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童貞 중년'을 어떻게 하나]
['결혼 파업']
'童貞 중년'을 어떻게 하나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혼밥
사회적 고립, 연애도 대폭 감소
40~50대도 교류시간 크게 줄어
한국 사회 압축… 미래가 두렵다
며칠 전 한국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영어 신조어 '인셀(incel)'을 어떻게 우리말로 번역할지 가벼운 토론을 나누었다. 이성 교제나 결혼 기회를 갖지 못한 젊은 남성들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좌절감과 분노를 온라인에서 분출하거나 현실 세계에서 강력 범죄로 발전하는 경우가 늘면서 한국에서도 사용 빈도가 늘었다.
비자발적 독신(involuntary celibate)이라는 원래 표현은 무언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모태 솔로 등이 거론됐지만, 의미를 온전히 담지 못한다는 평이었다. 압도적인 호응을 얻었던 건 동정 중년이었다. 무협지에서 종종 쓰이던 '동정(이성과 성적 접촉을 하지 못함)'이란 표현에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로 '중년'을 붙인 것이었다. 내가 제안한 단어였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뒷골이 서늘해졌다. 한국 사회를 너무 잘 압축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이성 교제 경험이 없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경우가 많다.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관계를 맺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니 연애 기회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국무조정실이 낸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만 19~34세)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혼자 밥을 먹는 게 일상이다. 가족, 친지, 직장 동료 이외에 교류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들도 9.6%에 달했다. 특히 고졸 이하(15.7%)는 대학 재학(6.3%) 또는 대졸 이상(9.4%)보다 압도적으로 그 비율이 높았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거나 매력적인 외모를 갖지 못한 이들이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불리하긴 하지만, 그 자체로 파트너를 찾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청년 열 명 가운데 세 명이 연애 경험이 없다는 결과까지 나오는 건 타인과의 접촉이 줄어든 탓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대졸보다 고졸 이하가, 대기업 직원보다 중소기업 직원이 사회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
타인과의 교류 감소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1999년과 비교해 2019년 30~50대가 교제 활동에 들이는 시간은 각각 일평균 17분씩 줄었다. 30~40대 남성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데 쓰는 시간은 하루 평균 25~26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래서는 공동체라는 게 유지될 수가 없다. 흔히 사회적 자본이라 불리는 공통의 규범, 문화, 상호 신뢰도 희미해질 것이다. 최근 잇따라 문제가 된 교사 상대 갑질은 전통적인 사제 관계의 소멸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붕괴라는 점에서, 동정 중년과 맥을 같이하는 현상이다.
지방 문제도 연관된다. 20~34세 성비를 시도별로 보면 서울은 여성 100명당 남성 95.3명인데 경북(126.2), 충북(122.6), 경남(122.1), 전남(120.4)은 120이 넘는 심각한 남초(男超)다. 부족한 일자리와 지역 사회의 꽉 막힌 문화에 여성들이 서울행을 택한 결과다. 남아 있는 젊은 남성들의 불만과 좌절이 수면 아래에서 들끓을 수밖에 없다. 낙후된 옛 동독 지역 젊은 남성이 주력 지지층인 독일 대안당(AfD) 등 유럽식 극우 정당이 한국의 미래일 수 있는 이유다.
동정 중년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낀 건 나 또한 40대 초반 독신 남성이기 때문이었다. 명절에 광주 등에 사는 친·인척들을 만나도 이제는 결혼이나 연애 관련 질문을 하지 않는다. 비슷한 이들이 여럿 있어서일 테다. 그나마 내가 나은 것은 사회적 고립을 피하고 에너지를 쏟아낼 방법을 찾을 약간의 경제적 여력 정도랄까. 두려운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조귀동 조선비즈 기자, 조선일보(2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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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파업'
몇 년 전에 은퇴한 선배 지인을 최근 만났다. 아들 둘 다 직장 다니고 있으니 걱정거리라곤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가족들 무탈하시냐"는 인사에 한숨부터 내쉰다. "애들이 결혼을 안 해서…." 큰아들이 서른일곱, 둘째는 서른셋, 아들 둘 나이 합치니 노부모 나이에 맞먹는 70이다.
▶작년에 우리나라 혼인은 25만7622건으로 46년 만에 제일 적었다. 얼마나 짝을 맺는지 객관화하려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나타내는 '조(粗)혼인율'을 봐야 한다. 이 수치가 1980년만 해도 10.6건이었는데, 지금은 반 토막을 밑도는 5.0건이다. 1000명당 이혼 건수인 '조(粗)이혼율'도 2.1명이나 된다. 결혼 안 하는 청년에 결혼 못 하는 청년을 보태고 여기에 이혼까지 더하면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결혼 파업' 수준이다.
▶결혼 여부를 두고 '미혼' '기혼'으로 나누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미혼 말고 '비혼(非婚)'이라 해야 결례가 안 되는 세상이다. 비혼 지향 생활공동체라 이름 붙인 주거 공간도 생겨났다. "나 자신과 결혼하겠다"며 비혼식에 친구를 초대하는 신(新)풍속도도 있다. 이런 사람을 '자발적 비혼주의자'라 부른다. 서구 젊은이처럼 결혼하지 않고 자유의지로 독신을 선택하는 쪽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자발적 비혼주의는 10~20%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나머지 대부분은 결혼하고 싶어도 못 하는 '비자발적 비혼주의자'라고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는 결혼도 편익과 비용을 따져 선택이 일어나는 거대한 '시장'으로 봤다. 결혼에서 사랑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뺀 삭막한 분석이기는 하나 우리 사회의 급격한 혼인율 하락을 설명하는 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해마다 30만건을 웃돌던 혼인이 지난 7년 내내 감소하면서 관련 통계도 뚝 떨어졌다. 결혼이라는 틀에 들어가 얻게 되는 편익에 비해 비용이나 부담이 현저히 커지니 혼인율도 내리막이고, 결혼 연령도 점점 늦어진다.
▶날로 악화되는 청년 실업, 살인적인 집값, 번 돈 대부분을 자녀 사교육에 올인해야 하는 부실한 공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이니 상당수 젊은이가 결혼이라는 인생의 선택 앞에서 점점 더 머뭇거리고 회피하게 된다. 결혼조차도 양극화가 벌어진다. 결국 '비자발적 비혼주의' 젊은이를 어떻게 줄이느냐가 우리 미래를 판가름 낼 것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19-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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