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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김장 마치고 돌아서니… "아뿔싸!.. "] [시골일기]

뚝섬 2024. 11. 24. 05:30

[나홀로 김장 마치고 돌아서니… "아뿔싸! 간마늘 안넣었네"]

[시골일기]

 

 

 

나홀로 김장 마치고 돌아서니… "아뿔싸! 간마늘 안넣었네"

 

김장할 때 동무가 필요한 이유 

 

김장 날은 1년에 한번 우리 집에서 고기 냄새가 나는 날이다. 수육과 김장 겉절이로 차린 작년 김장 파티상. /윤혜자 제공

 

나는 1년에 딱 한 번 고기(육류) 음식을 한다. 메뉴는 돼지고기 수육이다. 올해도 했다. 삼겹살 부위로 두 근을 사서 삶았다(지방이 적당히 붙은 삼겹살이 수육에 제격이다). 수육에 술이 없으면 곤란하니 증류주도 샀다. 그리고 친구를 불렀다. 둘이 앉아 혼자 수육을 먹을 남편을 상상하니 좀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후 집에서 육류 음식을 하지 않는 내가 1년에 딱 한 번 고기 음식을 하는 날, 그날은 바로 김장 날이다.

 

결혼도 늦었지만 제대로 음식을 하기 시작한 것도 늦었다. 최고난도인 김치 담그기는 더 늦었다. 나는 마흔여섯 살에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고 마흔아홉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 김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쉰다섯 살이 된 올해는 절인 배추를 사지 않고 밭에서 금방 뽑은 배추로 절이기부터 시작, 그야말로 김장의 전 과정을 스스로 했다. 절인 배추를 사지 않은 것은 내가 사는 보령 대보주택 이웃 어른들께서 텃밭에서 키운 배추를 주셨기 때문이다. 

 

김장 준비로 무릎을 맞대고 앉은 보령시 대보주택의 주민들. /윤혜자 제공

 

11월 중순 이후 내가 사는 보령의 공동주택 마당은 김장 준비로 분주했다. 대부분 할머니인 주민들은 주택 마당 텃밭에 배추, 무, 대파, 쪽파, 갓 등 김장에 필요한 채소를 공동으로 키우고 이 채소를 서로 나눠 김장을 담근다고 하셨다. 어느 날 아침, 고급 비타민 한 통을 들고 나가 파를 다듬는 어른들 틈에 끼어 앉아 김장 얘기를 들었다. 마음이 맞는 대여섯 집이 함께 순서를 정해 차례로 김장을 한다고 하셨다. 두레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이 순서에 끼지 못했다. 이사 온 지 겨우 5개월에 농사도 짓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오며 가며 인사를 드렸더니 103호 어른께서 농사지은 배추를 선뜻 나눠 주셨다.

 

나는 매년 9월 중순 이후 그해의 햇고춧가루를 구입하며 김장 준비를 시작한다. 그다음은 절인 배추 예약이다. 해남 배추가 최고라고 하지만 나는 그보다 포기는 작지만 단단하고 단 지리산 배추를 10월 하순쯤에 예약한다. 새우젓과 액젓은 인천의 오래된 젓갈 집에서 구매한다. 나머지 부재료는 김장 전날 동네 시장에서 산다. 재료 준비가 시작될 즈음 김장 동무를 모은다. 내가 김장에 필요한 모든 식재료를 준비해 두면 김장 날 친구 두세 명이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김장을 했다. 내 김장 동무들은 ‘덕분에 평생 처음 김장을 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김장에 필요한 식재료는 배추와 무를 포함해 스무 가지가 넘는데 남아도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된다. 그 일만 잘해도 김장의 반은 성공이다. 

