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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 덜렁덜렁 전세계약”… 국토장관의 경솔한 발언] ....

뚝섬 2024. 5. 18. 05:20

[“젊은층 덜렁덜렁 전세계약”… 국토장관의 경솔한 발언]

[‘전세 사기’ 100년 역사… 단죄하지 않으면 더 악랄해진다]

[반갑지 않은 ‘월세 시대’]

 

 

 

“젊은층 덜렁덜렁 전세계약”… 국토장관의 경솔한 발언

 

부장검사도 사기를 당한다. 얼마 전 퇴임한 검찰 간부는 10여 년 전 서울의 한 검찰청 부장검사일 때 지인에게 속아 690만 원을 떼였다. 사기꾼들을 숱하게 감옥에 보냈던 그마저 사기를 피하지 못했다. 작정하고 덤벼드는 사기범 앞에선 학력이나 사회 경험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심하고 경계해도 한순간에 당할 수 있는 게 사기 범죄다.

▷전세사기 대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 박상우 장관이 최근 기자들과 차담회를 했다. 보증금 8400만 원을 날린 대구의 30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해 8번째 ‘전세사기 사망자’가 나온 지 10여 일쯤 되던 날이었다. 박 장관은 피해자 지원 관련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 전에는 전세를 얻는 젊은 분들이 덜렁덜렁 계약을 했던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꼼꼼하게 따지는 인식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날 간담회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국토부가 원래 피해자 주거지원대책을 발표하려다 돌연 취소하고 차담회로 대체한 것이어서 장관이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을지 기대하던 참이었다. 박 장관은 이날 50분간 많은 얘기를 했지만 ‘덜렁덜렁 계약했다’는 한마디가 피해자들 가슴에 비수로 박혔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인식이 엿보이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국토부는 “이전 전세계약 과정에 허점이 상당했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피해자들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요즘 전세사기는 세입자가 대비한다고 피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업자가 처음부터 짜고 치밀한 각본에 따라 세입자를 속이는 경우가 많다. 계약을 하고 보니 가짜 주인이거나, 동일 매물 다중 계약, 계약 직후 임대인 변경 등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이러니 누구보다 악착같이 미래를 준비해 온 젊은이들도 속절없이 당했다. 한 간호사는 휴일 없이 맞교대 근무를 하며 7년간 모은 결혼자금 수천만 원을 잃었고, 조종사를 꿈꾸며 월급을 모아 온 30대 청년은 훈련비로 쓸 5800만 원을 전세보증금으로 날린 뒤 빚을 갚기 위해 비행기 대신 원양어선을 타고 있다고 한다.

전세사기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제도의 실패가 낳은 지능 범죄다. 주무 장관이라면 누구보다 철저히 이런 관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박 장관은 그날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피해자들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고 했지만 이후 질의응답에서 나온 ‘덜렁덜렁’ 발언은 경솔했다. 올 1월 부산지법의 한 부장판사가 전세사기 사건 주범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한 뒤 방청석의 피해자들에게 건넸던 말이 떠오른다. “절대로 여러분을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뭔가 부족해서 피해를 당한 게 아니란 점을 반드시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신광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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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100년 역사… 단죄하지 않으면 더 악랄해진다

 

대규모 전세 사기 후폭풍 부동산시장에 영향은? 

 

전세 사기가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전세 사기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도전하는 중대 범죄다. 조직 범죄이자 ‘보증금 편취’를 노리는 금융 사기이며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사회적 재난이다. 따라서 전세 사기가 무엇인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지난해 4월 전세 사기 피해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여성 A씨의 인천 미추홀구 자택 앞. 현관문에 전세 사기 피해 대상 주택 안내문과 함께 수도요금 체납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다. 악질 임대인, 이른바 ‘빌라왕’에게 당한 무수한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박상훈 기자 

 

전국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조직 범죄

 

현재 전세 사기는 수도권, 지방 할 것 없이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2400여 채에서 550억원 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대전에서는 LH의 전세 임대주택 지원 제도를 악용한 사건으로 최소 600명의 임차인 피해자가 발생하였고 1000억 규모의 전세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았다. 부산에서는 집주인이 170억원대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고 잠적한 사건이 있었으며, 수원에서는 정씨 일가가 무자본 갭투자로 800여 채에서 225억원을 편취했다. 수도권 일대에서는 ‘빌라왕’ 김대성이 2017년부터 신축 빌라를 대상으로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전세 사기를 벌여, 1244명이 2300억원대 피해를 보았다.

