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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200조 기업의 '송전망 2만㎞ 늘리기' 꿈] ....

뚝섬 2024. 6. 21. 09:29

[부채 200조 기업의 '송전망 2만㎞ 늘리기'  ]

[곳곳서 막히는 송전선, 심각한 국가 현안] 

[부족한 건 전기가 아니라 송전망이다]

 

 

 

부채 200조 기업의 '송전망 2만㎞ 늘리기' 꿈

 

[한삼희의 환경칼럼]

작년 송전선 증설 163㎞였는데 향후 15년간 2만㎞ 늘린다는 포부
2050 탄소 중립 위해서도 꼭 필요한 투자지만
부채 200조원에 짓눌린 한전에 가능한 일이겠는지
 

 

지난 5월 8일 강원도 동해. 송전선 부족으로 가동을 멈춘 석탄화력발전소 모습. /김지호 기자

 

동해안 석탄발전소가 여덟 곳 있는데 전기 생산을 못 하고 놀고 있다고 한다. 송전망이 부족한 탓이다. 동해안 석탄·원자력 발전소 단지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운반할 고압 직류 송전선은 원래 완공 목표 시점이 2021년이었지만 2026년으로 연기됐다. 발전소는 한 단지에 모아 건설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 지자체와 합의를 끌어내면 된다. 송전선은 10여 지역 수백km를 거친다. 동의를 얻어내는 작업이 몇 곱절 힘들 수밖에 없다. 쟁점은 보상 규모인데, 토지 재산을 보는 주민들 관점이 달라졌다. 공공 사업 보상은 공시지가, 실거래가, 감정가 등 법적 근거가 있는 공적 기준으로 이뤄진다. 반면 주민들은 토지의 잠재 가치를 본다. 어디는 산업단지가 생기고 어디는 신도시가 들어서서 대박 났다는 얘기를 듣는다. 송전 철탑이 들어서면 그런 기대는 접어야 한다. 한전이 내미는 보상 수준에 만족할 리가 없다. 지중화를 얘기들 하지만 그러려면 비용이 적으면 7배, 많게는 20배 든다.

 

2013~14년 정점을 거친 밀양 송전탑 사태로 송전선 건설은 더 까다로워졌다. 2003~2022년의 20년 동안 증설된 765·345·154kV 고압 송전망은 총 8556km(회선 길이)다. 노무현 정부에선 연평균 530km씩 건설했다. 이명박(445km), 박근혜 정부(483km) 때도 그럭저럭 증설 속도를 유지했는데 문재인 정부 5년은 연평균 252km밖에 안 됐다. 송전선 노선 건설에 평균 13년 걸린다니 문 정부의 실적 부진을 문 정부 탓으로만 볼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의 작년 실적은 163km로 더 곤두박질쳤다. 지금대로 놔둬선 안 되겠다고 윤 정부가 작년 말 내놓은 것이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 법안이었다. 한전에 맡겨둬선 지지부진이니 정부 부처들이 나서 지역 동의, 관청 인허가를 풀어 전력망 구축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 법안은 민간 자본 투입을 둘러싼 민영화 논란 등이 얽히면서 21대 국회에선 무산됐다.

 

탈원전 에너지 전환을 정부 정체성으로 삼다시피 했던 문재인 정부가 송전망 확충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태양광·풍력의 설비 이용률은 20~30%다. 송전선에 전력이 가득 찰 때도 있지만 텅 비어 있는 시간이 더 많다. 발전 설비도 흩어져 있다. 송전선을 3배 이상은 만들어 놔야 석탄·원자력 발전소만큼의 전력을 운반할 수 있다. 문 정부는 태양광·풍력의 확장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당장 몇 년은 문제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목표를 그럴싸하게 세워놓고는 장기적 이행 방안은 등한시했다.

