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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민희진이라는 블랙홀] [방시혁과 민희진의 K팝] ....

뚝섬 2024. 5. 4. 08:14

[방시혁·민희진이라는 블랙홀]

[방시혁과 민희진의 K팝] 

[방시혁의 뿌리] 

[남원 예향론(藝鄕論)]

[방시혁 대표 서울대 졸업 축사]

 

 

 

방시혁·민희진이라는 블랙홀

 

프로듀서·엔터기업 대표의 자기과시적 나르시시즘
스스로를 ‘뒷것’이라 불렀던 학전 김민기를 다시 생각한다

 

기타리스트로 이름난 가수 A가 밥을 먹다 말고 물었다. “학전 김민기 형 다큐 봤어요?” 며칠 전 항암치료 중인 김민기(73) 문병을 다녀왔다고 했다. 형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발끝은 시꺼멓게 죽었다며, 여섯 살 아래 늙은 동생이 눈시울을 붉힌다. 내일(5일) 마지막 회를 방영하는 SBS 3부작 다큐스페셜의 제목은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뒷것’은 김민기의 별명이다. 배우와 가수가 앞에 서야 하고, 자신은 커튼 뒤 뒷것에 불과하다는 겸손이다.

 

배울 학(學) 밭 전(田), 배움의 밭. 재정난으로 지난 3월 문 닫은 김민기의 소극장 학전은 말 그대로 문화예술의 못자리였다. 배우 김윤석·설경구·황정민·이정은·조승우, 가수 김광석·나윤선·윤도현…. 모두 이 밭에서 자라 큰 무대로 갔고, 성공했다. 그 자신 ‘아침이슬’과 ‘상록수’의 싱어송라이터였지만, 김민기는 늘 뒤에 숨었다. 신인들이 유명해지면 내보내고, 다시 모를 심었다. A가 김민기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자신은 주인공이 아니라고 말하는 연출자·제작자는 부지기수지만, 실제 삶에서도 실천하는 인물은 ‘형님’밖에 본 적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세상은 ‘뒷것’에 별 관심이 없다. 지난 몇 주간 대중의 관심은 세 고유명사로 압축된다. 방시혁 민희진 그리고 뉴진스. 대부분의 화제를 빨아들인 블랙홀이다. 엔터테인먼트만의 관심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이나 X(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 저마다 글 좀 쓴다 하는 인사들이 앞다퉈 ‘참전’했다. 정치와 경제, 외교안보가 주 전공이라 자처하는 필자까지 백화제방(百花齊放), 거의 ‘천하제일 백일장’ 수준이었다.

 

덕분에 아이돌과 K팝을 모르거나 관심 없던 중장년 남성까지도 이제는 이 주제를 소비한다. 민희진은 걸그룹 뉴진스의 총괄프로듀서이자 하이브 자회사 어도어의 대표. 하이브가 민 대표에게 경영권 탈취 의혹을 제기하고, 상대가 반박하며 사태는 시작됐다. 물론 누구 말이 더 맞는지는 법적 판단이 남아있다. 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춤추게 만드는 분홍신, 아니 마법의 파란 모자라도 쓴 것이었을까. 개저씨와 내새끼를 가로지르며 두 시간 넘는 폭포수를 쏟아낸 민희진의 ‘광기의 기자회견’ 이후, 그는 무대 뒤 ‘뉴진스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공이 됐다. 

 

진정성 있다, 시원시원하다, 정말 일밖에 모르는 사람 아니냐, 사장에게 할 말 다 하는 직장인 로망이다.... 이 논리하에서 배은망덕한 통제 불능 월급쟁이는 창업자보다 더 잠재성 있고 유능한 직장인 대표로, 탐욕스러운 자본가에게 핍박받는 무사무욕의 K팝 장인(匠人)으로, 술 먹고 골프나 치는 아빠로부터 딸과 가정을 지킨 엄마로 거듭났던 것이다.