 

전국에 걸쳐 수백억~수천억원 규모로 발생하는 전세 사기 사건은 건물주 혼자 벌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감정평가사, 분양 대행업자, 공인 중개사, 은행원 등 다양한 조력자들과 결탁한 조직 범죄 양상을 띠고 있다. 검찰 역시 ‘범죄 집단’으로 인식하고 사건을 기소 중이다.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는 네이버 등 여러 플랫폼에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하지만 전세 사기의 표적인 다가구·다세대·빌라(특히 신축 빌라)는 가격 정보가 공시된 곳을 찾기 힘들다. 세입자들은 해당 주택의 적정한 매매가와 전세가를 알기 어렵고, 그 전세금이 시세보다 높은지, 전세 가격과 매매 가격의 차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모르는 채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

 

반면 건축주나 건축주와 한 패인 분양 대행업자, 공인 중개사는 정보를 통제하고 적극적 사기 행위를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건축주의 요청을 받은 감정평가사가 2억원 상당 주택을 3억원으로 평가하는 ‘업(up) 감정’이 존재한다. 건축주와 한 패인 공인 중개사는 매매 가격 3억원과 같은 액수만큼의 전세 가격으로 세입자를 구해 온다. 가치를 부풀린 전세 계약이 체결되면 건축주와 분양 대행업자, 공인 중개사는 수익을 나눠 챙긴다. 공인된 자격증을 가진 다양한 전문가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조직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거래 관계를 손상하는 이런 ‘미들맨’에 대한 강력한 법적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없는 집을 방세 – 무지한 노파를 사기하여” 조선일보 1933년 7월 30일자

 

◇1933년부터 시작된 전세 사기

 

청년과 서민들을 떨게 하는 전세 사기는 갑작스레 나타난 사회문제가 아니다. ‘전세 사기’ 키워드로 과거 신문 기사를 검색하면 1933년 전세 사기에 관한 첫 기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일보 1933년 7월 30일 자 기사를 보자. 사기꾼 N씨가 K씨 소유 가옥을 매입하기로 약정하고 월부로 대금을 납부하기로 한다. 그런데 대금을 완납하지 않고도 N씨는 소유주 행세를 하며 노인에게 집 한 칸을 전세 놓고 전세금을 편취하여 도주한다. 즉 매매 계약이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소유자 행세를 하며 전세금을 가로챈 것이다. 이 전세 사기 방식은 지금도 전형적 수법의 하나다.

 

전세 사기 수법은 점차 복잡한 양상을 띠며 진화한다. 조선일보 1938년 4월 6일 자 기사는 제목부터가 ‘전세 사기한(꾼)’이다. 집주인 C씨는 본인 주택을 동경 건물 회사에 저당을 잡히고 3000원을 빌린다. 그러고 돈을 일부러 갚지 않고 경매에 넘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숨긴 채 3명에게 전세를 주어 보증금 950원을 편취한다. 회사가 빌려준 3000원과 세입자 보증금 950원을 빼앗은 것으로, 주택 담보 금융까지 편취하는 방식으로 규모가 확대된 것이다. 현재 선순위 기망형 전세 사기와 같은 방식이다.

 

전세 사기는 1950년대에도 발생하였고, 1970년대에 지속적으로 나타났으며, 1981년 전후에는 악질적 전세 사기가 지면을 장식했다. 1972년 “아파트 사기 잇달아”(경향신문 1972.07.24.) 기사를 보면 건축주가 아파트 건물과 대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거액을 융자받고 입주자들에게 입주금과 전세금을 받은 뒤, 은행 대출을 상환하지 않고 도주하였다.

 

148억원대 전세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른바 '건축왕'에게 사기죄의 법정최고형이 선고된 2024년 2월 7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가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법원은 전세사기 건축왕 남모씨에게 사기죄 법정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범죄 수익 115억원 추징을 명령했다. /연합뉴스 

 

지난 100년간 발생한 전세 사기 수법은 현재와 구조가 흡사하다. 다만 제도 개선이 미비한 틈을 타 더 극악한 방식으로 대형화, 조직화, 지능화하고 있다. 건축주가 감정평가사와 결탁하여 가치를 부풀리고, 분양 대행업체와 공인 중개사에게 수수료를 주고 MZ 세입자를 꾄 후, 건물 가치보다 훨씬 높은 액수의 전세 계약을 성공시키고 수익을 나눠 갖는다. 그러고 건축주는 그 건물을 새로운 주인(어떤 경우는 노숙자)에게 매도하고 잠적한다.

 

과거에는 악덕 건축주와 세입자의 관계였다면, 현재는 건축주가 전세 계약 체결과 동시에 새로운 집주인(바지 사장)과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본인은 빠지면서 (대개 돈이 없는) 바지 사장과 세입자의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범죄의 마스터 플래너인 (전세금을 받고 건물을 매도한 옛) 건축주는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 전세 제도 개선을 소홀히 하고 건축주를 단죄하지 않는다면, 더 악랄한 전세 사기 수법이 등장하여 서민들을 괴롭힐 것이다.

