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년 전 과학자가 알려준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소]
450년 전 과학자가 알려준 2032년 소행성 충돌 위험
지난해 말 2032년 지구 충돌할 수 있는 소행성 '2024 YR4′ 첫 관측
케플러가 1609년 발표한 케플러 방정식으로 소행성 궤도 예측 가능
장애에 굴하지 않은 열정과 호기심이 과학과 인류의 미래 바꿔놓아
1571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케플러는 신동으로 유명했다. 여섯 살 때 혜성을 본 뒤로는 별과 우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배경이 발목을 잡았다. 병약하기까지 했던 케플러가 꿈꿀 수 있던 직업은 성직자뿐이었다. 튀빙겐대 신학과에 입학한 케플러는 인생을 바꾼 수업을 만난다. 신이 창조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天動說)을 가르치는 강의에서 케플러는 당시 배척받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을 알게 된 것. 이후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 학파를 자처하며 행성을 비롯한 우주 천체의 움직임을 밝히는 데 평생을 바친다.
오늘날 과학 사가들은 그를 신중한 관찰과 엄격한 검증을 중시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아버지이자 현대 과학의 창시자라 칭송한다.
500년 가까이 지난 역사 속 인물 케플러가 과학계에 다시 소환됐다. 지난해 12월 27일 칠레의 한 천체망원경이 처음 포착한 지름 40~90m 크기 소행성 ‘2024 YR4’ 덕분이다. 발견 이틀 전 지구에서 달 거리의 두 배가 넘는 82만8800km 지점을 지난 뒤 점차 멀어지고 있다. 태양계를 떠도는 수백만 소행성과 별다를 게 없는 2024 YR4가 화제가 된 것은 지난달 29일 유엔 자문 그룹 국제소행성경보네트워크(IAWN)가 “2024 YR4가 2032년 12월 22일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1.3%에 이른다”는 발표를 내놓으면서다. IAWN은 지구 충돌 가능성 1%가 넘는 소행성을 발견하면 유엔 회원국에 알리는데, 이번이 역사상 첫 경고였다. 이 확률은 지난 18일 3.1%까지 치솟았고, 다음 날 1.5%로 떨어지는 등 급변하고 있다. 24일 기준으로는 0.28%이다. 과학자들은 티끌보다 작은(우주 전체로 보면) 소행성의 앞날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케플러의 유산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다. 케플러는 움직이는 천체는 타원·포물선·쌍곡선 등 세 가지 가운데 한 궤도를 돈다고 주장했다. 지구가 원에 가까운 타원 궤도를 도는 식이다. 케플러는 1609년 발표한 신천문학(Astronomia Nova)을 비롯한 여러 책에서 천체의 궤도를 예측하는 ‘케플러 방정식’을 발표했다. 초보적인 광학 망원경뿐이던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시대는 수백 년간 기술적 발전을 거듭해 거대 우주 망원경의 시대가 됐지만, 케플러 방정식은 여전히 천체의 움직임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09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외계 행성 탐사를 위한 망원경을 발사하며 케플러의 이름을 붙였다. 인류 최고의 숙제를 풀려는 도전이 케플러의 업적처럼 위대한 결과로 이어지길 기원한 것이다.
과학계는 2024 YR4 추적을 위해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영화 ‘딥임팩트’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 YR4는 충돌 시 지구 멸망까지는 아니지만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크기로 ‘시티 킬러(city killer)’라 불린다. 2024 YR4 크기의 소행성이 1908년 시베리아에 충돌해 폭발한 ‘퉁구스카 대폭발’의 경우 핵무기와 비슷한 위력으로 뉴욕 면적의 2배가 넘는 숲을 사라지게 했다.
2032년 2024 YR4의 충돌 예상 지역에는 인도 뭄바이, 콜롬비아 보고타 같은 대도시가 포함돼 있다. 다만 과학자들은 과도한 공포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충돌 확률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 자체가 관측 기록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2024 YR4에 대한 관측 자료가 쌓일수록 더 정확하게 케플러 방정식을 풀어내 위협이 실제가 될지 알 수 있다. 야구 선수가 공을 더 많이, 오래 쳐다볼수록 공의 궤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현재로서는 관측이 이어지면 결국 충돌 확률은 0%에 수렴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케플러는 어린 시절 앓은 천연두로 인해 심각한 근시에 복시였고, 손가락 장애까지 있었다. 관측이 천문학의 전부이던 시대에 치명적인 약점이었지만, 다른 과학자의 관측 자료를 파고든 끝에 천체의 미래를 읽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굴하지 않는 열정과 지적 호기심 덕분에 우리는 행성의 충돌 가능성을 수년 전에 내다보고 대비하는 세상에 살게 됐다.
