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이 맞고 있는 초고령사회]
[어떻게 노후를 맞이할 것인가]
[속도를 못 따라잡아 밀려날 날, 내게도 오겠지]
준비 없이 맞고 있는 초고령사회
[김도연 칼럼]
기적적 경제성장에 수명 빠르게 늘어났지만
노년층 빈곤율 45% 육박, 미래 참담할 수도
연금개혁, 세제개선 등 생활보장책 시급하다
수부귀다남(壽富貴多男)은 우리 전통사회에서 인간이 지닌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었다. 농업사회에서 다남(多男)은 부(富)를 쌓을 수 있는 길이었고 또 이를 통해 귀(貴)해질 수도 있었다. 이는 초기 산업사회까지도 마찬가지였지만 다남은 이제 별로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한편 부와 귀는 어느 시대이건 또 어느 사회이건 상대적인 것이므로 결국은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면서 수(壽)는 우리 사회에서 거의 모두가 누리게 된 듯싶다. 엄청난 변화다.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불로장생을 위해 한반도에까지 사람을 보내 약초를 찾았지만 결국은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장수한 셈이다. 수명은 삶의 여건이 좋아지면 저절로 늘어나므로 소득 수준과 상당히 비례한다. 세계 여러 국가를 살펴보면 개인소득이 1000달러인 나라는 평균 수명이 45세, 5000달러면 65세, 그리고 3만 달러면 80세 정도다. 지난 반세기 만에 소득 1000달러에서 3만 달러 이상으로 기적적 경제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은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수명이 늘고 있는 나라다.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그리고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는 1865년에 고령화사회에 이르렀다가 1980년이 되어서야 고령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2000년에 고령화사회가 된 대한민국은 2017년에 고령사회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115년 변화를 우리는 17년 만에 겪고 있으니 이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사회적 어려움이 훨씬 더 클 것은 당연하다. 2030년이면 대한민국은 노인 인구비율이 25%를 넘을 것이며 이때는 노인 한 명을 2.5명의 생산가능 인구가 부양해야 한다. 2050년에는 1.4명이 노인 한 명을 맡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에 들어선 일본은 이미 노인 인구비율이 30%에 이르렀다. 정년을 70세로 늘려 가는 등 우리보다는 착실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령사회에서 발생하는 내부 갈등은 상당히 깊은 모양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올라왔던 일본 영화 ‘플랜75’는 물론 필름 속의 세상이지만 초고령사회의 깊은 고민을 보여준다. 영화는 한 젊은이가 국가의 어려움을 해결한다며 노인을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후, 젊은이는 일본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뉴스가 이어진다. “고령자 습격 사건이 전국에서 잇따르는 가운데, 나날이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플랜75에 대해서는 발의부터 극심한 반대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드디어 오늘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세계의 이목을 모으는 이 제도가 일본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세상을 뜻대로 하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제도가 플랜75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권장한다. 영화 속에서는 노인들이 원하는 때에 세상을 떠날 수 있어 너무 좋다는 TV 광고도 나오고, 그로부터 3년 후에는 성과에 고무된 정부가 플랜65를 새로이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이어진다.
이토록 우울한 모습은 물론 영화 속의 이야기지만,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맞이할 초고령사회는 어떤 측면에서 더욱 가혹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대한민국은 노년층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여러 국가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높은 나라다. OECD 평균은 노년 빈곤율이 15% 정도이나 우리는 그 세 배인 45%에 육박하고 있다. 최소 생활비를 확보하지 못하는 노인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2030년이면 대한민국 노인 인구는 1300만 명을 넘을 텐데, 이대로 가면 결국 수백만 명의 노인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참담한 모습이 우리의 미래일 것이다. 노인들의 소득을 확충하기 위한 연금 개혁, 세제 개선 등은 물론 그들의 최저생활 보장을 위한 제반 제도 마련은 하루가 급한 일이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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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노후를 맞이할 것인가
“환자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병원에서 한마디도 안 해주는 거죠?”
수화기를 뚫고 나오는 보호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스테이션(간호사 업무 공간)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지만 현실에서는 더 흔하다.
“주 보호자인 첫째 아드님에게 지난번 말씀드렸어요. 환자분 폐에 물이 많이 찼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전화로 설명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열심히 투석해서 잠깐 좋아지셨지만 워낙 고령이라 다시 폐가 안 좋아지신 거고요.”
수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이 부족했던 건지, 더 높은 사람을 찾았던 건지 결국 병원 부원장님까지 전화를 이어받았다.
“그래도 병원에서 다시 저한테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희 아버지 어떡하실 거예요?”
환자에게 어떻게 해주고 싶은 건지 우리야말로 묻고 싶었다.
“저희가 지난번에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시면 대학병원에 갈 수 있도록 진료의뢰서를 써드린다고 했지만 거절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환자분 연세가 아흔이 넘었고 몸무게가 40㎏ 안 돼서 기력이 없으세요. 일주일에 3~4번씩 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오시는 것 자체가 힘드실 거고 낙상의 위험도 큽니다. 이곳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대처하기도 어렵고요.”
“그럼 여기서 치료를 못 해주겠다는 건가요?”
“대학병원이 싫으시면 투석이 가능한 요양병원이라도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보내라는 건가요? 그렇게는 못 합니다.”
보호자는 환자를 큰 병원으로 보내겠다며 진료의뢰서를 받아 갔지만 결국 요양병원으로 보냈다. 그것도 잠시, 환자는 한 달 만에 내가 일하는 병원으로 다시 왔다. “요양병원 입원비가 생각보다 부담스럽더라고요.” 보호자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환자가 돌아온 것이다. 간호사로 일을 시작하고부터 이런 일은 정말 많이 겪었다.