 

물론 세상에 100대0의 진실은 없고, 이런 평가에도 적지 않은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의 불이 꺼지면 초라한 현실이 드러나는 법. 민희진과 방시혁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뉴진스의 전속 계약과 주식을 둘러싼 갈등, 방탄소년단까지 방패막이로 내세웠다는 논란에 이어 3일에는 일본 시부야에서 보이그룹 세븐틴의 신곡 앨범이 쓰레기로 대량 투기됐다는 외신까지 이어졌다. 설립자와 자회사 대표는 소음과 잡음의 주인공이 됐고,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할 아티스트는 방치되고 버려졌던 것이다.

 

지난해 3월, 방시혁 의장이 중견 언론인 모임 관훈클럽의 토론회에서 했던 발언을 기억한다. SM을 놓고 카카오와 ‘머니게임’을 벌이다 인수 포기를 선언한 직후였는데, 아티스트와 팬이 이렇게 괴로운 상황이 되는 게 맞는가라는 고민이 있었다는 멋진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1년 뒤 이 발언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 그는 알았을까. 시가총액 10조 가까운 엔터 기업과 가난한 소극장을 같은 줄에 놓을 수는 없겠지만, 묵묵히 무대 뒤를 지킨 ‘뒷것’ 김민기가 떠오르는 5월의 첫 주말이다.

 

-어수웅 기자, 조선일보(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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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과 민희진의 K팝

 

1990년대 등장한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는 보이 그룹 H.O.T와 걸그룹 S.E.S를 선보이며 K팝 탄생의 신호탄을 쐈다. JYP·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K팝 시대를 열었다. 세 기획사는 이수만·박진영·양현석이라는 걸출한 가수 출신이 이끌었다. 2005년 등장한 방시혁은 달랐다. 가수 출신이 아닌 순수 경영인으로서 K팝 최고 히트 브랜드인 BTS를 탄생시켰다.

 

▶'사장님 방시혁’은 K팝 기획사에 미국식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했다. 레이블은 모기업에 딸린 자회사라 할 수 있다. 방시혁이 의장으로 있는 하이브(HYBE) 아래 BTS가 속한 빅히트뮤직을 비롯해 쏘스뮤직, 플레디스, 빌리프랩, 어도어 등이 포진해 있다. 어도어 소속 걸그룹 뉴진스가 지난해 1100억원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BTS의 군 입대로 인한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 레이블 육성에 과감히 투자한 사업가 방시혁의 안목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도 엑소와 소녀시대를 키워낸 이 분야 기린아다.

 

▶그랬던 방시혁·민희진 두 대표가 어도어 경영권을 둘러싸고 볼썽사나운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분이니 풋옵션이니 하며 K팝을 사랑해온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문화와는 무관한 두 대표의 갈등에 대한 반감을 엿보게 하는 사건이 그제 민 대표 기자회견에서 있었다. 그날 민 대표는 그런 자리에 어울릴 투피스 정장이 아닌 맨투맨 티에 모자를 눌러쓴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섰다. 방송사 유튜브로 그 장면을 본 이들은 민 대표 말에 귀 기울이는 것 못지않게 패션에도 관심을 쏟았다. 민 대표가 입고 나온 옷과 모자가 완판된 것이다.

 

▶패션 업계에선 이런 현상을 ‘디토(ditto)’라는 이탈리아어로 설명한다. ‘나도 그래’라는 뜻이다. 디토는 성공한 연예인의 스타일을 따르고 싶은 대중의 욕망이 일으키는 현상이라고 한다.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코리아 2024′에서 디토는 단순히 대세를 따르는 유행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 관심 있는 이가 그 분야에서 먼저 성공한 셀럽들을 선망하는 문화 현상이라 설명한다.

 

▶방시혁 의장은 하이브 영어 의미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연결과 확장을 지향하는 뜻’이라고 했다. 하이브는 벌집(hive)도 떠올리게 한다. 많은 K팝 팬은 여러 레이블을 거느린 하이브가 큰 벌통이 되어 레이블이란 방을 키워주길 기대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장르가 차별화되지 않은 레이블들 간 지나친 경쟁도 한 이유라고 한다. 유니버설 뮤직처럼 각각을 개성 뚜렷한 레이블로 키우는 방안도 고민했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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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의 뿌리

 

[조용헌 살롱]

 

방탄소년단은 방탄 미사일과 같다. 북한이 쏜 ICBM보다 훨씬 강력한 미사일이 방탄 미사일이라고 본다. 미국 대중문화계의 심장인 빌보드 차트를 휩쓸지 않았는가. 이 방탄 미사일은 세계에다가 한국의 저력을 과시하는 미사일이다. 그렇다면 미사일 제조자 방시혁의 뿌리는 어떻게 되는가? 지난주 칼럼에서 판소리의 뉴올리언스인 남원에서 수백 년 동안 세거하던 방씨 집안이라는 것을 쓴 바 있다.

