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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이혼’] [“따로 자야 금슬 좋다” 수면이혼 유행]

뚝섬 2024. 4. 9. 06:01

[‘침대 이혼’]

[“따로 자야 금슬 좋다” 수면이혼 유행]

 

 

 

‘침대 이혼’

 

30년을 함께 산 한 부부는 얼마 전부터 잠자리에서 귀마개를 쓴다. 코 고는 남편 때문에 아내가 먼저 준비했는데 언제부턴가 아내도 코를 골자 부부가 모두 쓴다.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 서로 눈을 찌르거나 뺨을 쳐서 깨운 적도 있다. 남자가 직장 동료 식사 자리에서 그 얘기를 꺼냈더니 “아직도 한방을 쓰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모임에 나온 이 중 절반 이상이 각방을 쓴다고 했다.

 

▶미국에서 부부가 각방을 쓰는 ‘수면 이혼(sleep divorce)’이 증가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전체 부부의 35%가 따로 잔다고 한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지난달 통계를 보니 한 침대를 쓰는 부부는 절반도 안 되는 42%였다. 대표적 노령 국가인 일본은 100세 시대 행복한 노년을 위한 주거 형태로 ‘1인 1방’을 제시한다.

 

▶각방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코골이다. 인간은 소음이 35데시벨을 넘으면 잠을 설치는데, 코 고는 소리는 평균 50~60데시벨로 헤어드라이어 소음에 맞먹는다. 각자 쾌적하게 느끼는 침실 온도라든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다른 것도 각방을 쓰는 이유다. ‘각방 예찬’을 쓴 프랑스의 한 교수는 이런 문제로 다투느니 따로 자는 게 수면의 질을 높이고 부부 금슬도 좋게 해 준다고 권했다. ‘한 침대 쓰는 부부’는 인류사에서 보면 최근 일이란 분석도 있다. 부부 침대의 대명사인 더블 침대는 인구 밀집이 빚어진 산업혁명 이후 보편화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전엔 부부가 안방과 사랑방에서 따로 지냈다.

 

각방 쓰기가 부부 관계를 해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각방을 쓰면 화해할 기회를 잡기 어렵다. 노년에 따로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수면 중 호흡곤란 같은 돌발 상황에 혼자 대처하기도 어렵다. 자녀에게 부모 사이가 좋지 않다는 오해를 줄 수도 있다. 김사인 시인은 한 이불 덮고 살며 서로 의지하는 부부의 모습을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 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 본다’고 시 ‘지상의 방 한 칸’에 썼다.

 

▶각방을 쓸지 한 이불을 덮고 살지는 부부가 결정할 문제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정을 하건 부부가 대화하고 합의하느냐일 것이다. 불편한데도 참고 속으로 쌓아두는 것도, 대화 없이 독단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도 모두 부부 사이를 금 가게 한다. 고령화로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이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길어지고 있다. 부부가 백년해로의 길을 함께 찾아야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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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자야 금슬 좋다” 수면이혼 유행

 

“나는 내 방에서 잔다. 남편은 남편의 방에서 잔다. 그 사이에 둘이 같이 쓰는 침실이 있다.” 2015년 음악가 벤지 매든과 결혼한 할리우드 배우 캐머런 디아즈는 남편과 각방을 쓰는 사실을 고백해 화제가 됐다. 그는 부부가 각방에서 자는 이른바 ‘수면 이혼’이 “수면의 질을 높이고 부부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고 했다. 코를 골거나 잠버릇이 심한 배우자를 억지로 참고 자느니 침대나 침실을 분리해 따로 자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에서 수면 이혼이 유행한다고 5일 보도했다. 미국 수면의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성인 남녀 3명 중 1명은 수면 이혼 상태였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이 비율이 높아 밀레니얼 세대에선 43%에 달했다. 이어 X세대의 33%, 베이비붐 세대의 22%가 각방을 쓴다고 했다. 사실 부부가 한방을 쓰는 문화가 오래되진 않았다. 20세기 들어 산업화·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생겨난 문화일 뿐, 이전에는 부부가 각방을 쓰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부부의 속사정도 비슷하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부부간 수면 환경을 조사했더니 3명 중 1명이 각방을 쓰거나, 한방에서 자더라도 침대를 따로 썼다. ‘수면 궁합’이 상극인 부부들이 있다. 남편 코골이가 너무 심하다며 여행 가서 호텔 방을 2개 잡는 사람도 있다. 늘 에어컨을 켜는 남편과 온수매트를 안고 자는 아내는 같이 자기 힘들다. 잠귀가 밝은데 밤새 뒤척이거나 화장실을 자주 가는 배우자랑 자다간 잠을 설친다. 수면 리듬이 현저히 다른 부부도 있다.

 

잠을 잘 자야 배우자에게도 너그러워진다. 수면이 부족하면 사소한 일에 화가 나고 공감 능력이 떨어져 배우자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건강에도 해롭다. 매일 밤 7, 8시간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당뇨병, 뇌·심혈관 질환 및 치매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수면 이혼을 시작한 미국 부부의 52%가 수면의 질이 개선됐다고 보고했고, 매일 평균 37분을 더 잤다. 따로 자기를 추천하는 전문가들은 “수면 이혼이 아니라 부부끼리 수면 동맹을 맺는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부부 일심동체’라거나 ‘부부가 싸워도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결혼 주례사를 듣는 우리나라에선 부부가 각방을 쓰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부부 사이가 소원해진 것 아닌지 실눈을 뜨고 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돌연사 위험이나 심리적 고립감이 커지므로 같이 자는 것이 낫다는 반박도 한다. 하지만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이 출현한 시대다. 서로 억지로 맞춰 살거나 이를 견디지 못해 관계를 단절하느니, 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요즘 시대에 맞는 부부 관계인 것 같다.

-우경임 논설위원
, 동아일보(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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