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글씨란 기교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나를 버린 사람의 글씨]
[안중근 유묵 고국 품으로, 최고가 19억5000만원 낙찰]
[현충문의 '안중근체' 유감]
최고의 글씨란 기교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나를 버린 사람의 글씨
고서화와 50년 함께한 김영복 문우서림 대표
명작 80점 엄선한 '옛것에 혹하다' 펴내
안중근, ‘세심대’. 1910년. 붓이 아닌 칼로 내리그은 것 같이 서늘한 기운에 압도된다. 개인 소장. /돌베개
김영복(71) 문우서림 대표는 2006년 4월 2일을 잊지 못한다. 서울 인사동에서 잔뼈 굵은 그가 KBS ‘TV쇼 진품명품’ 감정위원으로 출연한 지 1년쯤 됐을 때다.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 실물이 이날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 갔을 때 아내 홍씨가 보내온 치마를 잘라 두 아들과 손자에게 주는 당부를 적은 서첩이다.
“의뢰인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유물인지 모르고 스튜디오에 도착했습니다. 소장 내력도 놀라웠지요. 2년 전 파지를 수집하는 할머니의 수레에 있던 서첩을 의뢰인이 경기도 수원 공사장 파지와 바꿨다는 겁니다. 이날 ‘하피첩’ 감정가를 1억원으로 평가했더니, 의뢰인이 너무 놀라서 운전도 제대로 못 했다고 해요.” 소장자는 이후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작품을 시장에 내놓았고, 지금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 '하피첩' 일부. 1810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돌베개
‘인사동 터줏대감’ 김영복 대표가 고서화와 함께한 50년을 돌아보는 첫 책 ‘옛것에 혹하다’를 펴냈다. 1975년 고서점 통문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걸어다니는 고미술 사전’으로 통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부딪치고 눈과 귀로 익힌 고서화 이야기가 진득하게 펼쳐진다. 표암 강세황, 진재 김윤겸의 서화 등 ‘구로도무끼’(볼수록 매력적인 작품을 뜻하는 골동 상인들의 은어)부터 “우리 역사상 최고의 예술가”라 칭하는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만해 한용운과 안중근 글씨까지 명작 80점을 엄선해 소개한다.
소문난 추사 마니아인 그도 가짜에 속아 산 일이 있었다. “월급 5만원 받던 시절, 6개월을 모아 가불받고 주변에서 꾸고 해서 추사 글씨를 샀어요.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하늘을 나는 것 같았지요.” 며칠 후 인사동 식당에 대가들이 모여 있다길래 의기양양 추사 글씨를 꺼냈더니 그들 표정이 묘했다. 가짜를 샀다는 걸 알고 분통해한 그는 이후 추사 글씨라면 눈에 불을 켜고 뜯어보고 연구했다.
진재 김윤겸, '농수정'. 18세기. 개인 소장. /돌베개
“골동을 사려면 우선 ‘눈 밝은’ 고수를 많이 알아야 해요. 첫 단계부터 너무 비싼 걸 사면 안 됩니다. 한두 번 잘못 사면 상처가 오래가거든요. 좋은 수장가가 그래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고미술품 처음 수집하는 사람에게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 먼저 사람에게 배워라. 둘째, 공부를 시작해라. 셋째, 작품 그 자체를 믿어라. 이걸 반복하다 보면 실수를 점점 덜 하게 돼요.”
추사가 쓴 '계산무진'. 165.5×62.5㎝. 우에서 좌로 서서히 올라가다 뚝 떨어지는 리듬, 비우고 채우는 공간 경영이 돋보인다. /간송미술관
그는 “추사 김정희는 몇 마디 짧은 문장으로 요약할 수 없는 대학자이자 예술가”라며 대표적인 글씨로 ‘계산무진(谿山無盡)’을 꼽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서서히 올라가다가 뚝 떨어지는 리듬, 비우고 채우는 공간 경영이 돋보인다”며 “글자의 공간 구성에 한 치의 틈이 없다”고 했다.
서울 인사동 부남빌딩 문우서림에서 만난 김영복 대표. 고서화와 함께한 50년을 돌아보는 첫 책을 펴냈다. /김영복 대표는 "지금은 미술품을 구입할 때, 아무리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다 할지라도 남의 말은 참고만 할 뿐 마지막 결정은 스스로 한다"며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때가 미술품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때"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제가 생각하는 잘 쓴 글씨는 유명한 서예인이 쓴 글씨죠. 좋은 글씨는 부모와 스승의 글씨, 내가 존경하는 분의 글씨 같은 것이고요. 그보다 더 좋은 글씨, 가장 좋은 글씨는 남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살다 간 분들의 글씨입니다. 그런 면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최고의 기술을 지닌 서예가도 따라가기 어려운, 좋은 글씨의 표상입니다.”
-허윤희 기자, 조선일보(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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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유묵 고국 품으로, 최고가 19억5000만원 낙찰
서울옥션 19일 경매 결과
추정가 크게 넘어 역대 최고가
안중근, ‘용호지웅세기작인묘지태(龍乕之雄勢豈作蚓猫之熊)’, 해석하면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모습이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의 모습에 비하겠는가’(1910). 34×135cm. /서울옥션
1910년 3월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쓴 유묵(遺墨)이 국내 경매에서 19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안 의사 유묵 중 최고가 기록이다.
