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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우스’를 챙길 때다] [‘탈중국’ 수혜 누리는 인도] ....

뚝섬 2024. 1. 5. 06:55

[‘글로벌 사우스’를 챙길 때다]

[“2031년까지 연 7% 경제성장”… ‘탈중국’ 수혜 누리는 인도]

[그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인구·자원 무장한 '글로벌 사우스']

[중국보다 10살 젊다...인도, 10년뒤 세계 경제 넘버2 넘보는 이유]

 

 

 

글로벌 사우스’를 챙길 때다

 

[朝鮮칼럼]

인도 등 亞·阿·남미의 130여 국 북반구 선진국 맞서 협력·연대
도덕주의보다 현실주의 입각.. 美中 택일 없이 선택적 협력
한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 되려면 지역별 맹주와 협력틀 만들어야
성공스토리·상생길 공유할 때 그들도 한국 G7 공감해 줄 것

 

지난 1월 화상 회의 형식으로 열린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인도 외교부

 

대한민국이 2024년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에 다가가려면 인도-태평양 전략의 연장 선상에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를 챙겨야 한다. 미·중 전략 경쟁 격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글로벌 사우스가 세계 질서 재편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의 개도국 130여 개를 가리키는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중국·러시아 그리고 유럽 및 동북아의 선진국 50여 개를 뜻하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지배’에 저항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제 질서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미국과, 이에 대한 변경을 원하는 중·러는 모두 글로벌 사우스의 협력과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인도, 브라질, 사우디, 인도네시아, 남아공 등이 각자 또는 서로 연대하면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이 냉전기 비동맹(non-alignment)과 다른 것은 ‘도덕주의’보다 ‘현실주의’에 입각해 있다는 점이다. 과거 비동맹국가들이 미국과 소련 둘 다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멀리했다면, 최근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과 중국 중 택일하지 않고 국익과 세력 균형에 따라 선택적 협력을 한다. 인도는 중국과 경제 협력을 하면서도 중국을 견제하고 첨단 기술 협력을 위해 미국을 가까이한다. 브라질은 기후변화 문제에 관해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중국 및 러시아와 잘 지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 대부분이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공세적 침투 행태를 경계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기술 분야의 필수 광물을 보유한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콩고 민주공화국 등은 자원을 무기로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틈새를 활용해 인도가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를 자처하고 나섰다. 인도는 2023년 1월 온라인으로 글로벌 사우스 정상회의를 주최한 데 이어, 9월 9~10일 뉴델리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았다. 인도는 채무 위기를 겪고 있는 아프리카 등 50여 국에 대한 채무 탕감을 G20 회원국들에게 요청했다.

 

이러한 세계 질서의 변곡점에서 글로벌 노스의 일원인 한국은 국력에 걸맞은 역할과 경제안보 제고를 위해 글로벌 사우스를 본격적으로 챙길 시점에 왔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지난해까지 1년 7개월 동안 ‘자유와 연대’를 강조하며 국제적 위상을 제고했다. 나토 정상회의에 2년 연속 참석했고, 2023년 G7 정상회의에도 초청받았다. 국익 외교에 가치 외교를 더해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수호하려는 모습을 각인시켰다. 더욱 강력해진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 그리고 우방국과의 관계를 활용하여 이제는 글로벌 사우스를 챙겨야 한다. 한-인도 관계를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요 축으로 발전시키고, 그 연장 선상에서 브라질, 사우디, 인도네시아, 남아공 등 글로벌 사우스의 지역별 맹주들과 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올해 11월 미 대선에서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 성향의 후보가 당선될 경우 세계 질서가 요동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노스의 미 동맹국들이 글로벌 사우스 주도국들과 구축한 협력 네트워크가 탄탄해 보이면 미국이 신고립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 내 (지역 맹주들을 제외한) 저개발국과의 협력 역시 한국 혼자보다는 미국, 일본, EU, 캐나다, 호주 등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들과 함께 추진해 가는 게 좋다. 원조 정책을 재점검하고 개선책을 논의할 고위급 협의를 우리가 제안하는 것도 방법이다. 개발 협력 정책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공유하면서 체계적 역할 분담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2022~2023년 지정학적 갈등 속에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이 새벽 눈 내리듯 소리 없이 부각되면서 2030 엑스포 유치전은 글로벌 노스의 일원인 한국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접촉면을 넓힌 것은 향후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성공 스토리를 공유하고 상생의 길을 제시할 때 대한민국이야말로 G20을 넘어 G7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공감대가 국제사회에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前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조선일보(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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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년까지 연 7% 경제성장”… ‘탈중국’ 수혜 누리는 인도

