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장사' 비난이 억울하다고?]
[은행들, 그동안 국민에게 진 신세 이번에 갚아라]
[맞춤양복 선물받은 與의원]
'이자 장사' 비난이 억울하다고?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은행원들은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최근 시중은행의 실적 잔치에 대한 기사를 쓰자, 은행원들에게 항의 메일이 꽤 많이 왔다. 그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고객을 상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아냐” “이른 퇴직에 대한 부담은 느껴봤냐”고 했다. 손쉽게 ‘이자 장사’로 돈을 번다는 비판에 화가 났던 모양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16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냈다. 기존 최대였던 2022년(15조4904억원)보다 9000억원가량 늘어나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금융사가 이토록 많은 순익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엔 묵묵히 일한 평범한 은행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자 주변에도 가족, 친구 등 은행원이 많다. 메일의 주장처럼, 이들도 퇴근 후 먹는 치킨에 행복해지고, 마음속에 사표 하나씩은 고이 품고 사는 평범한 직장인들이다. 업무 고충과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다. 영업점에서 친절하게 맞아주는 은행원에게 도움을 받은 날도 적지 않다. 그러니 뿔난 은행원들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런 금융사의 실적은 평범한 은행원들 덕분만은 아니다. 큰 혁신 덕분도 아니다. 은행업엔 정부 인허가라는 높은 문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평화은행 이후 신규 시중은행 인가가 오랫동안 없었지만, 지난해 iM뱅크(옛 DGB대구은행)가 시중은행으로 전환됐다. 무려 32년 만이다.
이런 과점 체제와 내수 시장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은행은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인 예대마진으로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삼성처럼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뚫고 살아남을 필요도, 벤처기업처럼 혁신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
실제로 금융지주의 실적 개선을 이끈 것은 이자 이익이었다. 금융그룹의 이자 이익은 카드, 보험사 등 비은행 계열사도 기여하지만, 대부분은 핵심 계열사인 은행에서 나온다. 지난해 4대 은행의 이자 이익은 약 34조3600억원에 달한다.
코로나 시기 저금리에 대출을 받은 고객들이 많았는데, 2022년부터 전 세계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서 은행은 꽃길을 걷게 됐다. 대출 이자도 덩달아 올라 은행 입장에선 고객에게 받는 이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은행 예금 금리는 내려갔지만, 은행의 대출 금리는 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 관리 등을 이유로 내리는 걸 막으면서 예대마진이 커졌다.
은행원 개개인은 존중받아 마땅한 직장인이지만, 그들이 속한 산업의 구조적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얘기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작년 10월 “삼성전자가 엄청난 이익을 내면 칭찬하지만, 은행이 이익을 내면 비판받는다. 그 차이가 뭘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은 ‘이자 장사’라는 비판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평범하지 않은 산업에서 비범한 혁신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한예나 기자, 조선일보(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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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그동안 국민에게 진 신세 이번에 갚아라
은행은 시장경제 시스템 중추… 과거 위기 때마다 혈세로 구제
신의 직장 돼 '이익 사유화' 몰두, 코로나 취약계층 회생 도와야
200여 년 전 원조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 간에 금리(金利) 논쟁이 붙었다. 애덤 스미스는 대출금리를 연 5% 이하로 묶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높은 금리를 허용하면 방탕하고 무모한 사업가들이 대출을 독점해 건실한 사람들의 대출 기회를 빼앗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반면 제러미 벤담은 "스미스 주장대로 건실한 사람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면 전통적 구식(舊式) 사업자들이 대출 특권을 독점하게 되고, 리스크를 안고 새 사업에 도전하는 혁신 사업가들은 돈을 빌릴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반박했다. 두 거장의 논쟁은 고리대금업에서 출발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의 심장으로 진화한 은행의 기능과 존재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한다.
금융 기법 발달에 힘입어 현대 은행들은 금리·대출 기간 조정, 보증을 통한 신용 보강 등의 방법을 통해 구식 사업자와 혁신 사업가 모두에게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이처럼 대출을 통한 신용 창출 기능을 가진 은행을 아무나 경영하게 할 순 없다. 정부가 엄격한 심사를 거쳐 면허를 주고, 사후에도 철저하게 감독한다. 은행들은 국가로부터 배타적 사업권을 보장받는 대신 수익성과 공공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도덕적 의무를 진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최근 20여 년 사이에 크게 두 차례 국민과 국가에 신세를 졌다.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다. 외환 위기 땐 무분별한 기업 대출로 대다수 은행이 부도 위기에 몰려 당시 한 해 GDP(국내총생산)의 13%에 해당하는 64조원의 공적 자금을 수혈받았다. 이른바 '손실의 사회화'로 기사회생한 셈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땐 은행들이 달러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정부가 한·미 통화스와프, 450억달러 외환 공급, 1000억달러 대외 채무 지급 보증 등 대규모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해 구제해주었다.
