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

[정선] 황금 광풍 불던 정선... 자유인 리영광과 친일파 박춘금

뚝섬 2016. 10. 19. 09:19

세계 일주 꿈꾸며 귀순한 인민군 리영광, 정선에 살다 나이 70에 종적을 감추고
1930
년대 금광시대,
平北에서 온 여자 김정숙 '노다지' 발견으로 200억 거부가 된 곳
골수 친일파 박춘금이 매입, 해방 때까지 운영하다 지금은 관광지 화암동굴로
구절리역… 레일바이크… 대한민국 성장 동력 탄광 시대는 가고 모두 관광지로 변해

                   

개마고원에서 단임골까지, 리영광 이야기

1967 9 18일 밤 리영광은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 용산골 제1집단군 입대 석 달 만에 철책을 넘었다. 한가위 달빛이 배신자 등을 하얗게 비췄다. 동료들은 다른 쪽으로만 AK소총을 갈기며 그를 놔줬다. 리영광은 그렇게 휴전선을 넘어 탈북했다. 올해 고희다.

"
세계 일주 하려고." 탈북 동기가 허무맹랑했다. 그가 말했다. "탈북 전 도서관에서 본 왕오천축국전과 조총련계 잡지에 실린 배낭여행족 이야기가 동기요, 군 생활 10년이면 청춘 없어지고 어차피 인생 죽은 거라 생각하고 목 내놓고 왔다."


-자유인 리영광이 살던 집.


도시를 전전하며 살다가 1989년 그가 정착한 곳이 강원도 정선 북평면 단임골이다. 세계 일주 꿈은 접었다. 개마고원을 닮은 그 자연 속에 살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100년 먹은 화전민 집에서 노인은 철철이 피는 작약꽃과 놀고 고추를 심어서 노루와 토끼와 나눠 먹고 가끔씩 그들과 구들방에서 동침도 했다. 1998년 부산 여자 박안자(66)가 그를 주인공으로 한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단임골을 찾아왔다. 닷새만에 정화수 떠놓고 혼인을 했다. 노루와 토끼와 두 호모 사피엔스가 동거하는 단임골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가 사라졌다. 지난 4월 어느 날이다. 이웃집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 신신당부하며 전북 진안 어드메로 총총히 떠났다. 연유도 알 수 없고 어이하여 진안 땅을 택했는지, 인연이 되어 그와 재회하면 꼭 물어볼 참이다. 가을이 내려앉은 단임골 계곡, 자유인 리영광이 살던 화전민 집에는 먼지가 가득하다.

황금 광풍(
狂風)과 정선, 김정숙 이야기

1929
년 미국 뉴욕 증시 폭락을 시작으로 세계는 경제 불황 늪에 빠졌다. 돈값은 똥값이 됐고 금값은 치솟았다. 군수물자를 수입하던 제국주의 일본은 식민 조선에 대대적인 금광 개발을 시작했다. 대풍작을 거둔 1930, 조선 농민들은 팔 곳 없는 쌀을 버리고 금광으로 들어갔다. 이름하여 황금광(黃金狂) 시대가 도래했다.

노다지만 캐내면 팔자를 고치니 신분 고하, 직업 불문이었다. 좌익계 작가 팔봉 김기진, '봄봄'을 쓴 김유정, 풍자 작가 채만식과 학자 조병옥에 시인 모윤숙까지 광풍에 휩쓸려갔다. 김유정은 '금 따는 콩밭'을 썼고 채만식은 '금의 열정'을 썼다. 금광 주인들은 광부들 똥구멍까지 뒤집어가며 금 도둑을 감시했다. 대낮에 신혼부부 손가락을 잘라간 금가락지 강도도 나왔다. 잡지 '삼천리'는 이렇게 보도했다. "금광 아니하는 사람을 미친놈으로 부르리만치 되었다."(1934 8월호)


