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進하는 '백색 가전' 패권]
[2011년부터 일본 전자 기업 잇따라 삼켜.. ]
西進하는 '백색 가전' 패권
과거 프로레슬링 TV 중계가 있을 때, 동네 사람들은 텔레비전 있는 집에 모여들었다. 그때 스위치를 켜고 30초 이상 기다려야 화면이 뜨던 미국산 제니스 진공관 TV를 보았다. 당시엔 이 TV가 있는 집은 부잣집이었다. 이 TV는 시간이 흐르며 금성사 흑백 TV, 삼성전자 컬러 TV로 바뀌었다. 한국 가전 산업의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몇 년 전 독립한 아들 자취방에 가니 TV, 무선 청소기, 선풍기, 제습기가 모두 중국산이었다. 아들은 “가격, 품질 모두 만족”이라고 했다.
▶백색 가전이란 말은 영어 ‘White Goods’에서 유래했다. 백색 가전 산업의 초대 제왕은 미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 가전이 미국 가정에 하나둘 보급됐는데,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만든 가전제품이 대부분 흰색이었다. 청결을 강조하기에 적합한 색이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중산층은 GE·제니스의 TV, 월풀의 냉장고·세탁기에 열광했다.
▶1980년대 이후 백색 가전의 패권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소니 TV, 도시바 냉장고가 원가 경쟁력에서 미국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는 한국이 백색 가전의 새 강자로 부상했다. 럭키금성(LG의 옛 이름)과 삼성전자 간 피 튀기는 경쟁 덕에 가격·품질 경쟁력을 키운 덕분이었다. TV에선 삼성이, 나머지 백색 가전에선 LG전자가 세계 1위로 올라섰다. 특히 LG는 2019년 월풀을 제치고 세계 1위 백색 가전 기업이 됐다.
▶근래엔 중국이 백색 가전 패권을 노리고 있다. 중국 1위 하이얼은 미국 GE, 일본 산요, 이탈리아 캔디 등 유명 가전 기업을 인수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성과도 놀랍다. 중국 백색 가전이 일본에선 세탁기, 냉장고 시장의 20% 이상을, 한국에선 고급 로봇 청소기 시장을 80% 이상 장악했다. 중국 로봇 청소기의 독보적 경쟁력은 인공지능(AI), 3D 센서, 라이다 등 차별화된 자율 주행 기술과 가격 경쟁력 덕이다.
▶LG전자가 최첨단 로봇 청소기 개발 및 생산을 중국 기업에 위탁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기술 격차’가 낳은 제휴라는 점에서 뒷맛이 씁쓸하다. 최첨단 중국 로봇 청소기는 백색 가전의 미래를 보여준다. 스마트폰으로 원격조종해 외출 시에도 청소, 세탁, 냉난방 등 모든 가사를 자유자재로 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AI, 빅데이터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 선진국 중 하나다. 백색 가전 패권이 미국, 일본, 한국에서 이제 중국으로 서진(西進)하는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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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일본 전자 기업 잇따라 삼켜..
세계 가전·전자 제품 산업의 중심지였던 일본의 전자 기업들이 2010년대 들어 하나둘씩 중국계 자본의 품에 안기고 있다. 지난 2011년 산요에 이어 NEC, 샤프, 도시바, 후지쯔 등 주요 전자기업들이 백색가전, PC 등의 완제품 사업을 중국의 신흥 강호들에 내주고 있다.
강력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막강한 내수 시장을 보유한 중국 기업 입장에서 오랜 실적 부진으로 재무건전성이 악화한 일본 기업들은 말그대로 ‘좋은 먹잇감'이다. 일본 전자업계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전자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으며 아직도 진행형이다.
일각에서는 차이나머니의 일본 전자 기업 인수를 일종의 ’中·日 콜라보(협업)'이라고까지 해석하기도 한다. 차이나머니가 사실상 한계 산업이 된 PC, 액정표시장치(LCD) TV 산업을 정리하고 일본 전자산업의 구조조정을 앞당겨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우리나라 기업들이다. 중국 기업이 일본 전자 기업의 특허와 노하우,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 가전과 디스플레이 판도 흔들기에 나섰고 일본 기업은 첨단 부품 진출에 속도를 내면서 또다른 격차를 만들고 있다.
10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디스플레이 기술의 자존심 샤프는 지난 8월 대만 폭스콘에 인수합병됐다./ 사진=블룸버그
◆중국, 일본 전자 기업 쇼핑은 2011년부터... 폭스콘의 샤프 인수가 완결판
중국계 자본의 일본 전자기업 인수는 최근 수년간 계속 '진행형'이다. 지난 2011년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海尔)은 일본 전자업체 산요의 세탁기와 가정용 냉장고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산요 사업 부문 인수 이후 가전 사업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한 하이얼은 올해 1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 부문도 사들였다.
