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AI시대 인간이 해야 할 일] [의학계 에디슨’ 된 모더나 창업자]

뚝섬 2023. 8. 8. 08:48

[AI시대 인간이 해야 할 일]

[의학계 에디슨’ 된 모더나 창업자] 

 

 

 

AI시대 인간이 해야 할 일  

 

[김대식의 미래 사피엔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올해 초 챗GPT의 등장 덕분에 인공지능이 새로운 화두로 뜨기 시작했다. 특히 질문 형식과 방법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같은 단어들 순서만 바꿔도 대답이 달라지는 생성형 인공지능. 그렇다면 원하는 답을 얻도록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미국에는 이미 연봉을 수억원 받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하지 않았나? 앞으로 대한민국 아이들을 모두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키워야 할까?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계 학습을 통해 최적화된 프롬프트를 만들어주는 인공지능 역시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직업 역시 그다지 미래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정해 볼 수 있겠다. 어쩌면 미래 인공지능 시대에는 ‘무엇’을 하기보다, ‘얼마나 잘하는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기계가 생성한 코드, 계약서, 드라마 대본, 판결문을 최종 검토하고 선택해야 하는 건 여전히 인간이다. 대량생산한 기계의 결과물을 빠르게 비교하고, 수정하고, 최종 선택하려면 고도의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직접 필드에서 뛰지는 않더라도 빠른 상황 판단이 가능한 베테랑 축구 감독같이 말이다.

 

자기가 선택한 직업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전문성과 내공을 가지는 것이 인공지능 시대의 최고 경쟁력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최고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흥미와 관심이 없는 일에도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중간 정도 전문성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최고 전문성은 돈과 시간 투자 이전에 필연적 조건을 하나 요구한다. 스스로 하고 싶고 관심이 있어야만 세계 수준의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미래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야 할 지금의 10대가 가장 먼저 찾아야 할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인생을 살고 싶은 걸까?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조선일보(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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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대기업 마다하고… ‘의학계 에디슨’ 된 모더나 창업자

 

[테크노 사이언스의 별들]

생명공학 분야 혁명 이끄는 로버트 랭어 미국 MIT 교수

 

 

1974년은 중동전쟁이 촉발한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이었다. 엑손·셰브론 같은 대형 석유 기업들은 신제품 개발과 공정 효율화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재 영입에 혈안이 됐다. 하버드, 스탠퍼드 등 유명 대학 화학공학 전공 졸업생들이 1차 타깃이었다. 그해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코넬대 졸업생 로버트 새뮤얼 랭어 주니어(Robert Samuel Langer Jr.·1948~)도 취업 제안을 20건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내가 배운 지식을 단순히 기업 수익률을 높이는 데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할지는 몰랐지만,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석유기업 등 20곳 러브콜 모두 거절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랭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엔지니어이자 발명가, MIT를 상징하는 교수가 됐다. 그가 발표한 논문 1500편의 인용 횟수는 38만8000회에 이른다. 그보다 많은 논문이 인용된 학자는 하버드 의대 로널드 케슬러와 조앤 맨슨 두 사람뿐이고 엔지니어 중에서는 랭어가 가장 많다. 하버드·MIT 교수와 연구원 150명으로 이뤄진 MIT 랭어 랩(lab·연구실)에서 탄생한 1400개 이상의 특허는 전 세계 바이오·제약업체 400곳에서 활용한다. 과학계에서는 생명공학 혁명을 이끄는 이 연구실을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비유한다. 영국 가디언은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약물 전달체부터 피임용 임플란트에 이르는 랭어의 성과는 20억명의 삶을 바꿔 놓았다”고 했다.

 

아무도 믿지 않은 랭어의 아이디어

 

엄청난 연봉이 보장되는 취업 자리를 마다한 26세 청년 랭어는 닥치는 대로 지원서를 썼다. 40곳의 대학과 연구소에 지원했지만 답장이 없었다. 방황하던 랭어는 주다 포크먼이라는 보스턴 어린이 병원 외과 의사가 특이한 인재만 뽑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랭어는 “가질 수 있는 직업 가운데 가장 낮은 급여를 받았다”면서 “그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암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포크먼은 신생 혈관이 암 전이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암세포가 생존을 위해 만들어내는 혈관을 억제하면 암세포를 굶어 죽게 할 수 있다는 치료법도 제안했다. 어떻게 하면 암세포와 혈관에 항암제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효과가 지속되게 하느냐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병원 유일의 공학 전공자였던 랭어는 오늘날 ‘약물 전달 시스템(DDS·Drug Delivery System)’으로 불리는 방식을 창안했다. 사람의 몸 안에서 천천히 녹는 용액이나 다공성(多孔性) 고분자를 만들어 그 안에 항암제를 넣는 아이디어였다. 모두 꿈같은 얘기로 여겼다. 항암제처럼 큰 분자는 전달체에 넣거나 나오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상식이었다. 거대분자 합성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폴 플로리를 비롯한 전문가에게 랭어의 연구 계획서를 보냈지만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답했고, 미 국립보건원에 제출한 연구비 신청서는 9번이나 반려됐다. 랭어는 “한 원로 교수가 시가 연기를 내 얼굴에 뿜으며 ‘다른 직업을 찾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인공 장기 만드는 조직공학의 창시자

 

매주 80시간 이상 연구에 매달린 랭어는 200차례의 실험 끝에 1976년 DNA·RNA·단백질 같은 거대분자를 사람의 몸속에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랭어와 포크먼은 이를 이용해 세계 최초의 혈관 신생 억제제를 개발했고, 이후 항암제는 물론 당뇨·정신 질환·약물 중독 치료제에도 DDS가 적용된다.

