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실버 민주주의] 노인이 주도하는 정치는 사회를 안정시키지만..

뚝섬 2016. 2. 19. 12:54

'이다 메이 풀러'는 재정학 교과서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녀가 교과서에 이름을 올린 것은 연금 급여를 받은 첫 미국인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탁월한 건강관리로 백 살까지 장수했다. 현역 때 급여세 25달러를 낸 그는 1940년 은퇴 후 35년 동안 연금 22888달러를 받았다. 재정학에서 그의 이름은 위 세대가 누린 엄청난 혜택을 상징하는 동시에 아래 세대가 짊어진 엄청난 부담을 상징한다.

 

사회가 늙어가면 위 세대를 부양하는 아래 세대의 등골이 휜다. 위 세대가 혜택을 줄이는 게 인지상정인데 좀처럼 그러지 못한다. 제도를 바꾸는 정치가가 늘어나는 노인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노인 대국' 일본은 유권자 평균 나이가 쉰셋이다. 하지만 실제 투표자 나이는 예순에 달한다. '환갑 정치'. 10년 전 일본 자민당이 노인 병원비 부담을 올리자 야당이 "오바스테야마(姨捨山·노인을 산 채로 산에 버림) 정당"이라고 공격했다. 반세기 자민당 정권을 무너뜨린 결정타로 꼽힌다.

 

▶"축구장을 만들래? 게이트볼장을 만들래?" 물어보면 일본 정치가는 십중팔구 '게이트볼장'을 택한다고 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선 젊은이들을 위한 축구장이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인 표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눈치를 보다 복지비를 감당 못 해 나랏빚은 1100조엔을 넘었다. 일본은 금융 자산 75%가 예순 살 이상에게 쏠려 있다. 돈 많은 노인에게 돈을 빌려 노인을 부양하는 시스템이다. 소득 재분배 효과는 있겠지만 노인 돈이 빙빙 돌면서 훗날 갚아야 할 부담만 늘려 가니 젊은이들은 황당하다.

 

견디다 못한 일본은 오는 6월부터 열여덟 살에게도 투표권을 준다. 고교 3학년의 3분의 1가량이 '정치'를 시작한다. 노인의 막강한 정치력을 견제하려고 고등학생까지 힘을 보태는 판국이다. 파국을 피하기 위해 젊은이의 '1 5표제'를 보장하자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평균 여명(餘命)에 비례해 국회의원을 배분하자는 얘기도 있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흔드는 주장이지만 취지는 공감을 얻는다.

 

▶4월 총선에서 우리 선거 사상 처음으로 60대 이상 유권자 수가 40대를 앞지른다고 한다. 저출산·고령화가 이어지고 있으니 추세를 바꾸기 어렵다. 한국도 이제 '실버 민주주의' 시대다. 노인이 주도하는 정치는 사회를 안정시키지만 필요한 변화를 더디게 한다. () 싸움에서 밀린 젊은이들의 절망과 불만이 유럽처럼 거리에서 폭발할 수도 있다. 노인의 힘을 사회 발전에 연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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