 

문재인 정부는 해상 풍력을 2030년까지 12GW(표준 원전 12기 설비 용량)까지 확충하겠다는 의욕적인 목표도 내걸었다. 문 대통령은 2021년 2월 신안 해상 풍력 투자 협약식에 참석해 “완전히 가슴 뛰는 프로젝트”라면서 발전기를 1000기 세워 세계 최대 해상 풍력 단지를 세우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가동 중인 전국의 해상 풍력은 그 목표치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10%도 아니고 1%다. 생산 전력을 운반할 송전망이 없는데 누가 발전기를 갖추겠는가. 호남은 무질서한 태양광 보급에 따른 전력망 과부하로 작년에 이어 올봄에도 태양광 전기 생산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출력 제한을 시행했다. 이젠 태양광을 새로 설치해도 2030년까지는 송전선에 연결될 가망이 없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는 작년 4월 10차 송·변전 설비 계획을 발표했다. 2036년까지 56조원을 투입해 연간 1500km씩 연결해 가겠다는 것이다. 호남의 태양광 송전 병목도 육지 송전망 다섯 세트와 서해 고압 직류 송전망으로 해소하겠다고 했다. 지난 60년간 세운 전체 송전망 3만5000km의 64%(2만2500km)를 15년 내에 구축하겠다는 대담한 구상이다. 문 정부 시절 증설 계획보다 두 배 늘려 잡았다. 다리 상판 올리려면 튼튼한 교각부터 세워야 한다는 상식에 입각해 보면 방향은 맞는다. 2050 탄소 중립이 실현되려면 전력 수요가 지금의 2.5배로 늘게 된다. 튼튼한 송전망 구축 없이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한전을 짓누르는 재정 적자다. 문 정부 5년 동안 전기 요금 인상을 억제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한전 부채가 108조원에서 202조원까지 늘었다. 2022년엔 하루 1000억원꼴로 회사채를 발행해 카드 돌려막기식으로 연명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숨 쉬는 거나 다름없는 한전이 무슨 방법으로 송전선을 작년 속도의 아홉 배로 늘려가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송전망 2만km 확충’의 첫걸음은 역시 전기 요금 인상일 수밖에 없다.

 

-한삼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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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서 막히는 송전선, 심각한 국가 현안 

 

송전탑과 송전선로/안산시

 

인공지능(AI)은 전력을 엄청나게 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전력을 보내는 송배전망 건설은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수년씩 지연되기 일쑤다. 이달 준공 예정인 ‘345㎸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의 경우, 당초 2003년에 사업을 시작해 2012년 준공이 목표였는데 지역 주민과 환경 단체의 반대, 지자체 소송 등으로 준공이 11년 5개월이나 늦어졌다. 송도 바이오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345kV 신시흥-신송도 송전선로’는 59개월, 남해 해상 풍력발전량을 수송할 ‘345kV 신장성 변전소’는 62개월 지연됐다.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환경 단체 및 주민 반대,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 등으로 전력망 건설은 난항을 겪고 있다. 실제로 밀양 송전탑이 포함된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가 완공된 2014년까지는 해마다 송전선로가 100km 이상 완공됐는데 이듬해부터 두 자릿수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 완공된 지상(地上) 송전선로 길이는 단거리 위주로 60km에 불과하다. 그 여파는 이미 현실화됐다. 경기 여주의 1000MW(메가와트)급 여주복합화력발전소는 가동률이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태라면 첨단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해놓고도 전력 공급이 안 돼 공장을 못 돌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622조원을 투자해 경기 평택·화성·용인·이천 등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예정인데 2050년까지 이 클러스터에 추가되는 전력 수요만 해도 현재 수도권 전력 수요의 4분의 1인 10GW에 달한다. 우선 LNG발전소를 지어 초기 전기 수요를 충족하고, 2036년까지 대규모 전기를 공급하는 송배전망을 준공한다는 계획이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실현 불가능하다.

 

전력망 건설에 속도를 내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여야 정쟁에 휩쓸려 폐기됐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 산업단지가 전력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재앙을 막으려면 이 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여야 정쟁 사안도 아니다.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최우선적으로 전력망 확충 특별법부터 제정해야 한다.

 

-조선일보(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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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건 전기가 아니라 송전망이다

 

