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AI 반도체’ 군침… 韓, 특혜 논란속 지원 헛바퀴]
[日-TSMC의 ‘밀월’]
[‘10년 내 日 반도체 韓 재추월’… 이런 날 올 수도]
[“반도체는 국가 존망의 열쇠, 일본엔 마지막 기회”]
日 ‘AI 반도체’ 군침… 韓, 특혜 논란속 지원 헛바퀴
[일본 반도체의 역습]
한국의 반도체 지원 지지부진
日, TSMC-마이크론 공장 유치… 기술 협력 통해 경쟁력 강화 나서
美정부 지원 업은 인텔도 맹추격
한국 ‘K칩스법’ 실질 효과 미미… 일부선 “최저한세 폐지 등 필요”
“일본 기업도 인공지능(AI)이 만들어 낸 반도체 성장 시장에서 뒤처져선 안 된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10월 특집호에서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급부상을 조망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미래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AI 반도체 경쟁에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풀고 있는 것도 이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반도체 기업으로서는 미국 마이크론(메모리), 대만 TSMC(파운드리) 등 기존 플레이어들 외에 추가적인 경쟁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법적 지원이 경쟁국들에 비해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AI 반도체 개화’ 주목하는 일본
28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첨단 시스템반도체 설계 능력이 없는 일본 반도체 업계가 당장 AI 반도체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긴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위탁 생산을 하는 파운드리 선단 공정에서도 선두 주자인 TSMC, 삼성전자와는 거리가 있다. 현재로선 TSMC, 마이크론 등의 생산라인 유치에 초점을 맞추는 배경이다.
일본의 승부수는 그 다음 단계다. 해외 기업들의 대규모 공장을 끌어들여 반도체 생태계 전체의 체력을 기른 뒤 자국 기업 경쟁력을 본격적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파운드리 후발주자 라피더스 등에 수조 원대의 자금을 쏟는 것은 향후 AI 반도체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예고되고 있어서다. 특히 2027년 2나노(n·1나노는 10억분의 1) 양산 목표를 밝힌 라피더스는 세계적 경쟁력을 일본 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을 기반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기회를 찾겠다는 포부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엔비디아와 아마존웹서비스(AWS)가 각각 “만약 일본 반도체 제조사가 3∼5나노 수준 공정을 제공한다면 대화를 나눠볼 것”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에 여러 공급업체를 확보하길 희망한다”며 향후 일본과의 협업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일본만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중국은 SMIC를 필두로 그간 구형 공정에서 쌓인 공력을 활용해 화웨이 최신 스마트폰에 7나노 칩을 탑재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대한상공회의소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구형 공정을 반복해서 앞선 제품을 만들 수는 있다. 중국도 규제를 돌파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은 ‘대기업 특혜’ 비판 속 지원 제자리
한국은 AI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먹을거리를 일단 선점했다. 하지만 파운드리 시장에선 후발주자인 인텔, HBM은 마이크론의 추격이 거센 상황이다. 인텔은 최근 2년간 미국과 유럽 각 지역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130조 원이 넘는 파운드리 공장 신규 투자를 발표했다. 마이크론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양분하고 있던 HBM 시장에서 내년 신제품 출시를 통해 도전장을 던졌다.
경쟁 기업들이 자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업고 뛰는 동안 한국에선 ‘K칩스법’조차 뚜렷한 근거 없이 ‘대기업 특혜’라는 오명 아래 공격받고 있다.
올해 3월 갖은 진통 끝에 통과된 K칩스법은 국가전략기술 설비 투자액의 15%(대기업 기준)를 법인세에서 공제해 주는 구조다. 하지만 24%의 높은 법인세율(미국 21%, 대만 20%)과 최저한세 17%를 고려할 때 실제로 기업이 얻게 되는 공제 효과는 미미하거나 거의 없는 수준이다. 또 법인세 징수 이후 공제하는 개념이라 다운사이클(침체기)을 맞은 반도체 기업이 적자를 보면 아무리 신규 투자를 해도 공제 효과는 ‘제로(0)’가 된다. 더구나 K칩스법은 내년 말이면 일몰을 맞는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K칩스법을 넘어 국가전략기술에 대해 실질적인 투자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은 5월 반도체, 배터리 기업 투자 규모에 따른 세액공제분의 일부를 법인세 사후 공제가 아닌 직접 현금으로 환급하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도입하면서 세액공제 직접 환급 카드를 꺼낸 데 따른 벤치마킹이다.