 

글로벌 경기 둔화에도 불타오르는 인도 경제
올해 경제 성장률 6.3% 전망, 中 제치고 ‘세계 1위’ 인구대국… “젊은 인구 8억, 무엇이 두렵겠나”
‘인도에서 만들자’ 제조업 육성 박차… 2018년 이후 유니콘 기업 107개 탄생
모디 총리 올해 첫 美 국빈 방문… “韓,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 해야”

 

《인도 경제, ‘脫중국 효과’에 미소: 글로벌 경제가 고금리 장기화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신음하는 와중에도 인도 경제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젊은 노동인구가 풍부하고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지는 데다, 인도 정부도 규제 혁신에 나서며 산업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탈(脫)중국 현상의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인도 경제의 상황을 분석해 본다.》

“세계와 인도의 최고를 하나에 모았습니다.”

1일(현지 시간) 인도의 상업 중심지 뭄바이에 최초로 들어선 명품 쇼핑센터 ‘지오 월드 플라자’의 온라인 웹사이트 대문엔 이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약 6만6000㎡(약 2만 평) 규모의 이 쇼핑센터엔 발렌시아가, 생로랑, 베르사체 등 66개의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입점했다. 컨설팅 회사 테크노파크의 아르빈드 싱할 회장은 “최근 7∼8년 동안 인도엔 고급 자동차와 보석을 구입할 수 있는 새로운 부유층이 등장했다”며 이러한 쇼핑센터가 등장한 이유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설명했다.

 

인도 경제가 비상하고 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에서 영국을 제치며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으로 떠올랐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75년 만이었다. 올해는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대국으로 올라섰다.

 

국제 정세도 인도가 한껏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중 관계의 악화로 그동안 ‘세계의 굴뚝’이던 중국이 그 자리를 인도에 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경제의 마중물인 금융산업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인도에 진출하고 있다.

 

● ‘3고(高)’ 피해간 14억 인구 경제 순풍

 

고금리와 고물가, 고유가까지 ‘3고(高)’ 현상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지만 인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모습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초 올해 인도의 GDP 성장률이 석 달 전 전망보다 0.2%포인트 높은 6.3%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내년도 GDP 성장률은 기존 예측대로 6.3%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가 내년도 세계의 GDP 성장률(2.9%)을 기존보다 0.1%포인트 낮게 잡은 것과 대조된다. 중국의 성장률은 올해와 내년 각각 5.0%, 4.2%로 내다봤는데, 이는 석 달 전 전망보다 0.2%포인트, 0.3%포인트 낮다.

 

그에 앞서 올 8월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인도의 연평균 GDP 성장률이 2031년까지 6.7%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도 정부의 수석경제고문인 아난타 나게스와란도 8월 말 경제성장률 관련 기자회견에서 “국제유가 압박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장기화 등 외부 요인에 따른 하강 위험이 있지만 인도 경제의 성장 전망은 밝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인도 정부의 자신감은 상당 부분 ‘인구 보너스 효과’에서 나온다.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015년 “젊은 층 인구가 8억 명이나 되는 인도가 무엇이 두렵겠는가”라고 말하며 ‘인구 대국’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유엔인구기금(UNFPA) 전망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인도의 인구는 14억2862만 명으로 중국(14억2567만 명)을 근소하게 제치며 처음으로 세계 1위가 됐다. UNFPA는 인도의 인구가 2050년까지 16억68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반면 같은 해 중국은 13억1700만 명으로 인구가 줄어든다.

 

● 중위 연령 29세 저임금-영어 능통 이점


모디 총리의 말처럼 14억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젊은 층이라는 점은 인구 경제의 앞날을 밝히는 요인이다. 국제금융센터는 올 4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인도의 중위 연령이 29세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젊은 노동력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38세)과 베트남(32세) 등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젊은 층이 많다. 그 결과 인도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30달러(약 30만 원) 정도로 중국의 20%에 불과해 글로벌 기업들의 입장에선 경영에 큰 이점이 있다. 또 인도는 각 지방의 언어가 1600개에 달해 다른 지방 사람들끼리 대화할 땐 보통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엔 의사소통에도 장점이 있다.