일본 가전 시장에서 첨단 기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던 도시바도 지난해 백색가전 생산거점 중 하나였던 인도네시아 공장을 중국 전자업체인 스카이웍스에 매각한 데 이어 올해는 백색가전 사업부까지 중국 메이더(美的)에 넘겼다. TV, 전자레인지, 드럼세탁기 등 세계 전자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겨온 도시바가 중국의 품으로 넘어간 셈이다.
1912년 일본 기업 최초의 레이더, 1959년에 트랜지스터 TV와 전자레인지 등을 선보이며 일본 전자 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도시바는 올해 백색가전 사업을 중국 메이더에 매각했다./ 사진=블룸버그
한때 세계 최강을 자랑했던 일본 PC 산업도 줄줄이 중국 레노버에 흡수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11년 NEC와 함께 합작 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후지쯔 PC 사업부를 인수하는 방안을 협상하고 있다. 레노버-NEC 합작법인의 일본 내 시장 점유율은 26.3%로, 일본 내 시장 점유율 2위(16.7%)인 후지쯔를 인수할 경우 점유율 약 43%로 일본 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레노버의 세계 PC 시장 점유율도 2~3%포인트가량 늘어난다.
디스플레이 기술 독립을 강조해온 중국 정부의 기조에 따라 TV, 디스플레이 패널 부문에서의 인수합병도 활발하다. 중국 전자업체 하이센스(海信·Hisense)는 일본 샤프의 멕시코 TV 공장과 TV 브랜드 '아쿠오스', '쿼트론'을 인수하며 TV 사업 부문을 강화했다.
대만의 폭스콘이 지난 2월 일본 디스플레이의 상징적 존재였던 샤프의 인수전에 뛰어들어 지난 8월에 합병을 완료한 것은 차이나머니 일본 침투의 끝판왕으로 평가된다.
◆中·日 인수 성공모델 나오기 시작했다...삼성·LG ‘긴장’
전자업계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전자기업 간의 활발한 인수합병(M&A)이 세계 전자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이얼과 산요, 레노버와 NEC의 협업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중-일 전자기업의 인수합병으로 인한 효과도 어느 정도 입증되는 분위기다. 특히 산요를 인수한 중국 하이얼은 2011년 업계의 우려 끝에 인수를 결정해 8개월 만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흑자전환에 성공한 바 있으며 레노버는 NEC와 합작 법인을 통해 일본 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폭스콘을 등에 업은 샤프도 인수합병이 완료된 지 두 달여 만에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하고 있다. 2010년 가동을 시작한 10세대 액정표시장치(LCD) 공장 실패와 TV, 가전, 스마트폰 등 핵심 사업에서 부진을 거듭하던 샤프는 ‘몰락한 명가’라는 꼬리표를 떼고 기존 사업을 포함해 신사업 진출에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샤프는 우선 2018년경에 LCD TV 생산량을 올해 전망치의 갑절인 1000만대로 확대할 계획을 세웠고 올해 들어 아시아 지역에서의 스마트폰용 패널 사업도 재개했다. 폭스콘의 투자를 바탕으로 지지부진했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연구개발도 다시 시작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신흥국 시장을 주된 타깃으로 각 분야 매출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이같은 중국계 자본과 일본 기업의 ‘콜라보’는 세계 전자·가전 제품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 기업, 그 중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전자업계 관계자는 “가장 단적인 예로 고화질 LCD 패널인 LTPS를 거의 만들지 못하던 폭스콘 계열사들이 일본 기업들의 기술을 손에 넣으며 LCD TV 부문에서 삼성, LG의 아성에 도전할 발판을 얻었다”며 “중국 기업이 중저가 시장을 벗어나 프리미엄 전자제품 시장에서도 영역을 확대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의 기업들 간의 짝짓기를 촉진하려는 투자업계의 노력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 1위의 M&A 중개업체인 ‘일본M&A센터’는 지난 2010년에 중국 지사를 개설해 5년 넘는 기간 동안 중국 기업의 일본 기업 매수를 지원하는 업무를 진행하며 연평균 30%대의 성장률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일본 전자 기업들 사이에서 중국과의 M&A가 구조조정, 사업 확장 등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의미다.
박승찬 소장은 중국기업의 일본 전자 기업 인수는 한국 전자 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 LG전자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도전이 될 것으로 봤다.
박 소장은 “중국이 중저가 시장을 벗어나 강력한 내수 시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전자, IT 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부분”이라며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일본이 보유한 특허, 기술 노하우와 아시아 시장에서의 브랜드 파워를 활용할 수 있고, 일본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의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신기술을 개발할 토대를 얻기 때문에 이런 흐름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규 기자, 조선닷컴(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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