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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일 만에 문 닫은 코로나 선별진료소] [리더의 재난 메시지]

뚝섬 2024. 1. 2. 09:15

[1441일 만에 문 닫은 코로나 선별진료소] 

[리더의 재난 메시지] 

[어둠의 시대가 우리를 증명한다] 

 

 

 

1441일 만에 문 닫은 코로나 선별진료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동안 긴 줄이 늘어섰던 전국의 선별진료소 506곳이 지난해 12월 31일 일제히 문을 닫았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감함에 따라 선별진료소 운영을 종료하고, 확진자를 수용할 격리병상 376개도 모두 지정 해제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2020년 1월 20일부터 1441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운영됐던 선별진료소가 사라진다니 코로나19의 종식이 새삼 실감이 난다.

▷선별진료소는 확진자를 신속히 골라내 격리하고 치료하는 ‘K방역’의 최전선이었다. 거의 4년에 달하는 선별진료소 운영 기간 1억3100만 건의 유전자증폭(PCR) 검사가 이뤄졌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약 2.5회씩 검사를 한 셈이다. 주로 컨테이너에 설치됐던 선별진료소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며 검사를 받는 ‘드라이브 스루’, 공중전화 부스 같은 1인용 음압 부스에 의료진이 손만 집어넣어 검체를 채취하는 ‘워크 스루’ 등으로 진화했다. 대기와 소독 시간이 줄면서 검사 횟수가 최대 10배까지 늘어났다.

의료진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던 시기에도 빠른 검사가 가능했지만 지금껏 선별진료소가 차질없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의료진의 헌신 덕분이다. 의료진도 미지의 감염병이 두려웠다고 한다. 혹시 모를 감염 우려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두려움과 싸우면서도 레벨D 방호복을 입고 N95 마스크를 낀 의료진은 묵묵히 밀려드는 검사를 했다. 확진자가 폭증할 때는 끼니도 거르고 화장실도 못 가기 일쑤였다.

 

▷골목을 돌고 돌아 늘어선 행렬을 안내하던 공무원들은 여름에는 더위, 겨울에는 추위와 싸웠다. 휴일 없이 일하면서도 위험한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별진료소 근무자들이 버틸 수 있었던 건 시민들의 응원 덕분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빵과 커피 등 간식을 보내고 ‘힘내세요’ ‘감사해요’ 손 편지를 남기며 지친 그들을 위로했다.

▷방역당국은 지난해 6월부터 코로나19 위기 단계를 ‘경계’로 하향 조정하고 실내 마스크 착용과 확진자 격리 등을 자율에 맡겨 왔다. 현재 표본 감시로 집계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하루 평균 1000명에 못 미친다. 오미크론이 유행하던 2022년 3월 하루 최대 62만 명까지 확진자가 늘었던 것에 비하면 이제 독감처럼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 된 것이다. 변이를 거듭한 바이러스가 남아있긴 하지만 치명률은 미미하다. 최근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코로나19로부터 일상을 회복했다”고 응답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전례 없이 길었던 팬데믹…. 이젠 잘 견뎌냈다고, 잘 헤쳐왔다고 서로서로 등을 두드려줘도 될 것 같다.

 

-우경임 논설위원, 동아일보(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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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재난 메시지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윈스턴 처칠은 전쟁 공포에 떨던 국민 앞에서 열변을 토했다. "영국은 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께서 내려주신 모든 힘과 능력을 동원해 극악무도한 독재자에게 대항할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장가답게 처칠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로 정치권을 단합시키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 어떤 평론가들은 "이 연설이 없었더라면 영국은 독일의 속국이 됐을지도 모른다"고까지 한다.

▶전시(戰時) 상황에서 리더의 메시지는 평시보다 몇 배 더 파급력이 있다. 국가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지금 코로나 사태라는 초유의 상황에서도 전 세계 지도자들은 저마다 다른 스타일로 국민에게 '전시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그 성적표도 제각각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의 '비관론'에 가까운 메시지는 오히려 "최악 시나리오를 감추지 않고 전달해 신뢰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독일 인구 3분의 2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고, 현 상황서 정부가 모든 걸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런 '돌직구'로 현실적 대응에 나서도록 길을 제시해줬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 "우리는 전쟁 중"이라고 수차례 반복하며 시민들의 각성과 책임감을 강하게 촉구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평가도 나쁘지 않다. 그의 탁월한 연설 능력도 한몫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조만간 바이러스 사태가 종식될 것"이라며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다 엊그제 돌연 "팬데믹이라고 하기 전에 이미 나는 팬데믹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얼굴빛 하나 안 바꾸고 이런 말을 하니 그의 말대로 정말 '안정된 천재'인가 보다. 그의 널뛰기에 주식이 폭락하자 투자자들 사이에선 "트럼프가 재선 포기하고 (돈 벌려고) 하락장에 풀베팅한 거 아니냐"는 푸념도 나온다고 한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호들갑 떨지 말고 견디자"고 하다가 "영화관, 펍도 가지 말라"고 180도 바뀌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우리 정치 지도자의 메시지는 어땠을까. "정부를 믿고 집단 행사 계속하라" "중국은 운명 공동체" "중국의 어려움이 한국의 어려움" "마스크 써라" "안 써도 된다" '짜파구리 파안대소' 등이 떠오른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메시지도 있었겠지만, 국민들 염장을 지른 일이 워낙 뇌리에 깊이 박혀 상대적으로 묻힌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전으로 간다고 하는데, 나라를 바른 길로 이끄는 좋은 메시지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임민혁 논설위원, 조선일보(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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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시대가 우리를 증명한다 