김정숙은 그 광풍을 제대로 탄 여자였다. 1896년 평북 평원에서 태어난 김정숙은 열다섯에 시집을 갔다. 남편은 금광꾼이었다. 금을 찾아 헤매는 남편을 따라 팔도를 헤매며 이리저리 땅속을 파내려갔다. 그러다 흘러흘러 정선에 있는 천포광산으로 왔는데, 8년 만에 이곳에서 금맥이 터져버렸다. 1932년 일이다. 누구나 노다지 이야기를 하던 그 시절, 김정숙은 성공한 금광꾼으로 대화제가 되었다. 2년 뒤 김정숙은 이 갈리게 고생한 금광을 팔아치우고 금광사(金鑛史)에서 사라졌다. 매각 금액은 20만원. 지금 돈으로 240억원이다.

김정숙으로부터 천포광산을 매입한 회사는 소화광업(
昭和鑛業)이다. 총독부가 펴낸 '광구 일람'에는 소화광업 사주 이름이 '朴春琴(박춘금)'이라 적혀 있다. --. 1949년 혁신출판사라는 곳에서 펴낸 저자 미상 '민족 정기의 심판'이라는 책에는 박춘금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경남 1891년생. 동족 학살을 기도한 악귀(惡鬼)."

2016
년 정선, 대한민국 이야기

그 천포광산이 지금 관광객으로 붐비는 정선 화암동굴이다. 1934년 금광 갱도 하나가 무너지며 어둠 속에서 종유굴이 발견됐다. 금맥 없는 종유굴은 무가치한 동굴이라 버림받았다. 천포광산은 해방과 함께 폐광됐다. 주민들은 1980년대까지 띄엄띄엄 개인적으로 금을 캐다 팔았다. 1990년대 들어 바로 그 무관심했던 종유굴이 관광 상품으로 개발돼 정선에서 제일가는 볼거리가 되었다. 금광과 종유굴이 연결된 희귀한 본보기가 된 것이다.


-정선에 있는 화암동굴은 폐금광 갱도와 종유굴이 연결된 진귀한 동굴이다. 금광은 1930년대 조선에 몰아친 황금광 열풍 때 개발됐다. 해방 때까지 친일파 박춘금의 소화광업이 운영했다.


정선에는 금광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고 정선과 태백, 삼척에는 대규모 무연탄 탄광이 개발됐다. 가족을 위해 광부들은 지옥 같은 갱도로 들어갔다. 광부들이 캐낸 탄() 2016년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엔진이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석탄 합리화 정책에 따라 탄광들이 속속 폐광됐다.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던 탄광촌은 순식간에 유령도시로 변했다. '산업 역군' 광부들은 용도 폐기된 폐병 환자로 전락했다.

1950
년 전쟁 와중에 개발된 정선 신동읍 함백탄광에는 비극적인 역사가 있다. 1979 4 14일 오전 7 50, 갱도로 들어가던 다이너마이트 광차가 폭발했다. 26명이 죽고 40명 넘게 다쳤다. 사고가 나고 37년이 지난 올해에야 그 사고 현장에 추모공원이 들어섰다. 사고가 난 자미갱 갱도는 입구가 아직 남아 있고 그 옆에 추모비가, 그 앞에는 석상이 서 있다.


-1979년 폭발 사고가 났던 함백탄광 자미갱. 지금은 추모공원으로 변했다.


정선군을 핏줄처럼 엮어놓은 철도는 모두 탄을 나르던 산업선이다. 폐선된 정선선 구간은 관광용으로 쓰인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관광객들은 레일바이크를 타면서 가을을 즐긴다. 일제강점기부터 고단한 삶이 이어졌던 천포광산은 기가 막힌 지하 궁전으로 변했다. 그 화려함과 찬란한 가을빛이 기실은 황금 광풍과 허탈함, 남정네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품어 안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도 거기에 숨어 있다.

