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문재인’]
[개혁 미루다 중병 든 英… 포퓰리즘 비용은 결국 가계 부담]
[마크롱 국민 72% 반대에도 연금개혁, 이게 정치 지도자 존재 이유]
[‘58년 개띠’가 노인 되는 날]
[현재라는 선물]
[매일이 새날이다]
‘아! 문재인’
[강천석 칼럼]
‘국민 눈높이’ 핑계 삼다 연금 개혁 일본보다 23년 지각
‘국민 눈높이’는 ‘국민 水準’ 아니라 ‘대통령 수준’ 가리키는 말
‘눈높이’는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판단하는 수준(水準)을 뜻하는 우리말 단어다. 소비자 눈높이, 관객 눈높이, 학생 눈높이 등등 쓰임새가 다양하다. 어느 때부턴가 아무 말에나 붙어 새 의미를 만들어내는 유행어가 됐다. ‘눈높이’가 ‘국민’과 결합해 ‘국민 눈높이’가 되면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국민 눈높이’는 대통령들의 애용 표현이다. ‘국민 눈높이’란 말로 ‘자기 수준’을 가리고 덮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사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및 당 지도부와 대화를 하고 있다. 2023.01.02. /더불어민주당
2018년 11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국민연금 개혁안을 보고받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되돌려 보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단순한 재검토가 아니라 전면 재검토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개혁안의 어느 부분이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보험료 인상’이라고 했다. 복지부 개혁안은 보험료율은 9%에서 12~13%로 올리는 대신 노후 소득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40%에서 45~50%로 높이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서 국민연금 개혁은 물거품이 됐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1일 ‘올해는 연금 개혁의 해가 돼야 한다’고 밝히자 노조는 즉각 총파업을 선언했다. 파업이 시작되는 18일 이후 대중교통·병원·학교·항만·공항은 비상 상황을 맞게 된다. 그쪽 노조 체질로 보아 보도블록을 깨 내던지고 바리케이드가 불길에 휩싸이는 과격 시위도 예상된다. 정부 개혁안은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64세로 2년 늦추는 대신 지급액은 높이겠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래 세대에게 공정하고 튼튼한 연금 제도를 물려줘야 한다’고 했고 정부 대변인은 ‘노조 총파업을 겁내지 않는다. 정부는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
연금에 관해선 모든 나라 국민 눈높이가 똑같다. 적게 내고 빨리 많이 받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원리에 어긋난 이런 연금 제도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조만간 파탄을 맞는다. 선진국 또는 선진국 문턱을 밟은 나라는 예외 없이 연금 위기를 겪었다. 출생률은 급감(急減)하고, 세금 내는 노동 인구는 내리막이고, 은퇴해 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급증(急增)하기 때문이다.
연금 위기는 단순히 연금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연금을 내고 받는 균형이 깨지면 국가는 빚을 내 연금을 줘야 하고, 국가 빚이 늘면 국가 예산에서 빚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부담이 늘어나고, 적자 예산이 체질화되면 경제가 침체하고 경기가 가라앉으면 고용이 줄고, 고용이 줄면 연금 낼 사람이 주는 악순환(惡循環)의 수레바퀴가 돌아간다. 선동 정치가는 이 악순환 틈바구니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국가 추락이 본격화된다.
적게 내고 많이 받고 싶다는 국민 심리는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인구 감소와 인구 노령화(老齡化)라는 조건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나라는 연금 위기 앞에서 거꾸러지고 어느 나라는 지속 가능한 연금 제도를 새로 만들어낸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수준과 역량(力量)이다. ‘문재인 눈높이’와 ‘마크롱 눈높이’의 차이다.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문 대통령이 2018년 연금 개혁안을 퇴짜 놓았던 한국은 2022년 말 연금 개혁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견학단을 파견했다. 일본은 2004년 국민 여론과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일본 측은 한국 견학단에 연금 개혁 당시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가 ‘더 내고 덜 받는 쓴 약(藥)을 삼키도록 국민을 설득했다’면서 연금 개혁에서 국가 지도자의 절대적 역할을 강조했다. 경제 활력(活力)이 떨어져가는 일본은 이 개혁조차 없었더라면 이미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2022년 말 일본의 100세 이상 고령자 숫자가 9만5000명을 기록했다. 1963년 153명에서 출발해 81년 1000명 선을 넘더니 98년 1만명을 거쳐 눈사태처럼 밀려왔다. 한국은 노령화 속도가 일본을 능가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이런 흐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년 가까이 계속된 장기 추세(趨勢)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 눈에 이게 보이지 않았다면 눈 뜬 장님이고, 보이는데도 ‘국민 눈높이’를 핑계 삼아 덮어버렸다면 양심을 속인 무자격(無資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금 개혁을 선언했다. 1998년과 2007년 소(小)개혁 이후 첫 대(大)개혁이다. 지금 일정표대로 진행한다 해도 2027년에나 실행이 가능하다. 일본보다 23년 늦은 지각생이다. 교육 개혁, 노동 개혁, 국방 개혁, 공기업 개혁, 건강보험 개혁을 미루고 미룬 청구서도 속속 배달될 것이다. 정말 ‘아! 문재인’이다.