외환 위기 이후 은행 통폐합으로 몸집이 커진 은행들은 과점(寡占)체제하에서 공격적인 가계 대출로 덩치를 더 키우며 막대한 이익을 올려왔다. 은행은 억대 연봉과 최고의 복지를 제공하는 신의 직장이 됐고, 조기 퇴직자에게 3~4년치 연봉을 안겨주는 명퇴금 잔치를 해마다 벌이고 있다. '이익의 사유화'다.
은행들은 고비용·고복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연 3조~4조원대 이익을 자동으로 안겨주는 예대마진으로도 부족해 고위험 투자 상품을 마구 팔아 천문학적 수수료 수입을 거둬들이고 있다. 고객들에게 고수익을 안겨주고 있다면 수수료 수입도 정당화되겠지만, 부족한 실력 탓에 원금까지 날리는 사태가 다반사다. 고객에게 수조원대 손실을 끼친 금리 연계 파생 상품(DLF) 판매,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코로나 사태로 기업과 가계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이런 사정은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선진국 은행들은 배당과 임직원 보너스 지급을 중단하고 그 재원을 기업과 가계 금융 지원 자금으로 돌리고 있다. 우리 은행들에선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파산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에게 급전 1000만원을 연 1.5% 이율로 빌려주는 소상공인 긴급경영지원자금이 조기에 동나자, 정부는 은행을 동원해 2차 소상공인 지원 자금 10조원을 대출해주도록 할 계획이다. 그런데 대출금리가 보증료까지 더하면 4%대까지 올라가 "이 판국에 이자놀이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은행들이 원가에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1%대 금리도 불가능하지 않을 텐데, 은행들은 조금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행태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에게 많은 신세를 져온 은행들이 이번엔 상생과 연대의 정신으로 '이익의 사회화'를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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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양복 선물받은 與의원
1조6000억원대 피해를 끼친 사모펀드 라임자산운용의 고객 투자금을 쌈짓돈처럼 쓰다 구속된 김봉현(46)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지방 출신이다. 지방 K대 법학과를 나왔다는 말도 있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허위 학력일 거라고 말한다.
김씨는 지연(地緣)을 이용했다. 룸살롱에서 주가조작 세력과 작전 회의를 할 때도 고향을 따지고 동향 출신을 중심으로 뭉쳤다. 고향 친구인 김모(46·구속)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뇌물을 주고 금감원의 라임 검사 계획서도 빼돌렸다.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는 김씨가 2016년 동향 출신의 전직 지역 언론사 사장과 함께 동향 출신 민주당 의원을 찾아간 것도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씨는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출신으로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해당 의원에게 재단사를 보내 신체 사이즈를 측정하고 고가의 맞춤 양복을 선물했다. 그 의원은 잘 알지도 못한다는 김씨에게 덥석 맞춤 양복을 받고는 언론에 "당선 축하 선물이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대가성은 없었다"고 했다. '별장 성 접대' 의혹을 받은 김학의 전 차관도 대포폰 이용 요금부터 기름값까지 주변에서 받아썼지만 "대가성은 없었다"는 논리로 1심에서 무죄를 받아냈다. 해당 의원도 그 정도 법적 허점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관련 기사에는 "드러난 건 양복이지만 고작 양복뿐이겠느냐" "대가 없이 왜 선물을 하나. 김씨는 자선 사업가인가" 같은 댓글이 달렸다.
우리나라에서 초면에 고가의 맞춤 양복을 선물받는 직종은 얼마나될까. 또 이를 무턱대고 받는 공직자는 얼마나될까. '맞춤 양복 선물'이 갖는 사회적 함의는 자명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맞춤 양복 다섯 벌과 코트를 받고 "대가성은 없었다"고 했지만 검찰은 이를 뇌물죄에 포함해 2심에서 일부 유죄가 선고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씨 측은 "최성해 동양대 전 총장이 조 전 장관의 청와대 민정수석 취임 축하 선물로 맞춤 양복을 보내려 했다"며 '선물 시도' 사실까지 법정에서 공격 소재로 사용했다.
김씨로부터 로비 의혹을 받은 한 친노(親盧) 정치인은 "김씨로부터 1원 한 푼 받은 적 없다"고 했지만, 김씨 체포 뒤 언론에 김씨와 주식 등 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룸살롱에서 같이 어울린 사진도 나왔다. 현재까지 일부 드러난 수사 결과만 보면, 김씨는 횡령한 돈으로 상품권 5억원어치를 샀다. 애초 남의 돈으로 산 상품권이니 이를 어떻게 썼을지는 쉽게 짐작이 된다. 김씨가 또 다른 정·관계 인사에 대해 어느 정도 로비를 했는지, 이를 검찰에서 얼마나 진술할지는 수사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로비의 대가성 여부도 접대 당사자가 "있다" "없다" 할 게 아니라 사법기관이 판단할 것이다.
-박국희 사회부 기자, 조선일보(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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