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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에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 보편적 연민·감동 담아] ....

뚝섬 2025. 3. 11. 10:01

[대공황에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 보편적 연민·감동 담아] 

[세일즈맨의 죽음]

 

 

 

대공황에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 보편적 연민·감동 담아 

최근 국내 공연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윌리 역할을 맡은 배우 박근형(왼쪽)씨와 아내 린다 역의 예수정씨. 극중 부부는 별다른 직업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큰아들 비프의 미래를 두고도 고민합니다. /쇼앤텔플레이·T2N미디어

 

20세기 최고의 희곡 중 하나로 꼽히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습니다. 그해 최고 권위 상들인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하며 작가 아서 밀러(1915~2005)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줬죠. 한국에선 1950년대에 첫 공연이 올려진 이후 기주봉, 강신구, 이순재, 전무송 등 쟁쟁한 배우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 ‘윌리’ 역을 거쳐 갔습니다. 최근 서울 공연을 마치고 15개 지방 공연(전주, 부산, 대구, 용인, 인천, 수원, 의정부 등)을 앞두고 있는 박근형 배우는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는 연기로 큰 감동을 주었지요. 오늘은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과 세계적인 희곡 작가 아서 밀러의 작품 세계를 알아보겠습니다.

 

미국적 소재로 보편적 공감을

 

‘세일즈맨의 죽음’은 35년을 세일즈맨으로 산 윌리 로먼이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극은 다음 날 밤 윌리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며 막을 내리기까지 하루 동안의 사건을 담고 있지요. 주인공 윌리를 둘러싼 가족들의 현실과 과거가 교차하며 사건이 중첩되다 보니 하룻밤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어려워요. 그만큼 아서 밀러는 탄탄한 구성으로 매우 치밀하게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관객들을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밀어 넣지요.

 

아서 밀러는 ‘가장 미국적인 소재로 가장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작품’을 썼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시대와 개인의 정체성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한 작가였습니다.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의 배경, 그리고 1929년 세계를 덮친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 겪게 된 가족의 불행은 그의 작품 전반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되죠.

 

뉴욕 할렘 지역에서 세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난 밀러 역시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처럼 성공과 몰락을 겪게 되는 자신의 아버지를 지켜보며 성장해요. 제대로 된 교육 한번 받은 적 없지만 400명이 넘는 직원을 둘 정도로 큰 의류 공장을 키웠던 아버지. 하지만 경제 공황은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파산으로 몰아넣고, 밀러 가족의 모든 것을 가져갑니다.

 

이 밖에도 ‘세일즈맨의 죽음’에는 아서 밀러의 개인적인 경험이 여럿 담겨 있습니다. 작품 발표 2년 전인 1947년 어느 날, 한 친척이 아서 밀러를 찾아옵니다. 그는 세일즈맨이었죠. 당시 밀러는 희곡 ‘모두가 나의 아들’로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촉망받는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있었어요.

 

자신을 찾아온 친척은 자신의 아들도 밀러 못지않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며 허풍을 떠는데요. 훗날 이 모습은 윌리가 변변한 직업도 갖지 못한 큰아들 비프를 ‘서부에서 아주 큰 사업을 하고 있어’라고 소개하는 장면에 그대로 담겨 있죠. 밀러는 이런 친척의 모습에서 평생 소시민으로 살았던 세일즈맨의 고단함과 자식에게 거는 기대를 꺾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어요.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의 대공황 이후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줍니다. 35년을 하루같이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삶은 왜 더 나아지기는커녕 하루하루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걸까요? 밀러는 이 작품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핑크빛 약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이 이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서 비롯된 평범한 가정의 몰락과 죽음은 그래서 깊은 연민과 감동을 자아냅니다.

