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經濟-家計]

[북한의 '자해 소음'] ['84제곱미터'의 지옥] [‘국민 스트레스’.. ]

뚝섬 2024. 9. 14. 06:16

[북한의 '자해 소음' ]

['84제곱미터'의 지옥]

[‘국민 스트레스’ 층간소음] 

 

 

 

북한의 '자해 소음' 

 

1989년 12월 미군이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잡으러 파나마시티에 들어갔으나 그는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망쳤다. 무력 체포를 할 수 없게 된 미군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썼다. 전차와 장갑차를 갖다 놓고 공회전을 시켰고, 대사관 옆 공터를 헬기 착륙장으로 만들었다. 이때 나오는 소음이 효과가 있을 듯하자 이번에는 대형 스피커로 록 음악을 24시간 틀었다. 더 클래시, 밴 헤일런 등 주로 과격 밴드의 연주였다. 견디다 못한 노리에가가 열흘 만에 손들고 나왔다.

 

▶헤비메탈 같은 강렬한 비트 음악은 그걸 접해 볼 기회가 없었던 문화권 사람에겐 적잖은 고통이다. 미군은 중동의 아랍권 포로에게 ‘소음 고문’을 자주 써먹었다. 심리전 장교들은 “소음 공격이 24시간 이상 계속되면 뇌와 신체 기능이 흔들리고 이어 사고 능력이 붕괴된다. 그때 심문을 시작한다”고 했다. 같은 질문을 계속 던진다거나 얼굴에 백열등을 쏘여서 잠을 못 자게 하는 것보다 헤비메탈이 더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전쟁터 같은 극단적 대치 상황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참을 수 없는 소음에 포위당할 때가 있다. 주택가까지 파고든 시위꾼들의 확성기 소리, 심각한 이웃 싸움으로 번지는 아파트 층간 소음이 대표적이다. 분필이나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가 소름끼치는 이유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그때 나는 2~5 Khz 고음은 인간의 귀 모양을 따라 잘 증폭되고, 또 대뇌의 어떤 부위는 이런 특정 소리에 매우 강한 불쾌함을 느낀다고 한다.

 

▶최근 북한이 전방에 설치한 확성기로 소음을 방출하는 바람에 접경지 남측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주로 강화도 북쪽에 사는 주민들의 고통이 크다고 한다. 합참에서는 “미상(未詳) 소음”이라고 표현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사이렌에 북장구 소리가 섞였다고도 하고, 쇠를 깎고 긁는 듯한 소리라고도 했다. 북한의 쓰레기 풍선에 대응해서 우리 군이 가요와 라디오로 대북 방송을 하자 북한은 기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스피커는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향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북한 군인과 주민이 한국의 대북 방송을 못 듣게 하려고 소리를 섞는 것이다. 일종의 ‘자해 소음’이다. 그런데 바다로 맞닿아 있어 중간에 막아주는 산이 없는 강화도 교동도에 이 북한 소음이 들리고 있다. 엉뚱한 피해인 셈이다. 심할 땐 지하철 소음과 맞먹는 85dB 수준에 이른다. 직접 들어보니 음산하게 기분 나쁜 괴음이었다. 쓰레기 풍선에 이어 쓰레기 소음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4-09-14)-

______________

 

 

'84제곱미터'의 지옥

 

고질적 병폐 층간 소음 심각
법·제도 실효성 아직도 미미
주민끼리 잔혹 범죄 잇따라
언제까지 쿵쿵 가슴 쳐야하나

 

세계로 뻗어나가는 처절한 고통. 지금 넷플릭스는 영화 ‘84제곱미터’ 촬영에 한창이다. 적금·주식·대출에 모친 마늘밭까지 팔아 내 집 마련에 성공한 30대 주인공. 국민 평형, 전용 84㎡짜리 보금자리는 금세 지옥으로 변모한다. 층간 소음 때문이다. 추적과 갈등, 이제 주민은 적(敵)이다. 이 짧은 줄거리에 공포·스릴러·액션·다큐가 망라돼있다. 층간 소음을 소재로 제작 중인 또 다른 K호러 영화 ‘노이즈’는 최근 프랑스·태국 등 69국과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 했던가.

 

층간 소음은 영화적 조건을 모두 갖춘 한국식 서스펜스의 총체다. 좁아터진 땅, 다세대의 삶. 믿기 힘든 스토리가 도처에 널렸다. 영화 ‘파묘’는 한 무덤에 관짝 두 개가 묻힌 첩장(疊葬)을 다룬 허무맹랑한 오컬트지만,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결국 층간 소음에 대한 이야기”로 결론 내린다. 토크쇼에서 농담조로 언급한 것이기는 하나, 좁은 집에서 수십 년 꼼짝없이 위아래 더부살이해야 한다면 시체라도 열받을 것이다. 원한을 품을 만하다.

 

실화는 그러나 훨씬 끔찍하다. 반전이 없기 때문이다. 다툼은 여지없이 새드 엔딩으로 끝난다. 층간 소음 시비 끝에 윗집 주민을 1시간 가까이 160회 이상 때려 숨지게 한 전직 씨름 선수, 아랫집 주민이 소음에 항의 방문하자 액막이용 흉기로 살해한 윗집 무속인…. 층간 소음 관련 5대 강력 범죄가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10배 늘었다고 한다. 얇은 벽으로 서로의 가계를 지탱하는, 허접하고 값비싼 아파트에서 애꿎은 주민끼리 죽이고 죽는다. “이게 집이냐”는 절규가 메아리친다.

