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조 육박한 가계빚, 부실 막기가 우선 목표 돼야" ]
[집값 못 잡고 가계부채만 늘린 오락가락 금융정책 ]
[집값도 가계빚도 못 잡는 갈팡질팡 대출 정책, 무능 아닌가]
[정책금융 풀고 대출 규제 미루더니 이제와 은행 압박하나]
"1900조 육박한 가계빚, 부실 막기가 우선 목표 돼야"
[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가 말하는 가계부채의 경제학
지난달 3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국은 이미 과다한 가계빚 부담에 소비 여력이 감소해 내수 침체와 성장 둔화를 겪고 있고, 연체가 늘고 부실도 느는 구간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10년 전인 2014년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와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 교수는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이란 책으로 경제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장관)는 “아마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뒤이은 대침체에 관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극찬했다. 두 경제학자는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에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원인을 은행의 실패보다는 과도한 빚에 짓눌린 가계가 원리금 부담 때문에 소비를 줄이면서 경제가 고꾸라지기 시작한 데서 찾았다. 한국의 2분기(4~6월) 가계 부채는 1896조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인데, 비슷한 길을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지난달 30일 만난 거시경제·금융 전문가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이 고비용 사회로 바뀌면서 구조적으로 가계 부채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며 “가계빚을 억지로 줄이는 것보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가계 부채 부실을 막는 걸 우선적인 정책 목표로 둬야 한다”고 말했다.
◇‘빚으로 지은 집’, 왜 위험?
- ‘빚으로 지은 집’, 즉 과도한 주택 대출이 왜 경제에 위험한가.
“첫째, 가계 부채가 부실화되면 금융 시스템을 위험에 빠트리고 붕괴시킬 수 있다. 금융 위기가 올 수 있다. 둘째, 이자 부담으로 가처분 소득이 줄고 소비 여력이 없어질 수 있다. 내수가 침체되는 것이다. 셋째, 부동산 투기가 조장돼 거품이 생기고 부의 불평등이 심해져 사회적 불안 요인이 된다.”
- 빚이 늘 때 경기가 좋아지기도 하지 않나.
“가계 부채를 얻어 집을 사면 건설 경기가 좋아질 수 있다. 건설업은 다른 산업과 연관 효과가 커서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 내수 경기가 부양될 수 있다. 특히 건설이 살면 숙련 기술이 없는 저소득층의 단순 고용이 늘어나 긍정적이다.”
- 가계빚 느는 게 내수에 나쁘다는 건가, 좋다는 건가?
“그래서 가계 부채의 적정 수준을 얘기하는 것이다. 가계 부채가 낮은 수준일 때는 늘수록 경기 부양 효과가 있지만, 적정 수준을 넘으면 소득으로 이자를 부담하기 힘들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제 주거비와 생활 물가가 모두 높아지는 ‘고비용 사회’에 들어섰다. 지출이 늘어나는 반면 저성장으로 소득이 빨리 늘어나지 못해 결과적으로 부채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 됐다.”
- 한국은행은 가계 부채가 경제 규모의 80%가 바람직하다고 한다.
“한은이 내부 연구로 적정 가계 부채 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80%라고 분석했다. 작년 말 현재 한국의 이 비율은 93.5%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80%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80%라는 국제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미국 등 선진국의 가계 부채 비율이 70~80%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봐도 될 것 같다. 미국은 73%, 일본은 63% 정도다. 한국은 이미 과다한 가계빚 부담에 소비 여력이 감소해 내수 침체와 성장 둔화를 겪고 있고, 연체가 늘고 부실도 느는 구간에 들어가 있다.”
◇ 가계 부채 증가와 위기
- 미국을 보면 가계빚 급증은 위기까지 부른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는 저신용자 대출이 크게 늘어난 게 문제가 됐다. 당시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자, 거품이 붕괴되면서 주택 가격이 폭락했고 가계 부실이 커졌다. 그게 파급되면서 많은 금융회사가 망가졌고, 글로벌 금융 위기로까지 번졌다.”