인도 정부 역시 꾸준히 규제 혁신에 나서며 산업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2014년 집권 직후 ‘인도에서 만들자(Make In India)’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2014년 14%에 불과한 전체 산업 중 제조업 비중을 2025년까지 25%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당초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제조업 비중은 2022년 18%까지 올라왔다. 인도 정부는 2019년부터 자국 기업의 법인세를 기존 30%에서 22%로 인하하고 새로 설립된 현지 제조 기업의 법인세를 15%로 낮추는 등의 개혁을 감행하며 ‘굴뚝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기업가치 1조 원이 넘는 비상장 신생기업, 이른바 ‘유니콘 기업’도 인도에서 대거 태동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인도에서 탄생한 유니콘 기업은 총 107개로 세계 3위 규모다. 공사 측은 “인도는 저렴한 인건비를 기반으로 정보기술(IT) 인력을 손쉽게 채용할 수 있고, 다른 나라보다 현격히 낮은 통신비가 디지털을 통한 스타트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엔 미중 갈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지역 생산기지를 중국에서 인도로 이전하는 서방 기업이 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미국의 리서치업체 로듐그룹의 연구보고서에 근거해 지난해 서방 기업들이 인도에 생산기지를 만드는 등의 ‘그린필드 투자’가 2021년과 비교해 4배(650억 달러·약 86조 원) 늘어났다고 전했다. 반면 서방 기업의 중국에 대한 관련 투자는 2018년 1200억 달러(약 157조 원)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200억 달러(약 26조 원)로 급감했다.

 

● 글로벌 IB M&A 수익, 中보다 더 컸다


인도의 산업 기반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글로벌 금융권에서도 인도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올 1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주요 은행들은 인도에서 △인수합병(M&A) 및 기업공개(IPO) 등 투자은행(IB) 분야 △자산관리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업무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특히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최대시장인 중국보다 인도에서 더 많은 M&A 수익을 거뒀다. 경기침체로 글로벌 M&A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인도에선 현지 HDFC은행이 모회사와 600억 달러(약 78조 원) 규모의 M&A를 단행하는 등 ‘빅딜’이 잇달았기 때문이다.

뭄바이에 대규모 명품 쇼핑센터가 들어선 데서 알 수 있듯 인도 부호의 급증으로 이들의 자산관리 시장도 관심을 받고 있다. HSBC은행은 최근 인도 프라이빗뱅커(PB)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고, 도이체방크는 인도 현지에서 최근 3년 동안 투자운용사 관련 인력 44명을 고용했다. 노무라는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신규 지점을 만들고 중동에 사는 인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관리 서비스 확대 방침을 밝혔다. KB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2047년에 인도 인구의 60% 이상이 중산층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도 정부가 외국계 보험회사의 진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인도의 보험업도 주목받고 있다. 인도 정부는 인도가 2032년 독일과 이탈리아, 한국을 제치고 세계 6위 규모의 보험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7월 “인도의 국영 보험회사가 보험시장에서 독과점 수준의 지위를 지속해오다 민영화 및 규제 완화 등 내외부 환경 변화를 거치면서 민영 보험회사의 시장점유율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 인도 정상과 올해 두 차례 만난 바이든


인도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무게감이 달라지고 있는 것은 최근 미국의 행보에서도 읽을 수 있다. 올해 6월 모디 총리는 국빈 자격으로 3일간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최소 세 차례 회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모디 총리는 취임 이후 미국을 다섯 차례 방문했지만 국빈 자격으로 방미한 건 처음이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9월 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 수도 뉴델리를 찾아 석 달 만에 다시 모디 총리를 만나기도 했다.

미국이 이처럼 인도에 공을 들이는 것은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안보에 있어서도 인도가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중국과 히말라야 남쪽 아루나찰프라데시주(州)와 카슈미르 지역 악사이친 고원을 두고 영토 분쟁을 벌이는 ‘앙숙’ 관계다. 인도와의 밀착을 통해 대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국을 군사적으로도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 시장의 한계도 명확하다. 물동량 기준 세계 50대 항구 가운데 인도의 항구는 한 곳도 없다. 이에 비해 중국은 14곳에 달한다. 인도의 고속도로는 전체 도로 중 5%에 불과한 실정이다.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한 것이다. 또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해 주별로 다른 법과 조세 구조도 외국 기업이 현지에 진출하는 데 부담으로 꼽힌다. 국제금융센터는 보고서에서 “향후 상당 기간 인도 경제가 중국을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성장 잠재력과 지정학적 수혜를 감안해 우리나라도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단계적으로 시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황성호 기자, 동아일보(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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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인구·자원 무장한 '글로벌 사우스'

 