 

시달려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고요'라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매일밤 저지된다. 아무리 호소해도 바뀌는 게 없으니, 울분을 견디며 잠드는 수 밖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1일 ‘층간소음 분쟁조정위원회 운영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0년간 갈등 조정 신청 건수는 중앙 환경분쟁조정위(환경부)가 연평균 2건, 중앙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국토부)가 20건 수준이었다. 소음 측정 등을 담당하는 ‘층간 소음 이웃사이센터’ 민원만 매년 3만~4만 건인데, 분쟁조정위에서 다뤄지는 건 극소수라 유명무실하다는 지적. 지방 분쟁조정위의 경우 지금껏 단 한 건의 갈등도 처리한 적 없는 곳이 여럿이었다. 소음 신고가 세 차례 이상 반복되면 ‘퇴거’ 조치가 가능한 미국 뉴욕처럼 강제성이 있지도 않다. 경실련은 “실효성 강화 대책과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시급한 일이다.

 

같은 면적, 같은 구조, 같은 고통. ‘국민 평형’이라는 말에는 생활의 동질성이 내포돼있다. 그러나 층간 소음은 대개 수직의 문제이고, 계급의 문제를 드러낸다. 소설가 황정은의 단편 ‘누가’에서 소음에 질려버린 주인공은 넋두리한다. “이웃의 취향으로부터 차단될 방법이 없다는 거. 계급이란 이런 거였고 나는 이런 계급이었어.” 이를테면 의원님들 위층에서 감히 마늘을 빻거나 발망치를 찍으며 돌아다닐 간 큰 주민은 없을 것이다. 층간 소음은 늘 소시민의 애환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명백한 참사지만, 늘 개별의 비극이기에 결코 특별법은 발의되지 않는다.

 

몇 가지 개선책이 나오기는 했다. 신축 시 바닥을 더 두껍게 시공하는 건설사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요건에 미달하면 준공 허가를 안 내주는 식이다. 이달 17일부터는 ‘바닥 충격음 성능 검사’ 결과를 건설사가 입주 예정자에게 의무 통지해야 한다. 이를 건너뛰거나 거짓을 고할 시에는 과태료 500만원이 부과된다고 한다. 500만원! 헐값에 책정되는 재앙의 몸값, 오늘도 영화를 뛰어넘는 잔혹 실화가 쓰여지고 있다. 국민들이 쿵쿵, 낡은 집에서 가슴을 치고 있다.

 

-정상혁 기자, 조선일보(24-07-06)-

_____________

 

 

‘국민 스트레스’ 층간소음

 

꼬박 2년간 윗집 소음에 시달려온 A 씨. 항의하고 읍소해도 그치지 않자 윗집의 윗집으로 이사한 후 그동안 당했던 것과 똑같은 소음을 일으킨다. 참다못해 올라와 “너무 시끄럽다”는 아랫집 주인에게 A 씨는 말한다. “나 아랫집 살던 그 사람이에요.” 층간소음 복수 경험을 담은 유튜브 영상인데 “통쾌하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지난해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신고된 민원이 4만6000여 건으로 5년 전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코로나로 집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홈트’라며 운동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때문이다. 층간소음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이 10명 중 9명이라는 설문조사도 있다. 층간소음 시비 끝에 주먹질과 칼부림을 하거나 아파트 관리소장이 입주민들의 층간소음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발생했다.

▷층간소음 피해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다. 층간소음 피해자의 반복 민원 신청률이 80%가 넘는다. 피해자는 일단 ‘귀 트임’을 하고 나면 아주 작은 소리에도 극도로 예민해지며 불면증 우울증 분노조절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층간소음은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지만 고의성이 없으면 처벌이 쉽지 않다. 손해배상도 법적 소음 기준을 넘는다는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천장에 스피커를 달아 윗집이 기독교인이면 염불 소리를, 불교 신자면 찬송가를 무한 재생하며 사적 보복에 나서는 이들도 있지만 보복 소음은 오히려 고의성이 쉽게 드러나 처벌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층간소음 분쟁이 많은 이유는 공동주택 거주율(60%)이 높은 데다 벽식 구조 아파트가 많아서다벽식 구조는 윗집 바닥을 아랫집의 벽면이 지지하는 방식이어서 윗집 소음이 벽을 타고 그대로 아랫집에 전달된다. 반면 기둥식 아파트는 바닥-보-기둥 3중 구조여서 소음이 기둥으로 분산된다.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기둥식 구조다. 기둥식으로 40층을 올린다면 벽식으로는 44층을 지을 수 있어 건설사들은 공사비가 덜 드는 벽식을 선호한다.

▷현재 기술로는 층간소음을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100억 원이 넘는 아파트에서도 층간소음 시비가 일어난다.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되 분쟁이 발생하면 ‘골든타임 6개월’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이 기간에 관리사무소 등을 통해 해결하지 않으면 불상사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차상곤 주거문화연구소장). 올 8월부터는 아파트 신축 후 바닥충격음을 측정해 기준치에 미달하면 시정 조치를 권고하는 ‘층간소음 사후확인제’가 시행된다. 기존 아파트도 층간소음을 줄이는 바닥 공사를 할 경우 일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2-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