근본적으로 K칩스법의 발목을 잡고 있는 최저한세를 국가전략기술에 한해 폐지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계무역기구(WTO) 기반 체제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에도 미국은 앞장서서 새로운 룰을 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으로 이어지려면 우리도 최저한세 등 제약 조건들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곽도영/홍석호 기자, 동아일보(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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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TSMC의 ‘밀월’
[일본 반도체의 역습]
日, TSMC직원 자녀들 위해 학교 옮기고 대만어 수업 신설
대만 TSMC가 내년 2월 준공할 예정인 일본 구마모토 파운드리 1공장. 이 공장이 지어지면서 일본 반도체 관련 업체들의 인근 지역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일본 국제학교 ‘구마모토 인터내셔널’은 9월 구마모토시 히가시구로 확장 이전했다. 내년 4월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반년 이상 앞당겼다. 대만 TSMC의 구마모토 1공장 완공이 다가오면서 주재원과 그 가족이 미리 일본에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공장이 완공되면 TSMC 주재원 및 가족은 75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구마모토 인터내셔널이 확장 과정에서 뽑은 직원 20명 중 4명은 대만인이다. 영어 70%, 일본어 30%를 사용하는 국제학교지만 대만어 수업도 열 계획이다. 인근 구마모토대 부속 초중고교도 TSMC 주재원 가족을 위한 영어 수업을 신설키로 했다.
일본 금융기업 규슈파이낸셜그룹은 TSMC가 구마모토현 지역 경제에 미칠 효과가 10년간 6조9000억 엔(약 62조8762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규슈 경제에 ‘100년에 한 번 올 기회’”라고 했다. 실제 일본 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도 TSMC 인근에 잇달아 투자를 진행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TSMC가 11조2000억 원을 투자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공장에 이어 2, 3공장까지 확정할 경우 효과는 더 증폭될 전망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부활’을 꿈꾸는 일본과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을 목표로 한 TSMC가 점차 강한 밀월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은 6월 개정한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에 따라 국내 생산기반 강화(1단계)와 차세대 설계기술 확보(2단계) 등을 추진 중이다. 팬데믹 당시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전자제품 등의 생산 차질을 겪은 일본은 외국 기업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국 내 공급망을 확보하는 전략을 택했다.
TSMC, 日에 해외 첫 R&D센터… 日 ‘소부장’ 업계, 투자로 화답
팬데믹때 ‘반도체 부족’ 홍역 치른 日
연구-제조-판매 ‘자기완결주의’ 포기
불리한 조건 감수, TSMC에 양보
TSMC 2, 3공장까지 추가 검토
“일본이 ‘자기완결주의(自前主義)’를 포기하고 방향을 틀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일본 경제·산업 전문가인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과 대만 TSMC의 협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일본 제조업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경영 이념인 자기완결주의는 기초 연구부터 제품 개발, 제조, 판매 등 일련의 가치사슬을 일본 기업이나 계열사가 독점하는 방식을 말한다.