 

판소리는 전라도에서 발달한 독특한 음악 장르이다. 경상도는 학(鶴)춤이다. 판소리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 BTS로 나타난 것이다. 판소리의 4대 요소가 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이다.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에 등장하는 광대들은 우선 인물이 좋아야 하고, 사설은 문학적 표현 능력 내지는 ‘말발’을 가리킨다. 득음은 가창력, 그리고 너름새는 표정과 연기력이다.

 

BTS의 노래와 가사, 군무에는 이 4가지 요소가 모두 구현되어 있다. 방시혁의 외가는 전주에 사는 최씨 집안인데, 이 최씨들이 전주의 공부 잘하는 집안이었다. 방시혁 어머니도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였고 외숙과 이모들까지 포함하면 5명이 서울대를 나왔다고 한다. 큰외숙은 양과(사법·행정) 패스한 다음에 법관을 지냈고, 셋째 외숙은 헝가리 대사를 지냈다.

 

전주는 판소리의 대사습놀이가 열리던 무대였다. 남원에서 연마한 소리꾼이 전주 대사습놀이에 와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아야 명창이 되었다. 최씨 외갓집의 유전자 특징은 음악을 유달리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방시혁 어머니는 시혁이를 배 속에 임신하고 있었을 때도 항상 클래식 음악을 듣고 살았다고 필자에게 말한 바 있다. 어머니는 이 유전자를 꼽는다. 아버지가 사우디 대사관에 근무할 때 방시혁은 사우디에서 학교를 다녔다. 사우디 ‘제다’라는 지역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다녔다고 하는데 항상 반에서 1등을 했다고 한다. 유년 시절에 사우디,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 문화를 접했고, 당시 그리스와 동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행이 다양한 문화 감각을 키웠지 않았나 싶다.

 

방시혁 조부는 풍수 마니아였다. 명당을 찾아 많은 지역 답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동군의 지리산 줄기인 형제봉 중턱의 명당에 윗대 묘를 썼다. “후대에 인물 나올 것이다.” 이 지역은 섬진강이 돌아 나가고, 강 너머로 광양 백운산 봉우리들이 문필봉으로 보이는 지점이라서 필자도 평소에 자주 답사하였던 지점이다. 판소리라는 뿌리, 집안의 아이큐, 교육, 그리고 명당이 합해져서 물건이 나왔다. 그냥 나오는 게 없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일보(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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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예향론(藝鄕論) 

 

[조용헌 살롱] 

 

화가 김병종(69)은 별호가 쌍권총이다. 왜 쌍권총이냐, 그림 그리는 화가이면서 글도 잘 쓰기 때문이다. 필야녹재기중(筆也祿在其中) 팔자다. ‘강호 동양학’을 전문으로 하는 필자가 그의 그림을 놓고 가타부타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가 쓴 글은 나의 사정거리에 들어와 있다. 그가 예전에 쓴 책 ‘화첩기행’도 그렇고, 이번에 낸 ‘시화기행’을 읽다 보니까 대목 대목 통찰이 담긴 섬광이 번쩍거린다. 섬광이 없는 글은 글이 아니다.

 

또 하나 마음에 드는 부분은, 인생의 덧없음을 수시로 느끼는 자가 품어내는 페이소스가 묻어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다가 쌍권총을 차게 되었는가?” “내 고향 남원이 색향(色鄕)이다. 색은 풍요와 풍류를 가리킨다. 춘향전, 흥부전이 그 색에서 나왔다고 본다. 남원 바로 밑의 곡성에서는 심청전이 나오지 않았는가. 판소리도 식후사(食後事)다. 내가 그림 그리고 글을 쓰는 원동력은 남원에 배어 있는 컬러풀한 토양에서 배태되었다”.

