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꺼풀 수술비와 비슷한 뇌 수술 수가 ]
[사라지는 원조 외과 백병원]
[줄줄 새는 건보재정 손봐서 빈사 직전 ‘필수의료’ 살리라]
[공급 달리는 필수 의료]
쌍꺼풀 수술비와 비슷한 뇌 수술 수가
“자연분만은 사람이 32만원대인데 강아지는 20만원이고, 제왕절개는 36만원대로 강아지의 50만원보다 적다.” 5년 전 한 산부인과 관련 의학회 회장이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분만 수가 정상화를 호소하며 든 예다. 10일 이 의사에게 연락해 보니 “워낙 아우성을 치니 분만 수가를 좀 인상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라고 했다. 병원 수가는 정부가 정해 주지만 동물병원 비용은 자체적으로 정하는 구조다.
▶수가(酬價)는 의료 행위 대가로 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이다. 이 중 환자가 부담하는 것은 20% 정도다. 필수 의료 의사들은 이 수가가 너무 낮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사망했을 때 뇌동맥류 수술 수가가 도마에 올랐다. 이 수술 수가는 290만원대로 쌍꺼풀 수술 비용과 비슷하다. 일본의 뇌동맥류 수술 수가는 1200만원, 미국은 6000만원 정도다. 한국 맹장 수술 수가도 30만~60만원이다. 어떻게 위험한 수술이 쌍꺼풀 수술의 5분의 1일 수 있느냐고 의사들이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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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합 수술 수가는 청바지 꿰매는 비용과 비교되곤 한다. 의사가 찢어진 피부를 봉합하는 수술 수가는 2만~6만원에 불과하다. 요즘 좋은 청바지를 수선하는 데 몇 만원은 들 것이다. 반려견 때문에 상처가 나서 동물병원에 가면 몇 cm만 꿰매도 몇 십만 원이 나올 수 있다. 심지어 봉합 실 가격도 비싼 것은 몇 만원이라 수술 가치가 실에도 못 미치느냐는 한탄도 한다.
▶조선일보에 대장암 수술 수가가 250만원인데 도수 치료(손으로 하는 치료) 10회 비용과 같다는 기사가 실렸다. 대장암 수술은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급여 항목이지만 도수 치료는 비급여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소아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수가를 진작 현실화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근본 개선을 하지 않고 찔끔 처방만 반복해 온 복지부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의료계 책임도 크다. 평가 개선을 하려면 의사들이 각 의료 행위 업무량 등을 알려줘야 하는데 의사 진료 과목별 이해관계 때문에 의사협회가 한 번도 제대로 된 조정안을 내지 않았다. 건보료를 한없이 올릴 수 없는 만큼 의료 행위별 높낮이 조정이 불가피한데 무조건 수가만 올리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 수가 현실화에 어느 정도 국민적 합의가 있는 지금이 호기일 수 있다. 의대 증원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할 필수 의료 수가 인상과 다른 수가 조정에 의료계가 적극 나서야 한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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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원조 외과 백병원
의료계에서는 맹장염을 흔히 ‘아뻬’라고 부른다. 맹장염 즉 충수돌기염의 영어 의학용어 ‘아펜디사이티스’에서 앞글자를 따왔다. 제왕절개도 ‘시자리언 섹션’을 줄여서 ‘시섹’이라고 말한다. 외과로 출발한 백병원과 산부인과로 시작한 을지병원이 예전에 서울 시내에 있었는데, 백병원으로 가는 앰뷸런스는 “아뻬! 아뻬!”하면서 가고, 을지병원 쪽은 “시섹! 시섹!” 하며 간다는 말이 있었다. 두 병원이 이 수술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백병원 설립자 백인제 박사는 외과의사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서울의대 전신 경성의전을 졸업했다. 3·1운동에 참여해 10개월 옥살이도 했다. 도쿄대에서 박사를 따온 후, 경성의전 외과학 주임교수가 됐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배를 여는 개복수술을 했다. 일제 말에 지금의 명동성당 옆 백병원 자리에 문을 연 백인제 외과에는 전국 팔도에서 맹장염 환자가 몰려와, 일주일에 떼낸 맹장이 한 가마니를 넘었다고 한다.
▶1980년대 백병원은 한국 성형수술의 메카였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백세민 교수가 마법 같은 수술을 하면서, 안면 기형 등 성형외과 입원 환자가 100명을 넘는 일이 벌어졌다. 백 교수는 백인제 박사와 인척 관계가 아니었다. 하루에 안면 윤곽 수술 등 얼굴뼈 바로잡는 수술이 20여 건이 이뤄졌다. 수지 접합, 현미경 수술 등 최초·최고가 따라붙었다. 성형외과 교수가 20~30명에 달했고, 이들 백세민 사단은 전국으로 흩어져 뼈를 다루는 성형외과를 이끌었다.
▶백병원, 차병원, 길병원 등은 의원에서 시작해 의과대학병원이 됐다. 그래서 의료계에서는 병원 이름을 한 글자로 지어야 의과대학이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림대, 순천향대, 건국대, 건양대 등도 병의원에서 시작해 대학이 됐다. 그 원조 격인 서울 백병원이 개원 82년 만에 사라질 위기다. 누적 적자 1745억원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다. 도심 인구 공동화로 환자가 줄어든 데다, 경영 부실이 겹쳤다고 한다.
