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경 요금']
[부동산 불황 ‘칼바람’ 맞은 ‘국민 자격증’]
[‘정권 교체’ 내건 부동산 중개소들]
'집 구경 요금'
17년 전 특파원으로 부임해 프랑스 파리에서 집을 구할 때 고생을 적잖이 했다. 프랑스에선 월세가 어지간히 밀려도 쫓겨나지 않을 만큼 세입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강해 집주인이 세입자를 까다롭게 선별한다. 우선 집 구경 자체가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신분과 소득이 증명돼야 집 구경 날짜를 잡아줬다. 약속된 날짜에 가보면 경쟁자 여럿과 함께 집을 구경해야 했다. 집주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 옷차림과 태도, 말투에도 엄청 신경을 써야 했다.
▶영국 런던도 파리만큼 집 구경하기가 어렵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집 구경(viewing appointment) 날짜를 잡는데, 집 구경 한 번에 75파운드(약 14만원)를 받기도 한다. 네덜란드 복덕방에선 세입자의 소득 증명뿐 아니라 자기소개서까지 요구한다. 세입자들은 자기소개서에서 월세를 꼬박꼬박 잘 내고, 집을 깨끗하게 사용할 사람이라는 걸 잘 설득해야 집 구경을 허락받을 수 있다.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누구나 쉽게 ‘집 구경’을 한다. 그런데 최근 공인중개사협회가 ‘임장 보수제’를 추진하겠다고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임장(臨場)이란 ‘현장에 임한다’는 뜻으로, 부동산 업계에선 ‘투자자가 발품을 팔아 현장을 방문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임장 과정에 들어가는 중개업자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집 구경 요금’을 받되,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면 나중에 중개 보수에서 그 돈은 빼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배경엔 2030세대의 임장 열풍이 있다.
▶집값 초양극화와 ‘똘똘한 한 채’ 열풍이 불면서, 부동산 공부 목적으로 임장에 나서는 2030세대가 폭증했다. 임장을 다니며 아파트 입지, 주거 환경, 미래 투자 가치 등을 분석하는 모임이 만들어져 ‘임장 크루’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들은 복덕방에서 집을 안 보여줄까 봐 신혼부부인 척하거나, 이사 시기, 예산 등을 시나리오처럼 만들어 공유한다. “친척끼리 공동 투자할 계획”이라면서 집 구경에 7~8명이 들이닥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중개업자 입장에선 집을 사지도 않을 거면서 시간만 뺏는 존재들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매도자 우위’ 시장이 되면, ‘집 구경’ 문턱도 높아진다. 매수자가 ‘집 구경 좀 하자’고 하면, 중개업자는 “계약금부터 보내라”고 한다. 수십억대 아파트를 사는데 집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묻지 마 거래’와 ‘집 구경 요금제’. 아파트가 사람 사는 주택 아닌 투자 상품이 된 나라의 기이한 풍속도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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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불황 ‘칼바람’ 맞은 ‘국민 자격증’
2005년 1월 정부과천청사가 대규모 시위대에 뚫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년도 공인중개사 시험 불합격자 1500여 명이 경찰의 저지를 뚫고 청사에 난입해 한밤중까지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은 건설교통부 건물을 에워싸고 “합격자를 추가 선발해 달라”고 요구했다. 통상 20% 안팎이던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률이 그해 1%로 뚝 떨어지며 발생한 일이었다. ‘중년 고시’, ‘인생 2막 자격증’으로 불리는 공인중개사 시험의 인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부동산 광풍에 취업 한파까지 겹쳤던 2021년에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역대 최다인 28만 명이 응시했다. 집값이 워낙 올라 매물 한두 건만 중개해도 웬만한 직장인 월급을 능가하는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젊은층이 대거 몰렸다. 중년 고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응시자 열 중 넷이 20, 30대 청년이었다. ‘미친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현장 단속을 피해 불을 꺼놓고 몰래 영업하는 중개업소가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첫 시험이 치러진 1985년 이후 현재까지 배출된 공인중개사 자격증 소지자는 55만여 명이다. 경제활동인구 55명당 1명꼴로 공인중개사이니, ‘국민 자격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이 중 80% 정도는 ‘장롱 면허’이고, 실제 영업하는 공인중개사는 11만1600명에 그친다. 부동산 시장이 식으면서 개업 공인중개사는 2023년 2월 이후 줄곧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년 넘게 새로 문을 연 중개업소보다 폐업하거나 휴업한 곳이 더 많다는 얘기다.