인구와 자원 양날개로 고속 성장
정치적 몸값도 높아져
반중친미 두드러져

 

“우리의 초청국 리스트는 ‘글로벌 사우스’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지난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주최국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인 한국·호주와 함께 개발도상국인 인도·브라질·베트남·인도네시아 정상들도 초대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글로벌 사우스’란 용어를 사용했다. 지난 9월 인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국제 사회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고, 앞서 지난 1월 모디 총리는 화상으로 아시아·남미·아프리카 중심으로 125국 지도자들을 불러 모은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라는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지난 1월 화상 회의 형식으로 열린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인도 외교부

 

올해를 기점으로 국제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거대한 축이 될 것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사우스는 대체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위치한 제3세계 개발도상국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북반구에 쏠려 있는 선진국들을 가리키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호르헤 하이네 미국 보스턴대 교수는 WEEKLY BIZ에 “북미·유럽에 비해 가난하고 산업화 수준이 낮지만,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나라들을 지칭한다”고 했다.

 

세계 경제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은 부쩍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에 참가한 125국의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올해 11.9%에 달할 것으로 보여 2012년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던 비율(11.4%)을 뛰어넘었다. 2012년은 이미 중국이 경제 규모 세계 2위가 된 지 3년째 되던 해다. 자원과 인구라는 두 가지 축을 발판으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빠른 경제 성장을 꾀하고 있다. 경제는 물론이고 지정학적으로도 글로벌 사우스의 몸값이 뛰면서 미국과 중국은 서로 자신들의 품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제 브릭스 아닌 글로벌 사우스

 

글로벌 사우스의 ‘맏형 국가’는 인도다. 인구와 경제 규모(GDP) 모두 인도가 글로벌 사우스 중 가장 크다. 게다가 모디 총리는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가 되려는 의지가 강하고, 저개발 국가들일수록 인도를 중심으로 뭉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정상회의에 참석한 125국에는 세르비아, 벨라루스 같은 유럽 국가들도 포함돼 있다. 당시 참여하지 않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네시아, 남아공, 튀르키예도 대체로 글로벌 사우스로 분류된다.

 

이제는 개발도상국을 가리키는 표현의 무게 중심이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글로벌 사우스로 옮겨갈 조짐도 보인다. 특히, 지난 8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확대를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내분 양상을 노출한 것도 글로벌 사우스가 주목받는 배경이 되고 있다. 러시아·중국은 브릭스를 G7 또는 G20에 맞서는 대항마로 만들고 싶어하지만, 인도·브라질은 미국에 맞서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하고 있어 브릭스의 와해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권위주의 정치 체제인 중국·러시아가 주축인 브릭스와 달리 인도 중심의 글로벌 사우스는 민주적인 체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이웃 나라들을 실제로 침공하거나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중국·러시아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중국은 개발도상국들이 글로벌 사우스라는 우산 아래 인도를 중심으로 많은 나라가 뭉치기 시작하자 잔뜩 경계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 타임스는 지난 9월 사설을 통해 “중국이 빠진 글로벌 사우스는 가짜 명제”라며 맹비난했다.

 

글로벌 사우스는 개발도상국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시대적인 키워드로 뿌리를 내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제3세계, 저소득 국가, 개발도상국, 신흥국 같은 서구 선진국 시각에서 만들어진 용어에 대해 비(非)선진국들이 거북함을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2028년에는 세계 GDP 13.5%

 

글로벌 사우스는 빠른 속도로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키우고 있다. 지난 1월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정상회의에 참여한 125국의 GDP는 1992년 세계 GDP의 6.1%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1.9%까지 커졌고, 2028년에는 13.5%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맏형 인도는 지금은 GDP 세계 5위지만 빠른 성장 덕분에 4년 뒤인 2027년에는 일본과 독일을 제치고 미국·중국에 이은 GDP 3위로 올라설 것으로 IMF는 전망한다. 인도가 부상하는 만큼 글로벌 사우스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IMF가 내다본 올해 GDP 세계 순위에서 50위 이내 국가 중 글로벌 사우스 국가가 20곳에 이른다. 인도에 이어 브라질(9위), 멕시코(12위), 인도네시아(16위) 등이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의 주요국들은 성숙 단계에 접어든 선진국들과 달리 쾌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중 GDP 상위 20국 가운데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6국을 뺀 14국이 올해 IMF가 분류한 선진국들의 평균 경제 성장률(1.5%)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2025~2028년 사이 매년 6%대 고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경제 성장률이 6.3%일 것으로 예상되는 인도 역시 2028년까지는 비슷한 속도로 쭉 덩치를 키워나갈 것으로 IMF는 전망한다.