- 모든 가계 부채 증가는 위기 전조인가.
“아니다. 위기로 가기 전에 잘 관리하면 된다. 첫째, 성장률이 높으면 소득이 늘기 때문에 가계 부채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둘째, 고신용자 대출이 많으면 위기로까지 가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는 최근 정책 금융인 특례보금자리론 등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지 않아 저신용자에게 정책 대출이 많이 나갔을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셋째, 부실이 급격히 늘지 않게 대출 증가를 서서히 연착륙시키고 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 위기 후 미국은 어떻게 가계 부채를 줄였나.
“우선 집값이 떨어져 빚을 많이 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가계 부채 비율이 줄었다. 그리고 부실 대출 정리에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가계 부실을 정부가 흡수하고, 대신 정부 부채를 늘렸다. 중요한 것은 미국 등 선진국 가계 부채 대책의 핵심은 가계 부채 규모를 빠르게 줄이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가계 부채가 부실화하는 것을 막는 걸 목표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부채가 줄었다.”
◇ 한국의 가계 부채 문제
- 은행들을 다그쳐 가계빚 줄일 수 있나.
“일시적으로 가계 부채가 줄어들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구조적 이유로 서울, 수도권 집값이 오르고 가계 부채가 느는 상황이다. 지금 집값이 오르면 몇억원씩이니, 은행 대출을 조이면 2금융권에서라도 돈을 빌려 사려고 하는 판이다. 원인을 그대로 두고 은행 대출 규제로 문제를 잡을 수는 없다. 오히려 대출을 급하게 막으며 경착륙시키려다 잘못하면 부실 대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경제를 위험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개방경제에서 경기나 부채 경착륙만큼 위험한 게 없다. 경착륙하면 금융 부실이 크게 늘고 해외로 돈이 빠져나가 외환 위기나 금융 위기를 당하게 돼 있다.”
- 그러면 정부가 할 일은?
“가계 부채 증가를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주택 가격 안정에 있다. 서울 주택 수요를 분산하는 등의 정책을 펴야 한다.”
- 집값 안정에 실패하면.
“같은 크기라도 서울 강북의 구축 아파트는 9억원대이고, 강남은 30억원대라고 한다. 내가 월급 모아서 도저히 강남에 갈 수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지고 있다. 수도권 외곽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시간 비용이 늘면서 서울로 이사 오려는 수요도 계속 늘고 있다. 지금과 같이 수도권에 신도시만 건설하고 서울 진입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지 않으면 서울 집값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으로 집값 양극화가 더 심해지면 국민의 심리는 정부가 더 강한 역할을 해줬으면 하면서 큰 정부를 선호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큰 정부가 되면 자본주의 사회는 유지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보수 진영에서 수도권 신도시의 교통 인프라를 확충하고, ‘똘똘한 한 채’ 즉 초고가 주택의 양도 차익에 세금을 높이는 등 집값 양극화를 줄일 방법을 먼저 내야 한다.”
- 당장 할 가계 부채 대책은?
“단기적으로는 가계 부채 줄이기가 아니라 가계 부채가 부실화하는 걸 막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 속도도 중요하다. 정책 결정자는 경제를 아기 다루듯 부드럽게 다뤄서 가계 부채를 서서히 안정화시키고 연착륙시켜야 한다.”
“집값을 금리만으로 잡을 순 없지만, 금리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가계 부채와 통화정책
김정식 교수는 가계 부채 관리를 위한 금리 정책에 대해 “집값을 금리만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금리만큼 중요한 요소도 없다”며 “금리 정책을 잘못 사용할 경우 부동산 거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금리만 갖고 집값을 잡을 수 있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가계 부채를 통화정책만으로 관리할 수 없다’고 했다. 금리만으로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집값과 가계 부채에 금리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집값을 올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책 금융과 주택 공급은 줄이고 양도소득세를 면제하는 등 수요를 늘리는 정책을 썼는데 잘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한은이 금리를 낮추자 부동산이 확 살아났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에 교통 인프라, 세금 등 많은 요인이 영향을 주지만 금리 영향이 적지 않다.”