▷특히 올해 들어선 3개월 연속 새로 개업한 공인중개사가 1000명을 밑돌고 있다. 봄 이사철을 앞두고 신규 개업이 몰리는 시기에 개업자가 1000명 아래로 떨어진 건 통계 집계 이후 처음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서울과 지방을 가릴 것 없이 새로 문 여는 중개사가 급감했다. 거래가 끊긴 데다 고금리, 대출 규제, 내수 침체가 겹쳐 공인중개사들도 사무실 관리비와 임차료를 감당하기 힘든 처지다.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 연간 100만 건을 웃돌았던 전국 주택 매매 거래는 지난해 64만 건에 그쳤다.
▷여기에다 부동산 직거래가 활발해진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최근 3년간 이뤄진 부동산 거래 319만 건을 살펴보면 중개와 직거래 비중이 거의 반반일 정도다. 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성사된 부동산 직거래는 3년 새 220배 폭증했다. 집값이 뛰면서 덩달아 치솟은 중개수수료가 부담인 데다 ‘건축왕’ ‘빌라왕’ 같은 전세사기에 공인중개사가 빠짐없이 등장한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새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 부동산중개업소부터 들어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지만, 이젠 공인중개사도 살아남는 것 자체를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정임수 논설위원, 동아일보(2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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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 내건 부동산 중개소들
어떤 이가 전세 계약을 하려고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 들렀는데 부동산 매물을 붙여놓아야 할 입구에 ‘정권 교체’라는 인쇄물이 붙어 있었다. 그 중개사가 원래 야당 지지 성향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가 다 비슷했다. 집 사고파는 중개소가 반(反)정부 성토장이 된 건 문재인 정부의 ‘미친 집값’ 불똥이 부동산 중개사들에게 옮겨붙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사고팔면 매수자, 매도자가 복비를 900만원씩 부담해야 했다. 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값이 2배 넘게 뛰면서 평균 가격이 10억원을 넘겼다. ‘미친 집값’에 ‘미친 복비’까지 부담해야 하니 국민들 원성이 폭발했다. 이 민심을 달래겠다고 정부가 지난 10월부터 부동산 중개료를 낮췄다. 그래도 집값과 전셋값이 너무 올라 사람들은 ‘복비 인하’를 별로 체감하지 못한다. 수입 줄어든 부동산 중개사들의 불만만 치솟았다.
▶복비 부담을 낮추겠다고 문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 정책’에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 시스템 구축 사업’을 포함한 것이 부동산 중개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8월 기준 공인 중개사 자격증 소지자는 46만6000명에 이른다. 경제활동인구 60명당 1명꼴이다. 75%는 장롱 자격증이고 실제 개업은 11만5000명 정도인데 그마저도 공급 과잉이라 폐업률이 높다. 집 한 채 거래하고 거액을 챙기는 직업인 것은 아니다. 뿔난 공인 중개사들이 ‘우리가 봉이냐. 정책 실패 책임 전가 말라’ ‘부동산 정책 실패, 민주당 정권 교체가 답이다’라고 쓴 팻말을 들고 거리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의 부동산 커뮤니티에 한 네티즌이 ‘집값 폭등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요?’라고 글을 띄웠다. ①무주택자 ②종부세 안 내는 1주택자 ③종부세 조금 내는 1주택자 ④종부세 수천만원 내는 다주택자 중에 답을 하나 고르라고 했더니 엉뚱하게 ‘최대 수혜자는 정부’라는 댓글이 주르르 붙었다. 집 없는 사람은 집값 전셋값 올라 분노하고, 집 가진 사람은 세금 많이 뜯겨 분노하고, 부동산 중개사는 복비 많이 받는다고 비난받다 복비가 깎여 분노한다. 두둑해진 건 세금 걷어간 정부 주머니뿐이다.
▶지금 여당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부동산 중개사들 불만을 의식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5년 내내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은 외면하고 ‘부동산 정치’에만 매달렸다. 이제 민심의 역풍을 실감하는 모양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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