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그리메] [산 이름] [산봉우리 이름도 '전국구 스타' 있다… ]
산그리메
겹겹이 쌓인 산이 빚은 아름다움
산그리메는 겹겹이 쌓인 산의 풍경을 이르는 말이다. 정확히는 가까운 산은 뚜렷하고 멀리 갈수록 점점 흐려지며 푸르게 보이는 상태의 모습을 말한다. 최근에는 산 뒤에 산이 첩첩이 늘어서 있기만 해도 산그리메라 부르곤 한다.
‘산그리메’는 국어사전에 등록되어 있는 표준어는 아니지만 등산하는 사람들과 자연을 다루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다. ‘그리메’는 그림자의 옛말이며, 남도 지역 방언이기도 하다. 그러니 산그리메는 말 그대로 ‘산 그림자’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산 그림자라고 하지 않고 산그리메가 된 걸까? 네이버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20세기 전반에 걸쳐 산을 묘사할 때 산 그림자란 표현을 곧잘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총 3,000여 건이 나온다. 이때 산 그림자는 실제 산의 그림자를 말하거나, 물에 비친 산, 혹은 새벽이나 노을이 질 때 산의 모습이 마치 그림자처럼 몽환적으로 보이는 모습 등을 묘사하는 용도로 두루두루 쓰였다.
산그리메란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1980년대 이후다. 시기적으로 산그리메란 말이 대중화된 건 1975년 발표된 송수권의 시 ‘산문에 기대어’의 영향이 유력해 보인다. 시인은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날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란 표현으로 쓸쓸함과 그리움을 노래했다. 윤제학 작가도 “산이 첩첩이 이어진 풍광은 종종 송수권의 시 ‘산문에 기대어’에 나오는 구절과 함께 운위된다”고 설명한다. ‘그리다’란 말과 비슷한 예쁜 어감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게 되는 데 일조했을 것 같다.
겹겹이 쌓인 산들 중 멀리 있는 산이 흐릿하게 보이는 현상은 빛의 산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대기 중의 먼지나 수증기에 의해 빛이 산란되어 흐릿하고, 또 푸르게 보이게 된다.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이 다른 색들보다 더 많이 퍼지게 돼 하늘이 파란 것과 같은 이유다.
산그리메의 모습은 계절별로 차이가 있다. 겨울철에는 대기 투명도가 높아 전체적으로 더욱 또렷한 풍경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수증기가 많아 흐릿하고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지리산, 덕유산, 한라산 등은 대표적인 산그리메 명소다. 특히 지리산 노고단에서 바라본 덕유능선이 멋진 산그리메를 보여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유진 마운틴 뉴스, 조선일보(2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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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이름
봉화산 47곳, 옥녀봉 39곳, 매봉산 32곳…
같은 산 이름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월간山’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산 이름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이를테면 “설악산, 관악산, 치악산처럼 ‘악’ 자가 들어가는 산은 정말 ‘악’ 소리 나게 산행이 힘들어서 생긴 이름이냐?” “전국에 ‘봉화산’ ‘매봉산’ ‘옥녀봉’ ‘비로봉’ 등 같은 이름이 많은데 어떤 이유가 있나?” 같은 질문입니다.
전북 남원 봉화산의 정상이에요. 봉화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산 이름이랍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악산’부터 답해보겠습니다. 산 이름엔 대부분 ‘큰 산 악(嶽·岳)’ 자를 씁니다. 그 지역의 가장 큰 산을 뜻하지요. 옛날에는 ‘신라 오악(五岳)’, ‘경기 오악’처럼 다섯 개의 명산을 손꼽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름에 ‘악’ 자가 들어가는 산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세가 크고 화려하거나, 풍수지리적으로 명산이거나 영험한 산을 뜻합니다. 물론 ‘산이 크다’는 의미는 지역마다 상대적입니다. 산 높이가 1000m에 못 미치더라도 그 지역에서는 ‘큰 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는 아니지만 ‘악’ 자가 들어가면 산행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산림청은 2007년 우리나라 산에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 순위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1위는 봉화산으로 47곳이었고, 이어서 국사봉(43곳), 옥녀봉(39곳), 매봉산(32곳), 남산(31곳) 순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이름인 봉화산은 정상에 봉화대가 설치된 것에서 유래합니다. 조선 시대엔 외적의 침입같이 나라의 급한 일이 생기면 봉화를 피워서 전했습니다. 때문에 전국에 봉화산이라는 이름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국사봉은 국사(國師), 국사(國士), 국사(國思) 등 다양한 한자를 씁니다. 여러 가지 유래가 있지만 마을이나 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국사당(國師堂)‘이 있던 곳이라는 의미로 쓰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유서 깊은 절이 있는 경우 나라의 스승[國士]이 될 정도로 훌륭한 승려를 배출했다는 의미로도 붙여졌으며, ‘생각 사(思)‘자를 써서 이곳에 올라 나라를 생각[國思]했다는 유래도 전해집니다.