발전 용량 16GW인데 송전 용량은 11GW… 

수도권 전력 자급률 72%… 非수도권 전력 수도권 공급 필요
강원·수도권 송전선로 확충 계획 주민 반대 등으로 8년 늦어져
대규모 철탑 지중화해야… 막중한 비용에 정치권은 ‘외면중’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은 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 가정의 텔레비전과 세탁기는 계속 커지고 있으며, 식기 세척기와 의류 건조기를 비롯한 새로운 전자제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 가스를 사용하던 부엌의 풍경도 점차 인덕션으로 바뀌고 있으며, 전기자동차는 신기한 대상이 아닌 대중화된 존재가 되고 있다. 모든 것이 전기로 움직이는 전기화(electrification) 현상이 더욱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인 전기는 모두 선으로 연결되어있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 집의 콘센트부터 동해안의 원자력발전소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우리 몸의 혈액이 대동맥에서 모세혈관을 거쳐 이동하는 것처럼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4만2720개의 송전탑과 3만5451km의 전선으로 이루어진 송전망, 그리고 1008만4070개의 전봇대와 53만5242km의 전선으로 구성된 배전망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적인 삶은 구리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력망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호당 정전 시간은 연간 8.9분으로 미국(47.3분)과 영국(38.4)은 물론 독일(10.7분)보다도 짧아 안정적이며, 송배전 과정의 손실률도 3.5%로 미국(5.1%), 독일(6.8%), 일본(4.7%)보다 낮아 효율적이다. 발전과 송·배전으로 구성된 전력망은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특징이 있다.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전기는 넘쳐도, 부족해도 안 되는 특성이 있다. 수요 변화에 따라 발전량을 가감하는 작업은 컴퓨터와 인간의 협력을 통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신형 설비로 이루어진 대규모 발전소와 한전이라는 단일한 망 사업자가 세심하게 관리하는 송·배전망을 통해 대한민국의 일상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전력망은 최근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비교적 고르게 권역별로 전기 소비와 공급을 맞추도록 노력해왔지만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집중이 계속되면서 지역 간 전력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2021년을 기준으로 할 때 수도권은 필요한 전력의 72%만을 자체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전·충청권(128%), 호남권(120%), 영남권(133%), 강원권(182%) 등은 전력을 초과 생산하고 있다. 수도권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비수도권 전력을 수도권으로 공급하는 7개의 융통 선로가 현재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수도권 지역에 대규모 전력을 소모하는 데이터센터(IDC)와 반도체 라인 신·증설이 집중되고 있어 이에 필요한 전력을 적시에 공급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3·4공장(P3·4)을 위한 송전 선로 건설 과정에서 주민 반대로 5년이 넘는 협의 기간과 지중화를 위한 추가 비용 수천억 원이 발생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도권 남부의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형성은 장밋빛 미래로 보이지만 전력망을 운영하는 처지에서 보면 악몽 같은 미래인 것이다.

 

수도권의 송전망 확충이 미래 문제라면 동해안 지역의 송전 선로 부족은 현재 문제다. 동해안 지역에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2022년부터 속속 가동에 들어가면서 대규모 전력이 생산되고 있지만 이를 송전할 선로 부족에 따라 동해안 지역의 발전소들은 40% 수준으로 출력을 낮춰 가동하거나 아예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동해안 지역의 발전 용량은 16GW지만 송전 선로 용량은 11GW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올해와 내년 완공 예정인 발전소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규 원자력 발전소인 신한울 2호기까지 올해부터 전력 생산에 들어가면서 이 지역의 송전 선로 부족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강원도 지역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송전 선로 확충은 당초 계획대로라면 발전소 가동 이전인 2021년에 마무리돼야 했지만 주민 반대와 지자체의 인허가 지연 등으로 인해 지연된 결과이다. 현재로서는 2029년이 되어서야 계획된 송전망이 건설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가 집중되고 있는 제주 및 호남 지역도 상황은 심각하다. 대규모 전력 수요처가 없는 지역에서 전력 생산이 증가하면서 이를 다른 지역으로 보내야 하지만 송전 선로가 부족하기 때문에 태양광·풍력발전을 강제로 중단시키거나 원자력발전소의 출력을 낮추는 비상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향후 새만금 및 동해안 지역의 재생에너지 확대가 예정되어 있는 만큼 송전 선로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그만큼 전체 전력망의 안정적 유지는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장 더 많은 송전 선로 건설이 필요하다고 모두가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규모 철탑과 고압 송전 선로가 자기 동네와 주변에 들어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지중화와 충분한 보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지만 이를 담당해야 하는 한전은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발전 사업자가 생산한 전력을 구입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망 사업자인 한전에 정부와 정치권이 비싸진 전기를 싸게 공급하도록 강제한 결과다. 한전 추산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 수요 충당을 위해서는 2050년까지 현재에 비해 2.3배 규모의 전력망 구축이 필요하다. 송전망 건설 그리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 업그레이드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 비용을 어떻게 부담해야 할지에 대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정부와 정치권은 문제를 외면하거나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는 것이 2023년 대한민국이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조선일보(2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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