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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명이 무료로 외국어 학습 ‘듀오링고’ 만든 루이스 폰 안]

뚝섬 2023. 12. 19. 10:34

5억명이 무료로 외국어 학습 ‘듀오링고’ 만든 루이스 폰 안

 

[테크노 사이언스의 별들]

 

과테말라 미혼모 아들, 보안 장벽 만들어 번 돈으로 언어 장벽 허물다

 

지난 4월 루이스 폰 안 카네기멜런대 교수가 TED 무대에서 교육의 미래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폰 안은 캡차와 리캡차를 개발해 인터넷 보안의 역사를 바꿨고, 외국어 학습 앱 듀오링고를 창업했다. 무료 앱인 듀오링고 사용자는 5억명에 이른다./TED

 

12세 과테말라 소년은 피트니스 센터가 왜 유료로 운영되는지 알 수 없었다. 트레드밀을 비롯한 헬스 기구에 발전기를 달면 사람들이 운동할 때마다 전기가 생산되고, 이를 전력 회사에 판매하면 누구나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피트니스 센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람들이 생각만큼 열심히 운동하지 않고, 이렇게 전기를 생산해도 가격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힘을 모으면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소년 루이스 폰 안(Luis von Ahn·1978~)은 채 서른이 되기 전 스팸 메일과 가짜 계정을 막는 기술을 만들어 사이버 보안의 역사를 바꿨다. 이 보안 기술로 벌어들인 돈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교육 소프트웨어 ‘듀오링고(Duolingo)’를 창업하는 밑거름이 됐고, 그 덕분에 5억명의 사람이 무료로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빌 게이츠가 듀오링고로 프랑스어를 배웠고, 콜롬비아와 코스타리카는 모든 공립학교에 듀오링고를 도입했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와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같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여덟 살에 선물 받은 컴퓨터

 

폰 안의 어머니는 과테말라 최초의 여의사였고, 42세에 미혼모로 폰 안을 낳았다. 8세 때 어머니는 폰 안에게 당시 최고 인기 개인용 컴퓨터였던 8비트 ‘코모도어 64′를 선물했다. 그는 곧바로 기술과 컴퓨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수학과 과학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폰 안은 자라면서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혼란을 겪었다. 본인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주변에는 극빈층이 넘쳐났다. 미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토플(TOEFL) 시험을 보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은 더 커졌다. 이웃 나라 엘살바도르에 시험을 보러 다녀오는 데만 1200달러가 들었다. 그는 “(교육을 가장한) 수탈적 산업”이라고 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훗날 그가 하게 될 연구와 사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덟 살에 선물받은 최신 PC 앞에 앉아 있는 루이스 폰 안./루이스 폰 안 

 

18세에 듀크대에 입학한 폰 안은 수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2000년 카네기멜런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기 시작했다. 대학원 지도교수는 1995년 ‘컴퓨터공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받은 마누엘 블룸이었다.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인터넷 시장은 스팸과 가짜 계정의 범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인터넷 업체들은 자동화된 봇(bot)을 이용해 이메일 계정을 무수히 생성한 뒤 광고와 해킹 프로그램을 발송하거나 게시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걸러내지 못했다. 인터넷을 이용한 투표나 여론조사는 왜곡됐고, 티켓 판매도 암표상들의 무대가 됐다. 폰 안이 대학원에서 처음 맡은 프로젝트가 바로 인터넷상에서 컴퓨터와 인간을 구분해 인위적인 프로그램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다중 지성으로 디지털화 구현한 리캡차

 

폰 안은 사람은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컴퓨터는 제대로 읽지 못하는 글자와 숫자를 활용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글자나 숫자의 모양을 비틀거나 가운데에 줄을 긋고, 가운데에 의미 없는 기호를 넣는 식이다. 사람은 이런 변조된 문자를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다. 반면 자동화된 프로그램이나 봇은 정형화되지 않은 문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폰 안과 지도교수는 여기에 ‘컴퓨터와 인간을 구분하는 완전 자동화된 공개 튜링 테스트(캡차·CAPTCHA)’라는 이름을 붙이고 포털 야후에 무료로 제공했다. 오늘날 수백만 개의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로그인할 때마다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는 인터넷 장벽의 탄생이었다. 캡차는 이전의 어떤 스팸 방지 프로그램보다 효과적이었다. 캡차를 도입한 사이트의 스팸은 10%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캡차 입력에 따른 귀찮음과 낭비되는 시간이었다. 폰 안은 “한 사람에게는 10초 정도에 불과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시간 전체를 합치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지을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이 된다”고 했다. 캡차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리캡차가 이렇게 탄생했다. 리캡차는 변조한 문자 대신 오래된 책이나 신문 스캔본의 일부 단어를 보여주는 식으로 작동한다. 스캔 과정에서 다소 뭉개지거나 모양이 흐트러지고 깨진 문자도 사람은 비교적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같은 글자를 본 여러 명이 같은 내용을 입력하면 맞는 글자로 판정하는 식으로 신문이나 고서적 디지털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스가 1800년대 신문 30년 치를 리캡차를 이용해 디지털화했고, 구글과 아마존은 전자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폰 안을 만나 브리핑을 들은 뒤 아예 리캡차를 인수해 구글 사이트에 적용하고 사업화했다. 현재 리캡차는 하루 4000만개 이상의 단어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크라우드 소싱의 아버지