옥녀봉(玉女峰)은 어떨까요? ‘옥녀’는 과거에 미인을 뜻하는 대명사였는데요. 산이 절세미인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옥녀봉에는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근처에서 목욕을 하거나 놀았다는 전설도 여러 곳에서 전해지고 있어요.
매봉산은 매를 풀어 사냥을 한 곳이거나 매가 살았던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매 응(鷹)’ 자를 쓰는 응봉·응봉산도 대부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매가 사냥 도구이자 권위를 상징하는 특별한 짐승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관련된 산 이름도 많은 것입니다.
오대산과 소백산을 비롯한 많은 산에 비로봉(毘盧峰)이 있는데요.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 ‘비로나자불’을 줄인 것입니다. 비로나자불은 진리이자 온 우주를 상징하므로 ‘비로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봉우리는 그 산에서 가장 신성하고 중심이 되는 봉우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보고 지나쳤던 산들도 이름의 유래를 알고 나면 그 지역에서 중요하게 여겨진 산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신준범 월간 산 기자, 조선일보(2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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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봉우리 이름도 '전국구 스타' 있다…
국사봉 1위·옥녀봉 2위
전국에 산봉우리 2137개
국사봉 138개·옥녀봉 95개
매봉·시루봉·형제봉 뒤이어
國師·國士·國事·國思…
한자 달라도 '愛國' 의미 담겨
산에 자주 오르는 사람들은 전국 곳곳에서 '옥녀봉'을 만난다. 그도 그럴 것이 옥녀봉은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도,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도,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도 있는 흔하디흔한 산봉우리 이름이기 때문이다.
'국사봉'은 더 많다. 국사봉은 전국 산봉우리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이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이름이 등록된 산봉우리는 전국에 2137개이다. 이 중 가장 많은 산봉우리 이름은 국사봉으로 138개가 있고, 2위는 옥녀봉(95개), 3위는 매봉(78개), 4위 시루봉(74개), 5위는 형제봉(51개)이다.
국사봉은 충청남도 공주시에만 10개, 전라북도 정읍시에 다섯개,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과 경기도 포천시에도 각각 두 개씩 있다. 한자는 조금씩 달라 국사(國師), 국사(國士), 국사(國事), 국사(國思) 등을 쓴다.
국사봉이라는 이름이 많이 쓰이는 이유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왕실 지관(地官)인 국지사(國地師)가 주변 땅을 살펴보기 위해 오른 봉우리라는 뜻에서 국사봉이라고 했다는 것. 둘째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을 나타낸 이름이라는 해석이다. 국가지명위원회 배우리 위원은 "국사봉의 한자가 달라도 '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며 국가를 생각하는 봉우리'라는 뜻이고, 애국(愛國)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왕조 교체 시기인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유배된 사람이 많은 지역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산봉우리 이름 중 둘째로 많은 '옥녀봉'. 전국에 95개가 있다. 여기엔 풍수지리학적 이유가 있다. '옥녀봉'이란 이름이 붙은 봉우리가 있는 산은 대개 험하지 않고 봉우리가 밋밋하고 둥그스름하다. 그 모습이 옥같이 고운 여인의 쪽진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옥녀봉이라 부른다. 동양학자 조용헌씨는 "산세가 험하면 그 지역의 기운이 날카롭다고 보는데, 둥그런 봉우리는 좋은 기운이 그 안에 뭉쳐 있어서 지역을 묵직하게 지켜준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사봉과 옥녀봉 다음으로 많은 이름은 '매봉'. 가운데 봉우리가 매의 머리처럼 둥글게 솟아 있고 날개처럼 좌·우로 작은 봉우리가 있을 때 자주 붙이는 이름이다. 해발 300~400m 높이 산에 많다. 비슷한 형상의 봉우리가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에 있으면 매가 아닌 '학'의 형상이라고 일컫는다.
국토지리정보원에 이름이 등록된 산봉우리가 가장 많은 지역은 전라남도로 385개가 등록돼 있고, 이어 전라북도(287개), 경상북도(269개) 순이다.
-이미지 기자, 조선일보(1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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