▶백병원의 모(母)대학 인제대는 설립자 백인제 이름에서 따왔다. 창립 이념은 인술로 세상을 구한다는 인술제세(仁術濟世)다. 1990년대 서울 백병원은 외과, 흉부외과, 성형외과 등 외과 트로이카 병원으로 명성을 날리며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백인제 박사는 한국판 슈바이처로 불리는 외과의사 장기려 박사를 제자로 키웠다. 그 손자는 지금 백병원 외과 교수다. 원조 외과 병원이 사라지는 사실이 요즘 외과의사 부족 현상과 겹쳐 아쉬움을 남긴다.
-김철중 논설위원·의학전문기자, 조선일보(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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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건보재정 손봐서 빈사 직전 ‘필수의료’ 살리라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차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조 차관은 장관이 공석인 만큼 업무보고에 대신 참석했다. 2022. 08. 19. 대통령실 제공
보건복지부가 어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방만한 건강보험 지출을 재조정해 뇌동맥류 개두술 같은 위험도가 높은 분야나 소아과 산부인과 등 저출산으로 적자가 심한 분야에 집중 지원하는 대책을 이르면 다음 달까지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적은 의료비로 암 사망률을 최저로 유지하는 ‘가성비’ 높은 의료 선진국이지만 필수의료 쪽 진료 체계는 붕괴 직전이다. 벌이가 좋고 시간 여유가 있는 일명 ‘피안성정’(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형외과)에는 의사들이 몰리는 반면 돈은 안 되고 업무 강도와 소송 위험만 높은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는 의사가 없어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 머리를 여는 고난도 수술 비용과 쌍꺼풀 재수술 비용이 비슷할 정도로 왜곡된 의료수가 체계 탓이다.
소아청소년과는 올해 전공의 확보율이 30%도 안 된다. 소아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는 곳은 전국 상급병원 96곳 중 40%에 불과하다. 분만을 포기하는 의사들이 늘면서 분만 가능한 병원이 2003년 1373개에서 지난해 474개로 쪼그라들었다. 한 해 배출되는 외과 전문의는 30년 새 거의 반 토막이 나 10년 후면 맹장이 터져도 응급 수술이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그동안 필수의료를 고사시키는 비정상적인 의료수가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정부는 이번 간호사 사망 사건처럼 문제가 불거지면 해당 분야의 수가만 인상하는 식의 땜질 처방으로 사태를 악화시켜 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료의 위험도와 중요도에 따라 수가 체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필수의료 인프라 붕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건보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필수의료 분야는 재정난을 호소하는 반면 보험 혜택을 주는 진료 분야를 대폭 확대한 ‘문케어’ 도입 이후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건수가 2배 넘게 늘어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렇게 불필요한 검사에 지출된 건보 재정이 3년간 1600억 원이 넘는다. 건보지출 개혁으로 재원을 마련해 필수의료와 의료 취약지역의 투자를 늘려야 할 때다.
-동아일보(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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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달리는 필수 의료
의사 면허를 따면 대학병원서 숙식하며 배우는 인턴을 하는데, 이들 숙소에 가면 전문의별 월급 랭킹이 걸려 있다. 특정 분야 전문의가 되는 레지던트를 지원할 때 참고하라는 뜻이다. 거기서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이 인기라는 말이 나온다. 대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거나, 제도적으로 의무 채용이 많은 과이거나, 검사로 먹고사는 한국 병원 구조와 관련 있다.
▶미국 전문의 소득 랭킹을 보면 우리와 좀 다르다. 거기도 성형외과가 1등이지만, 그다음이 정형외과, 심장내과, 비뇨기과, 이비인후과, 영상의학과, 소화기내과, 종양내과 순이다. 한국서 인기 적은 외과, 호흡기내과, 병리과, 산부인과 등도 평균 위에 놓여 있다. 미국은 생명을 다루는 분야에 보상을 충분히 해주고, 외과의사별 수술 사망률을 공개하는 식으로 의료 질 관리를 철저히 한다.
▶피부 미용, 비만 치료 간판의 클리닉 의사 대다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주치의 제도도 없는데 가정의학과 의사가 한 해 250~300명 나온다. 신규 전문의의 약 10%로, 외과보다 많다. 전국 보건소 의사의 2% 정도가 가정의이고, 서울 지역 가정의 다섯 중 하나는 강남구에 있다. 가정의학과가 미용 의료 진출 루트라는 말이 나온다. 필수 의료 분야 의사가 모자란다고 하면서, 왜 가정의학과 전공의는 한 해 300명을 뽑는지, 설명이 안 된다.
▶국내 의사 양성 운용 체계를 보면, 이해 가지 않는 게 한둘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데,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는 없다. 지방은 점점 무의촌이 돼가고 있는데, 지역 근무 의료인에 대한 지원 제도가 없다. 뇌종양, 뇌혈관, 어깨, 팔, 발, 무릎, 위장, 대장, 췌장 수술 의사가 다 따로따로 배출된다. 이러다 엄지 수술 의사, 약지 수술 의사가 나올 판이다. 자기 세부 전공이 아니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의 환자 수술도 못 하는 분위기다.
▶응급 수술이 많아서 삶의 질이 나쁘거나, 분만 사고처럼 의료 분쟁이 나면 거액 배상을 해야 하거나, 중환자의학처럼 스트레스 받으며 한 일에 비해 보상이 적은 분야에 의사가 없다. 진료에 반드시 필요하나 경제성이 없어 생산 또는 수입을 기피하는 약제를 정부가 별도 지원하는 퇴장 방지 의약품 제도가 있다. 분야별로 충분히 공급되어야 할 의료 행위도 정부가 정해서 지원하는 퇴장 방지 의사 제도가 필요하다.
-김철중 논설위원·의학전문기자, 조선일보(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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