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속 공공요금 동시 인상, 경제에 악순환 만들 수도]
[한은, 등 떠밀린 빅스텝… 또 방심하다 정책 실기 말아야]
[‘기준금리 3% 시대’ 기업 활력 북돋아 ‘경제 겨울’ 넘어서자]
[IMF “내년 더 침체”, 이런 ‘위기 불감증’으로 어떻게 헤쳐가나]
[“아직 최악 아니다”… IMF가 예고한 암울한 내년 경제]
[노벨상 받은 ‘헬리콥터 벤’]
경기 침체 속 공공요금 동시 인상, 경제에 악순환 만들 수도
물가 상승, 인건비,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영업 단축이 늘어나는 가운데 7일 서울의 한 식당에 영업시간 변경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3.02.07. /뉴시스
올겨울 서민 가계를 직격했던 ‘난방비 폭탄’에 이어 각종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지난 1월 전기료 인상에 이어, 2월 들어선 서울 택시 요금이 인상됐다. 서울 버스 요금은 4월 말 300원 인상이 예정돼 있고, 서울 지하철 요금도 300원 올리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원가 상승분이 아직 덜 반영된 전기·가스 요금 등의 추가 인상도 불가피하다. 작년 38% 올랐던 가스 요금은 1분기엔 동결됐지만 2분기부터 다시 올라갈 전망이다. 공공요금발(發) 인플레이션이 닥쳐오고 있다. 실제 지난해 7월 6.3%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2월 5.0%로 꺾였는데 올 들어 1월에 5.2%로 다시 반등했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 요금이 1년 전보다 28.3% 오른 때문이다.
공공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데다, 원가 이하의 낮은 가격을 유지해온 ‘정치 공공요금’ 포퓰리즘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유럽연합의 3분의 1 수준인 전기 요금은 말이 되지 않는다. 국제 LNG 가격이 3배 오르는 동안 한 번도 올리지 않은 가스 요금, 연 1조원 적자를 내면서도 65세 이상 무임승차 제도를 39년째 유지한 서울 지하철 등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치적 요금 체계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포퓰리즘 유혹을 뿌리치고 요금을 현실화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큰 틀에서 옳다. 하지만 정책에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라도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는 ‘인플레이션 방어’ 정책을 펴오다가 한꺼번에 고삐 풀린 듯 공공요금을 동시에 올려 ‘공공요금발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정책은 모순처럼 보인다.
공공요금 인상은 다른 품목 가격을 연쇄적으로 높이기 때문에 경제에 주는 부담이 크다.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내수마저 침체되면 경기 침체 속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하기 힘들게 된다. 내수 침체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도 있다. 경제에는 심리도 중요한 만큼 국민에게 공공요금 인상의 부담을 한꺼번에 지워 과도한 경기 위축을 자초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동시다발적 인상 대신 인상 시기를 조율하는 등 경제 운용의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조선일보(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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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등 떠밀린 빅스텝… 또 방심하다 정책 실기 말아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어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사상 처음 5번 연속으로 금리를 올렸을 뿐 아니라 7월 0.5%포인트 인상 이후 석 달 만에 인상 보폭을 키웠다. 높은 물가와 ‘강달러’의 영향으로 치솟는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경기침체와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로 소폭, 점진적 인상을 고수하려다가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에 등이 떠밀려 다시 빅스텝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인상으로 한국의 기준금리는 2.5%에서 3.0%로 높아졌다. 3%대 진입은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이다. 한은 목표치 2%를 크게 웃도는 5%대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으로 인상은 예고된 것이었다. 게다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벤 버냉키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매우 강한 달러 때문에 아시아 등 신흥시장이 자본유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할 정도로 환율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 역시 환율이 폭등하면서 원유, 원자재 수입 부담이 커졌고 무역적자까지 급증하고 있어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한은이 작년 8월부터 기준금리를 높이기 시작했는데도 올해 3월부터 올린 미국에 추월당해 한미 금리가 역전됐다는 점이다. 3.0∼3.25%인 미국 기준금리는 여전히 한국보다 높고, 연내 두 차례 추가 인상으로 연말에 4.5% 수준까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한은이 올해 금리를 올릴 마지막 기회인 11월에 큰 폭으로 인상해도 따라잡는 게 어렵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미국이 지난달까지 0.75%포인트씩 3연속으로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이창용 한은 총재와 금융통화위원들이 오판했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8월 말 “물가가 잡힐 때까지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고 발언했을 때도 이 총재는 “한국 금리를 더 빠르게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하겠다”는 사전 예고를 뒤집으면서 이번에 큰 폭으로 금리를 올려야 했다.
한은의 판단 착오와 실기가 반복되면 국내외 금융시장의 신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외환보유액은 부족하지 않다” “연간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된다”는 한은 발표마저 시장이 믿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기준금리와 관련해 한은은 더 이상 섣불리 상황을 예단하거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신속하고 유연하게 물가와 환율 변동에 대처해야 한다.
