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엔 주고받는 맛” “쌍팔년도도 아니고” 추석 떡값 요지경]
[강남경찰서]
“명절엔 주고받는 맛” “쌍팔년도도 아니고” 추석 떡값 요지경
의무도 권리도 아닌데 명절 떡값 동상이몽
한 중소기업 사장이 직원들에게 준 추석 떡값과 편지. 업종과 기업마다 명절 보너스는 천차만별이다. /페이스북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남들은 저만큼 받는데, 난 왜 요만큼인가. 민족 최대 명절이 다가오면서 ‘추석 떡값’을 둘러싼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달 초 수도권 한 대단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 경비 등 관리 직원들에게 직급에 따라 30만~70만원의 추석 떡값을 지급하는 안건이 올라왔는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주민이 “물가도 올라 힘든데 삥 뜯기는 기분”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떡값까지 챙기냐”고 제동을 건 것이다. 이에 직원들이 “층간 소음, 배송 등 온갖 민원에 밤낮 시달리는데 하는 일이 없다니?” “치사해서 떡값 안 받겠다. 대신 앞으론 명시된 업무 외엔 일절 요구 말라”며 울컥했다고 한다.
아파트 관리소 떡값은 천차만별이다. 월급의 20%로 정해놓은 곳부터, 한 푼도 없는 곳도 수두룩하다. 통상 5만~20만원 정도의 명절 떡값과 선물을 잡비에서 지출한다. 격무를 하는 용역 근로자에 대해 ‘명절에나마 감사를 표하자’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젊은 세대는 떡값이란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올해 각 기업별 추석 떡값 현황이라며 직장인들이 올린 정보를 모아 만든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앱) 게시물. 진위는 확인되지 않지만 그만큼 기업별 떡값 격차가 심하고 받는 사람도 민감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블라인드
떡값은 명절에 직장에서 직원에게 주는 특별수당을 말한다. 박정희 정부 때 박봉인 공무원들에게 추석과 설에 ‘귀향 효도비’로 지급한 상여금이 방앗간에서 떡 한 시루 맞출 정도의 금액이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수백억원대 정치 비자금을 조성한 게 드러나자 “떡을 만지면 손에 떡고물이 묻는 게 당연하다”고 하면서 ‘뇌물’ ‘촌지’의 의미로 확장됐다.
김영란법 도입 등 공정과 투명의 시대가 되면서 떡값의 음습한 의미나 형태는 상당 부분 퇴색했다. 법에도 없고, 의무도 권리도 아니다. 그러나 떡값은 여전히 ‘한국식 정(情)’이자 ‘관계의 윤활유’란 취지로 오가는 모든 비공식적 현금과 선물의 형태로 살아있다. 그 무한한 해석의 여지가 고민과 갈등을 낳는다.
최근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747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더니 55%가 “추석 떡값을 받는다”고 답했다. 이들의 평균 수령액은 약 46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평균일 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앱 블라인드와 업종·지역별 모임 사이트마다 각자 떡값을 얼마나 받는지 공개하며 달아오르고 있다.
대기업은 대개 연봉에 상여가 포함돼 있어 떡값이 따로 없거나, 자사 페이나 상품 등으로 소액 지급하는 추세다. 한 금융사는 추석 떡값만 800만원인가 하면, 어떤 공사는 연휴 근무자에게만 ‘식대 7000원’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스타트업도 업황에 따라 ‘그냥 조기 퇴근’부터 ‘월급의 200%’까지 천양지차다. 명절 휴가비가 기본급의 60%로 명시된 공무원은 선망의 대상이다. 10년 차 경찰이 190만원, 국회의원이 410만원쯤 받는다.
한 맘카페에선 한 로펌 변호사가 “떡값 5500만원 받아 호캉스 가려고 한다”고 자랑하자, 다른 비정규직 여성이 “전 샴푸 세트 하나 받았는데...”라고 해 분위기가 싸해졌다. 경북의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난 떡값 5만원 받았는데, 서울에서 똑같은 일 하는 친구는 15만원 받았다더라”며 씁쓸해했다.