 

김장 날엔 남편이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특히 쪽파를 매우 잘 다듬는다. /윤혜자 제공

 

몸으로 하는 모든 노동에서 평균 이하 점수를 받는 남편도 김장 날은 무척 바쁘다. 적지 않은 쪽파를 다듬는 일부터, 김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온갖 잔심부름을 해야 한다. 무거운 재료를 옮기고 김치를 담그는 사람들 손 역할을 제법 한다. 김치 양념이 묻은 손으로 뭔가를 하려면 반드시 남의 도움이 절실해지기 마련이다. 다행히 남편이 달려와 내려온 옷소매 올려주기부터 커피를 비롯한 온갖 필요한 것을 다 갖다 바친다. 김장 당일에는 적어도 백 번 정도 ‘여보’를 외치는 것 같다.

 

김장 날 피날레는 역시 ‘김장 파티’다. 메뉴는 돼지고기 수육과 김장 김치 겉절이, 싱싱한 굴과 잘 절인 배추, 그리고 좋은 술이다. 바로 이 파티를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 내가 1년에 단 하루 수육을 삶아 남편과 친구를 대접한다. 올해는 보령으로 이사를 와서 김장 동무도 없이 혼자 김장을 했다. 힘들었지만 곱게 그 양념 옷을 입은 김치를 한 곳에 쌓아 놓고 보니 뿌듯했다. 뿌듯함도 잠시, 장하다 칭찬하며 싱크대를 쳐다보았는데 아뿔싸! 곱게 간 마늘이 싱크대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깜빡 하고 마늘을 넣지 않은 것이다. 친구들이 옆에 있었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김장의 완성은 ‘혼자의 뿌듯함’보다 ‘같이의 분주함과 떠들썩함’이라는 것을 깨달은, 보령에서 겪은 쓸쓸한 김장 홀로서기였다.

 

-윤혜자 작가, 조선일보(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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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일기

 

“서방님! 천첩 일찍이 배운바 없지만 나이 들며 살아 가다보니 절로 익혀지더이다.”

 

뭐, 이러면서 모든 일을 해 나가는 것 같다.

 

즉석 김장 담구기. 금년엔 아예 배추와 무를 비닐하우스 안에 심었다. 김장 담글 용기를 비닐하우스 안으로 옮겼다. 

 

아내가 사랑스러울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남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있을 것이다. 일할 때, 밥할 때, 돈 벌어올 때 어떤 이는 형이하학적으로 섹시해 보일 때라며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나는 일정하지 않다. 수시로 바뀐다. 어찌 평생을 같이 할 그리고 여태 함께해 온 아내가 일할 때, 밥할 때, 돈 벌어올 때 또는 형이하학적으로 섹시해 보일 때라며 단정 짓는다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을 때는 사랑스럽지 않단 말인가?

 

즉석에서 뽑아서 배추 절이고 씻고.... 

 

아내는 일 하는 걸 겁을 안낸다. 그리고 누구에게 도움을 주지만 누구의 도움을 원치 않는다. 가령 기제사를 포함한 명절 음식도 형제자매나 심지어 며느리나 딸아이들의 도움도 거절한다. 그렇게 혼자 해도 힘들기는커녕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마을 부녀회장직도 그렇다. 매월 한두 차례 소집이 되어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가야 하건만 결석 한 번 않고 꼬박꼬박 참석하는 걸 옆에 지켜보면 ‘꼭 저렇게 모범이 되어야 하나?’하는 회의도 든다. 솔직히 아내의 그런 활동에 놀고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내가 분담해야 할 일들은 내 몫으로 돌아오는 게 싫다. 결론은 아내가 봉사활동 나가는 날은 내가 빡세게 일을 더 해야 한다.

 

다소곳 하게 혼자 김장을 담구는 아내의 뒷태가 '사랑스럽다'라고 한다면 욕 먹겠지? 

 

산골의 겨울은 아무래도 도회의 그것보다 일찍 찾아온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김장은 10월 말부터 시작이 된다. 때만 되면 마을이 조용하다. 각 가정마다 김장을 하느라 품앗이 할 형편도 못된다. 문제는 아내의 통 큰 행동이다. 매년 3남매 그리고 우리 부부가 먹을 김장을 200여 포기 이상 한다. 작년에도 250여 포기 넘게 했고, 마을회관으로 이웃집으로 돌려도 그 묵은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말이 250포기지 일반가정집에서 결코 적은 양이 아닐 것이다.

