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삶이 한계에 다다를 때 묻는다… ‘품위 있는 죽음’이란?] ....

뚝섬 2024. 2. 24. 08:28

[삶이 한계에 다다를 때 묻는다… ‘품위 있는 죽음’이란?] 

[“내 삶 내가 마무리해야 품격있는 죽음… 유언장 쓰기 널리 확산되길”]

 

 

 

삶이 한계에 다다를 때 묻는다… ‘품위 있는 죽음’이란?

 

초고령사회서 커지는 안락사 허용 논란

 

이달 초 개봉한 ‘소풍’은 김영옥·나문희·박근형 등 노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저예산 영화로, 존엄사에 대한 질문을 정면으로 제기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노인들은 많이 공감할 것이다. 존엄사가 빨리 허용됐으면 한다.”

 

87세 배우 김영옥씨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 ‘소풍’이 존엄사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한 말이다. 그는 “100세 시대라지만 건강을 잃고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을 때의 불행은 대처할 길이 없다”고 했다.

 

‘소풍’은 인생의 한계에 몰린 노인들의 마지막 선택을 그렸다. 관객들은 “가슴이 먹먹해진다” “펑펑 울었다”면서도 “부모님과 함께 보기엔 무겁고 불편한 내용”이라고 한다.

 

품위 있는 죽음, 웰다잉(well-dying)이란 이름의 당의정. 존엄사 또는 안락사를 둘러싼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안락사는 불치병 등에 걸려 치료 및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때 직간접적 방법으로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의료 기술 발달로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났지만, 건강과 젊음이 그에 비례해 연장되진 않았다. 그런 때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고 스스로 결말을 선택하는 게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란 인식이 커지고 있다.

 

이달 초 93세의 드리스 판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와 외헤니 여사 부부의 동반 안락사 소식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자살을 금기시하는 가톨릭 신자였는데도 “너무 아팠다. 서로가 없이는 살 수 없다”며 동시에 떠났다.

 

지난 2월 5일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한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와 부인 외제니 여사의 생전 모습. /텔레그래프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네덜란드와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미국 일부 주(州) 등 손에 꼽는다. 이게 최신 글로벌 트렌드처럼 우리 사회를 파고들고 있다. 외국인에게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에서 마지막을 맞겠다며 관련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은 300여 명. 이미 10여 명이 스위스로 날아가 생을 마감했다.

 

우리나라는 내년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며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유례없는 저출산·고령화 속도와 맞물려 안락사에 관한 사회적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2000년대까지도 안락사는커녕,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한 연명 의료 중단조차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간주됐다. 2009년 세브란스병원의 식물인간 환자에게서 가족과 의료진이 인공호흡기를 뗀 일명 ‘김 할머니 사건’은 격렬한 논란을 낳았지만 결국 대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국회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되기까지 또 오랜 진통을 겪었다.

 

지난 2022년 서울대병원이 발표한 안락사 찬반 국민 여론조사. 당시 찬성 여론은 76%였는데, 이 비율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조선일보DB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발효되고 만 6년이 지난 현재, 전국 200만여 명이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에 서명했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만 허용된 연명 의료 중단 대상을 확대하라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미리 연명 의료 의향서를 작성해 두지 않았거나 동의할 가족이 없는 1인 가구와 무연고자는 뜻대로 죽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마저 나오는 지경이다.

 

더 적극적으로 생명을 끊는 안락사에 대한 여론도 확대되고 있다. 2022년 서울대병원 조사에서 국민 76%가 안락사 허용에 찬성했다. 같은 해 국회에선 조력 존엄사, 즉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연명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리스어(euthanasia)로 ‘아름다운 죽음’을 뜻하는 안락사. 그러나 안락사 허용은 생명 경시 풍조를 확산시키고 상속·보험 사기 등 범죄에 악용될 위험, 불치병에 대한 오진 가능성 등 여러 부작용을 안고 있다. 나이에 따른 차별이 적고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서구 선진국의 제도가 이 땅엔 다르게 이식될 수 있다. ‘노인(혹은 장애인)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많고 자식을 위한 부모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문화에서, 안락사는 가족과 사회가 노인의 등을 떠미는 ‘현대판 고려장’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달 초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랜75'의 한 장면. 초고령사회를 맞은 일본이 75세 이상 노인의 안락사를 국가에서 지원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플랜75

 

‘소풍’과 나란히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랜 75′는 75세를 넘긴 노인의 안락사가 제도화된 초고령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안락사는 결국 가난한 노인들에 대한 합법적 인구 말살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미 한국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노인이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품위 있는 죽음부터 서두르는 것이 온당한가. 무겁게 묻고 또 물어야 할 문제다.