-강천석 고문, 조선일보(23-01-14)-
________________
개혁 미루다 중병 든 英… 포퓰리즘 비용은 결국 가계 부담
브렉시트(Brexit) 3년 차를 맞은 영국의 시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주요 7개국(G7) 경제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영국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선진국 중 최악의 침체를 맞고 있다. 유럽연합(EU) 탈퇴가 부를 경제충격을 얕본 정치 지도자들의 포퓰리즘, 수렁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한 구조개혁 지연이 겹친 결과다. 현지에선 “영국 경제에 지독하게 얽혀 있는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다”는 한탄이 터져 나온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1.2%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 성장률 전망치와 별반 차이가 없다. 영국 중앙은행은 이미 ‘100년 만의 장기 침체’를 예고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 유럽 본토와의 교역 축소로 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폭등한 전기요금, 소비자의 실질소득 감소로 자영업자 폐업은 1년 만에 50% 늘었다. 유럽 1위였던 런던 증시 시가총액은 프랑스에 처음으로 추월당했다.
영국의 추락은 변덕스러운 여론에 영합한 정치권, 정부의 정책 실패가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보수당은 집권을 위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약속했다가 2016년 예상과 달리 탈퇴가 결정되자 뒷감당을 못하고 있다. 2021년 브렉시트 이행 전에 재정·세제 등 제도 정비, 제조업을 되살릴 성장 동력 확충, 공공의료 시스템 등의 개혁이 필요했는데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대응으로 나랏빚이 급증한 상태에서 리즈 트러스 총리가 포퓰리즘적 대규모 감세안을 내놨다가 파운드화 폭락 사태로 44일 만에 낙마하기도 했다.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도 영국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정치권은 돈 퍼주기 경쟁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청년 정책, 저출산 정책 등으로 포장된 포퓰리즘 정책들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다. 그 결과 예상보다 세금이 50조 원 더 걷혔는데도 작년 나랏빚은 100조 원 넘게 늘었다. 영국의 사례를 보면 꼭 필요한 개혁을 미룬 데 따른 비용은 2배, 3배로 늘어나 고스란히 가계의 몫이 되고 있다. 영국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동아일보(23-01-14)-
_______________
마크롱 국민 72% 반대에도 연금개혁, 이게 정치 지도자 존재 이유
5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전국적 규모의 연금개편 저지 총파업과 대규모 집회가 진행되면서 주요 교통수단들이 멈춰 섰다. 프랑스의 주요 노동·직능 단체들은 정부의 연금개편이 은퇴 연령을 늦추고 연금의 실질 수령액을 감소시킬 것이라면서 폐기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이날 전국 250여 곳에서 벌였다./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 정부가 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현재 62세인 정년을 2027년까지 63세, 2030년까지 64세로 늘리는 식으로 연금 수령 시점을 늦추는 게 골자다. 1964년 이후 출생자는 지금보다 1년, 1968년 이후 출생자는 2년을 더 일해야 한다. 연금 전액을 받기 위한 근속 기간은 기존 42년에서 43년으로 연장된다. 더 오래 일하고 연금은 더 천천히 받으라는 뜻이다. 여론조사 결과 이 연금개혁안에 프랑스 국민 72%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은 27%뿐이다.