 

폰 안이 구글에 판 기술은 또 있다. 2005년 폰 안은 ‘매치인(Matchin)’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이 게임은 두 명의 사용자에게 같은 그림을 보여준 뒤 더 많은 이름을 빠른 시간에 입력하는 사람이 이기는 구조이다. 두 개의 그림 가운데 더 예쁘거나 선호하는 쪽을 고르게 하기도 한다. 단순하지만 중독적인 이 게임은 이미지 라벨링의 혁명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디지털 사진은 사람이 일일이 캡션을 입력하고 분류해야 했다. 하지만 매치인을 이용하면 자발적으로 게임을 하는 전 세계 참가자들이 동시에 사진에 캡션을 다는 효과가 생긴다. 참가자들은 게임의 즐거움을 보상으로 받는다. 구글은 이 게임 기술을 구매해 ‘이미지 레이블러’를 만들어 웹에서 긁어모은 수많은 이미지를 분류하고 캡션을 달았다. 가장 강력한 이미지 검색 기능으로 평가받는 ‘구글 렌즈’의 근간을 폰 안이 만들었다. 리캡차와 매치인은 크라우드 소싱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크라우드 소싱은 대중(crowd)과 아웃소싱(outsourcing)의 합성어로 많은 사람의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기업이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짧은 시간과 작은 노력을 합치면 거대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폰 안의 어린 시절 꿈이 이렇게 현실화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폰 안은 무의미한 인터넷 사용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한 인물”이라고 했다.

 

◇”모두가 나와 같은 기회를 얻길 바랐다”

 

박사 졸업과 동시에 카네기멜런대 교수로 임용된 폰 안은 두 건의 기술 판매로 30세에 억만장자가 됐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2009년 그는 스위스 출신의 박사 과정 제자 세버린 해커와 함께 외국어 학습 앱을 만들기 시작했고, 2011년 11월 듀오링고를 출시했다. ‘2′라는 뜻의 라틴어 듀오(duo)와 ‘외국어’를 뜻하는 영어 링고(lingo)를 합친 이름이었다. 배우 애슈턴 커처가 세운 벤처투자사 에이그레이드 인베스트먼트, 유니온 스퀘어 벤처스 등 대형 투자자들이 폰 안의 구상에 동참했다. 녹색 부엉이 캐릭터 듀오를 앞세운 듀오링고는 사용자들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퀴즈 같은 게임 요소, 지루하지 않은 짧은 학습 시간 등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다른 외국어 학습 앱이나 강의와 달리 무료였다. 폰 안은 듀오링고에도 크라우드 소싱을 도입해 초기 수익 모델을 해결했다. 외국어 학습 과정에 버즈피드와 CNN 같은 언론사 기사를 활용하면서 사용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번역에 참여하고, 언론사가 듀오링고에 대가를 지불했다. 쓸데없는 돈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광고나 마케팅은 거의 하지 않았다. 폰 안은 “출시 초창기 글로벌 강연 프로그램 테드(TED)에서 듀오링고를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사용자 확대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현재 듀오링고에서 제공하는 외국어는 한국어를 비롯해 40개 이상, 사용자는 5억명에 이른다. 2014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교육 앱이기도 하다. 기업 가치는 90억달러에 이른다. 2012년 뉴욕대 연구팀은 “듀오링고에서 34시간 공부하면 대학에서 외국어 강의를 한 학기 듣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폰 안은 왜 외국어 학습 앱을 만들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멕시코 바로 밑에 있는 과테말라 출신입니다. 가난하고 작은 나라죠. 내 어머니는 어린 내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덕분에 전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전 돈이 없는 사람도 모두 저와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무엇보다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를 배우면 소득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그래서 외국어가 최우선이었습니다.”

 

리캡차(reCAPTCHA)

 

온라인상에서 가짜 계정과 스팸을 생성하는 자동 프로그램(봇)을 막는 장치인 캡차를 업그레이드한 기술. 오래된 신문이나 책의 스캔본 일부를 사용자에게 보여준 뒤 그대로 입력하면 로그인이 가능하게 한다. 많은 사람이 입력한 단어를 정답으로 판단하는 식으로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

 

-박건형 기자, 조선일보(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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