 

이미 글로벌 사우스에는 쟁쟁한 기업들이 등장했다. 증시정보업체 컴퍼니스마켓캡에 따르면, 시가총액(이하 시총)으로 세계 100대 기업에 글로벌 사우스 국가의 기업이 4곳에 이른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석유가 아닌 산업을 키우기 위해 설립한 지주회사 인터내셔널 홀딩이 시총 2386억달러로 세계 37위에 올라있다. 뒤를 이어 석유회사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53위), IT 기업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71위), HDFC 은행(73위) 등 인도의 거대 기업 3곳도 시총 세계 100위 안에 포함된다.

 

매출 규모가 기준인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도 올해 브라질이 9개 사, 인도가 8개 사, 멕시코가 3개 사를 올려놓고 있는데, G7에 속하는 이탈리아 기업이 5개 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글로벌 사우스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콜롬비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튀르키예 기업도 하나씩 글로벌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자원과 인구, 성장의 양대 날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풍부한 천연 자원과 젊은 세대가 많은 인구 구조를 발판으로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핵심 광물들이 글로벌 사우스에 대량으로 매장돼 있다. 매장량으로 리튬 1위는 칠레, 니켈 1위는 인도네시아다. 코발트도 1위 콩고민주공화국과 함께 매장량 3~5위 국가가 모두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천연 자원이 풍족한 나라들이 경제 성장에 실패하는 ‘자원의 저주’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용 광물이 많이 매장된 나라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동맹체를 결성해 힘을 키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광물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해 이익을 제고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선진국의 수탈 기지로 이용되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경제 매체 포브스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브라질이 ‘리튬 OPEC’을 결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인도네시아는 니켈 생산국들을 규합해 좌장이 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거대한 인구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힘의 원천이다. 인구가 1억명이 넘는 국가 15국 중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11국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이 높거나, 중위 연령이 낮아 앞으로 생산가능인구가 크게 늘어날 잠재력이 있는 나라들이다. 브라질은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69.8%에 달한다. 경제 규모로 아프리카 1위인 나이지리아는 중위 연령이 17.2세에 불과하다. 이런 나라들은 노동력은 풍부한 반면 고령화에 따른 보건·복지 비용 부담은 적어 경제 성장 속도가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은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늘어나면서 경제 성장에 가속도가 붙는 현상을 말하는 인구 배당 효과를 장기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IMF는 인구가 1억명이 넘는 콩고민주공화국(2090년)과 나이지리아(2095년)는 앞으로 60~70년 동안 인구 배당 효과를 누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테슬라·인텔도 글로벌 사우스로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은 요즘 잠재력을 보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생산 기지를 늘리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70억달러 수준이었던 인도 내 제품 생산 규모를 5년 뒤에는 5배가 넘는 400억달러까지 늘릴 계획이다. 피유시 고얄 인도 통상산업부 장관은 지난 1월 “애플이 전체 생산품의 5~7% 정도를 인도에서 만들고 있는데, 이 비율이 앞으로 25%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세계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도 지난 3월 멕시코에 모두 150억달러를 투자해 대형 생산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인근에도 대규모 업무 시설을 만들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인도네시아 정부와도 투자를 논의하는 중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은 베트남에 15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테스트·패키징 시설을 구축했는데, 올해 2월에는 “투자 확장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보쉬는 6500만유로를 들여 말레이시아 페낭에 반도체 테스트 시설을 짓고 지난 8월 가동에 들어갔. 보쉬는 앞으로 2억8500만유로를 추가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코로나 백신 개발로 유명해진 미국 바이오 기업 모더나는 지난 3월 아프리카 케냐에 연간 5억 도스(dose·1회 접종분) 분량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중 정서 퍼지는 글로벌 사우스

 

미국과 유럽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중국과 가까워지지 않도록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지난 9월 G20 정상회의에서 ‘인도·중동·유럽 경제 회랑’ 계획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해운·철로로 인도, 중동, 유럽을 연결한다는 계획으로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유럽과 가까워지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모두 미국과 유럽에 도움이 되며, 중국의 ‘일대일로’를 저지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서방 언론들이 분석하고 있다.

 

일본도 올해 G7 정상회의에 인도·브라질·베트남·인도네시아 정상들을 초대한 것처럼 글로벌 사우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7월 일본 정부는 인도와 반도체 연구·개발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도울 것을 약속하는 협력 각서(MOC)를 체결했다.

