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內-이런저런..]

[짐만 걸머졌던 (이승만) 대통령 양자 이인수]

뚝섬 2023. 9. 4. 06:07

짐만 걸머졌던 (이승만) 대통령 양자 이인수

 

이인수 박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4·19로 하야해 하와이에 체류할 때 양자로 입적됐다. 1960년 11월 전주 이씨 문중의 결정이었다. 대학 졸업자에 프란체스카 여사를 생각해 영어를 알고 미혼이었으면 하는 조건에 들어맞았다. 이인수 박사가 양녕대군 17대손이어서 16대손인 대통령과 계대(系代) 맞았다. 이인수 박사는 독일 유학의 꿈을 접고 이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의 나이 서른 때였다.

 

대통령은 본처 사이에 아들이 있었으나 일곱 잃었고 프란체스카 여사와 사이에서는 자식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1957년 83세 생일에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의 아들 이강석을 양자로 입적했으나 이강석은 4·19 직후 부모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대통령은 6대 독자인 자신 때문에 고생한 아버지, 임종을 못한 어머니 얘기를 종종 하면서 후사가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런 이 대통령이라 1960년 12월 인수씨가 도착하자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며 어찌할 바를 모르며 좋아했다.

 

▶이후 이인수 박사는 이 대통령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받는 데 삶 전체를 바쳤다. 그는 이 대통령이 만든 체제에 살면서 건국 대통령을 폄훼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그분의 공적은 독립운동은 물론 자유민주주의 노선 선택, 60 국군을 양성, 한미방위조약을 체결 열거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이라고 했다. ‘공구과일(功九過一)’이라는 학자의 평을 소개하기도 했다. 2006년 KBS 드라마가 이 대통령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하는 등 고소고발한 것도 여러 건이다. 대통령 양자로서 볕은 못 쫴 보고 음지에서 짐만 걸머졌던 인생이었다.

 

▶이인수 박사가 4·19가 일어난 지 63년 만에 4·19 민주묘지를 찾아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와 사과를 전했다. 이제 92세 고령인 이 박사 마음도 급했을 것이다. 그는 12년 전인 2011년 4월에도 참배하려다 4·19 단체들이 “갑작스럽다”고 저지해 발길을 돌린 적이 있었다. 이 박사는 “오늘 참배와 사과에 대해 선친도 ‘참 잘하였노라’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이념과 진영으로 갈려 반목하고 있지만 정파와 진영을 초월하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 3월 4·19혁명 주도 인사 50여 명이 국립서울현충원의 이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것도 그런 예일 것이다. 올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에는 박정희·김영삼·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들도 함께했다. 이런 식으로 한 발씩 통합과 화해의 길로 나가야 할 것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3-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