-박건형 기자, 조선일보(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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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소
지구상 식물 90% 이상이 씨앗 번식… 10년 전 노르웨이에 저장소 만들어
영하 18도 진공 상태로 종자 보존, 씨앗 사라지면 보내달라 요청
우주를 떠돌던 소행성이 어느 날 지구를 덮쳤다고 상상해 보세요. 엄청난 충격으로 생긴 각종 먼지와 재가 소행성 파편과 뒤섞여 거대한 먼지 구름을 만들 거예요. 이로 인해 햇빛이 도달하지 않아 지구는 길고 어둡고 추운 '핵겨울'에 들어가게 되겠지요. 이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죽은 땅을 다시 살리려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씨앗'이 필요하답니다.
하지만 씨앗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한 번 멸종하면 복원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2008년 과학자들이 날씨가 변하거나 소행성이 충돌하는 것 같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귀중한 씨앗을 보관할 튼튼한 '요새'를 만들었어요.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소(Svalbard Global Seed Vault)'랍니다.
◇'노아의 방주'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
지구 상에 존재하는 식물의 90% 이상이 씨앗을 만들어 번식하는 '종자(種子)식물'이에요. 씨앗이 사라진다면 인류를 포함한 모든 동물도 차례로 사라지고 말 거예요. 식물은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하고, 동물에게 살 곳과 먹을 것을 주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귀중한 씨앗을 보관하는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는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諸島)에 있어요. 스발바르제도는 노르웨이 북쪽 끝에 있는 여러 섬을 말하지요. 튼튼한 사암(모래암석)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 화산 폭발 같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은 안정적인 지대예요. 지리적으로는 북극점과 약 150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매우 춥지요. 겨울에는 3개월간 해도 뜨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이 지역에는 땅속에 1년 내내 얼음이 꽝꽝 얼어 있는 '영구 동토층(땅속 온도가 0도 이하인 부분)'이 있답니다.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는 이 섬의 약 130m 높이 바위산 위에 만들어졌어요. 120m 길이의 터널을 걸어 들어가면 맨 끝에 씨앗 450만 개를 보관할 수 있는 지하 저장고 세 곳이 있지요. 저장고 안에 들어 있는 씨앗들은 진공(물질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공간) 봉투 안에 단단히 밀폐된 채 차곡차곡 쌓여 있답니다.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식물의 씨앗을 함수율(含水率·수분이 들어 있는 비율) 6~8% 정도인 건조한 상태로 밀봉해서 0~10도 사이의 낮은 온도로 저장하면 길게는 수십 년이 지났을 때 싹을 틔울 수 있거든요.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는 규모 6 이상의 강한 지진은 물론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에도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만들어졌어요. 또 1년 내내 영하 18도를 유지해주는 냉동 장치가 설치돼 있어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을 막아줘요. 만약 냉동 장치가 고장 나더라도 영하 3.5도 정도인 스발바르의 영구 동토층이 자연 냉동고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요. 이 때문에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는 '노아의 방주(성경에서 신이 대홍수에 대비해 노아에게 짓도록 한 배)' 또는 '최후의 날 저장고'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지요. 국제연합(UN) 산하 세계작물다양성재단에서 운영을 맡고 있답니다.
◇올해 100만 개를 넘은 생명의 희망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에는 매년 수만~수십만 개 씨앗이 들어오는데 지금까지 총 100만 개 넘는 씨앗 표본을 보관하고 있어요. 인류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식물 종자 거의 대부분이 여기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가장 많은 식물 종은 쌀과 밀로 약 15만 개이고 그다음이 보리(약 8만 개)예요. 우리나라에서도 콩·조 등 재래 식물종 1만3000여 개 씨앗을 스발바르에 보내 보관하고 있어요.
특정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나 그 지역의 종자가 사라져버린 경우, 스발바르에 요청하면 씨앗을 받아올 수 있어요. 실제 2015년과 2017년, 시리아 국제건조지역농업연구센터는 오랜 내전으로 시리아 내 식물 종자가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하자 스발바르에 보관해둔 씨앗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답니다. 이에 스발바르는 씨앗 약 9만 개를 시리아로 보냈지요.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 전쟁이나 지구 온난화,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많은 식물이 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스발바르만 믿고 있어선 안 된다고 지적해요. 이곳에 보관한 씨앗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정말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지, 수십~수백 년 후 바뀐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100%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스발바르제도도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고 있답니다. 섬을 둘러싼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지난해 종자 저장소 건물 입구가 물에 잠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노르웨이 정부에서 종자 저장소 앞에 방수벽을 새로 쌓고 침수에 대비하는 보강 공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위기감이 돌고 있어 많은 과학자가 그 대안을 연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시드 볼트'
스발바르 종자 저장소가 전 세계의 유일한 ‘씨앗 창고’인 건 아니에요. 각 나라에선 대부분 ‘종자 은행’을 운영해서 식물 씨앗을 보존하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도 스발바르처럼 다른 나라의 씨앗까지 보관하는 대규모 종자 저장소가 생겼답니다.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있는 ‘시드볼트(Seed Vault)’이지요. 스발바르에 이어 가장 규모가 큰 종자 저장소로, 약 46만 개 씨앗을 보관하고 있어요.
-김은영 과학 칼럼니스트/기획·구성=박세미 기자, 조선일보(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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