 

최근 글로벌 사우스에서는 서방 선진국들과 거리를 좁히면서 자연스레 반중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인도에서 중국이 싫다는 응답은 2019년 46%였지만, 올해는 67%까지 올랐다. 지난해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와 케임브리지대 베넷공공정책연구소가 각국 성인 1000여 명씩을 조사했더니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군대를 보내서 도와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나이지리아(55%), 케냐(51%), 인도(50%) 등 글로벌 사우스에서 절반 이상이었다. 글로벌 노스에 해당하는 영국(18%), 독일(19%), 미국(26%)보다 훨씬 높았다.

 

기술·교육·복지, 아직은 갈 길 멀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선진국과 경제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기술 발전 속도가 아직은 더디다. 인프라나 교육·복지 시스템도 열악하다. 또한 아직 저성장 단계에 있어 청년들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중남미(20.5%)와 중동(24.8%) 지역의 청년 실업률은 세계 평균(14.9%)에 비해 높은 편이다.

 

글로벌 사우스가 더 빨리 성장하려면 막대한 국가 부채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대니얼 리 IMF 경제 전망 담당 총괄 수석은 “저소득 국가의 56%, 신흥국의 25% 정도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져있거나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IMF 분석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저소득 국가 45국 중 30국이 심각한 부채를 안고 있다. 영국의 자선단체인 ‘부채 정의(Debt Justice)’는 WEEKLY BIZ에 “개발도상국들이 부채를 갚기 위해 화석 연료 생산을 늘리면서 기후 변화 대응에 역행할 우려가 있다”며 “별개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홍수나 가뭄 같은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더 많이 보고 있다”고 했다.

 

-홍준기 기자, 조선일보(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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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보다 10살 젊다...인도, 10년뒤 세계 경제 넘버2 넘보는 이유

 

인도 출신 케임브리지大 할다르 교수 인터뷰

 

1년 전 이맘때 인도인들은 환호했다. 작년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영국을 뛰어넘어 경제 규모 세계 5위로 올라섰다는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250여 년간 통치했던 영국을 제쳤다는 건 통계상 순위 변화를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반겼다.

 

IMF(국제통화기금)가 추후 국가별 GDP를 최종 집계한 결과로는 2021년에 이미 인도가 영국을 추월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도가 3조1503억달러로 영국(3조1232억달러)을 뛰어넘은 것이다. 영국에서 독립한 지 74년 만이었다. 1980년만 하더라도 영국 GDP는 6049억달러로 인도(1894억달러)의 3배가 넘었지만 약 40년 만에 뒤집혔다. 그만큼 인도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인구로 중국을 누르고 세계 최대 국가로 올라섰다. 앞으로 인도가 어떤 속도로,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인도의 미래에 대해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사회까지 망라한 종합적이고 현실적인 전망을 듣기 위해 WEEKLY BIZ는 인도 출신인 안타라 할다르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화상으로 만났다. 2014년 28세에 케임브리지대 법학부 최초의 비유럽인 교수가 된 할다르 교수는 학문의 영역에서는 경제학·법학·철학을 아우르고, 지역의 범위로도 유럽과 인도를 포함해 폭넓은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할다르 교수는 “2027년이면 독일과 일본을 누르고 인도가 GDP 세계 3위 국가가 될 것”이라며 “성장 속도를 계속 빠르게 유지할 경우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인도가 중국을 추월할 수도 있는 가시권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도가 고등교육 경쟁력을 꾸준히 높여 IT와 우주개발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실력을 끌어올렸다”며 “지방에 권력을 분산하고 다양한 언어와 종교를 공존시키며 민주주의적 정치 시스템을 지켜온 것도 중국에 비해 인도가 갖는 강점”이라고 했다. 할다르 교수는 그러나 인도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도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허약한 사회보장제도, 사법 시스템의 취약성, 카스트 제도의 잔재처럼 해결해야 할 약점도 많다”고 했다.

 

할다르 교수는 젊은 인도계 학자로 요즘 국제 무대에서 이름값을 높이고 있다. 인도의 명문 세인트스티븐스대 경제학과를 나와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에는 노벨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와 함께 인도에서 소액 금융 제도가 실패한 원인에 대해 분석한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더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LA타임스 등 영미권 유력 매체에 칼럼을 기고했고, 2019년부터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의 기고자로 활동하고 있다.