그럼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빚에 의존한 채 연금 제도를 운영할 수는 없다. 우리는 더 오래 일해야 한다” “연금개혁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공정하고 견고한 사회 시스템을 물려줘야 한다”며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마크롱의 개혁 추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취임해 직종별로 42개에 달하는 복잡한 연금 제도를 단일화하는 개혁을 추진했다. 당시 20여 년 만에 가장 강력한 총파업이 벌어지고 공공부문의 연쇄 파업이 석 달 가까이 이어졌다. 거센 저항에도 마크롱은 물러서지 않고 코로나 때문에 잠시 중단했던 연금 개혁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65세 이상 인구가 20%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에 대비해 전임 대통령들도 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거센 저항에 부딪쳐 번번이 실패했다. 급기야 올해부터 연금 재정이 매년 100억유로(약 13조원)씩 적자가 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국민들은 개혁에 반대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중은 눈앞의 자기 이익과 기득권에 집착한다. 프랑스 주요 노조단체는 일제히 총파업 및 시위를 예고했다. 여당이 과반이 안 되는 하원에서 야당도 설득해야 한다. 그럼에도 마크롱 정부는 “연금 개혁이 국민을 두렵게 만들어도 지금 손보지 않으면 대규모 증세, 연금 수령액 감소로 이어진다”며 지속 가능한 연금 제도를 위해 개혁하겠다고 한다.
연금 개혁은 우리가 프랑스보다 더 시급하다. 보험료를 너무 적게 내고 있는 데다 저출산 고령화가 세계 최악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나라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세대를 위해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인기 없어도 피하지 않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했다. 당장의 인기를 좇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정상배다. 정치 지도자는 모두가 가기 싫어하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욕먹으며 앞장서 가는 사람이다. 그것이 정치와 지도자의 진정한 존재 이유다.
-조선일보(23-01-12)-
_______________
‘58년 개띠’가 노인 되는 날
2023년은 1차 베이비붐 세대를 상징하는 ‘58년 개띠’가 65세가 되는 해다. 우리 사회에서 65세는 큰 의미가 있다. 고령자 관련 통계는 전부 65세가 기준이다. 월 32만원인 기초연금을 비롯, 지하철 공짜 탑승, 독감 접종비 면제, 비과세 저축, 임플란트 할인 등 경로우대 자격이 생기는 것도 65세부터다. 크고 작은 복지가 워낙 많아서, 인터넷에는 ‘65세 이상 어르신 혜택 50가지’라는 정리글까지 있다.
58년 개띠가 65+클럽에 입성하면서 ‘1000만 노인 시대’도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통계청 추정으론 우리나라는 2024년에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한다. 전체 인구의 19.4%다. 이후에도 노인 수는 계속 늘어 2070년엔 인구 전체의 46.4%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인구 구조는 한번 방향을 잡으면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다. 노인대국 반열에 들어서는 한국에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사회복지 청구서가 사회를 삼킨다. ‘시민의 발’인 지하철은 지금도 만년 적자이지만, 1000만 지공선사(공짜 지하철 경로석에서 참선하는 노인) 때문에 적자가 더 늘어날 것이다. 지하철 일반 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 예산은 시행 초기인 2014년만 해도 7조원 정도였지만 내년엔 20조원에 육박한다. 작년 10조원, 올해 12조원이 지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26년 적립금 고갈로 깡통이 되고, 2040년엔 23조원대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둘째, 일하는 노인이 늘어난다. 생산·소비의 주축인 경제활동인구(15~64세)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노인 존재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빨리 늙은 일본에선 노인 취업자 숫자가 18년째 사상 최고치 행진 중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취업자는 909만명이었고, 65~69세 취업률은 50.3%나 됐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피부양 인구가 늘면 사회 전체 활력이 사라지고 나라 곳간도 부실해진다”며 “정년연장을 통한 고령층 경제활동 확대는 노령연금과 복지급여를 줄여서 고령화 충격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셋째, 간병 퇴직 쓰나미가 몰려온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빨라 노인돌봄인력 만성 부족에 시달릴 운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이 노인돌봄인력을 2040년까지 140% 이상 충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간병인을 찾지 못해 가족이 직장을 그만두는 ‘간병퇴직’은 벌써 조짐이 보인다. 올 상반기(1~6월)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를 돌보기 위해 퇴사한 여성은 1년 전보다 29% 늘었다.