● 반도체 앞에 자존심은 없다
‘반도체 제국’ 일본은 메모리 산업에서 한국에 추월당한 뒤 자체 생산보다는 해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에 의존하는 ‘팹 라이트’ 전략을 채택해 왔다. 그 대신 강력한 소·부·장 기업을 앞세워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정책 방향이 달라졌다. 반도체 부족으로 도요타, 소니 등의 주요 공장에서 심각한 생산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것이다. 일본 정부가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10년 이상 공장 운영’과 ‘반도체 부족 시 일본에 우선 공급’을 내건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21년 6월 해외 파운드리 공장을 자국에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10월 TSMC가 구마모토 진출 계획을 밝히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직접 “투자의 절반을 보조하겠다”며 환영했다. 일본과 TSMC가 강력한 협업 파트너로 떠오른 시점이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TSMC는 지난해 6월 일본 과학도시 쓰쿠바시에 해외 첫 연구개발(R&D)센터를 여는 것으로 화답했다. R&D센터 구축에 든 370억 엔(약 3367억 원) 중 190억 엔을 일본 정부가 부담했다. 기술 유출에 예민한 반도체 업계인 만큼 일본 정부는 연구 성과를 모두 TSMC에 양보하는 등 다소 굴욕적인 조건도 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구마모토 2, 3공장을 추가 검토하면서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 日 소·부·장도 합세
TSMC의 진출에 발맞춰 일본 소·부·장 업체들도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일본 최대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은 TSMC 구마모토에 2025년 준공을 목표로 430억 엔을 투자해 개발 공장을 짓는다. TSMC가 진출한 규슈 지역 사업 규모를 현재의 두 배로 늘릴 예정이다. 돗판은 포토마스크, 기판 제조 등의 투자를 확대했고, 덴소는 2030년까지 5000억 엔을 반도체 부문에 투자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가 기대하던 대로 생태계 전체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TSMC로서는 첨단 반도체 경쟁이 패키징(후공정)으로 확장되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일본 소·부·장 기업과의 협력은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국 반도체 기업에 달갑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특히 파운드리 경쟁력은 규모의 경제에서 나온다”며 “일본과 TSMC의 밀월이 장기화될수록 삼성 등 한국 기업에는 장·단기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내 생산 기반을 확충한 일본의 다음 단계는 2나노 이하 차세대 설계 기술인 만큼 양측의 밀월이 길게 이어지진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이 최종적으론 ‘메이드 인 저팬’이 아닌 라피더스 등 ‘메이드 바이 저팬’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다. TSMC 역시 미국의 군사적 도움을 받는 대만의 ‘실리콘 방패’ 역할을 하고 있어 첨단 공정을 일본으로 과감하게 가져가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최첨단 공정은 결국 자국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동아일보(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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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내 日 반도체 韓 재추월’… 이런 날 올 수도
2022년 12월 28일 저녁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菊陽)정의 TSMC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낮처럼 조명을 환하게 밝힌 채 야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구마모토=이상훈 특파원
일본에 짓고 있는 미국, 대만 반도체 기업 공장들이 예상보다 높은 가격 경쟁력을 갖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등에 뺏긴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일본 정부가 이 기업들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어서다. 한국의 지원책은 상대적으로 크게 열세여서 ‘10년 안에 일본 반도체 산업이 다시 한국을 제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는 내년 2월 준공을 목표로 일본 구마모토현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11조2000억 원의 설비투자 가운데 41%를 일본 정부에서 보조금으로 받는다. ‘10년 이상 공장을 운영하고, 반도체가 부족할 때 일본에 우선 공급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생산되는 TSMC 시스템반도체의 가격 경쟁력이 10%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미국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도 일본 히로시마현에 차세대 D램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 D램 반도체 3위 업체다. 4조3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인데, 일본 정부가 이 중 39%를 보조금으로 주기로 했다. 보조금 효과로 이 공장에서 생산될 D램의 가격 경쟁력이 5∼7%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 격차가 불과 몇 개월에 불과한 선두권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서 5∼10% 가격 경쟁력의 차이는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만큼 가격을 낮추거나, 이익을 더 챙길 수 있어서다. 1공장이 가동되지 않았는데도 TSMC가 일본에 2, 3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건 이런 계산 때문이다. 파운드리 2위로 TSMC를 추격 중인 삼성전자로선 상황이 불리해졌다.
일본이 자존심을 굽혀가며 외국 기업이 짓는 공장에 자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는 건 반도체 부활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8개 일본 기업이 합작해 세운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에도 3조 원의 보조금을 줬고, 추가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가 반도체 기업들의 시설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내놓은 지원책은 법인세를 조금 더 깎아주는 정도다. ‘캐시백’ 형태로 기업에 돌려주는 현금 보조금은 전무하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인도 등 주요국들은 기업이 아닌 정부가 반도체 전쟁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이런 나라와 기업들을 상대로 외롭게 싸우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동아일보(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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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국가 존망의 열쇠, 일본엔 마지막 기회”
[日 반도체의 재도전]
반도체 의원 연맹 아마리 회장 인터뷰
아마리 아키라 중의원이 2016년 아베 내각 시절 경제재생담당상 자격으로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13선의 아마리 의원은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 회장을 맡아 ‘일본 반도체 부활’을 위한 일본 정계의 지원을 지휘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반도체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 일본이 그 시대에 도전도 안 하고 그대로 물러서진 않을 것이다.”