 

현 집권세력 무능과 무책임… 온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어
우리가 버텨내는 건 시민의식·의료계 헌신 덕분
코로나19가 역설적 진실 웅변… 암흑의 시대를 격파하는 궁극적 힘은 시민에게서 나온다
 

 

코로나19가 유럽 대륙을 강타했다. 이탈리아에선 중환자들이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매일 수백명씩 사망한다. 확진자 폭증으로 의료 체계가 붕괴했다. G7 선진국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재앙이다. 프랑스·독일·영국·미국도 위태롭다. 일개 전염병이 문명 세계를 초토화하고 있다. 인류 전체 위기이자 거대한 자연의 복수가 아닐 수 없다. 어둠의 시대가 인간의 삶과 일상을 파괴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재난과의 싸움을 버텨낸다. 재난(disaster)은 '별(astro)이 없는(dis)' 상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게 재난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의 정책 실패가 부른 마스크 대란 속에서도 묵묵히 몇 시간 동안 줄을 선다. 성숙한 시민 의식이 암흑의 시대를 뚫고 별처럼 빛난다. 생필품 사재기 광풍이 몰아치는 유럽·미국과 차분한 한국 사회는 너무나 다르다. 코로나 사태라는 '재난 디스토피아'의 최대 피해자인 대구·경북 주민들의 절제가 돋보인다. 재난 디스토피아의 한가운데서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전국적으로 분출한다. 재난 디스토피아에서 역설적으로 '재난 유토피아'가 창조되는 기적의 순간이다.

재난 유토피아를 가능케 한 건 시민 의식과 의료인들의 헌신이다. 사명감으로 무장한 의료인들의 사투(死鬪)가 코로나 치명률을 크게 줄였다. 장시간 마스크 착용으로 생긴 얼굴 상처를 가린 붕대에도 맑게 웃는 간호사들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박정희 정부가 시작하고 김대중 정부가 완성한 전(全) 국민 의료보험제도와, 사스·메르스 사태와 싸우면서 닦은 방역 전문가들의 능력이 결정적이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마자 진단 키트 생산에 나선 우리 의료벤처기업의 순발력도 놀랍다. 코로나 전쟁을 우리가 감당해내는 건 성숙한 시민 의식과 의료계·민간기업이 축적한 시민사회의 역량 덕분이다. 한국 사회 전체가 합심해 쌓은 피와 땀의 힘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난 유토피아를 만드는 사회 시스템을 건설하는 데 기여하지 않았다.

대통령·청와대·복지부 장관 등 권력 최상층부의 위기 관리 능력 부재는 경악스러울 정도다. 대만·싱가포르·홍콩은 중국과 운명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사태 초기 단호한 억제 조치로 코로나 확산을 줄였다. 국가 리더십의 결단이 나라와 국민을 살렸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정략과 오판은 온 국민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었다. 정치권은 위기를 빌미로 이권만 탐낸다. 여야 위성 비례 정당이 정치를 아사리판으로 만들고 있다. 국민 생명과 국익을 저버린 정치 지도자들은 민주공화국의 배신자다.

관군이 망친 나라를 의병(義兵)이 구하는 게 우리 역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땐 철면피한 왕과 당쟁으로 서로를 죽인 정치인들이 나라를 국망(國亡)으로 몰았다. 그들에겐 국익은 빈말이고 자파(自派)의 권력 확장이 유일한 목표였다. 큰 공을 세운 김덕령·곽재우·정문부 같은 의병장을 선무공신(宣武功臣)에 기리기는커녕 당쟁 와중에 참살(慘殺)하기 일쑤였다. 코로나 전쟁에서도 문 대통령은 중대 오판과 정책 오류를 결코 시인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방역과 생활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과 시민들의 공(功)을 틈만 나면 자신의 몫으로 참칭(僭稱)한다. 참혹한 역사의 풍경이 반복된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사회 지도부는 극단적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데다 음험한 정치공학의 달인들이다. 국민을 권력 입맛에 따라 언제든지 선동과 동원이 가능한 졸(卒)로 여긴다. 그러나 민중은 왕정 때에도 용렬한 군주를 역성(易姓)혁명으로 바꿔치운 역사의 주체다. 민주공화국 시민에겐 선거야말로 민주적 역성혁명의 수단이다. 국정 운영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하인이 주인인 국민을 능멸(凌蔑)하면서 종으로 부리려 드는 난장판을 용인하면 나라의 앞날은 없다.

전염병과의 싸움은 의과학적 문제임과 동시에 중대 정치 문제다. 코로나19가 각국의 국정 능력과 협치를 시험한다. 혼용무도(昏庸無道·어둡고 어지러움)한 문재인 정권과 위대한 한국 시민은 더 이상 공명정대한 역사의 길을 동행하기 어렵다. 암흑의 시대를 격파하는 궁극의 힘은 평범한 시민에게서 온다. 한국사에서 국난을 뚫고 나간 압도적 주체는 가짜 지도부가 아니라 민초들이다. 한국인의 피와 땀과 눈물을 강요하는 코로나19가 역설적 진실을 웅변한다. 어둠의 시대가 오히려 우리를 증명한다. 바로 우리가 민주공화국의 미래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조선일보(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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