환자들의 노후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은 두 가지다. 나는 부모님의 노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또 한 가지, 내 노후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나는 부모님이 아프시면 잘해야지’ ‘부모님이 잘 키워주셨으니 병원비 걱정은 안 하시게끔 해야지’라는 생각은 늘 한다. 하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처음에야 부모님을 걱정하는 마음이 크겠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부담스러운 마음이 더 커질 것이다. 그래서 진상 보호자들을 보고 있으면 속상하지만 마냥 비난할 순 없다. 가족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를 나는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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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의 노후를 생각해 보자.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나는 너무 오래 살까봐 걱정이다.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2021년도 여자의 기대수명은 86.6세이다. 이 정도라면 내 기대수명이 100살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60대에 은퇴한 다음, 돈을 벌지 않고 40년 정도 더 살아야 하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다. 일단 은퇴하기 전에 노후자금을 열심히 모으는 수밖에. 그 환자는 본인의 노후자금을 열심히 모으지 않았던 것일까? 아마 그것보다는 자식을 부족함 없이 키우는 일이 훨씬 더 중요했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이도 젊은데 벌써 그런 생각을 하냐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매일 출근하면 마주하는 문제라 어쩔 수 없다. 간호사이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남들보다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너무 빨리 알아서 가끔 피로감이 들 때도 있지만 늦게 안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부모님의 노후를 잘 보살피고 나의 노후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좋은 방법? 남들보다 일찍 시작해서 매일같이 고민하고 있지만 남들보다 먼저 정답을 찾긴 어려울 것 같다.
-박소진 간호사, 조선일보(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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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못 따라잡아 밀려날 날, 내게도 오겠지
[장강명의 사는 게 뭐길래]
어이구, 드디어 끝나나 보다. 정말 길었다. 오는 30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대부분 풀린다는 뉴스를 듣고 떠올린 생각이다.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리라. 기사에는 마스크 의무화 지침이 풀린 게 2020년 10월 13일부터 계산해 2년 3개월 만이라고 나와 있었다.
2020년 10월 13일을 기점으로 잡은 건 아마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가 그날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사실 그 전에도 여러 지자체가 행정명령으로 시민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고 있었다. 서울은 그해 8월부터 실외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대중교통에서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했던 것은 그 석 달 전부터였다. 마스크 대란이 벌어진 것은 2020년 2월. 대략 그 즈음부터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면 눈총을 사는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3년 가까이 마스크를 써왔다고 해도 큰 과장이 아니다.
이 날짜들을 확인하려고 지난 기사들을 검색하다 보니 격세지감이라는 단어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현기증이 인다. 2020년 상반기 기사는 온통 코로나, 코로나였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공포가 뚝뚝 흘러내렸다. 팩트 체크 기사 중에는 ‘눈만 마주쳐도 감염된다’는 소문을 검증하는 내용도 있다. 이 소문 때문인지 공항에서는 물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코로나 예방 효과가 있다며 영양제나 녹차, 공기청정기, 심지어 베갯잇을 홍보한 봉이 김선달식 마케팅도 넘쳐 났다.
두려움은 혐오를 낳는다. 세계 곳곳에서 아시아계가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됐다. 이탈리아의 어느 학교는 동양계 학생들만 수업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한국에서도 한 배달 업체 노조가 “‘중국인 밀집 지역’에는 배달 금지를 추진하라”고 사측에 요구했다가 비판을 받고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방역 당국이 새 확진자의 동선을 그토록 상세히 공개하면서 개인 정보 보호에 무심했던 것, 그리고 대중이 초기 확진자들에게 뭇매를 가했던 것은 한국 사회가 두고두고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이 모든 일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2020년 상반기의 나도, 2023년 초의 나도 좋은 평가자는 못 된다. 내가 본 것이 너무 적고, 인간은 여러 인지 편향에 시달린다. 처음 경험하는 일에 과잉 반응하고,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을 자기 노력 덕분이라고 여기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인류 역사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식의 진단은 아무래도 호들갑이었다고 내심 믿는다. 팬데믹이 한창일 때도 그런 주장에는 코웃음을 쳤고, 지금은 더 그렇다. 이게 중세 흑사병 수준까지는 아니었잖은가.
그렇다고 이 사태가 한때의 해프닝 같지도 않다. 가장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은 관련 도서는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인 스콧 갤러웨이가 쓴 ‘거대한 가속’이었다. 갤러웨이는 팬데믹이 트렌드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화상 회의 시스템과 재택근무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도입되고 확산됐을 것이다. 그런데 팬데믹이 그 추세를 무자비하게 앞당겼다.
그리고 이런 가속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사무실에 앉아서 근무하고, 이메일을 많이 쓰며, 상대적으로 수입이 높은 화이트칼라는 이런 변화에 그럭저럭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특정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육체 노동자나 서비스직은 재택근무를 할 수 없었고, 이 부문에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식과 부동산을 가진 최상위 자산가들은 이 시기에 큰돈을 벌었다.
2023년 1월 현재 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범유행을 우리가 사는 ‘가속 사회’나 ‘가속 시대’의 얼굴을 보게 된 사건으로 기억한다. 이 사회 시스템은, 적어도 사회 차원에서는 꽤나 질기고 역동적인 듯하다. 나는 우리가, 적어도 사회 차원에서는 인구 절벽이나 기후 위기 같은 혹독한 충격을 어떻게든 견뎌내고 꾸역꾸역 생존하리라 생각한다. 인간 집단은 필요할 때 놀라운 역동성을 발휘한다. 그 역동성이 어떤 이들에게 매우 가혹하다는 게 진짜 재앙이다. 나라고 예외일까. 언젠가 변화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여건이 안 돼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적자(適者)에서 밀려날 날이 오겠지. 등골이 서늘해진다.
-장강명 소설가, 조선일보(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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