층민 출신으로 힘들게 살다 죽었다는 동병상련의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고 적었다.

 

영상 마지막에서 일본인 병사는 작가와 이인무(二人舞)를 추며 말한다. “나는 당신을 두고 떠날 수 없다. (중략) 죽었든 살았든 당신과 나는 이미 같은 종족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우리가 너무나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숱한 고난에도 집마다 프로판 가스통을 놓고 묘석 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전시에도 마을 여행에도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이한수 기자, 조선일보(2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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