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정상외교의 정상화]
[키신저가 남긴 지혜를 기억하며]
[케네디와 포드도 '아메리카 퍼스트'였다]
[아메리카 vs 동아시아]
한중 정상외교의 정상화
[특파원 리포트]
새해 한국 외교의 급선무는 한중 정상외교의 정상화다. 한국의 일인자와 중국의 이인자가 자꾸 매칭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를 계기로 리창 중국 총리와 만났다. 정작 11월에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함께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이 불발됐다. 미·중, 중·일 정상회담은 열렸는데 한중 회담만 열리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일·중 정상회의에도 관례상 중국 총리가 참석하기 때문에 윤 대통령은 또다시 중국의 이인자와 마주 앉게 된다.
중국이 한중 정상외교에서 이인자를 내세우기로 마음먹었나 싶을 정도다. 실제로 2016년 사드 사태 이후 시진핑 대신 중국 총리가 한국 대통령을 만나는 일이 부쩍 늘었다. 2017년 11월 문재인 전 대통령은 마닐라에서 리커창 당시 총리를 만났고, 이듬해 5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서 또다시 리커창과 마주 앉았다. 문 전 대통령이 시진핑과 회담한 것은 직접 중국에 찾아갔던 2017년 12월과 2019년 12월, 그리고 2018년 5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파푸아뉴기니)와 2019년 6월 20국(G20) 정상회의(일본)에서였다. 중국 외교부는 문재인과 시진핑의 전화 통화에 대해서도 대부분이 한국 측의 요청이라고 명시했다. 대조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4년 동안 양자·다자회의 계기에 7번 시진핑과 회담했다.
시진핑의 방한은 무기한 미뤄지고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은 9년 반 전인 2014년 7월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6월 중국을 방문하고 약 1년 만에 성사됐던 방한이다. 그러나 이후 박근혜·문재인이 두 번씩 중국에 갔는데도 시진핑의 답방이 없었다. 우리 정부는 시진핑이 2022년 11월(발리 한중 정상회담)과 작년 9월(항저우 아시안게임 계기 시진핑과 한덕수 국무총리 회담)에 방한 검토 의사를 밝혔다고 했지만, 중국 측 발표문에선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시진핑의 외국 방문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중국의 ‘제로 코로나’가 해제됐는데도 시진핑은 러시아(3월), 남아프리카공화국(8월·브릭스 정상회의), 미국(11월·APEC), 베트남(12월) 4곳만 방문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한미 동맹 못지않게 한중 관계도 중요하다고 했다. 불편해진 양국 관계를 염두에 둔 말이다. 이런 관계를 관리하려면 우리 대통령이 중국의 일인자인 시진핑과 직접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중국 또한 경제 위기와 서방권의 압박이란 내우외환 속에 이웃 나라인 한국과의 관계 회복이 절실하다. 한중의 일인자가 국제 무대에서 부지런히 만나 분위기를 예열한 다음 시진핑이 방한하는 2024년을 기대한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조선일보(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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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가 남긴 지혜를 기억하며
1971년 중국을 찾은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저우언라이 총리와 식사하고 있다. 그의 방문은 1979년 미중 수교, 1980년대 중국의 개혁 개방 등으로 이어져 국제 정세의 틀을 완전히 바꿨다는 평을 얻고 있다. 동아일보DB
2023년 11월 29일(현지 시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타계했다. 깊은 학식과 예리한 시선으로 세상의 변화를 지켜본 미국의 걸출한 외교관 겸 학자가 전설 같은 삶을 마감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을 탈출해 미국에 정착했고, 학자에서 외교관으로 변신에 성공했으며, 고령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현실 정치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키신저의 100세 인생 자체가 감동적이다.
그는 평생 중국을 100여 차례 방문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중국 최고 지도자들과 직접 만나 교류한 매우 드문 서방 학자 겸 정치가다. 키신저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적대에서 완화로, 대립에서 협력으로 가는 과정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같은 지도자를 만났다. 이 핑퐁 외교를 통해 ‘작은 공’(탁구공)을 굴려 ‘큰 공’(지구)을 움직이는 감동을 만들어냈다.