-동아일보(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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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3% 시대’ 기업 활력 북돋아 ‘경제 겨울’ 넘어서자
한국은행이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며 10년 만에 기준금리가 3%까지 올랐다. 이날 서울의 한 시중은행 외벽에 대출이자 관련 현수막이 붙어있다./연합뉴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응해 한국은행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또 0.5%포인트 올렸다. 5차례 연속 인상으로, 이에 따라 10년 만에 ‘기준금리 연 3%’ 시대가 돌아왔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5회 연속 올린 것도, 한 번에 0.5%포인트씩 올리는 ‘빅 스텝’을 2회 단행한 것도 처음이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연내 금리를 최소 0.7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높아 우리도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10여 년에 걸친 저금리 잔치가 끝나고 고금리 시대가 본격화했다.
이번 금리 인상만으로도 가계·기업의 이자 부담이 연간 12조원 추가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빚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 취약 계층과 한계 기업부터 타격을 준다. 은행권 전세 대출 170조원 가운데 62%가 자금 여력이 낮은 2030세대에 몰려있다. 100조원에 육박하는 전세 대출을 안고 있는 2030세대나 빚으로 연명하는 자영업자들이 당장 이자 부담에 휘청거릴 것이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전체 기업의 15%에 달한다. 중소기업은 100곳당 16곳, 대기업은 12곳꼴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한계기업 비율은 올 연말엔 19% 수준까지 올라갈 전망이라고 한다. 그동안 초저금리로 근근이 버텼는데 경기 둔화와 환율 상승,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부담이 가중된 데다 이자 비용까지 급증한다면 빠른 속도로 부실에 내몰릴 것이다. 채무 재조정 제도 확충을 비롯한 취약층과 한계기업 지원책이 시급하다.
고금리의 가장 큰 위험은 실물경제 침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는 소비를, 기업은 투자를 꺼리게 되고 성장률 저하로 이어진다. 국제 에너지난,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공급망 재편 등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외부 악재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준다. 금리 인상까지 본격화되면 경제가 활력을 잃고 급속한 침체에 빠져들 위험성이 크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소득이 줄어드는 경기 침체의 겨울이 닥쳐올 것이다.
금융 불안과 실물경제 침체가 동시 진행되는 복합 위기 앞에서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정책 카드도 많지 않다. 전 세계가 금리를 올리는데 우리만 낮출 수도 없고, 인플레이션 속에서 재정 자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기도 어렵다. 금융·재정 수단이 제한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공급 측면에서 민간의 활력을 살리는 것뿐이다.
국회에 발목 잡혀 있는 법인세 감세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을 키워줘야 한다. 거대 야당은 과격 노조의 일탈을 부추길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비롯해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 입법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이런 법안들은 경제 침체를 더욱 심화할 것이다.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를 풀고 각종 장벽과 문턱을 낮춰 부담을 덜어주면서 혁신의 힘으로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많은 위기를 넘어 온 한국 경제는 모두 힘을 합치면 이번에도 파고를 넘을 수 있다.
-조선일보(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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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내년 더 침체”, 이런 ‘위기 불감증’으로 어떻게 헤쳐가나
국제통화기금이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하향 조정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3.2%)보다 0.5%포인트 낮은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세계적인 금리 인상,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 중국 경제 침체 등으로 세계 경제 침체가 내년에 본격화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다. 사진은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가 연례 총회에서 발언하는 장면./연합뉴스
국제통화기금(IMF)이 당초 2.9%로 예상했던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낮추었다. 올해 성장률보다 0.5%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IMF는 한국의 성장률도 올해 2.6%에서 내년엔 2.0%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월가의 시각을 대표하는 JP모건 회장은 “미국 증시가 20% 추가 하락할 것”이라 했고,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벤 버냉키 전 미 연준 의장은 “아시아 등 신흥시장의 자본 유출 위험”을 경고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내년엔 더 나빠진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이미 외부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국제 무역 위축 등의 악재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다. 외환 위기 이후 25년 만의 6개월 연속 무역적자, 환율 1400원 선 붕괴, 외국인 투자금 이탈, 증시 시가총액 630조원 증발 등 경제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강달러에 따른 환율 급등은 대부분 나라가 마찬가지지만 원화 가치 하락과 주가 급락은 다른 신흥국보다 더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대외 환경이 더 악화되면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
기업과 가계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 고통을 강도 높게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 위기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정치권은 정쟁만 벌이고 있다. 그 내용도 경제가 아니라 단세포적이고 유치한 정치 싸움이다. 연일 이어지는 환율 불안, 주가 급락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위기 관리 능력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걸 나타내는 방증일 수 있다.