더 큰 문제는 10년 후인 2033년에 닥친다. 58년 개띠가 유병노후(有病老後) 나이인 75세가 되는 이때, 한국의 고령화 충격은 더블로 커진다. 앓아누운 노인들이 늘어나 사회 복지 비용이 급증하는데, 2차 베이비부머(68~74년생, 635만명)가 줄지어 노인 집단에 진입하기 때문이다. 출산율 극적 반등이나 외부 인구 유입을 기대하는 건 수주대토(守株待兔)에 가깝다. 우리 미래가 더 위태로워지기 전에 노인 연령 상향, 정년 연장, 연금 개혁 같은 굵직한 현안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경은 기자, 조선일보(22-12-24)-
__________________
현재라는 선물
[백영옥의 말과 글]
인간이 두 번 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에게는 과거의 특정 순간으로 돌아가 기존의 선택을 뒤집고 싶은 순간이 있다. 화끈거리는 실수의 순간도 있고,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쳤던 순간도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중 20대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아니다. 운이 좋아 여기까지 왔지만 젊은 시절 지독한 실패의 기억들이 몸 안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무조건 허락할 것이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이런 경우이다. 드라마는 1988년 올림픽, 2002년 월드컵처럼 기성세대에게는 노력하면 대다수가 성장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보여주면서, 젊은 세대에게는 노력하면 많은 것이 가능했던 세계에 대한 판타지가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초고속 압축 성장을 한 나라의 사람들에겐 후회가 더 많기 마련이다. 폭등과 폭락의 시절 속에서 그때 사지 못한 주식, 채권, 강남 아파트와 땅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심리를 꿰뚫어 1997년 ‘외환 위기’와 2001년 ‘9·11 테러’ 속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많은 기회를 포착하는지 보여준다. 몇 년 전부터 웹툰과 웹소설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타임슬립물’의 인기는 현재에 대한 불만족과 미래의 불안감을 동시에 내포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조하는 젊은이들에게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성장이 말라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은 괴롭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이다. 시간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미래는 현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고,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 ‘Present’의 다른 뜻은 ‘선물’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물은 현재이다. 두 번의 인생은 없다. 오늘이 나의 가장 어린 날이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2-12-24)-
_______________
매일이 새날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스스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모든 상황은 변한다. … 의지와 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한다. ―괴테 ‘원칙과 성찰’ 중
나의 일과는 아침을 먹으며 조간신문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언제부터인지 부음 기사를 눈여겨보며 어떤 사람의 이름 옆 괄호 안에 적힌 숫자와 내 나이를 비교한다. 그 수가 내 나이보다 적을 땐 너무 늙어버린 나를 실감하고, 많을 땐 그만큼 삶의 여유를 느낀다.
죽음이 아니라 삶이 죽음의 질을 정한다. 기사화된 죽음이라 해서 그 죽음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삶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삶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얼굴값이고 나잇값이다. 사람은 그 값을 해야 한다. 특히 노년에서 그러하다.
어차피 늙음과 죽음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니 우리는 이들을 삶의 과정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최소한 노인의 존재가 쓸모없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늙어감에 서글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이처럼 나이 든다는 것에 가벼운 희열마저 느끼게 된 것은 나름대로의 ‘노년에 대한 성찰’ 덕분이다. “매일이 작은 인생”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매일이 새날이다. 문제는 내가 새날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꿈보다 오늘, 내 인생에서 가장 어린 ‘지금’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련다. 육체는 노쇠해져 가지만 정신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며 인생의 가치를 느끼는 때가 ‘지금’이고, 스스로 일궈 놓은 인생의 열매에 대한 반추의 멋을 음미할 때가 ‘지금’이기 때문이다. 아직 병원에 누워있지 않고, 여전히 외모에 신경 쓰고, 크고 작은 일들을 해낼 수 있으니, ‘지금’이 만족스럽지 아니한가. 우리는 젊은 기분으로 자기 일을 사랑하는 한 매일 늙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로워지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기엔 언제나 젊다.
-이창복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1-11-15)-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隨想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老부부] [부부, 마지막 '추억여행'] (1) | 2023.01.15 |
---|---|
[양철지붕의 봄비 소리] (0) | 2023.01.15 |
[AI 중매쟁이] [항상 남의 편인 남편] (0) | 2023.01.12 |
[장소의 논리] [運과 판단력] (0) | 2023.01.10 |
[아버지와 어색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내가 영리하고 똑똑하다는 우리 어머니] [어느 아버지의 재산 상속] (0) | 2023.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