 

◇“21세기, 중국이 아닌 인도의 세기 될 수도”

 

인도 경제는 2009년만 해도 GDP 기준 세계 10위권 밖이었다. 그러다 2010년 9위로 뛰어오르며 ‘글로벌 톱10′에 진입했고, 이후 11년 만인 2021년에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경제 ‘빅 5′에 속하게 됐다. IMF는 2024~2028년 인도 경제가 매년 6% 이상 성장하는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3~4%대 성장률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도 경제는 앞으로 어디까지 성장할까.

 

“지금 추세로는 2027년이면 일본과 독일을 누르고 세계 3위 경제 대국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주식시장 시가총액 순위도 현재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4위에서 일본을 제치고 3위로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되고요. 10년 뒤쯤이면 인도가 중국의 뒤를 바짝 쫓을 것이라고 봐요. 중국이나 한국의 고도성장기처럼 인도가 높은 성장률을 이어갈 수 있다면요. 원래 21세기가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전망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요? 인도는 지금 순풍을 탔고, 중국은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IMF도 인도가 2027년 경제 규모 세계 3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6년 인도가 GDP 4조7700억달러로 일본(4조9200억달러), 독일(4조8200억달러)의 턱밑까지 쫓아간 뒤, 2027년에 일본·독일을 한꺼번에 넘어서며 GDP 5조달러 시대를 열 것이라는 게 IMF 전망이다. 다만 1인당 GDP로는 인도가 올해 2600달러 수준으로 세계 141위에 그친다. 니카라과나 코트디부아르 수준이다.

 

-어떤 산업이 인도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이 될까.

 

“서비스업이죠. 포스트 팬데믹 시대 인도는 ‘세계의 백오피스’ 기능을 맡고 있습니다. 기업의 운영 업무를 전문 기업에 위탁하는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이 이뤄지는 것이 인도에는 기회가 되죠. IT나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도 더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근 두드러진 기후위기로 인도가 친환경 발전·운송 수단 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겁니다. 인도 정부가 법인세를 인하하면서 신규 제조 업체에 15%의 낮은 세율을 적용했는데요. 새로운 기업 육성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중국보다 ‘10세 더 젊은 나라’

 

유엔 집계로 올해 인도 인구는 14억2863만명으로 중국(14억2568만명)보다 많아졌다. 중국 인구는 이미 2021년 정점을 찍었지만, 인도 인구는 2063년까지 꾸준히 늘어 17억명 가까운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유엔은 전망한다. 게다가 인도는 MZ세대 비율이 높은 ‘젊은 나라’다. 인도의 65세 이상 인구는 올해 7.1%로 중국(14.3%)의 절반 수준이다.

 

-인구로 1위가 된 것이 인도에 어떤 의미가 있나.

 

“인구는 인도가 가진 커다란 자산이죠. (생산 가능 인구 비율이 늘어나면서 경제성장률도 높아지는 현상인) 인구 배당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인도의 중위 연령은 28.2세입니다. 39세인 중국에 비해 10세쯤 ‘어린 인구구조’를 가지고 있죠. 인도의 생산 가능 인구(15~64세) 비율은 올해 68%에서 10년 뒤 68.9%까지 소폭이지만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대부분 나라에서 생산 가능 인구 비율이 감소하는 것과 반대입니다.”

 

실제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30~2060년 G20 가운데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만 인구 배당 효과를 누릴 것으로 내다본다. 할다르 교수는 “인도가 빠른 성장을 위해 과거 중국의 ‘한 자녀 정책’처럼 인위적으로 인구 증가를 막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육이 최고의 피임 도구”라며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경제가 발전하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안정적인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고등교육과 기술교육에 집중한다”

 

지난 8월 인도는 인류 최초로 달의 남극에 우주선을 착륙시킨 나라가 됐다. 달 착륙 성공도 미국, 옛 소련, 중국에 이어 네 번째였다. IT는 인도인 전문가들이 숱하게 쏟아지는 분야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가 모두 인도 출신이듯 글로벌 테크 기업에 인도인들이 넘쳐난다.

 

-IT나 우주 분야에서 인도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독립 이후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 총리는 고등교육과 기술교육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학, 과학, 공학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네루 총리가 설립한 인도공과대학(IIT)이 있죠. IIT 입학 경쟁률은 매우 높지만 입학 이후에는 돈을 거의 내지 않고 수준 높은 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인도 엘리트 계층이 영어를 잘한다는 점입니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영어가 세상의 중심 언어가 되면서 ‘식민 지배의 복권’ 같은 걸 얻었습니다. 게다가 인도에도 동아시아처럼 자녀의 학업 성취에 열성적인 ‘타이거 맘’이 있지요.”