또 그는 오랫동안 이어졌던 양국의 대치와 적대 관계를 해소시킨 쇄빙선이었다. 양국 관계가 정상화하고 깊은 협력 관계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이었다. 최근까지도 미중 관계의 안정과 상호 협력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25일 키신저는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역대 미국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중국’ 원칙을 미국이 견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섯 달 전에는 “미중 관계의 대립을 피하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전략적 압박을 건설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10년도 남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2011년 키신저는 ‘중국을 논하다’라는 책을 펴냈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鄧小平) 등 역대 중국 지도자와 만났던 경험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는 대대로 중국의 지도자들이 중국 인민의 이익을 도모하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추구하며,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애써왔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중국 굴기(崛起)’는 정상이며 중국이 강대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미중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될 필요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장 최근 펴낸 ‘세계 질서’라는 책에서는 중국 굴기는 새로운 일이 아니라 중국 문화의 흥망성쇠가 다시 새로운 역사적 주기에 들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이 반드시 질서 있고 개방적으로 세계 질서의 틀을 잡고 건설하는 데 지금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키신저는 미 정치 엘리트가 보편적 가치를 찬양하는 동시에 다른 지역의 역사, 문화 및 안보 이념의 국가별 특성을 중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로 다른 문화, 역사, 질서를 가진 각 지역과 국가가 서로 존중하면서 개방과 포용을 통해 공동의 이익과 질서, 가치관을 수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미국이 유아독존적인 가치관과 오만함을 내려놓고 인류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키신저가 남긴 글과 사상을 되새기며 우리는 미중 관계의 미래에 대한 답을 주려 했던 키신저의 마음 또한 기억해야 한다. 미국인은 외교관 겸 정치가인 키신저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내린다. 키신저가 종종 고집스럽고 독선적이어서 한동안 권력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키신저는 더 아름답고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열망과 집착을 가진 대학자였음이 분명하다.
키신저는 미중 관계를 안정시키고 심화 발전시키기 위해 오래도록 중국에 관심을 갖고 지지해 왔다. 고령에도 중국을 수차례 방문했다. 생의 말년에도 중국은 그의 인생과 사상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며 중국과의 우정을 강조했다.
이런 그의 말과 행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미중 관계를 상호존중, 평화공존, 협력과 윈윈(win-win)의 방향으로 밀고 나가게 해주는 사상적 빛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타계 직전 양국 모두에 “미중 관계가 전면적인 대결과 전쟁 발발의 입구까지 가는 데 이제 10년도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는 사실이다. 두 나라 모두 그의 경고를 엄숙하고 진지하게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주펑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장, 동아일보(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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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와 포드도 '아메리카 퍼스트'였다
1940년 '유럽 전쟁' 개입 않겠다며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 결성
오바마는 '뒤에서 리드한다', 트럼프는 '뒤에서 빠지겠다' 차이뿐
자유·민주 가치 공유 없는 미국 일방주의, 중국보다 매력 있지 않아
습관적인 사실 왜곡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엔 종종 수긍할 만한 대목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는 영국·독일·프랑스 등이 시리아에서 미군에 붙잡힌 자국 출신 이슬람 테러 조직 IS 대원 2000여 명의 본국 송환에 난색을 표하자 "쿠바 관타나모 미군 수용소에 50년간 감금하고 수십억달러를 쓰라고? 노! 당신네 국경에 떨어뜨릴 테니까, 다시 잡아들이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조롱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테러 집단에 대해서도 "우리가 7000마일 떨어진 그들과 싸우는 동안 바로 이웃인 인도와 파키스탄은 거의 아무것도 안 했다"고 비판했다. 미국에만 부담을 지우는 국제 질서 유지에선 발을 빼겠다는 것이다.
사실 해외 분쟁에 절대로 휩쓸리지 말라는 것은 미국을 세운 국부(國父)들의 유지(遺志)이기도 했다. 조지 워싱턴은 고별사에서 "우리의 진정한 정책은 세계 어느 곳과도 영구적 동맹을 맺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존 퀸시 애덤스 6대 대통령은 "해외 괴물을 부수러 나간다면 미국은 세계의 독재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00년 전 당시 태동한 국제연맹 가입을 놓고도 미국 사회는 크게 분열됐다. 고립주의자들은 "무질서한 세계에서 미국은 발을 빼야 하며 일본·중국·인도인 노동력으로부터 미국을 지키자"고 주장했다. 국제주의자들은 "고립주의 시대는 지나갔는데도 미국이 외부와 절연(絶緣)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망상"이라며 "과수원의 과실(果實)을 지키려면 동맹을 통해 울타리를 크게 쳐야 한다"고 맞섰다. 트럼프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아메리카 퍼스트'란 표현도 이 두 대전(大戰) 사이에 나왔다.