외환 위기 때의 ‘전 국민 금 모으기 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권·정부·기업·국민 모두가 위기감을 공유하고 총력 대응에 나선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면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선 정치권부터 소모적 정쟁을 중단하고 여야를 망라한 위기 공동 대응 체제를 갖춰야 한다. 정부는 시장 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는 고강도 대책을 더 빨리 실행해야 한다. 그래야 가계와 기업도 임금 인상 자제, 원가 상승 요인 흡수 등 고통 분담 호소에 호응할 것이다.
-조선일보(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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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최악 아니다”… IMF가 예고한 암울한 내년 경제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0.1%포인트 낮은 2.0%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을 빼면 10년 만에 최저다. 미국 유로존 중국의 내년 성장률도 각각 1%, 0.5%, 4.4%에 머물 것으로 내다보면서 IMF는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무역수지 연간 적자는 사상 처음 3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로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한 영향을 받아 어제 코스피는 2,200 선이 무너지고,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로 치솟았다.
IMF는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0.2%포인트 낮추면서 이유를 고물가, 중국의 부동산 폭락,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꼽았다.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경제의 30%를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고,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 통제로 유럽 경제의 어려움도 이어진다는 뜻이다. 내년에 한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들이 모두 심한 침체를 겪고, ‘킹 달러’로 인한 환율 불안과 높은 수입 원자재 가격이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에 닥칠 위기의 징후도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달까지 6개월 연속 적자였던 무역수지는 이달 1∼10일에도 38억 달러 적자를 냈다. 올 들어 누적된 무역적자가 327억 달러로 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연간 적자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물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위기는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중첩된 복합위기라는 게 특징이다. 달러가 바닥난 여러 신흥국들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최근 파운드화 폭락 사태를 겪은 영국은 다시 국채 가격이 폭락하며 당장이라도 금융위기가 닥칠 분위기다.
세계는 이미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 ‘뉴 노멀’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경기침체와 실업률 증가를 감수하고라도 금리를 높이지 않으면 물가, 환율까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는 미중 기술패권 전쟁 틈새에 끼이고,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치이고 있다. 이번 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모든 경제 주체가 단단히 마음먹고 어려움을 조금씩 더 감수해야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동아일보(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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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받은 ‘헬리콥터 벤’
‘불확실성의 시대’(1977년)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1927년 대폭락’(1955년)에서 주장한 이후 대공황의 원인으로 상식처럼 굳어진 견해가 투기 과열과 이로 인한 주식시장의 붕괴다. 그러나 밀턴 프리드먼은 1963년 안나 슈워츠와 함께 ‘미국 통화의 역사, 1867∼1960’이라는 책을 써서 대공황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서툰 긴축 통화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통화주의의 시작이다.
▷프리드먼의 90세 생일을 축하하는 학술 행사가 2002년 열렸다. 당시 연준 이사였던 벤 버냉키는 그 행사에 참석해 “당신이 쓴 책에 빠져 통화사를 공부했다”면서 “대공황과 관련해 당신이 옳았다. 우리(연준)가 죄송하다. 당신 덕분에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연설을 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08년 버냉키는 연준 의장으로서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가 찾아왔을 때 헬리콥터에서 뿌리듯 돈을 풀어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미국과 세계 경제를 구했다. 연준 의장은 대부분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건 버냉키가 처음이다.
▷버냉키는 하버드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MIT는 폴 새뮤얼슨이 1940년대 하버드대에서 옮겨온 이후 케인스주의를 주도했다. 그러나 버냉키가 입학한 1970년대 중반에는 이미 케인스주의에 의문을 품은 시카고학파의 신고전주의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케인스주의에도 반(反)케인스주의에도 동의하지 않고 케인스주의와 신고전주의의 종합을 추구했다.
▷버냉키는 대공황 연구를 거시경제학의 성배(聖杯)로 여겼다. 지질학을 연구하려면 지진을 연구해야 하듯이 경제학을 이해하려면 대공황을 연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2000년 ‘대공황 연구’란 책을 통해 연준이 주식시장의 투기적 과열에 대한 경계심으로 성급히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바람에 대공황을 격화시켰다는 논거를 집대성했다.
▷그러나 버냉키의 ‘통화주의’는 프리드먼적이라기보다 케인스적이다. 그의 통화주의는 케인스식 재정 부양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재정 부양을 동반한 것이다. 돈을 풀었으면 제때 회수해야 하는데 경기가 다시 침체로 빠져들까 계속 우려하면서 회수를 주저한 태도도 프리드먼적이지 않다. 그가 제때 회수하지 못한 돈이 자산에 거품으로 끼어 있다가 코로나 유행 시 풀린 돈과 함께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다는 비판이 있다. 2008년 이후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평가는 이번 인플레이션이 끝나봐야 객관적으로 내려질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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