고용주들도 눈치 작전이다. 서울의 한 고깃집 사장은 “직원들 떡값 시세를 주변에 알아봤는데, ‘안 줘도 된다’부터 ‘근태에 따라 5만~10만원 차등 지급하라’ ‘20만원 주면 충성도가 달라진다’는 말까지 있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한 프랜차이즈 빵집 주인은 “지난 설 아르바이트생 8명에게 5만원씩 힘들게 마련해 줬는데, 한 명이 그 자리에서 봉투를 열어보곤 ‘초등생 용돈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해 참담했다”고 했다. 주부들은 아이 돌보미나 학원 강사 등을 어떻게 챙겨줘야 하나 갑론을박이다. 현금이나 상품권이 최고다. “식용유나 치약 세트는 자칫 주고도 욕 먹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추석을 앞둔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화폐수납장에서 관계자들이 추석 화폐 공급을 하고 있다. /뉴시스/서울의 한 지자체 부설 스포츠센터가 수영장 등에서의 강사 선물용 명절 떡값을 갹출해 수수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공지문. /페이스북
중소기업은 코로나 이후 인건비와 금리가 오르고 영업이 부진해 명절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추석 떡값만 받고 퇴사를 통보한 ‘먹튀’ 직원에게 분노해 반환 소송을 건 업주도 있다. 반대로 협력사나 비정규직 직원들이 본사 정규직에 비해 떡값 차별 대우를 받았다며 소송 걸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법이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떡값은 어디까지나 호의이기 때문이다.
호의를 두고 얼굴 붉히는 또다른 전장이 전국의 수영장이다. 중·장년 ‘왕언니’ 수강생들이 나서 “강사가 수고하니 떡값 챙겨주자” “다 우리에게 돌아오는 돈”이라며 회원들에게 1만~2만원씩 걷고, 젊은이들이 반발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수영장 온라인 커뮤니티엔 “쌍팔년도도 아니고 무슨 떡값을 강제로 걷냐” “떡값은 업체가 줘야지 왜 수강생이 갖다바치나”란 성토가 넘쳐난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수영장이나 일부 사설 수영장에선 갈등이 커지자 ‘추석 떡값 금지’ 방침을 대대적으로 공지하고 있다. 한가위, 떡값 때문에 빈정 상하는 일만 없어도 선방이다.
-정시행 기자, 조선일보(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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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경찰서
1990년대 중반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반이 호스트바 한 곳을 급습했다. 자정 이후 영업을 못하던 때라 명목은 심야영업 단속이었지만, 실제는 변태영업을 적발한다고 했다. 출입기자들에게 "사진기자도 꼭 같이 오라"고 당부할 만큼 자신 있어 했다. 그러나 한밤중에 찾아간 호스트바는 셔터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자들은 "단속 정보 어디서 샌 거냐"고 투덜댔다. 훗날 친한 형사가 "전직 강남서 출신에게 정보가 샌 것 같다"고 귀띔했다.
▶10년 전쯤 연예인이 강남에서 음주 단속에 걸렸을 때 경찰에게 무마조로 주는 돈은 600만원이 '정가'였다. 면허가 취소되면 벌금이 300만원이어서 그 두 배를 받는다는 계산법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연예인은 "편의점에서라도 바로 현찰을 뽑아 즉석에서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인이 음주 단속에 걸리면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으니 비싸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대대적 물갈이를 앞둔 강남서 근무 공모에서 지원자 미달 사태가 났다고 한다. 기존 직원 100명을 다른 데로 보내려면 지원자가 1.5배는 돼야 하는데 90명밖에 지원하지 않았다. 추가 지원까지 받아 간신히 지원자 120명을 만들었다. 버닝썬 사건 관련 비리 때문에 강남서는 경찰청 '제1호 특별인사관리구역'이 됐고 앞으로 직원 70%가 교체될 예정이다. '강남권 반부패 전담팀'이 만들어져 고강도 감찰을 앞둔 강남서에 가려는 경찰이 적을 수밖에 없다.
▶강남서는 경찰관들이 선호하는 근무지였고 승진 코스이기도 했다. 대형 사건과 유명인이 연루된 사건이 많아 그만큼 능력 발휘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관내에 강남역, 신사역, 압구정동, 청담동, 삼성동이 있고 대기업 본사와 유명 연예기획사들도 많다. 온갖 유흥업소들도 밀집해 있어 업소 뒤를 봐주고 떡값으로 수천만원씩 받다가 적발되는 경찰들도 끊이지 않았다. 검찰이 한 룸살롱 장부를 압수했더니 강남서 경찰 명단이 한 무더기 나온 적도 있다. 버닝썬에서 2000만원을 받아 구속된 사람도 전직 강남서 경찰이었다.
▶강남서는 1976년 동부서에서 분리돼 대치동 지금 자리에 세워졌다. 2년 뒤인 78년 강동서가 신설돼 강남서에서 나간 것을 시작으로, 서초·송파·수서서가 모두 강남서에서 분리돼 독립했다. 강남 개발의 역사가 강남서의 역사인 셈이다. 신임 강남서장은 지난달 취임사에서 "경찰서 해체 수준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대형 비리가 또 터지면 정말 서초·송파·수서서가 강남서를 해체해 나눠 가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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