 

전세 사기를 개인 잘못으로 돌리는 독자가 있으리라 본다. 그런데, 만약 그 독자가 다가구와 다세대의 차이를 모른다면 그도 전세 사기 표적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 다가구가 전세 사기의 주요 대상이 되는지, 전입신고를 제대로 해도 전세금을 날릴 수 있는지, 전세 사기가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은 다음에 설명하겠다.

 

-김경민 서울대 교수·도시계획전공, 조선일보(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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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지 않은 ‘월세 시대’

 

대출금리·전셋값 상승 여파에 5월 임대차 계약 60%가 월세
부동산 失政이 만든 ‘전세 소멸’
서민 ‘주거 사다리’ 다시 놓아야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월세 안내문이 붙어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5월 전국의 전월세 거래량 중 59.5%(24만321건)이 월세 거래량인 것으로 나타났다./뉴시스

 

전세(傳貰)는 영어로도 전세(jeonse)다. 우리말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은 유독 한국에서만 성행하는 주택 임대차 방식이어서 영어 단어로는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집주인에게 목돈을 맡긴 전세 세입자는 계약 기간 거주하고, 퇴거할 때 보증금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외국인들이 “공짜로 집을 빌려 쓰는 것이냐”며 신기해하는 부분이다.

 

목돈 마련이 관건이지만, 세입자는 집을 사들이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내 집처럼 안정적 주거 환경을 갖출 수 있다. 다달이 들어가는 주거비가 없어 전세는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저축의 의미도 컸다. 사글셋방을 거쳐 전셋집을 마련하고, 오랜 전세살이 끝에 내 집을 장만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대다수 서민이 꿈꾸는 ‘성공 방정식’이었다.

 

전세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19세기 말 개화기 때도 유행했다고 한다. 이후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보편적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전세가 대세였던 임대차 시장이 최근 빠르게 월세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에서 전·월세 거래가 총 40만4036건 이뤄졌는데, 월세가 59.5%(24만321건)로 전세(16만3715건) 거래량을 크게 앞질렀다. 월세 비율은 올해 4월 50.4%로 사상 처음 전세를 역전했는데, 불과 한 달 사이에 10%포인트 가까이 더 올랐다. 셋집을 얻은 10명 중 6명은 보증금에다 매달 월세까지 내는 방식으로 계약했다는 뜻이다.

 

이런 변화는 급격한 전세 대출 금리 상승과 연관이 있다. 전세 보증금 1억원을 마련해야 하는 세입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은행권 전세 대출 금리가 5%(고정 금리, 2년 분할 상환) 정도니 매달 이자만 41만6000원쯤 내야 한다. 그런데 보증금 1억원을 월세로 돌리면, 전·월세 전환율 4.2%(서울 아파트 기준)를 적용해 월세가 35만원 책정된다. 은행에 대출 이자를 갚는 것보다 집주인에게 월세를 주는 게 이득이다.

 

전세에도 단점이 있다.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전세 사기’가 끊이지 않고,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 때문에 집값이 들썩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세 제도가 시장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 세입자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이 더 많다고 본다. 보증금과 월세 규모를 조절해 자기 여건에 맞는 집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돈 마련하는 게 편하면 전세를, 당장 목돈이 부족해도 고정적 수입이 있다면 월세를 택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부동산 정책 실패 탓에 선택 여지 없이 전세에서 월세로 내몰리는 세입자가 많아진 것이다. 급격한 전세의 월세화가 반갑지 않은 이유다. 일단 전셋값이 너무 올랐다. KB국민은행이 조사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2020년 6월 4억9148만원에서 지난달 6억7792만원으로 2년 동안 38%나 올랐다.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등을 담은 주택임대차법 개정 후 전셋집 품귀 현상이 벌어진 여파다. 지난 정부 때 급격히 불어난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기려는 집주인 때문에 월세로 밀려난 경우도 흔하다.

 

우리나라에서 전세가 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전히 많은 서민이 주거 여건 상향을 위한 ‘사다리’로서 월세 아닌 전세를 찾는다. 최근 전셋값 상승세가 꺾였다지만, 새로 전셋집을 구하는 세입자는 이전 계약 때보다 ‘억 소리’ 나게 오른 시세에 절망한다. 정부와 여당이 나서서 지난 2년간 전세 시장 불안의 빌미가 된 주택임대차법을 다시 손보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진중언 기자, 조선일보(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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