 

미국의 재즈 음악이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되어 시카고에 가서 틀을 잡았고, 뉴욕에서 만개하였다. 판소리의 뉴올리언스가 남원이고 시카고는 전주인 셈이다. 대원군의 운현궁은 뉴욕이었다. “판소리 동편제의 메카가 남원이다. 그 이유는?” “남원은 지리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명창이 소리를 한번 토(吐)해 놓으면 ‘3년을 흩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폭포 밑의 공간이 항아리처럼 되어 있어서 소리를 연습하기 딱 좋은 지형이 많다. 그래서 명창들이 남원으로 모여들었다”.

 

어렸을 때 김병종 집 근처에는 명창 안숙선 누님이 살았다. 김병종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소리를 배워 보려고 도통동에 있었던 동편제의 강도근 명창 집을 찾아갔다. “너는 안 되겠다. 눈이 커서 안 되겠어.” 강도근은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공연 요청이 들어오면 옷을 깔끔한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파란 보리밭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중절모에 겨자색 명주 머플러를 휘날리는 장면이었다. 

 

“어디 가세요?” “나 굿(소리)하러 가네.” 회갑 잔치나 집안 잔치를 할 때 소리꾼들을 불렀던 것이다. 김병종은 판소리가 토해 낸 예술혼의 연장선상에서 BTS를 바라다본다. BTS 창업자 방시혁의 뿌리가 남원 주생면이다. 방시혁의 아버지 방극윤(83)은 DJ 정권 때 차관급을 지냈고, 남원 주생면 태생으로 여기에서 수백 년간 세거하던 방씨다. 넷마블의 방준혁도 주생면 방씨 집안으로 알고 있다. 남원은 뿌리 깊은 나무였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일보(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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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 대표 서울대 졸업 축사

 

2002년 3월 일본 도쿄대 졸업식 축사에 나선 고시바 마사토시 명예교수는 "나는 물리학과를 꼴찌로 졸업했다"며 대형 스크린에 비친 자신의 졸업 성적 증명서를 가리켰다. 그는 "졸업 후에 어떻게 능동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했다. 7개월 뒤 그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1964년 졸업식 때는 총장인 경제학자 오코치 가즈오가 "배부른 돼지가 아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했다. 지금도 자주 인용하는 명언이 됐다.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도쿄대 라이벌인 교토대에서는 졸업생들이 온갖 치장을 하고 나타난다. 졸업식장이라기보다 코스프레 경연장 같다. 학생 자치를 제한한 데 반발해서 '자유 학풍'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선 외부 유명 인사가 단골로 등장한다. '해리포터' 작가 JK 롤링은 2008년 하버드대에서 "극도로 몸을 사리고 조심하면 실패는 안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삶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한때 아이가 딸린 실직 이혼녀였기에 축사가 청중의 가슴을 적셨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15년 남부 감리교신학대에서 자신의 C학점을 빗댄 듯 "C학점 받은 분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웃음과 감동을 안겼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항상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고 했고, 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도 당신의 자산이에요"라고 했다.

 

▶과거 우리 대학 졸업식은 살풍경했다. 졸업생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단상을 뒤로하고 앉거나 집단 퇴장한 적도 있었다. 요즘 분위기는 또 변했다. 취업난이 계속되는데 틀에 박힌 축사나 나오는 졸업식장을 졸업생들이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신 가족이나 친구들과 캠퍼스를 돌면서 사진 찍는 게 가장 큰 이벤트다. 지난해 서울대 졸업식장도 절반 이상이 비었다.

 

▶내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을 기획해 '방탄의 아버지' 소리를 듣는 방시혁 대표가 축사를 하기로 했다. 이 학교 미학과를 나온 선배다. 오세정 총장이 지인을 통해 방 대표에게 직접 부탁했다고 한다. 연예계 인사의 졸업식 축사는 드문 일 같다. 때로 졸업식 축사가 졸업생들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울림을 주는 것은 연사의 인생이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 거기서 후학들에게 들려줄 '한마디'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은 모든 이의 소망일 것이다. 방 대표가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기대된다.


-정권현 논설위원, 조선일보(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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