뼛속까지 친일파 박춘금 이야기


 -박춘금


소화광업 사장 박춘금은 뼛속까지 친일파였다. 경남 밀양 사람 박춘금은 어릴 적 일본으로 건너가 주점 심부름꾼을 하면서 일본말을 배웠다. 조선인 노동자 취업을 알선하고 통제하는 상애회(相愛會)를 운영했다. 모토는 '민족적 차별 관념 철폐와 일선 융화'였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시체를 청소하면서 일본인 눈에 든 박춘금은 이후 제대로 된 친일 행각을 벌여나갔다. 1924년에는 반일 사상범 박멸을 주장한 박춘금을 비난한 동아일보 사장 김성수와 편집국장 송진우를 명월관으로 불러 두드려 패고 감금했다. 1928년에는 농민 폭행사건을 비판한 조선일보에 권총을 들고 들어가 편집국장 한기악을 협박했다. 1930년에 쓴 책 '우리의 국가 신일본' 머리말은 "일본인들 호의에 감사"로 시작했다. 마침내 박춘금은 1932년 조선인 최초로 일본 중의원에 당선됐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이 명확하던 1945 7 24일 서울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고 전쟁 동참을 격려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했다. 박춘금이 단상에 오를 때 대한애국청년단원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등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린 사건이 부민관 의거다. 박춘금은 그때 8 8일을 기해 전국 반일·항일 인사 30만 명을 처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해방 후 박춘금은 일본으로 도망갔다. 1963년 잠시 귀국했을 때 한다는 말이 "독립국이 된 조국에 돌아와 떳떳하다"였다. 박춘금은 1973년 죽어서 유족이 몰래 고향 밀양에 묻었다. 1992년 일한문화협회라는 단체가 송덕비를 세웠다. 2002년 밀양 시민들이 비석을 파괴했다. 2006년 무덤 위로 도로가 나고 무덤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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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박춘금이 스쳐간 발자국이 정선 지하 동굴에 있다. 그 자유인 리영광이 숨쉬던 공기가 정선 골짜기에 흐른다. 일개 아녀자를 거부(
巨富)로 만든 1930년대 조선 황금 광풍이 정선 계곡에 맴돈다. 단풍이,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남정네들 피땀만큼이나 붉다.


[정선 여행수첩]



〈볼거리〉

1.
오장폭포: 구절리역 5분 거리 노추산에 있는 폭포. 산 양쪽으로 갈라져 있던 물줄기를 한쪽으로 몰아서 수량을 늘렸다. 비 오는 날에는 장엄하다.

2.
구절리역: 레일바이크 코스. 아우라 지역까지 7.2㎞ 구간을 편도로 운행. 돌아올 때는 기차를 탄다. 예약 문의 www.railbike.co.kr


3.아우라지: 한양 가는 뗏목꾼들이 출발했던 장소. 정선 아리랑 발상지다.

4.
화암동굴과 화암약수: 동굴 모노레일 8000. 화암약수는 5분 거리다.

5.
자미갱기념공원: 안경다리 너머 타임캡슐공원으로 가는 길목 오른쪽. 한 시대를 이끈 주역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 아직 정식 개장하지 않아 이정표도 없고 안내판도 없다.

6.
타임캡슐공원: 구절양장 산중 드라이드 끝 산꼭대기.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나왔던 소나무 주변에 조성돼 있다. 최장 3년까지 대여하는 타임캡슐도 묻을 수 있다. 산으로 오르는 길에 옛 탄광촌 모습도 눈에 띈다.


-타임캡슐공원 소나무.


7.민둥산 억새밭: 민둥산역을 비롯해 오르는 길 다수. 발구덕마을 코스가 짧고 무난하다. 민둥산역 옆 아파트 이름은 '멀미아파트'. 뒷산이 검다 해서 '먹뫼'라 했는데 변해서 멀미가 돼 버렸다고.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조선일보(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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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둥산(강원 정선): 억새.. 억새.. 억새가 하늘에 닿았다   http://blog.daum.net/cgan14/592

동강-백운산(白雲山)(강원 정선):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과 멋진 기암..    http://blog.daum.net/cgan14/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