19일 오후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제176회 미술품 경매에서 안 의사가 쓴 유묵 ‘용호지웅세 기작인묘지태(龍虎之雄勢 豈作蚓猫之態)’가 추정가 5억~10억원을 크게 뛰어넘는 높은 가격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전까지 안 의사 유묵 중 최고가 작품은 2018년 7억5000만원에 낙찰된 묵서 ‘승피백운지우제향의(乘彼白雲至于帝鄕矣)’였다.
안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은 1910년 2월 14일부터 3월 26일 순국하기 전까지 감옥에서 많은 글씨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사의 죽음이 확정된 뒤 일본인 관리와 간수들이 앞다퉈 큰 글씨를 요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개인 소장자가 갖고 있던 이번 유묵은 그간 국내 학계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 주목받았다.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형세를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의 모습에 비견하겠는가”라는 내용으로, “경술년 삼월 뤼순 감옥에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이 쓰다”라는 문장과 함께 손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처음 소장하게 됐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개인 소장자가 낙찰을 받으면서 113년 만에 고국 품에 안기게 됐다.
-허윤희 기자, 조선일보(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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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문의 '안중근체' 유감
최근 교체된 대전현충원 현판… 안중근 의사 글씨체라더니 자음·모음 조합해 만든 창조물
몇 년 전 경주 옥산서원에 취재하러 갔다가 강당 입구에서 흠칫 멈춰 섰다. 건물 처마에 걸린 현판 글씨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옥산서원' 네 글자가 강한 골기(骨氣)를 내뿜으며 건물 한 칸을 꽉 채우고 있었다. 1839년 화재로 건물이 전소하자 중건하면서 임금이 다시 내린 현판이다. 53세의 추사는 칼칼한 먹으로 각각 80cm 종이 네 장에 한 글자씩 힘 있게 써 내려갔다.
이 원본 글씨가 지금 국립전주박물관 '서원, 어진 이를 높이고 선비를 기르다' 특별전에 나와 있다. 조선시대 사립학교인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전시다. 옥산서원뿐 아니라 소수서원, 도산서원 등 당대 명필이 쓴 현판들이 고루 전시돼 웅장한 대자(大字) 필획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명종이 친필로 써서 내린 소수서원 현판은 단아하지만 기품이 있고, 석봉 한호가 쓴 도산서원 현판 필치는 날카로우면서도 속도감이 넘친다.
현판은 곧 건물의 얼굴이다. 궁궐, 사찰, 누각 건물에는 거의 예외 없이 현판이 걸려 있다. 임금을 비롯해 당대 대표 지식인이나 명필이 심혈을 기울여 썼기 때문에, 현판에는 그 시대의 정신과 가치, 예술의 정수가 오롯이 담겼다. 광화문 현판 글씨를 놓고 지금까지 각종 주장이 쏟아지는 것도, '경복궁 정문의 얼굴'이라는 상징성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국립대전현충원에 새로 걸린 ‘안중근체’ 현충문 현판. /국가보훈처
그런데 최근 눈을 의심하게 하는 현판 하나가 새로 걸렸다. 지난 5월 29일 국립대전현충원에 걸린 '현충문' 현판이다. 국가보훈처는 1985년 대전현충원 준공을 기념해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을 교체하면서, 새 현판은 안중근체로 바꿨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이곳에서 열린 제65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국립대전현충원 현판을 안중근 의사 글씨체로 교체하게 돼 매우 뜻깊다"며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뜻이 모든 애국 영령과 함께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도대체 '안중근체'가 무엇인가. 지난해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기념해 안중근의사기념관과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서체라고 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따르면, 안 의사가 쓴 '장부가(丈夫歌)'의 한글 필체에서 자소를 발췌해 개발했다. '장부가'는 안 의사가 의거 사흘 전 거사에 대한 열망을 담아 지은 것으로, 친필 원본은 국내에 없다. 기념관 관계자는 "일본 검찰이 안 의사를 취조하면서 A3 원고지를 주며 '장부가' 내용을 적게 했고, 안 의사가 왼쪽 면엔 한글, 오른쪽 면엔 한문으로 적었다"며 "우리가 갖고 있는 건 원본을 찍은 사진 자료"라고 했다. 이 사진에서 한글 글씨를 추출해 안중근체를 개발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장부가'에 적힌 한글은 170여 자(字)에 불과하다. 대표 서체로 개발하기엔 1차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고, 다른 한문(漢文) 유묵에서 뿜어나오는 박력과 기개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미술사가 황정수씨는 "종이 한 장에 쓴 몇 글자가 남아있다고 대표 서체를 만든 것도 무모하지만, 더 심각한 건 그렇게 개발한 작은 손글씨를 전문가 자문 한번 없이 현판에 걸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현판에는 큰 글씨를 따로 쓰는 것이 원칙인데 기본 궁합도 맞지 않는 글자를 조합해 기괴한 현판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안 의사가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오늘날 군인 정신의 귀감이 되는 위인이기 때문에 안 의사의 글씨를 담아 안중근 정신을 기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글쎄, 자음·모음을 각각 떼서 조합한 '현충문' 석 자에서 어떤 생동감이나 기운이 느껴진다는 건지, 아무리 뜯어봐도 모르겠다.
-허윤희 문화부 차장, 조선일보(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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