―지금 가계빚 급증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도 있나.
”최근 각광을 받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인 런던 비즈니스 스쿨의 헬렌 레이 교수는 ‘통화정책의 딜레마’론을 얘기한다. 자본자유화를 한 나라는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못 쓴다는 주장이다. 과거엔 트릴레마라고 해서 통화정책 독립성,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고정환율제를 동시에 유지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것보다 더 강한 이론이다. 우리 같은 개방경제가 미국과 금리를 반대 방향으로 가져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금리 시대가 다시 온다면.
”다시 가계 부채가 커지고 부동산 거품이 생길 수 있다. 국민이 코로나 때 금리 인하로 부동산 가격이 2~3배 뛸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연준이나 한은이나 금리를 큰 폭으로 내려 완전한 저금리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저금리 시대엔 대출 심사 강화 등으로 가계 부채 부실을 사전에 관리해야 한다. 거품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금융 감독도 철저히 해야 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DSR(Debt Service Ratio)은 대출받은 사람이 한 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은행 대출에 40%의 DSR 규제가 적용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미국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이 받는 주택담보대출이다.
☞김정식 명예교수는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연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1990년 미국 클레어몬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로 상경대학장, 경제대학원장 등을 지냈다. 2014년 한국경제학회장을 역임했다.
-방현철 기자, 조선일보(2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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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못 잡고 가계부채만 늘린 오락가락 금융정책
지난 6월 말 기준 금융권 가계 대출 잔액이 1780조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주택담보대출이 1년 사이 60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올해 들어 서울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데다 미국발 금리 인하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빚을 내 집을 사는 사람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가계 부채는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 집값 폭등으로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 현상이 빚어지면서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됐다. 문 정부 5년간 가계 부채가 400조원 이상 불어났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 세계 1위가 됐다.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된 2022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금리를 연 3.5%까지 끌어올리면서 가계 부채 축소의 계기가 마련되는 듯했다. 실제로 2021~2022년 2년 연속 100조원 이상 불어났던 금융권 가계 대출이 2023년엔 9조원 감소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은의 금융 긴축 기조와 거꾸로 정부가 부동산 경착륙을 막는다면서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저금리 주택 정책금융을 연 40조~50조원씩 공급하면서 주택 대출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정부는 금리 인상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며 은행 팔을 비틀어 대출 금리 추가 인상을 막았고, 한은도 경기 침체 우려를 이유로 한미 간 금리 역전을 감수하며 금리 인상 행진을 멈췄다. 그 결과 부동산 시장에 돈이 계속 쏟아져 들어갔다. 서울 집값은 재차 급등하고, 주택 대출이 다시 폭증하는 오늘의 상황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집값 폭등세에 당황한 정부는 9월부터 수도권 지역 주택담보대출은 더 높은 금리를 부과하고, 대출액은 줄이는 대출 규제에 나서기로 하는 등 냉온탕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가계 부채를 줄이려면 금리를 올리고,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빚을 내기 더 어려운 환경을 지속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오락가락 금융정책으로 집값은 못 잡고, 가계 부채 문제만 더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의 내수 침체는 가계가 과도한 빚에 쪼들려 소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를 다시 선순환 궤도 올려놓기 위해서라도 가계 부채 축소가 절실하다. 정부는 한은과의 긴밀한 정책 공조로 고강도 가계 부채 축소 대책을 마련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 가야 한다. 고통스럽고 인기 없는 정책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문제는 정부의 일관된 의지와 대국민 설득 능력이다.