16일 도쿄에 있는 중의원회관에서 만난 아마리 아키라(甘利明·74)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 회장은 “2년 전 회로 선폭 4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수준의 (파운드리) 반도체밖에 못 만드는 수준이었던 일본 반도체가 2나노미터에 도전하는 건, 꿈속에서 꾸는 꿈같은 이야기”라면서 “일본에는 마지막 기회”라며 이렇게 말했다. 2나노는 아직 전 세계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 반도체 제조 기술이다. 현재 최고 기술은 3~5나노이며 40나노는 그보다 10년 이상 뒤처진 기술이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도요타, 소니, NTT 같은 대기업들을 모아 첨단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를 출범시키고 2027년 2나노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치계의 막후 실세 ‘3A(아베·아소·아마리의 영문 앞글자)’ 중 한 명인 아마리 회장(13선·자민당)은 2년 전 아베 신조 전 총리, 아소 다로 전 총리와 함께 자민당 의원 100명이 참여하는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을 만든 인물이다. 의원연맹 출범 한 달 뒤 경제산업성은 ‘2030년 일본 반도체의 세계 점유율은 제로’라는 충격 보고서를 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한 메시지였다. 이 보고서에는 “일본의 지정학적 잠재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미·중 갈등이라는 지정학적 위기가 대만과 한국에 집중된 반도체 산업을 일본 중심으로 재편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의원연맹은 재무성을 설득해 2조엔(약 19조원)의 반도체 보조금 예산을 확보했고 이를 앞세워 일본은 지난 2년간 미국·대만·한국 등 해외 반도체 강자들을 잇따라 유치했다. 이들이 일본에 투자하는 금액만 2조엔이 넘는다.
아마리 회장은 “일본은 반도체에서 완전하게 한국·대만에 뒤처졌지만, 희망을 갖고 도전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권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만 믿고, 변변한 반도체 지원책도 전략도 못 내놓는 데다, 각종 여론 탓에 일부 반도체 공장은 착공도 못 하는 사이에 일본은 반도체 부활 계획을 차근차근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5월 초, 아마리 아키라 의원은 아베 신조, 아소 다로 등 두 전직 총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앞으로 세상은 반도체가 지배하며, 우리가 함께 뒤처진 일본 반도체를 국가 전략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연휴 기간이었지만 아베 전 총리는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지만, 반도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고 즉답했다. 아소 전 총리는 다음 날 딱 한 줄 답을 보냈다. ‘같이 하자(놋타·乗った)’. 이른바 일본 정치의 실력자들이 ‘일본 반도체를 되살리자’는 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연휴 직후, 전례 없는 규모의 의원 연맹이 출범했다. 아베·아소 전 총리는 특별 고문으로,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전 간사장은 회장에 취임했다. 고문 명단에는 기시다 후미오(현 총리) 전 외무상도 이름을 올렸다. 16일 본지 인터뷰에서 아마리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 회장은 “일본 정치인들이 정치 주도로, 예전에 실패한 ‘히노마루(일장기) 반도체’에 또 도전하느냐는 비판 여론도 있는 걸 안다”며 “하지만 지금은 수십 년 만에 한 번 오는 기회”라고 말했다.
-일본에는 마지막 부활 기회라고 했다.
“현재 반도체 기술 구도가 그대로 간다면 일본이 TSMC나 삼성의 뒤를 못 따라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반도체인 3차원 반도체가 등장하고, 이미지 센서와 연산형 반도체가 통합되는 등 지금까지 없던 반도체 시대가 오고 있다. 변혁기다. 어제의 왕좌가 내일이 왕좌가 아닐지도 모르는 시대로 들어섰다. 새로운 반도체 시대는 다시 같은 선상에서 시작한다. 일본이 반도체 경쟁에 참가하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패배하는 것과 같다. ‘이길 수 있는가’가 아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부활 자금으로 보조금 예산 2조엔을 확보했다.
