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분 능선의 철학]
[세상 혐오한 끝에 만든 도피처... ]
8분 능선의 철학
[조용헌 살롱]
지리산의 금강대(金剛臺), 영신대(靈神臺), 노장대(老將臺), 영랑대(永郎臺) 같은 해발 1000m 이상의 기도처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곳곳에 빨치산 루트가 있었다. 빨치산이 선호한 산길은 대개 8분 능선쯤에 있었다. 능선 위가 아니었다. 능선 위로 다니면 드러나서 토벌대의 총에 맞기 쉬웠기 때문이다. 꼭대기보다는 약간 아래쪽인 8분 능선의 철학. 벼슬에도 8분 능선이 있다.
조선 시대 명문가 후손들을 만나보면 ‘우리 집안은 정3품 이상은 하지 말라는 가훈이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정3품은 통정대부. 종2품이 가선대부, 즉 관찰사니까 그보다는 약간 아래 벼슬이다. 요즘에는 차관보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정3품 이상 하다가는 8분 능선을 넘어간다. 8할 위로 넘어가면 당쟁에 휘말려서 멸문지화를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민주당 혁신위원장을 맡았다가 집중 사격을 받고 전 국민에게 망신당한 김은경을 바라보면서 ‘벼슬의 8분 능선’이 생각났다. 혁신위원장 자리는 8분 능선을 넘는 자리였다. 금감원 부위원장 자리에서 머물렀더라면 이렇게 사생활, 가정사가 다 까발려져서 전 국민의 ‘악녀’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치는 누드 게임이다. 하나 하나 옷을 벗길 때마다 대중은 환호한다. 포르노 배우가 아닌 이상에야 모든 사람은 누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누드로 가는 길에는 사생활도 없고, 가정사도 없다. 8할을 넘어가면 포르노 배우가 되는 길이다. 그런데도 왜 인간은 꼭대기를 위해서 달려갈까. 누드가 되어도 좋다는 각오가 없이 말이다. 각오와 준비 없이 얼떨결에 8할을 넘었다가 근래에 패가망신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벼슬에 대한 집착은 유교 문화의 유산인가? 아니면 인간 본성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정 욕구’의 발동이란 말인가.
사회에서,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환호를 받고 싶은 인정 욕구는 불가에서 말하는 아상(我相·ego)의 뿌리이기도 하다.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하고, 참선을 해 보아도 아상을 제어하기는 쉽지 않다. 기도, 염불, 참선보다도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 피, 땀, 눈물이라는 세 가지 액체를 흘리는 길이다. 거친 노선이다. 김은경도 이번에 기관총 사격을 받고 세 가지 액체를 많이 흘리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도살장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현재 한국 사회는 모든 위선과 거짓을 해체하는 도살장이다. 8분 능선 아래에서 멈추는 지지(知止)의 경지는 이렇게도 어려운가?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일보(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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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혐오한 끝에 만든 도피처...조선 대표 원림 '담양 소쇄원'
소쇄원의 광풍각.
한국 현대사에서 전라도는 피를 많이 흘렸던 지역이다. 동학혁명의 와중에 죽은 사람이 3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20만명이 전라도 사람들이라는 추정이 있을 정도다. 6·25전쟁도 그렇다. 전라도는 지주와 소작 간에 갈등이 많았던 평야지대였다. 들판이 피를 불렀다. 서로가 서로를 찔러 죽였다.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게 많이 죽었다. 5·18은 또 어땠는가!
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고급 문화의 유적지와 흔적 또한 전라도에 많이 남아 있다. 전라도 고급 문화의 예를 들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원림(園林)이다. 담양에 있는 소쇄원(瀟灑園)이 그렇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살림집과는 별도로 자리하고 있는 정원이 별서정원이다. 소쇄원이 자리 잡고 있는 무등산 북쪽의 지역은 창평, 담양, 화순 일대다. 그러니까 무등산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에 누정(樓亭)이 대략 200여개쯤 포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누정이 미니 정원이라고 해도 그 숫자가 200여개에 이른다면 이 지역의 경제적 기반이 그만큼 받쳐 주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본적으로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니까 이런 누정이 세워질 수 있었다.
그런 누정 문화의 중심에 소쇄원이 있었다. 무등산 북쪽 소쇄원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에는 독수정(獨守亭)이 있다. 고려 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 명이 조선조 출사를 거부하고 은둔하고자 지은 정자이다. 그리고 소쇄원과 소쇄원 주인의 사돈이 지은 환벽당(環碧堂), 환벽당의 사위가 지은 식영정(息影亭)이 연달아 포진해 있다. 조선 중중 때 양산보(1503~1557)가 스승인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죽자 사회활동을 포기하고 숲속에 들어가 세상에 나오지 말자고 해서 지은 정원이 소쇄원이다.
10대 후반에 세상 환멸을 느낀 양산보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양산보는 일찍부터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징글징글한 세상 나가지 말자!’ 그때가 대략 1520년 무렵이나 되었을까! 요즘 같으면 40대 후반쯤이나 되어야 세상에 대한 환멸을 느끼는데, 소쇄공 양산보는 10대 후반에 느껴버렸다. 불가에서는 무상(無常)함을 빨리 느낄수록 천재라고 일컫는다. 세상에 나가 사회활동을 하면서 출세도 하고 돈도 벌고 이름도 얻고 싶은 욕구는 쉽게 끊기 어려운 욕구이다.