 

-정시행 기자, 조선일보(2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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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 내가 마무리해야 품격있는 죽음… 유언장 쓰기 널리 확산되길”

 

[서영아의 100세 카페]

‘웰다잉 전도사’ 원혜영 前 의원

 

내가 마무리해야 품격있는 죽음… 유언장 쓰기 널리 확산되길”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대표는 은퇴 뒤 가장 크게 변한 것으로 자동차 없는 생활을 꼽았다. 이런 생활을 즐기기 위해 만보계 달린 시계도 샀다고 자랑한다. 이훈구 기자

 

원혜영 전 의원(70)의 요즘 직함은 (사)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다. 부천시장 2선, 의원 5선 등 선출직만 7선을 거친 정치인이었지만 지난해 5월 정계은퇴와 동시에 ‘웰다잉(well-dying) 전도사’로 변신했다. 이런 그의 인생 2막은 순조롭게 진행 중일까. “정치 얘기는 안 한다”는 조건으로 10일 서울 서소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30대에는 풀무원식품을 창업한 기업인, 40대부터 30년간은 정치인으로 사셨습니다. 인생 2막이 아니라 3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잖아도 어제 만난 동료 교수와 ‘우린 지금이 3막 아니냐’는 얘길 했어요. 30세까지 성장기, 30∼60세 활동기, 그 뒤 은퇴기는 3막, 즉 서드 라이프인 거죠. 1980년대까지만 해도 평균수명이 70세였습니다. 60세 가까이에 정년하고 나면 10년쯤 살다 대충 노환으로 가는 거였죠. 이제 장수시대가 되다 보니 한 막을 더 늘리게 됐지요.”

 

―2019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셨죠. 왜 그때였습니까.

 

나이 70이면 새 인생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아닙니까. 19대 의원에 당선됐을 즈음 ‘한 번 더하면 우리 나이로 70세, 정치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구나. 그때쯤엔 정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국회의장을 하실 자리에 아깝게 물러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장 하고 나면 다른 것 하고 싶은 욕심이 또 생기겠죠. 보통 정치인들은 명예롭게 은퇴할 기회가 없습니다. 선거에서 떨어져 사라지거나 스캔들로 인해 불명예 제대하거나. 제 경우는 얼마나 복 받은 건가요.”

 

○정계은퇴도 ‘웰다잉’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은퇴과정을 웰다잉 과정과 동일시했다.

웰다잉의 핵심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인데, 저는 정치인생을 제 뜻과 계획에 따라 그만뒀어요. 은퇴자들이 생활 변화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전 할 일이 미리 준비돼 있어 충격도 별로 없었습니다.”

일상에서의 변화는 ‘뚜벅이’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동차를 없애고 어딜 가나 지하철을 탑니다. 오늘도 부천에서 7호선 타고 온수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 시청역에서 내려 걸어왔습니다. 이러면 3500보 정도 걷습니다. 보세요. 만보계가 달린 시계도 샀습니다. 살도 빠지고 몸이 가벼워졌어요.”

―대표님께 웰다잉은 무엇인가요.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자신이 결정할 게 많아요. 현대사회에서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서, 막상 닥치면 허둥대며 휩쓸려가게 됩니다. 사실 죽음만큼 확실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걸 받아들일 준비, 잘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게 웰다잉입니다.”

 

○웰다잉운동에 전념


―말 그대로 웰다잉 활동에 전념하고 계시다고요.

“그 밖의 어떤 일에도 나서거나 이름을 걸지 않아요. 어제는 유산 기부 활성화 관련 자선단체들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등 어린이들을 돕는 단체들인데, 펀딩에 어려움을 겪던 이분들이 착안한 게 유산 기부예요. 재산을 모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그 일부를 좋은 일에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죠.”

―영국의 ‘레거시(Legacy) 10’ 캠페인 같은 건가요.