 

미국 연극사를 바꿔놓은 작가

 

밀러는 ‘작가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독자들에게 그들이 망각하기로 선택한 것을 기억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대공황에 이어 두 번째 시련이 닥칩니다. 바로 1950년대 초반 ‘매카시즘’ 열풍에 휩싸인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로 의심을 받게 된 거죠. 노동운동과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았고, 불평등과 부조리를 비판하던 그는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고 반미 지식인 색출을 위한 청문회에 소환당해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미국 사회는 공산주의에 대한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의 선동으로 불이 붙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과 문화계 인사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조사를 받죠. 직업을 잃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된 이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밀러 역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는 동료들의 이름을 대라고 요구받습니다. 이후 다행히 혐의는 벗었지만 오랜 시간 의심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상하죠. 종교적 마녀사냥을 소재로 정치적 마녀사냥을 비판한 ‘시련’(1953)이 대표적입니다. 연극 ‘시련’은 마침 오는 4월 9~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어요. ‘추락 이후’(1964) 역시 매카시즘의 파괴성을 고발하는 작품이지요.

 

밀러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매릴린 먼로와 5년간의 짧은 결혼 생활을 하고 이혼하는데요. 밀러와 먼로는 각각 세 번 결혼을 했는데, 먼로의 마지막 결혼 상대가 밀러였습니다. 밀러의 두 번째 아내가 먼로였고요. 훗날 그가 스스로 밝혔듯 공산주의자로 몰리며 겪어야 했던 힘든 시간이 파경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밀러에게 닥친 시대의 격랑으로 두 사람은 서서히 멀어져 갔죠.

 

밀러의 작품은 미국 연극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세기 초반 미국 연극계는 멜로 드라마와 유럽 연극이 판을 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의 작품들로 인해 고유한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고 보편적 가치를 탐구하는 연극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의 문학사적 업적을 평가할 때 노벨상 수상을 하지 못한 점이 지금도 논란의 불씨가 될 정도지요.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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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35년 가까이 성실하게 일했지만… 대공황에 무너진 평범한 회사원의 삶 

 

아서 밀러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세일즈맨의 죽음’(1966)의 한 장면. /위키피디아

 

저는 이 회사에서 34년을 봉직했는데 지금은 보험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오렌지 속만 까먹고 껍질은 내다 버리실 참입니까.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젊은 세대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중년 세대는 언제 직장에서 밀려날까 노심초사하죠. 1940년대 미국도 처지가 비슷했어요. 1920년대 후반 일어난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죠.

1949년 출간된 아서 밀러(1915~2005)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나오자마자 극찬받으며 토니상·뉴욕연극비평가상 등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연극계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도 받았어요. 지금도 전 세계 연극 무대에서 계속 공연되고 있고, 영화로도 수차례 만들어졌죠.

주인공 윌리 로먼은 35년 가까이 세일즈맨으로 성실하게 일해 마침내 자기 집과 차를 장만했어요. 두 아들 비프와 해피도 총명해서 부부는 행복만 계속될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노동량이 가중되면서 심신이 지쳤어요. 일한 만큼 수입이 늘어나지도 않았죠. 집과 차를 장만한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다달이 납입해야 할 돈은 생활고를 가중했어요.

끝내 대공황이 밀려왔고, 평생 땀의 대가만 믿고 산 윌리는 회사에서 해고당해요.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윌리가 견딜 수 있었던 건 두 아들 때문이었어요. 특히 큰아들 비프는 앞날이 기대되는 미식축구 선수로, 가고 싶은 대학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비프는 수학 과목에 낙제하면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지 못해요. 이후 비프는 물품 배송 등 30개 가까운 임시직을 전전하면서 서른네 살이 됐어요. 아버지 윌리가 해고되던 날 비프는 주당 28달러를 받으며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윌리는 이런 비프에게 훈계하다 아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회사에서 해고되었다는 절망감 등으로 큰 충격을 받은 윌리는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해 대성공한 형 벤의 환영(幻影)과 마주하고, 2만달러의 사망 보험금만 받을 수 있으면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해요. 자신의 사망 보험금으로 가족에게 존재감을 보여주려고 한 거죠. 윌리는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다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여보. 오늘 주택 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그런데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린다의 이런 쓸쓸한 독백으로 작품은 끝을 맺어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하던 한 인간의 비극을 보여준 이 책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읽어야 할 고전임에 틀림없습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본부장, 조선일보(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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