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도량 좁고 성질 급한 자식에게 어머니가 준 최고의 가르침]

뚝섬 2023. 2. 12. 05:40

도량 좁고 성질 급한 자식에게 어머니가 준 최고의 가르침

 

[김동규의 나는 꼰대로소이다]
제자들 결혼 주례에 진땀
옛어른들삶의 지혜 영감

 

코흘리개 시절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동네 또래들과 어울리려고 골목으로 뛰쳐나갔다. 지금처럼 마땅한 놀이 도구가 없어 비석 치기, 땅따먹기, 딱지치기, 말뚝박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늘 즐거웠다.

 

깔깔거리며 놀다가도 지기 싫은 어린 마음에 때론 티격태격하는 주먹질도 있었다. 어느 날 ‘눈탱이 밤탱이’로 집으로 들어와 씩씩거리는 막내를 어머니가 얼굴 닦아주며 다독거리셨다. “아프지? 그래도 참아라.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어떤 몹쓸 녀석이 귀한 자식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냐며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상대방 집으로 달려가 욕설을 바가지로 퍼부어도 시원치 않을 거라 기대했는데, 어머니의 그 말씀에 울화통이 터져도 화를 누르며 주주물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옛 어른들은 ‘참을 인(忍)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거나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잠 못 이룬다’ 하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학교에서 꾸지람만 들어도 득달같이 달려가 선생님 멱살이라도 잡을 듯한 기세의 일부 극성 신세대 엄마와는 180도 딴판이었다.

 

자식이 줄줄이 딸려 있어 하나하나 신경 쓸 겨를이 없던 것일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는데 그럴 리 만무하다. 사랑하는 방식이 지금과 달랐을 뿐이다. 어려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교육하는 지혜를 그분들은 갖고 계셨다.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와 마찬가지로 사회 풍습도 세월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웬만해서는 꿈쩍하지 않는다는 장례 문화도 어느새 전통적 매장은 줄고 화장이 대세다. 결혼식도 예외가 아니다. 엄숙한 혼인 의식이라기보다 들뜬 축제 분위기에서 진행한다. 전해 듣기로 긴장한 나머지 졸도하는 신부도 있었다는데 요즘 결혼식에선 신부가 마치 연예인처럼 여유가 넘친다. 싱글벙글하는 신랑과 손을 잡고 아버지 도움 없이 친지들과 눈웃음을 나누며 입장한다. 주례 없이 진행하는 결혼식도 허다하다. 주례가 있더라도 주례사가 통과 의식으로 치부되는 까닭에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대학원 지도 학생의 결혼식에 생애 첫 주례를 부탁받았다. 제자가 대견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큰 경사라 흔쾌히 승낙은 했는데 다음 날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본인 일이 잘못되면 스스로 삭이면 그만이지만 신랑 신부가 주인공인 결혼식에서 주례가 실수하면 책임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판에 박힌 주례사가 대부분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내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 원고를 썼다. 그러고 내용을 모조리 외웠다. 잠자리에 들기 전 수도 없이 머릿속에서 신랑 신부를 앞에 세워 두고 주례사를 읊었다. 눈을 맞추며 소곤소곤 이야기하듯 인생 교훈을 주고 싶었다. 써 온 글을 읽으면 초짜 주례라고 손가락질받을 것 같다는 괜한 염려도 있었다.

 

행여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난감한 상황이 걱정돼 몇 키워드를 적은 ‘커닝 페이퍼’를 가슴에 품고 나섰다. 방실방실 웃는 신랑 신부 앞에서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면서 첫 경험을 간신히 마친 기억이 새롭다. 하객은 대부분 주례에게 신경 쓰지 않을 뿐더러, 쓰더라도 초보인지 경험자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쓸데없는 자격지심에 고생을 사서 했다는 후회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럭저럭 첫 행사를 큰 실수 없이 끝냈다. 문제는 다음 주례부터다. 결혼식에서 할 수 있는 덕담이 뻔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과거에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건 실례일 뿐 아니라 마음에도 내키지 않았다. 제자들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없는 재주에 맞춤형 주례사를 만드느라 진땀을 흘렸다.

 

한번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함께 다닌 H군이 아들 결혼식 주례를 맡아 달란다. 무시로 왕래하는 처지라 신랑감도 어렸을 적부터 잘 알고 있는 터이나 뜻밖이었다. 죽마고우 H군의 결혼식 주례를 선친께서 하셨는데 이렇게 대를 이어서 주례로 인연을 맺는 경우가 흔치는 않을 테니 말이다.

 

친자식 같아서 딱딱한 격식에서 벗어나 경험에서 우러나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어머니의 삶의 지혜인 ‘지는 게 이기는 거다’를 뼈대로 앞뒤에 살을 조금 붙였다.

 

“… 결혼 초에는 아내와 많이 부딪쳤습니다. 다투고 나면 기 싸움을 하느라 등을 대고 잤고 말도 안 했지요. 출근해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며칠 지난 후 생각해보니 왜 싸웠는지도 희미해졌죠. 더 이상의 냉전은 의미가 없어졌어요. 그렇다고 먼저 말을 걸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더군요. 이때 떠오른 말이 지는 이기는 거다였어요. 그대로 해석하면 말이 안 되는 모순이잖아요….”

 

힘차게 새 출발 하는 신혼부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 못 할는지도 모른다. 양가 부모가 격이 떨어지는 장난 같은 얘기라고 원망하진 않았을까. 오랜만에 만나 잡담하느라 귀 기울이는 하객도 많지 않았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을 해서 스스로는 흡족했다.

 

속절없이 나이만 먹은 노부(老夫)가 돼서도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울 때마다 참을 () 새기고 새긴다. 나아가 도량이 좁고 성질이 급한 어리석은 자식에게 부모님께서 주신 보석보다 귀한 선물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마음놓고 뀌는 방귀' 저자, 조선일보(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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