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內-이런저런..]

[‘치매 예방’ 젓가락질] [은수저는 서랍에서 놀고 일은 쇠수저가.. ]

뚝섬 2024. 5. 3. 06:23

[‘치매 예방’ 젓가락질] 

[은수저는 서랍에서 놀고 일은 쇠수저가 다 하는 법]

 

 

 

‘치매 예방’ 젓가락질

 

젓가락의 기원은 3000여 년 전 중국 은(殷)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은의 마지막 왕 주(紂)는 상아로 만든 젓가락을 썼다. ‘상아 젓가락과 옥그릇을 쓰는 사치’라는 뜻의 사자성어 상저옥배(象箸玉杯)가 여기서 비롯됐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젓가락이 출토된 걸로 볼 때 한반도에서도 지배층의 물건이었다.

 

▶오늘날엔 사치스러운 식기란 의미는 없고 능숙하게 쓰기엔 까다로운 도구라는 인식이 크다. 일본과 중국은 나무 젓가락을 쓰지만 한국에선 1970년대부터 나무 젓가락보다 미끄러워 불편해도 내구성 좋은 금속 젓가락을 쓴다. 한국인의 금속 젓가락 다루는 솜씨는 젓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발라낼 줄 아는 일본인들 눈에도 경이롭다. 작은 콩자반, 물컹한 두부는 물론이고, 미끄러운 메추리알과 해삼까지 집지 못하는 게 없다. 젓가락으로 김치를 찢고 깻잎 한 잎을 떼어 숟가락에 얹는 걸 본 일본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한국의 금속 젓가락을 사간다.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와 자신이 하나 되는 경지를 표현했다. ‘구르는 바퀴 앞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중략)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 나간다’고 썼다. 많은 한국인이 젓가락을 잡았을 때 그 비슷한 느낌을 갖는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도 ‘젓가락이 손에서 뻗어나간 손가락처럼 움직인다’며 감탄했다.

 

▶젓가락이 손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아닌 모양이다. 어제 조선일보에 젓가락질이 치매 예방에도 좋다는 기사가 실렸다. 손은 인체 부위 중 가장 많은 27개 뼈가 몰려 있다. 젓가락으로 식사하면 뼈는 물론이고 연결된 64개의 근육과 관절이 함께 움직인다. 반면 포크는 그 절반만 사용한다. 한 연구에선 뇌파를 재보니 포크보다 젓가락을 쓸 때 뇌가 20% 이상 활성화됐다고 한다.

 

▶젓가락의 장점이 많지만 강제로 쓰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수 DJ DOC는 젓가락 사용을 강요 말라며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중략) 나는 나예요 상관 말아요’라고 노래했다. 우리 조상들도 의외로 젓가락 사용에 엄격하지 않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저서 ‘사소절’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한 손에 들지 말라’고만 했다. 김홍도 풍속화엔 한 남자가 젓가락을 X자로 서툴게 쥐고도 반찬을 집어 들며 행복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좋은 사람과 대화하며 즐기는 식사가 건강에 좋다. 그 자리에 젓가락이 도움 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5-03)-

_____________

 

 

은수저는 서랍에서 놀고 일은 쇠수저가 다 하는 법

 

[살림하는 중년 남자] 

 

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식기는 프랑스산 은숟가락이다. 20년 전 결혼 선물로 받은 것인데 보통의 숟가락보다는 크고, 납작한 국자보다는 작다. 숟가락이긴 한데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국물을 뜰 수 없다. 아이스크림을 푸는 숟가락이라고 했다. 이 식기를 만든 회사는 1830년에 창업했다.

 

이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힘주어 푸다 보면 은이 물렁해서 잘 휘어진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는 그냥 스테인리스 숟가락을 쓰게 된다. 귀하신 프랑스산 은식기가 엉뚱한 주인 만나 서랍 속에서 한국산 수저들과 뒹군다. 그런데 구글에 검색해 보니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아이스 스푼이었다. 얼음 뜨는 숟가락이라니, 19세기 프랑스다운 제품이다.

 

은수저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쓰는 물건이다. 시간이 지나면 시커멓게 산화된다. 그럴 때는 베이킹 소다나 치약, 립스틱으로 닦아서 다시 광을 낸다. 세 가지 방법을 모두 써봤는데 립스틱 효과가 가장 좋았다. 이런 방법은 녹을 미세하게 깎아내는 것이어서 식기에 상처가 나게 마련이다. 냄비에 물과 은수저를 담고 알루미늄 포일과 소금을 넣고 끓이면 상처 없이 녹을 없앨 수 있다고 한다.

 

아내가 결혼할 때 가져온 은수저 세트는 아예 포장 그대로 찬장 속에 있다. 가끔 꺼내 보면 역시 거뭇거뭇 녹이 슬어있다. 안 봤으면 모를까, 봤으니 또 치약을 들고 와야 한다. 안 쓰는 립스틱을 찾아보지만 이미 은수저 닦느라 다 써버렸다.

 

여행지에서 기념품으로 사온 식기나 조리 도구들은 대개 서랍 속에서 잠잔다. 예쁘거나 신기해서 산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몽 깎는 칼이나 아보카도 깎는 칼 같은 것들이다. 몇 번 써봤지만 그냥 과도를 쓰게 된다. 앙증맞은 포크나 티스푼 세트들도 이사할 때나 한 번씩 열어보게 된다. 요리 유튜버들이 긴 핀셋으로 고기를 굽는 걸 따라해 보려고 긴 핀셋을 샀는데 내겐 역시 2000원짜리 다이소 집게만 못하다.

 

생각해 보면 비싸고 좋은 식기들은 죄다 서랍 속에 있고 식탁과 싱크대를 오가는 것들은 스테인리스 숟가락, 나무 젓가락, 평범하게 생긴 식칼과 과도, 튼튼한 국자 같은 것들이다. 예쁜 것들은 그냥 예쁨 담당이고 일하는 것들은 모두 평범하고 무난한 것들이다.

 

오늘도 치약을 짜서 은수저를 닦았다. 은수저 닦기 같은 단순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이 집에 살림하러 잡혀와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오늘은 은수저로 밥을 먹어야겠다. 밥 먹고 나서 보드카 한잔 마실 땐 프랑스산 은숟가락으로 얼음도 떠넣어야겠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2-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