처음에는 세상과 단절하고 은둔하기 위해서 지은 원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쇄원은 호남을 대표하는 원림으로 이름을 날렸다. 전라도에 오는 당대의 명사 치고 소쇄원을 찾지 않는다면 뭔가 먹물 주류사회에서 빠지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소쇄원은 조선조 상류층 관료학자들에게 찬양받던 정원이었다.
유가(儒家)는 불가와 도가를 공허(空虛)하다고 비판하였다. 붓다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공(空)’이다. 모든 게 변하고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실체가 없다고 보는 게 공사상(空思想)이다. 반면 노자는 허(虛)를 강조하였다. 비어 있음이 사물의 실체라고 본 것이다. 유가는 이를 싸잡아서 ‘공허하다’고 때렸다. 그러나 정작 유가 선비들이 세상에 나가서 당쟁을 겪고, 서로 사약과 유배를 주고받는 험한 꼴을 겪으면서부터는 공과 허의 세계로 피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불교의 공보다는 도가의 허가 좀 더 입맛에 맞았다고나 할까. 이름하여 외유내도(外儒內道). 겉으로는 유가를 표방하지만 내면세계는 도가적인 취향의 캐릭터다. 여기에서 도가는 술과 자연, 그리고 계곡을 상징한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의 가치관이다.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그러니까 ‘자연이야말로 하느님이다’로 해석할 수 있다. 자연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생각이 도가의 철학이다. 그러기 위해서 도그마나 체제에 너무 붙잡혀 있지 말고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 스타일로 살라는 말과 비슷하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시도하다가 환멸을 느끼는 유학자들이 소쇄원과 같은 원림을 좋아하였다. 이게 살롱으로 발전하였다. 이 살롱에서 학문과 고담준론, 그리고 예술 담론이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 자연과 내가 어떻게 하나가 될 것인가?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도의 경지이다.
소쇄원의 감상 포인트는 광풍각(光風閣) 앞의 작은 계곡에서 물이 흐르는 모습이다. 광풍각 앞으로 미니 계곡이 흐르는데 그 계곡 바닥에는 단단한 바위들이 서 있다. 계곡이 거대하면 사람이 거기에 묻힌다. 설악산 주전골이나 흘림골의 바위절벽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은 사람을 압도하지만, 광풍각 앞의 미니 계곡은 압도 대신에 감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자연의 압도적 스케일이 축소되어 있는 셈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식자층이 주목한 포인트는 바위와 물이다. 바위에서 기(氣)가 나온다고 여겼다. 바위 속에는 광물질이 함유되어 있고, 이 광물질을 통해 나오는 지자기가 인체를 강건하게 만든다. 바위 위에 있으면 우울증도 치료된다. 기를 받기 때문이다. 낙관이 생긴다. 비관이 되는 것도 기가 빠지면 생기는 현상이다. 삶의 비극성에 대항할 수 있는 에너지는 바위가 보충해 준다고 믿었다.
광풍각에서 펼쳐지는 계산풍류
바위가 불이라면 계곡의 물은 여유를 준다. 물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열받고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물이 치유하는 게 있다. 물은 소리도 낸다. 물소리가 사람의 불안을 달래준다. 잠결에 듣는 물소리는 하늘의 소리이다. 소리가 인간의 차원을 승화시킨다. 바위와 물, 물과 불이 융합되면 인간을 건강하게 만들고, 영성을 개발시킨다. 바위와 물의 치유능력은 조선시대 언어 표현으로는 계산풍류(溪山風流)가 된다. 계곡과 산의 풍류이다. 풍류는 무엇인가? 유어예(遊於藝)이다. 노는 것도 예술이 되는 경지, 이것이 풍류이고 계산풍류가 그 정점에 있다.
대자연 속에서 놀면 좋지만 인적이 드문 산속에 거처한다는 것은 불편함이 있다. 정원은 대자연을 축소한 축경(縮景)이다. 한 평짜리 좁은 공간이지만 이 광풍각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노라면 계산풍류의 현장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눈앞의 이 계류는 갈지자로 서너 번 꺾여서 물이 내려온다. 물이 바위에 꺾일 때마다 소리를 낸다. 인생도 방향이 꺾일 때마다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광풍각에 누워 그 물소리를 듣는다.
광풍각에 앉아 이 계곡의 흐르는 물을 볼 때마다 산수화 ‘계산행려도(谿山行旅圖)’가 생각난다. 북송의 화가 범관이 그린 그림이다. 거대한 바위절벽이 정면에 보이고 그 절벽 밑으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그 계곡을 콩만 하게 그려진 네댓 명의 여행객이 나귀에 짐을 싣고 여행하는 모습이다. 대자연의 바위와 물에 완전히 파묻혀 여행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대자연에 이처럼 완전히 몰입되어 파묻히는 모습. 이것이 한자문화권의 식자층이 생각한 구원의 모습이자, 대자유의 풍경이었다. 소쇄원 광풍각 앞의 풍경은 이 ‘계산행려도’를 축약시켜 놓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주간조선(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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