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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마다 잠깐 피는 ‘벚꽃 엔딩’] ['봄날은 간다']

뚝섬 2024. 4. 8. 09:34

7일 오전 전남 담양군 금성면 외추리 고비산에 산벚꽃이 활짝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2024.4.7. 

-김영근 기자, 조선일보(24-04-08)-

 

 

 

 

 

[봄마다 잠깐 피는 ‘벚꽃 엔딩’] 

['봄날은 간다'] 

 

 

 

봄마다 잠깐 피는 ‘벚꽃 엔딩’

 

계란은 7분 삶으면 반숙란이 되는 게 공식이지만, 꽃 피는 시기는 공식이 없다. 기상 전문 업체도 자주 틀린다. 3월 말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열었던 지자체들은 축제 기간을 연장하며 꽃 피길 기다렸다. 전국이 핑크로 물든 지난 주말, 벚꽃 놀이로 한반도가 출렁였다. 벚꽃은 개화 시작 3일 후 만개하고, 그로부터 7~10일 후쯤 ‘꽃비’가 되어 떨어진다. 벚꽃 철, 길어야 2주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한국인의 ‘봄 캐럴’이라는 ‘벚꽃 엔딩’이 귀에 새겨지는 것도 바로 이때. 가수 장범준이 작곡, 작사한 이 곡은 2012년 3월 29일 발표 직후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꽃놀이하는 연인들을 질투하며 “꽃이 빨리 지면 좋겠다”는 마음에 ‘벚꽃 엔딩’으로 제목을 지었다는데, 반대로 전 국민의 ‘야외 활동’을 부추기는 곡이 됐다. 발표 이듬해부터 ‘벚꽃 시즌’에만 역주행하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7일 현재,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의 ‘톱 100′ 18위에 올랐다. 12년 전 노래의 대단한 기록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전국 4만3223㎞ 거리에 가로수 823만그루가 심겨 있다. 벚나무류가 가장 많아 150만그루가 훌쩍 넘고, 이어 은행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순이다. 일부에서 ‘벚꽃은 일제 잔재’라며 뽑아댔지만 소용없었다. 열매 악취로 밉상이 된 은행나무는 점점 줄고, 벚나무 이팝나무 회화나무 같은 화사한 수종이 가로수로 인기다.

 

7일 서울 여의서로(윤중로)를 찾은 상춘객들이 만개한 벚꽃 아래에서 기념 촬영을 하며 봄을 만끽하고 있다. /뉴스1

 

'벚꽃 연금’이라는 말도 있다. 이 곡 저작권 수입이 ‘2015년까지 4년간 46억원’ ‘6년간 60억’ 이런 말이 있어서지만, 당사자는 액수를 말한 적이 없다. 노래 한 곡이 해마다 수억 원을 벌어주니 이런 고액 연금은 없다.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라는 가사의 ‘봄이 좋냐’(10cm 노래)라는 곡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딴지가 ‘벚꽃 엔딩’ 인기를 실감케 한다.

 

▶오랫동안 한국의 봄은 서글펐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슬프지만 울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상징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는 백설희의 1954년 노래 ‘봄날은 간다’도 단조곡이 서글프다. 진달래꽃잎을 따서 ‘화전’을 부쳐 먹는 것도 사는 집의 ‘봄 호사’였을 만큼 ‘춘궁기’는 혹독했다. 꽃이 피어 더 서럽던 계절을 살던 민족이 ‘핑크 벚꽃 축제’ 시대를 누리고 있다.

 

-박은주 기자, 조선일보(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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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대중음악 노랫말은 때로 시(). 가슴 깊숙이 들어와 가슴을 뭉텅 베어 가는 노래라면 그건 시다. 계간지 '시인세계' 2004년 시인 100명에게 '좋아하고 흥얼거리는 노랫말'을 물었다. 2~5위에 '킬리만자로의 표범'(작사 양인자) '북한강에서'(정태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양희은) '한계령'(하덕규)이 올랐다. 단연 1위는 1953년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손로원)였다. 열여섯 명이 꼽아 2위를 여섯 표 앞섰다. 

 

작사가 손로원은 원래 화가였다. 광복 후 '비 내리는 호남선'을 비롯한 여러 가사를 썼다그는 6.25 전쟁 때 피란살이 하던 부산 용두산 판잣집에 어머니 사진을 걸어뒀다. 연분홍 치마에 흰 저고리 입고 수줍게 웃는 사진이었다. 사진은 판자촌에 불이 나면서 타버렸다. 그가 황망한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요즘 차에 두고 노상 듣는 노래가 '봄날은 간다'. 백설희부터 박은경과 래퍼까지 60년에 걸친 가수 스물셋이 각기 불렀다. 최백호·장사익은 감정을 간수하지 않고 뜨겁게 내지른다. 절절하게 토해낸다. 조용필·김도향·최헌은 덤덤하도록 절제한다. 들을수록 깊은맛이 우러난다. 한영애는 신들린 듯 주절대는 스캣이 오래 남는다. 나훈아·이동원·심수봉도 저마다 저답게 불렀다. 

 

듣다 보니 봄날이 다 갔다. 거리엔 어느새 반팔 차림이다. 좋은 시절은 금세 간다. 봄도 문득 왔다 속절없이 떠난다. 그래서 화사할수록 심란하다. '봄날은 간다'는 그립고 슬프다. '그때가 봄날이었지' 되뇐다. 다시 못 올 젊음의 회한(悔恨)을 삼킨다. 나이 든 이는 이제 봄을 몇 번이나 더 맞겠는가 싶다. 그 애틋함에 끌려 수없이 많은 가수가 불렀다. 가는 봄 서러워 목이 멘다. 

 

▶'봄날은 간다'를 듣다 듣다 별스러운 곳에서 듣는다. 며칠 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희 의원이 첫 소절을 불렀다. 막말 소동으로 회의장에 흐르던 침묵을 깨뜨렸다. 야당 앞날을 탄식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어버이날 경로당에서 불러 드리고 왔다"고 했다. 노인 위로에 적절한 노래도 아니다. 그는 이튿날 "분위기 바꿔보려다 심려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공적연금에 대한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으로 얄궂은 노래가 됐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참 궁색하게 들린다. 정치인은 좋은 노래마저 지저분한 정치로 오염시킨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조선일보(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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