◇소련이 헝가리혁명·프라하의 봄·폴란드 자유 노조 짓밟아도 미국 개입 안 해
유럽이 2차 대전에 휩싸인 1940년 '유럽의 전쟁'에 끼어들어선 안 된다는 전국 조직인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가 결성됐다. 이 위원회 멤버에는 뒤에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민주)와 제럴드 포드(공화)도 있었다. 이 조직은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해체됐다.
이후 역대 미 행정부는 글로벌 전쟁의 참화를 막고 해외 위협으로부터 미국인의 삶을 지키기 위해 군국주의 독일과 일본의 재부상을 막고 중동의 석유를 지키는 국제 질서 구축에 나섰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로버트 케이건은 "미국은 어떻게 하면 글로벌 전쟁을 막을 것이냐는 냉정한 자기 이익에서 행동했고, 이렇게 구축한 질서는 미국에 100배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냉전 시절 미국은 소련이 헝가리 혁명(1956년)과 프라하의 봄(1968년),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1980년)을 짓밟아도 개입하지 않았다. 이 나라들은 미국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소련 영향권에 속한 나라들이었다.
'미국인의 삶 보호'라는 해외 개입의 원칙이 깨진 것은 1991년 냉전(冷戰)이 끝나 미국 중심의 단극(單極) 체제가 되고 아들 부시 대통령 때 9·11 테러로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하면서였다. '미국 예외주의(exceptionalism)'라는 사명감에 젖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들이 미국의 뜻대로 전 세계를 바꾸기 위해 급격히 군사력 사용을 확대했다. 동시에 미 유권자들의 해외 개입 피로감도 높아갔다. "뒤에서 리드한다(leading from behind)"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독트린은 이 맥락에서 나왔다. 그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로 수많은 자국민을 살해했을 때에도 크루즈 미사일 한 방 쏘지 않았다. 미 대선이 있었던 2016년 5월 퓨리서치 여론조사에선 지지 정당에 상관없이 미국 유권자들의 70%가 미국의 해외 개입 축소를 원했다. 트럼프의 승리는 이런 분위기의 산물(産物)이었다. 작년 7월 트럼프는 "인구 60만명의 나토(NATO) 회원국인 몬테네그로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았다고, 왜 (나토 조약에 따라) 우리 아들이 그 나라를 지키러 가야 하느냐"는 뉴스 앵커의 질문에 "나도 같은 생각"이라며 "그들이 러시아에 호전적이 되면 우리가 3차 대전에 뛰어들게 된다니"라고 맞장구를 쳤다. 미 애틀랜틱 몬슬리는 파리 기후협약 불참이든 이란 핵 합의 파기든, TPP 거부든 밑바탕엔 "젠장, 우리는 미국이잖아"란 생각이 담겼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그래도 된다'는 예외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다.
◇"세계는 엉망이어도 미국은 안전할 수 있다"는 환상
오랜 동맹국과도 철저히 득실(得失)을 따져 거래하고 일방적으로 '뒤에서 빠지겠다(leaving from behind)'는 지금의 미 외교 노선은 트럼프 이후에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미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엔 몇 가지 치명적 오류가 있다. 뉴욕의 외교협의회(CFR) 회장인 리처드 하스는 "현재 미국 국방비는 외교, 정보수집, 핵무기 유지비를 포함해 8000억달러이지만, GDP 대비 비중은 냉전 때(근 10%)에 훨씬 못 미치는 3~4%이며, 이를 통해 막은 실현되지 않은 재앙은 측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또 사이버 공격이나 교묘한 선거 개입,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엔 거리나 국경이 없다.
미국 외교 노선이 좀 더 현실적이 되더라도, 그 근본이 '일방적' '동맹국 착취'라면 나라들의 산법(算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해인 남중국해를 제멋대로 군사화하고는 "중국은 큰 나라이고, 당신들은 작은 나라"(2010년 양제츠 당시 중국 외교부장)라는 중국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가 공유되지 않는 세계에서 미국은 중국보다 더 매력적이지도 않다. "세계는 엉망이어도, 미국은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케이건은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관리하지 않으면 잡초와 덩굴이 압도해 버리는 정원과 같다"고 했다. 2차 대전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왜 그걸 지키려고 죽겠느냐"고 했던, 자치도시 단치히(그단스크)에 대한 독일의 함포 사격에서 시작했다.
