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經濟-家計]

[반도체입국 ‘도쿄선언’ 40년.. 제2, 제3 반도체 지금 씨 뿌릴 때] ....

뚝섬 2023. 2. 8. 09:53

[반도체입국 ‘도쿄선언’ 40년… 제2, 제3 반도체 지금 씨 뿌릴 때] 

[언제까지 반도체만 붙들고 있을 텐가]

 

 

 

반도체입국 ‘도쿄선언’ 40년… 제2, 제3 반도체 지금 씨 뿌릴 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찾아 QD-OLED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8일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 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후발주자인 삼성이 반도체 첨단 기술인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대규모 투자를 선언하자 당시 세계는 ‘무모한 도전’ ‘과대망상증 환자’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 산업에 투자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이 판단은 한국 경제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으로 꼽힌다.

한국의 반도체 신화는 기업의 끈질긴 의지, 우호적인 국제 환경,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의 합작품이었다. 기술 개발에 매달린 삼성은 반도체 진출 선언을 한 그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이후 잇달아 ‘세계 최초’ 수식어를 달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1980년대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한국에 시장 확대의 기회로 작용했다. 정부도 반도체 육성 장기계획, 삼성 기흥캠퍼스 공장부지 지원 등으로 뒷받침했다.

‘도쿄 선언’ 40년이 지난 현재 한국 반도체가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위기는 갈수록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고 글로벌 수요 부진에 따른 ‘반도체 한파’도 길어지고 있다. D램을 비롯한 메모리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격차는 줄어들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메모리반도체 편중에서 탈피해 설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스템 등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도 있다. 소재나 부품, 장비 국산화에도 힘을 써야 한다. ‘챗GPT’로 시작되는 인공지능(AI) 시장의 가파른 성장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의 기회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동시에 반도체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제2, 3의 반도체’를 찾는 노력도 시급하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10대 품목 중심의 수출, 생산 구조가 고착화된 상태다. 새로운 대표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를 제외한 주력 상품 대부분은 중국의 거센 추격에 직면해 있다.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바이오, 모빌리티, AI, 로봇 같은 미래 먹거리를 육성해 우리 경제를 함께 이끌게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10년, 20년 후 간판 산업이 없는 이류 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는 기업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계화가 새로운 변곡점을 맞은 지금 각국은 수출 규제, 보조금, 세액공제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전략사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연구개발(R&D), 투자, 인재 확보 등 전 분야에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한국 경제가 위기라지만 맨땅에서 시작하던 과거에 비할 바는 아니다. 40년 전 뿌렸던 씨앗이 ‘반도체 신화’의 꽃을 피웠듯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서 다시 한번 한국 경제가 ‘퀀텀 점프’하는 기적을 일궈내야 한다.

 

-동아일보(23-02-08)-

_______________

 

 

언제까지 반도체만 붙들고 있을 텐가 

 

너무나 뻔한 한국 경제의 급소 반도체만 의존하는 '천수답 경제'
이병철 회장의 30여년 前 도전기, 우리 세대 못 할 이유 뭔가

 

일본이 딱 세 가지 품목 수출을 규제하자,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패닉에 빠져드는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지 모른다. 자유무역을 주창해왔고, 글로벌 공급 사슬 속에서 번영을 구가해온 일본이 정치적 이유로 한국에 무역 보복을 한 것은 위선이고 반칙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은 잊고 있었던 한국 경제의 해묵은 숙제도 아프게 드러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경제의 급소만큼 찾기 쉬운 것도 없다. 전체 수출의 20%, 경제성장률의 절반을 반도체 하나가 차지하고 있다. 일본 경제엔 이런 식의 극단적인 쏠림은 없다. 그러니 최악의 경우 세 가지 품목의 수출액 5000억원 정도만 희생하면 1800조원 규모의 한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너무도 쉬운 계산이 섰을 것이다. 한·일 간 무역 분쟁이 어떻게 끝나든, 이제 세계 다른 나라들도 한국 경제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알게 됐다. 반도체만 누르면 한국 경제는 맥을 못 추는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됐다.

'반도체=한국 경제' 등식은 1990년대 이후 30년간 지속되고 있다. 1992년 이후 반도체는 수출 1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1990년에 7%였던 수출 비중은 지난해 20%까지 높아졌다. 그러다보니 매월 정부가 발표하는 거시 통계는 사실상 반도체 기업 1~2개의 실적 추이 모니터링이나 다름없어졌다. 수출이 부진하면 기우제를 지내듯 반도체 수요가 늘기를 고대할 뿐이다. 올해의 수출 급감도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거의 완벽하게 설명되는, 그야말로 '천수답 경제'가 한국 경제의 모습이다.

극단적인 반도체 의존에서 탈피하자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우리는 아직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시점에 30여 년간 한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반도체 산업을 만들어낸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도전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83년 3월 15일 이 회장이 '우리가 왜 반도체 산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도쿄 선언'을 발표했을 때, 이를 이해한 사람은 삼성 내부에도 거의 없었다. 정부는 이러다 한국 경제가 망한다고 반대했었다. 당시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작은 내수 시장, 취약한 관련 산업,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삼성전자의 열악한 규모, 빈약한 기술을 지적했다. 실제로 개발 과정에서 256KD램 개발 지연, 반도체 가격 폭락, 외국 기업의 특허 및 계약 위반 소송 등 숱한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이 회장은 12년 연속 적자를 보는데도 반도체 1·2라인에 각각 1억5000만달러와 2억5000만달러를 투입하고, 다시 3라인에 3억4000만달러를 쏟아붓는 승부수를 던져 일본을 밀어내고 한국을 세계 1위의 반도체 국가로 올라서게 했다. 이 회장은 출사표에서 "내 나이 73세, 비록 인생의 만기(晩期)이지만,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어렵더라도 전력투구할 때가 왔다"고 했다. 그가 반도체를 만드는 동안 삼성 임원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일본은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 "도대체 일본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뭐고"였다고 한다.('호암의 마지막 꿈', 유귀훈)

우리가 지금 어떤 새로운 꿈을 꾸든 최소한 이병철 회장이 처했던 당시의 환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풍족하다고 봐야 한다. 부족한 것은 다만 이 회장과 같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기업가와 이런 비즈니스맨의 꿈에 귀를 기울여 규제와 장벽을 덜어내 준 정치권과 정부의 조력이다. 일본의 보복 조치를 한국 경제 각성의 순간으로 삼는다면 우리 세대의 극일(克日)을 시작할 수 있다.


-박종세 부국장 겸 여론독자부장, 조선일보(19-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