“영국에서는 2011년부터 억만장자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죠. 유산의 ‘10%’라는 액수가 재미있습니다. 교회 십일조는 신과 인간의 오랜 투쟁을 통한 타협의 산물입니다. 예컨대 너무 많이 받으면 지속가능성이 없고 1∼2%로는 교회 유지가 어렵습니다. 지속가능하면서 큰 부담이 안 되는 정도가 10%라는 겁니다. 유산도 ‘3분의 1을 기부하라’면 부담 되겠지만 10분의 1이라면 기꺼이 낼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겁니다.”

―상속 기부는 세금 문제가 복잡한 것 같던데요.

“공익법인에 기부한 금액은 상속가액에서 빠지니까 상속세를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실 영국은 10% 이상 기부하면 나머지 재산에 대한 상속세도 10% 감면되지요. 세금공제 관련해서 우린 아직 멀었어요. 관료들의 인식이 문제입니다. ‘국가가 세금 걷어 하면 되지 왜 민간이 나서냐’는 생각이 강합니다. 민간을 감독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거죠.”

그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제한적이긴 하지만 노인복지관이나 관공서 등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초청강연에 열심히 다닌다. 웰다잉 홍보를 위해 대한노인회 고문 자리도 맡았다.

 

○70세부터 10년 정도 새 삶을 살고자


그는 정치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부천시장 시절 버스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BIS)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것과 국회선진화법, 특히 필리버스터 전면 도입을 주도한 것을 꼽는다. 다른 한편으로 국회에서 웰다잉 관련 법 제도 도입에도 힘썼다.

“2015년에 여야 의원들을 모아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2016년 1월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제도화하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을 통과시켰고요. 이 법을 만들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자기결정권 문제였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격을 잃지 않고 삶을 마무리한다는 자세, 이걸 실제 생활문화에 정착시키는 게 중요하겠다. 은퇴 후 웰다잉운동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요.”

2018년 2월부터 시작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8월 현재 100만 명을 넘어섰다.

 

○“유언장 쓰기 확산에 사명감”

 

부친 원경선 원장(1914∼2013)과 함께. 원경선 원장은 한국 최초로 유기농법을 도입한 생명평화환경운동의 대부다. 6·25전쟁 고아들과 함께 공동체 농장을 운영했다. 동아일보DB

 

요즘은 웰다잉을 말하는 사람도 많고 영역도 다양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장기기증 서약, 간소한 장례식, 유언장 작성, 유산 기부 등, 하나하나가 책 한 권씩 나올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다. 이 중 그가 가장 사명감을 느끼는 분야는 ‘유언장 쓰기’다.

내 생명 내가 결정한다는 게 연명의료의향서라면 내 재산 처리는 유언장을 통해 결정하게 됩니다. 미국인의 50% 이상이 유언장을 쓰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0.5% 정도만 쓴다고 합니다. 유언장을 써본다는 것은 내 삶을 정리해본다는 뜻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찢어버리고 새로 쓰면 됩니다. 저도 정리하는 차원에서 쓰고 있는데, 이보다 좋은 성찰 기회가 없습니다.”

―간혹 노년에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웰다잉이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내 하나뿐인 삶을 조명해보는 것은 내가 새롭게 탄생하는 일이 됩니다. 삶의 마무리가 아름다워야 인생 자체가 의미 있고 아름다워지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웰다잉은 웰빙의 완성입니다.”

 

○그린벨트로 묶인 집 한 채가 전 재산


―안락사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습니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용어상 혼란이 있습니다. 안락사는 약이나 주사를 통해 생명을 중지시키는 것이지만, 존엄사는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조치 없이 생명이 마무리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하느님의 뜻에 맞서 인위적으로 삶을 연장하지 않겠다’며 연명의료를 거절하고 장기기증을 하셨습니다. 그게 자연의 섭리에 맞는 태도 아닐까요.”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페인 등이 이미 조력자살 혹은 자살방조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2개 주에서 안락사가 허용됐고 14개 주에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기부를 실천하고 있으신데….

“풀무원 정리하면서 만든 장학재단을 3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인 재산은 그린벨트로 묶인 집 한 채가 전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묶였는데 그걸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꼼짝없이 태어난 집에서 평생 사는 복을 누리고 있어요. 하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실천과제

 

육체적 생명의 마무리: 호스피스 완화 의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기기증
△사회적 관계의 마무리: 엔딩노트, 장례·장묘 문화 개선, 유언장 쓰기
△정신적·물질적 유산의 마무리: 성년후견제도, 사회적 기부 및 보존, 유품 사전정리

웰다잉문화운동 제공

 

 

-서영아 기자, 동아일보(2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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