 

금년엔 머리를 쓴 탓에(사실 나 자신이 덜 힘들려고...) 그래도 부산물을 그 자리에 버릴 수 있어 힘이 덜 들었다.(내년 거름도 되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며느리나 딸아이들 불러내려 저희 먹을 것은 돕게 하라고 하면 바쁜 아이들 불러서 어쩌겠느냐며 항상 혼자 대 드는 것이다. 이러는 아내의 무모함(?)이 안쓰럽기도 또 이렇게 모든 걸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면 훗날 어찌 되겠느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면 아내는 “서방님! 천첩 일찍이 배운바 없지만 나이 들며 살아 가다보니 절로 익혀 지더이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놀고 먹은 건 아니다. 달큰한 다방커피를 마호병에 타서 가져가기도 또 이렇게 현장에서 서비스하며 좀 쉬었다 하라며 격려도 하고.

 

기왕 얘기 나온 김에.... 기제사를 포함한 여섯 차례의 음식 장만도 그렇다. 혼자 주물락 거리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 안타까워 말은 좋게 아이들에게 전수(?)해 주라면 마치 선견지명이나 있는 듯 “시대(세대)가 바뀌면 모든 게 다 바뀔 텐데 이런 걸 굳이 가를 칠 이유 없다”며 단호한 결기까지 보인다. 그러나 내가 이토록 좌불안석하는 것은 언제나 ‘괜찮다고’하지만 지 마누라 일하는데 빈둥거릴 간 큰 남자가 몇이겠느냐 이거다. 즉 아내가 하는 일의 분량만큼 내 마음의 심적 부담이 비례하는 게 싫은 것이다.

 

아무튼 어제 부로 사흘만에 금년 김장은 끝이 났다.

 

<<<산골일기:2014.11.18 맨 끝에 이렇게 적혀 있다. 요즘 산골마을은 이집 저집 김장 담구는 모습, 월동준비로 화목을 자르는 엔진 톱의 요란한 굉음이 천등산 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것을 제하곤 다른 계절과는 달리 문을 꼭 닫고 생활들을 하는지 몹시 을씨년스럽다 못해 황량한 기분까지 든다. 그런 사이 우리 집도 아내와 둘이서 김장 200여포기를 했다. 매년 삼남매와 꼭 보내야 할 친인척 몫을 하다 보니 양이 꽤 많다. 말이 200여포기이지 이거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어디 배추김치뿐인가? 깍두기, 고들빼기, 동치미, 총각무, 파김치까지.... 모든 걸 아내가 주도 하지만 뒷바라지 허드렛일로 나 역시 문자 그대로 파김치가 되어 있는데 아직도 남은 게 있다며 무말랭이 무를 썰란다. 근육통으로 온 삭신은 쑤시고 은근짜로 부아가 치민다. 그렇게 부려먹고 또.....>>>>

 

그러나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배추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 시간나면 좀 더 담구겠다는 얘기에 벌써 기가 질린다.

 

어쨌든 작년에 너무 많은 양의 김장을 했다며 올해는 줄인다고 줄였어도 또 200포기의 김치를 담궜다. 사흘 만에 금년 김장이 끝났다. 엊그제 처제 것 20포기는 따로.... 아직 깍두기, 고들빼기, 동치미, 총각무, 파김치는 손도 못 댔다. 작년이랑 똑 같다. 아니 이런 추세는 매년 똑 같이 흐른다. 그리고 어떨 때 근육통에 시달리며 “애 새끼들 아껴 뒀다가 국 끓여 먹을래!?”라며 한껏 성질을 부려 보지만 마이(웨이)동풍이고 우이(동)독경이다. 이게 우리 마누라다.

 

-오병규(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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