“관료에게만 맡겨서 (수조엔) 투자가 되겠나. 정치권이 재무성을 설득했다. 2조엔도 부족하다. 재무성은 이걸로 끝났다고 보겠지만, 막 시작한 단계다. 앞으로 10년간 정부와 민간에서 10조엔 이상을 반도체에 투입해야 한다”
-보조금의 실효성은 어느 정도인가.
“구마모토현에 진출한 TSMC는 당초 28나노 공장을 지으려고 했다. 경제산업성에다 ‘보조금 조건을 걸고 12나노 라인을 요청하라’ 압박했다. TSMC는 더 첨단 라인으로 바꿨다. (TSMC의 두 번째 공장은) 싱글나노 공장일 것이다.”
-신생 기업인 라피더스는 2027년 2나노 반도체 생산이 목표다.
“일본에도 희망이 생기고 있다. 일본은 회로 선폭 40나노 정도의 (파운드리) 생산 거점밖에 없었는데, 2나노 도전은 일본으로선 꿈같은 이야기다. 2나노 기술을 보유한 미국 IBM과 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고, 유럽의 반도체 최고 기술 연구 기관인 아이멕과도 제휴했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최고 기업인 ASML도 협력한다. 세계 ‘톱’ 기업과 연계하는 전략이다.”
-일본은 반도체 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
“맞는 말이다.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일본인 기술자 ‘톱100′ 명단을 들고 반도체 꿈을 함께하자고 요청했고, 상당수가 참여했다. 바로 이 방에서 IBM과 직접 만났고, 그들이 진짜임을 보고 도전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IBM이 그렇게 좋은 기술이 있다면 왜 스스로 안 하냐, 속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과거에 반도체에서 참패했다.
“한때 세계 반도체 점유율 50%였던 일본은 2021년 10%까지 떨어졌다. 실패 요인은 여럿이다. 미국이 힘으로 누르기도 했지만, 일본은 일본 기업끼리만 연계하려고 했다. 일본 가전 기업에 반도체는 사업 부문 하나에 불과했다. 실패에서 배웠다. 현재 전략은 글로벌 ‘톱’과 연계하는 것이다. 라피더스처럼 독립적 반도체 기업이 주도한다. 보조금 지원 법률도 바꿨다. 과거엔 연구 개발에만 줬지만, 반도체 공장도 줄 수 있게 했다.”
-반도체가 왜 그렇게도 절실한가.
“전기로 움직이는 건 모두 반도체가 지배한다. 데이터센터는 큰 반도체 덩어리이며 인공지능도 반도체 없이는 안 돌아간다. 앞으로 세계는 ‘반도체를 공급하는 국가’와 ‘공급받는 국가’로 나뉜다. 공급하는 국가가 되지 못하면, 결국 패배한다. 일본이 (반도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안 하면 그냥 지는 것이다.”
-지정학적 요인도 있나.
“경제 안보는 반도체에 달렸다. 코로나 때 일본의 자동차 생산 라인은 조그만 반도체 공급 감소 탓에 멈췄다. 반도체의 위력을 봤고 국가의 부담 요소임도 알았다. 경제안전보장이라는 법률을 제정했다. 반도체 공급망은 (일본과 같이) 지정학적 리스크가 없는 곳에 만들어야 한다.”
-결국 중국 위협론인가.
“처음엔 다들 잘 몰랐다. 코로나 때 일본 의료 현장에서 의료 마스크, 장갑, 가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공급이 멈추면 의료 붕괴가 생김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일본을 죽이려면 미사일이 없어도, 의료 마스크 하나로도 죽일 수 있다.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중국은 그걸 경제 무기로 쓸 것이다. 중국은 대만에는 파인애플, 필리핀엔 바나나, 호주는 와인으로 위협하고 있지 않느냐. 반도체를 어느 공급망에 의존하느냐는 문제는 국가의 존망에 관련된 문제다.”
-역전할 기술 한 방이 일본에 있나.
“일본의 미래 점프는 일본 통신 업체인 NTT가 보유한 ‘히카리(광)반도체’ 기술이다. 2나노 이후의 반도체 미세화를 논의할 때, 회로에 전기를 통하게 하는 현재 방식의 한계가 거론된다. 앞으론 빛과 전기를 융합하는 반도체를 만들 것이며, 라피더스의 출자자로 NTT가 참여한 이유가 그것이다. 이 분야에선 일본 NTT가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조선일보(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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