 

-소수 엘리트에 대한 고등교육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 아닌가.

 

“초등·중등교육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공평한 측면도 당연히 있습니다.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부자가 아니라면 ‘경쟁의 사다리’에서 떨어져 뒤처질 가능성이 크죠.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안일을 돕는 아이도 많습니다. 학교에 다니더라도 읽기·쓰기나 사칙연산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도 있고요. 인도의 문자 해독률은 74% 정도인데요. 인도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낮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중등교육이 취약하기 때문에 인도는 숙련공을 양성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생산성이 낮다. 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인도 제조업 근로자 1인당 실질 부가가치 창출액은 8076달러로 말레이시아(3만4402달러)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인도가 ‘세계의 공장’ 역할을 중국에서 넘겨받는 속도가 더딘 이유다. 

 

권력 분산으로 중국보다 민주적”

 

인도는 각 주에 권력이 분산되어 있는 연방국가다. 인도 헌법이 인정하는 언어만 22개가 있다. 힌두교 인구가 80%에 가깝긴 해도 이슬람교, 기독교, 시크교, 불교 신자도 어울려 살아간다. 할다르 교수는 “다양성과 분권주의가 인도가 권력의 집중을 피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동력”이라고 했다.

 

-큰 나라라서 중국처럼 강력한 중앙정부가 경제성장에 도움 된다는 의견도 있다.

 

“개발경제학에서 논쟁거리 중 하나죠. 1970년대 말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이후 ‘규모가 큰 나라에는 권위주의 정권, 강력한 지도자가 있어야 빠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중국이나 베트남이 빠르게 경제성장을 한 이유 중 하나라는 건 인정합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인도와 같은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모델이 성장에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적·정치적으로 더 안정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방정부에 권력을 넘겨주는 걸 꺼립니다. 그러나 중국·인도처럼 큰 나라에서는 연방제로 통합을 이끌어내는 게 장기적으로 다양성을 유지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미·중 갈등 사이에서 인도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게 현명한가.

 

“인도는 복잡한 외교적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실제 군사적 충돌이 생긴다면 인도가 누구 편을 들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중국과는 국경 분쟁 문제가 있지만, 최근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양국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어요. 인도와 중국은 동양의 문화와 전통, 규모와 잠재력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가 서로 싸우게 되면 그건 사실 서방의 이익에 부합되는 결과를 낳게 되죠. 그걸 양국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을 겁니다.” 

 

◇“안정적 사법 시스템 부재 극복해야”

 

할다르 교수는 인도의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는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인도의 영아 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당 24.5명으로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해 높다. 평균 수명이 72세로 선진국은 물론이고 베트남(74.7세)보다도 짧다. GDP 대비 사회보장제도 관련 재정 지출 비율은 1.4%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보건 이외의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받는 인구의 비율도 24.4%로 세계 평균치(46.9%)에 크게 못 미친다.

 

-사회보장 시스템이 어느 정도로 허약한가.

 

“임산부 혜택을 (법률이나 규정상으로) 정당하게 누리는 여성 근로자 비율이 1%나 될까요? 임산부 보호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회보험과 복지제도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론상, 제도상으로는 존재하지만 현실에는 없는 식입니다.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 제도가 너무 복잡해서 기업들이 이를 준수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근로자들의 권리가 침해되고, 불평등의 정도가 커지는 것은 인도를 위기에 빠지게 할 ‘미끄러운 비탈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악명 높은 카스트 제도는 개선 가능한가.

 

“여전히 커다란 문제입니다. 사람을 계급으로 나눠 차별하는 관습이 여전히 남아 있어요. 하지만 극복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경제 발전을 통한 계몽이 해결책입니다. 인도는 사법 시스템도 빨리 정비해야 합니다. 상당 부분이 식민지 시절 존재하던 것을 이어받았는데요. 현재 인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사법 시스템이 시대에 뒤떨어지다 보니 인도인들이 법과 질서를 잘 준수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할다르 교수는 “(남반구와 북반구 저위도에 있는 개발도상국을 말하는) 글로벌 사우스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가 (코로나 사태 같은) 위기 이후 더 강한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다”며 “토끼(서방국가)가 지난 200년간 더 빨리 뛰었지만 앞으로는 아시아라는 거북이가 승리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홍준기 기자/김지완 인턴기자, 조선일보(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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