-이철민 선임기자, 조선일보(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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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vs 동아시아
中華 떠받드는 유교 질서… 주권국 인정하는 서구 체제
우리 선택은 독립·자주여야… 비위 맞추기 급급해선 안 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불과 반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지만 횟수로 계산할 때 거의 매달 한 번꼴로 한미, 한중 정상 회담을 열었다. 정상외교의 성과를 자화자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미국,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의 운명이 대폭 개선된 것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더 어려운 방향으로 꼬이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욱 솔직한 분석일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의 국가 대전략이 정립되지 못했고 외교력도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미국에는 미국이 좋아하는 말을 함으로써, 그리고 난 후 중국에는 중국이 좋아하는 말을 함으로써 두 강대국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꼬이게 된 더욱 심각한 이유는 북한 핵문제 및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인식 및 접근 방법이 전혀 다르다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항해술을 통해 전 지구를 하나의 단위로 작동할 수 있게 한 16세기 초엽 이래, 세계의 패권은 포르투갈-네덜란드-스페인-영국-미국이 차례로 차지했다. 지난 500년 동안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미국 등 패권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 도전자들도 있었고 프랑스, 독일, 그리고 소련처럼 패권 도전에 실패한 제국들도 있었다. 누가 패권을 장악할 것이냐에 대한 결정을 위해 패권국과 도전국 사이에는 큰 전쟁들이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패권전쟁이라고 불리는 이들 전쟁에는 나폴레옹전쟁, 1·2차 세계대전, 1945년 이후의 냉전 등이 포함된다. 과거의 모든 패권 전쟁이 서양 국가들 사이에서 발발했던 것과는 달리 작금의 패권 경쟁은 동양과 서양의 강대국 사이에서 야기되는 예외적이며 특이한 것이다. 과거 패권경쟁은 적어도 생각은 같은 나라 간의 다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서대청에서 열린 MOU 서명식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양 사람들은 인간 혹은 국가가 상호 평등하게 대접받을 때 그들 사이에 평화와 질서가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중국 사람들은 인간 혹은 국가들은 서로 평등할 수 없으며 각자 사회적인 위계(位階) 속에서 규정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행할 때 평화와 질서가 가능하다고 본다.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형과 동생, 왕과 신하가 평등할 수 없듯이 국제관계도 힘에 따라 위계적으로 구성되어야 평화와 질서가 가능하다고 본다.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사대(事大)하고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예와 모범으로 다스릴 때, 즉 자소(字小) 할 때, 국제정치에 평화와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국가들이 서로 대등한 주권을 가진 국제체제가 아니라 조공(朝貢), 책봉(冊封) 제도를 통해 위아래가 분명한 국제제체를 건설하고자 했다. 물론 인간 세상의 최고봉인 천자(天子)가 다스리는 나라이자, 가운데서 빛나는[中華] 나라가 중국이어야 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은 누가 일등이냐를 넘어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고 다스려져야 하느냐를 놓고 다투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입장에서 보기에 '북한 핵문제'는 패권 경쟁의 와중에 불거진 작은 문제일 수 있고 대한민국은 자기편으로 만들어 두는 게 유리한 비교적 큰 졸(卒)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중국을 형님으로 모셔야 하는 위계질서의 세상, 즉 유교적 국제질서를 택할 것이냐 혹은 비록 실제적 힘은 다를지라도 상대방을 서로 독립 주권 국가로 인정해 주는 서구 국제체제 속에서 살 것을 택할 것이냐를 강요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 우리의 선조국가 조선은 중국의 영향력 아래 굽신거리며 사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그 대가로 책봉을 받은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조선 국왕의 권위는 조선의 신민들로부터가 아니라 중국 황제의 책봉으로부터 나왔으며 조선의 왕은 당연히 중국 황제의 아랫것이었다. 혹시 중국은 지금 대한민국을 과거의 조선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나라를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실체로 인정해주는 국제질서일 것이다. 김정은의 교시 중 '중국은 천년 숙적(宿敵), 일본은 백 년 숙적'이라는 내용이 있었으니 북한 역시 중국적 국제질서 관념을 결연히 거부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조선일보(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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