 

DDS는 난치병과의 전쟁 승률을 대폭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다. 전 세계 2000만명이 넘는 사람이 혈관 신생 억제제와 DDS를 이용한 의약품으로 치료받았다. 제넨텍의 블록버스터 대장암·유방암·폐암·자궁경부암 치료제 ‘아바스틴’, 리제너론의 황반변성 치료제 아일리아 등이 랭어의 기술을 활용했다. 랭어는 현재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과 함께 제3세계 말라리아와 결핵, 골다공증을 해결할 수 있는 초지속성 알약과 임플란트를 개발하고 있다. 병원을 찾기 힘든 사람들이 먹거나 몸 안에 한번 심으면 지속적으로 약물이 조금씩 방출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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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어는 의학과 공학을 접목해 수많은 돌파구를 만들어냈다. 랭어가 개발한 약물을 방출하는 심혈관 스텐트는 100만명 이상이 시술받았다. 그는 1993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기고에서 “생물학과 공학을 이용해 손상된 사람의 조직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조직공학(tissue engineering)’으로 불리는 학문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주인공 성대도 복구-수술 중 성대가 손상된 줄리 앤드루스는 2009년 로버트 랭어가 개발한 성대 복구 젤 시술을 받은 뒤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AP 연합뉴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줄리 앤드루스의 목소리를 되찾게 해준 성대 복구 젤, 척수 복구 조직, 화상 환자를 위한 혈관과 인공 피부, 주름이나 상처를 가려주는 ‘붙이는 피부’ 등이 랭어 랩에서 만들어졌다.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인공 장기(오가노이드)의 개념과 시제품도 이곳에서 나왔다.

 

모더나 만든 창업의 아이콘

 

랭어 랩 출신인 조승우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랭어는 모든 연구가 실용화 가능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랭어 스스로 40곳 이상의 기업을 창업한 연쇄 창업가이다. 로슈가 1조원 이상을 투자한 세포 치료제 전문 기업 SQZ 바이오테크놀로지스, 일라이 릴리가 인수한 당뇨병 치료제 개발사 시길론 테라퓨틱스, 유니레버와 시세이도의 사업부가 된 고분자 헤어케어 브랜드 리빙 프루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2010년 공동 창업한 모더나는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에서 인류를 구해낸 바이오 업계 최고의 성공 사례이다. 모더나의 mRNA 코로나 백신은 지질 나노 입자를 통해 약물이 분해되지 않고 목표 세포까지 전달하는 랭어의 ‘유전자 전달 시스템’ 덕분에 개발이 가능했다. 랭어는 “mNRA 의약품은 독감과 에이즈, 나아가 개인화된 암 백신을 만드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했다. 모더나의 급성장으로 랭어는 2021년 포브스 억만장자 리스트에 올랐다. 모더나 지분 3%를 보유한 그의 자산은 현재 13억달러(약 1조7000억원)에 이른다. 랭어는 언론 인터뷰에서 “모두가 내 자산을 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하지만 난 모더나 주식을 한 번도 팔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돈을 번 것과는 다르고, 석유화학 대기업을 가지 않은 것처럼 부자가 되려고 일을 한 적도 없다”고 했다. 랭어는 자신이 창업하거나 공동 창업한 회사의 이사나 과학 고문을 맡아 매주 8시간 이상을 할애하고 있다. 창업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이 만든 회사가 세상에 기여할 때까지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다.

 

부모가 사준 장난감 덕에 과학자 꿈

 

뉴욕 올버니에서 태어난 랭어가 과학자가 된 것은 당구장과 주류 판매점을 운영했던 부모가 11세에 선물한 장난감 화학 세트 때문이었다. 랭어는 “고무나 플라스틱 합성 같은 실험이 너무나 즐거웠다”면서 “코넬대 신입생 시절 내가 화학을 실제로 잘하는 것을 확신한 뒤 화학공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랭어의 업적은 끊임없는 좌절에도 굴하지 않았던 의지 위에 쌓였다. 랭어의 첫 의학 논문이었던 혈관 신생 억제제는 1981년까지 5년간 특허 출원을 거부당했다. 학계의 주류 이론이 아니고,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 기술을 활용한 의약품이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아 출시된 것은 28년 뒤인 2004년이었다. 모더나를 창업한 뒤 가치를 입증하는 데도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美 3대 과학 아카데미 최연소 선출

 

랭어는 역사상 최연소인 43세에 미국 3대 과학 아카데미(국립과학아카데미·국립공학아카데미·국립의학아카데미)에 모두 선출된 기록을 갖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는 미국 국가 과학 메달,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국가 기술 및 혁신 메달을 받았고, 2015년에는 ‘공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여왕 공학상을 받았다.

 

랭어는 자신이 이룬 업적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누군가가 내 연구의 혜택을 받고 감사함을 느낀다면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필요 없는 것이 훨씬 좋은 세상”이라고 했다. MIT는 랭어를 ‘현대의 에디슨’이자 ‘매지컬(magical·마법의) 밥(로버트의 애칭)’이라고 부른다. 그의 마법이 아픈 사람이 없는 세상으로 우리를 얼마나 더 가까이 데려갈 수 있을까.

 

-박건형 기자, 조선일보(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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