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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 송출 중단한 평양방송] [도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뚝섬 2024. 1. 15. 11:22

[대남 송출 중단한 평양방송]

[도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대남 송출 중단한 평양방송

 

북한이 대외용 라디오 매체인 평양방송을 통해 난수방송을 내보냈다. 북한의 대남(對南) 국영 라디오 ‘평양방송’이 지난 12일 오후부터 수신이 되지 않고 있다. 평양방송의 홈페이지 ‘민족대단결’도 접속 불가 상태다. 조선중앙방송과 함께 북한 양대 라디오 매체인 평양방송은 1960년대부터 대남 선전·선동 방송을 하면서 남파 간첩들에게 ‘난수(亂數)방송’으로 지령을 내려왔다.

 

▶”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들을 위한 원격 교육대학 수학 복습 과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459페이지 35번, 913페이지 55번.” 2016년 포착된 난수방송의 하나다. 평양방송은 오전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30분까지 하루 23시간30분 방송하면서 자정에 김일성·김정일 찬양가를 내보낸 뒤 난수방송을 해왔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난수방송을 중단했다가 2016년 6월 재개했다. 난수방송은 특정한 규칙을 가지지 않는 숫자를 나열한 뒤 난수표나 사전에 약속한 책 등을 활용해 해독한다. 2006년 체포된 간첩은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난수 해독에 사용했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1·21 청와대 습격 사태는 난수방송 해독을 못해 감행됐다는 황당한 일화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임무를 띠고 침투한 북한 124 특수부대원 31명은 서울로 향하는 와중에 파주 삼봉산에서 나무꾼 우씨 4형제와 마주쳐 정체가 발각됐다. 북에 보고하고 난수방송으로 북한 지령을 받았는데 잘못된 난수표를 들고 있던 통신병 2명이 해독을 못했다. 김신조씨는 “우리를 그냥 죽으라고 한 것이다. 배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바뀐 지령을 확인하지 못한 채 애초 작전대로 청와대로 향했다가 거의 전원 사살되고 김신조씨만 투항했다. 나중에 우리 측이 이 난수를 해독했더니 북의 지령은 ‘원대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옛날 간첩 신고 포스터를 보면 간첩 식별 요령의 하나로 ‘밤중에 방 안 또는 산속에서 이상한 금속 소리(무전 치는)를 내거나 이북 방송을 듣는 사람’이 들어 있다. 심야에 이불 뒤집어 쓰고 난수 방송을 듣고 북한에 보고하려고 모스 부호를 치는데 이를 위치 추적해 간첩을 색출해 냈다. 디지털 시대에는 난수 방송보다 보안 이메일을 더 많이 쓴다. 하지만 오래전에 남파된 ‘컴맹’ 간첩은 보안 이메일을 쓸 줄 몰라 여전히 난수 방송이 필요하다고 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남 정책 기조를 “적대적인 교전국”이라고 선언한 뒤 최선희 외무상이 대남 선전 매체와 대남 기구를 정리하고 있다. 평양방송 중단도 그 일환이다. 북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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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김정은이 새해 첫 행보로 딸 김주애와 함께 미사일차량 생산공장을 방문했다. 5일자 해당 보도에서 처음으로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다음으로 김주애를 존칭을 써가며 소개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징검다리’ ‘돈줄’ ‘동네북’.

기분 나쁘지만 북한에 한국의 용도는 위의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징검다리는 미국에 접근하기 위해 한국을 이용한다는 의미다. 대표적 사례가 2018년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뒤 관계 회복 가능성을 엿본 북한은 한국을 징검다리로 이용하려 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된 뒤 북한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생존 과제는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이었다.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로 수십 년을 살아오다가 한 축이 부러지자, 이번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양다리를 타려 한 것이다.

 

북한은 소련 붕괴 직후부터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줄기차게 문을 두드렸다. 1차 북핵 위기도 미국의 시선을 끌기 위한 시도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2000년 말 북한은 그토록 원하던 북-미 수교라는 목표에 거의 근접했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과 9·11테러로 미국의 관심을 중동에 빼앗겼다. 중동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후 첫 외교적 업적을 쌓을 곳으로 북한을 주목하자 김정은은 대담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2018년 급작스러운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와 4월 판문점 회담 모두 미국에 보내는 러브콜이었다.

북한은 미국과의 수교 없이는 대북 제재를 풀 수 없고 경제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정상 국가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은 북한 세습 독재자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재선을 포기하는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북한의 시도는 체제의 획기적인 변화 없이 이뤄지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북-미 수교나 대북제재 해제, 국제사회 진출 등 북한에 절실한 것들은 모두 미국이 쥐고 있다. 그 대신 한국에는 대북 경제 지원을 할 능력 정도는 있다. 2002년부터 시작해 2009년까지 북한은 매년 식량 40만 t, 비료 10만 t 등 각종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북한은 ‘밥값’은 하려고 노력했다. 지원 기간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어떠한 도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위의 두 용도로 사용하기 어렵거나, 내부에 더 중요한 일이 생기면 북한은 한국을 가차 없이 동네북으로 사용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직전 3년이 그랬다.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은 죽음이 다가옴을 직감했다. 그는 사망 전까지 3년 남짓을 오로지 후계 구도를 완성시키는 데 몰두했다. 대문을 열고 비밀스러운 집안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법. 이명박 정부가 대북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지만 김정일은 한국의 용도를 다른 곳에서 찾았다.

2010년의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사격은 내외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사람들은 북소리가 요란한 곳을 쳐다보기 마련이다. 2010년의 도발은 김정은이 업적을 쌓기 위해 한 짓이라는 분석들도 있지만 북한 시스템에서 김정일의 지시 없이 후계자가 단독으로 그런 일을 저지를 수는 없다. 이런 도발의 결과 북한은 스스로 내부 빗장을 걸어 잠그고 세습에 필요한 시간을 벌고, 김정은을 강력한 지도자로 미화시켰다. 북한 사람들이 전쟁이 터질까봐 걱정하는 사이 김정일은 아들에게 당과 군, 비밀경찰과 금고 등을 차례로 물려주었고, 세습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숙청했다.

올해 북한은 다시금 한국을 동네북으로 활용하려 한다. 김정은은 새해 벽두부터 한국을 주적, 적대적 교전 국가로 규정하고 가용한 무력을 총동원해 초토화하겠다며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의도는 뻔하다. 6년째 이어지는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 3년간의 코로나 셀프 봉쇄로 경제가 파탄 난 상황에서 김정은은 김주애로의 후계 구도를 완성시키려 하고 있다. 민생이 도탄에 빠졌는데 열한 살짜리 어린 딸을 위한 4대 세습에만 집착하고 있느냐란 원성을 누르기 위해 김정은에게 필요한 것은 비상계엄령과 시선을 돌리기 위한 북소리다.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야 ‘준전시 상태’ ‘전시 상태’로 내부 통제 수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면 김정은은 주애를 위한 시간도 벌고, 주민들의 시선도 돌리며, 4대 세습에 반대하는 ‘눈빛이 불량한 자’들을 전시 상태에 준하는 즉결처분으로 제거할 수 있다. 새해 벽두부터 김정은은 그 방향으로 판을 깔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북한이 울릴 포성에 대비해야 할 순간도 다가오고 있다.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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