-조선일보(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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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도 가계빚도 못 잡는 갈팡질팡 대출 정책, 무능 아닌가
정책성 주택 대출을 늘려오던 금융 당국이 5월 중 은행 주택담보대출이 5조원 이상 급증하자 갑자기 은행 팔을 비틀어 대출 물꼬를 조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 2%대로 떨어졌던 주택대출 금리가 다시 3%대로 올라섰다. 한쪽에선 대출을 늘리면서 다른 쪽에선 억제하는 모순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부동산 경착륙을 막겠다며 지난해부터 각종 저금리 주택 대출을 연 30조~40조원씩 공급했다. 대출 한도를 줄이는 규제를 당초 이달부터 2금융권까지 확대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9월로 늦추기도 했다. ‘영끌 빚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정책을 연기한 것이다. 정부는 급전이 필요한 자영업자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지원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대출 규제를 두 달 늦춘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그러더니 며칠 뒤엔 부동산 자금 공급을 막는다고 은행 대출을 조이고 있다. 갈팡질팡이다.
부동산 연착륙과 가계부채 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라면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정부의 엇박자 행보는 정책 불신을 초래해 정책 효과를 반감시킨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금리가 여전히 높아 갭 투자나 단기 투자를 노리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지만, 정부의 경고가 시장에선 먹히지 않고 있다. 2030 세대가 막대한 빚을 내 아파트를 사는 현상이 다시 고개 들기 시작했다. 집값 상승 기대감에 서울 아파트 값이 13주 연속 오르면서 올해 1~5월 중 서울의 생애 첫 주택 구입자 중 30대가 1년 전에 비해 70% 급증했다.
2000조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인데, 정부는 부동산 연착륙과 가계부채 억제라는 엇갈린 목표 앞에서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모순된 정책 과제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난제를 풀라고 존재한다. 지금으로선 무능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조선일보(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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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금융 풀고 대출 규제 미루더니 이제와 은행 압박하나
이준수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3일 17개 국내은행 여신담당 부행장과 ‘은행권 가계부채 간담회’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제공
심상찮은 가계빚 증가세에 금융 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그제 17개 시중은행 여신 담당 부행장들을 긴급 소집해 가계대출을 자제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이달 중순부터 은행권의 가계대출 관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통해 대출 규제를 어겼거나 목표를 웃도는 수준으로 가계대출을 내준 은행을 엄중 조치하겠다는 엄포를 놨다.
금융 당국이 은행을 압박하고 나선 것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빚이 가파르게 늘고 있어서다. 전세난과 부동산 시장 회복세에 힘입어 금융권 가계대출은 4, 5월 두 달 새 10조 원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지난달에만 5조 원 넘게 불었다. 작년 말과 비교하면 2.3% 증가한 것으로, 당국이 제시한 연간 가계대출 목표 증가율을 상반기에 이미 넘어섰다.
향후 기준금리 인하와 맞물려 가계대출 증가세가 더 빨라질 수 있는 만큼 선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오락가락 정책으로 대출 수요를 부추겨 놓고 이제 와 은행 팔을 비틀어 대출 고삐를 조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당국은 대출 한도를 수천만 원씩 줄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2단계 시행을 엿새 앞두고 돌연 두 달 연기했다. 대출 수요를 억눌러도 모자랄 판에 역행하는 신호를 보내고선 은행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그제부터 금리를 올리며 대출 조이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정부가 저리로 공급하는 정책 모기지 상품 때문이다. 4, 5월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액 중 정책금융 상품인 디딤돌·버팀목 대출 비중이 70%에 육박한다. 최저 금리가 연 1%대인 신생아특례대출은 출시 5개월도 안 돼 6조 원의 신청이 몰렸는데, 정부는 대출 요건을 더 완화한다고 한다. 이러니 정부가 서민 지원과 부동산 경기 회복을 이유로 부채 관리를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미루고 정책대출 공급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은행에만 가계부채 관리를 채찍질하는 것은 모순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엇박자 정책으로는 우리 경제 시한폭탄으로 자리 잡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지금처럼 집값이 들썩이고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는 때일수록 가계빚을 확실히 줄이겠다는 일관되고 체계적인 정책 의지를 보여야 한다.
-동아일보(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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