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도 절레절레 고개 흔드는 ‘팁 문화’ 한국이 왜 배우나]
[골칫덩이 팁 문화, 한국 상륙?]
[‘권리’가 돼버린 미국 팁 문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서양인도 절레절레 고개 흔드는 ‘팁 문화’ 한국이 왜 배우나
고급 식당이 아닌 일반 식당을 기준으로 유럽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10% 정도를 팁으로 준다. 미국에서는 이제 18%도 적다고 하고 20%가 기준이 됐다. 유럽에서는 팁을 놓고 가지 않는다고 해서 종업원이 쫓아와 왜 팁을 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일은 없지만 미국에서는 일반 식당이라도 팁을 안 주거나 적게 주고 나갔다간 큰일 난다. 팁 액수를 아예 영수증에 적어 넣어 달라는 것도 미국 식이다.
▷팁 문화는 유럽 귀족들로부터 시작됐지만 유럽을 다녀온 미국 부자들이 미국 경제가 유럽을 능가하자 팁을 더 많이 주기 시작했다. 팁의 액수가 커지다 보니 팁이 종업원에게 부수입이 아니라 주 수입의 일부가 됐다. 1960년대 들어와 미 의회는 팁이 있는 업종에서는 고용주가 종업원이 팁으로 얻을 수익까지 고려해 일반적인 최저임금보다 낮게 임금을 책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치가 대서양 양안의 팁 문화에 결정적 차이를 만들었다. 미국의 팁 문화는 부자연스럽고 그악스러워졌다.
▷언제 얼마의 팁을 줘야 할지는 일률적인 규칙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여러 규칙이 작용해 복잡할 뿐이다. 한번은 주로 관광객을 상대하는 프랑스 파리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고 늘 하던 대로 10% 정도의 팁을 놓고 나왔더니 프랑스 친구가 하는 말이 다시 올 식당도 아니고 서비스가 친절했던 것도 아닌데 1유로면 충분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미국에서 호텔방을 비울 때 1달러를 놓는 걸 신성한 의무처럼 여기지만 룸메이드는 웨이터와 달리 팁을 받는 직종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인 중에서는 안 주는 걸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팁 문화가 시도되고 있다. “서빙 직원이 친절히 응대했다면 테이블당 5000원 정도의 팁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을 테이블마다 붙여놓은 식당이 있는가 하면 카운터 앞에 팁 박스라고 써붙인 유리병을 놓아두고 ‘우리 가게가 좋았다면 팁(Tips if you like)’이라는 안내문을 붙여놓은 빵집도 있다. 카카오 택시는 친절한 기사를 위한 팁 선택 제도를 시범 도입했다. 반응은 좋지 않다. 물가까지 오르는 판국에 무슨 팁 문화냐는 것이다.
▷팁이 없어 10∼20%의 돈을 더 내지 않으니 좋고 늘 팁 값을 염두에 두고 살 필요가 없으니 좋다. 서양인도 한국이나 일본 중국에 오면 팁이 없어서 좋다고 한다. 우리가 서양에서 팁 문화를 배울 게 아니라 서양이 한국 등으로부터 팁 없는 문화를 배워가야 한다. 서양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 실패한 팁 문화보다는 팁 문화 없이도 높은 수준의 서비스업을 발전시킨 이웃 나라들로부터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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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덩이 팁 문화, 한국 상륙?
얼마 전 뉴욕 맨해튼 코리아타운에서 직원 12명과 회식한 기업인은 계산서를 받아 들고 깜짝 놀랐다. 한국식으로 고기 먹고 소주와 맥주를 마셨는데, 1인당 우리 돈으로 약 22만원씩 청구됐다. 여기에 20%를 팁으로 내니 팁 값으로만 54만원이 나갔다. 기자가 뉴욕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15년 전엔 음식 값의 10~15% 정도를 팁으로 놓고 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간혹 18%를 팁으로 주면 홀 서빙 종업원에겐 최고의 날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18% 팁을 준 손님에게 웨이트리스가 따져 물었다. “내 서비스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미국에서 팁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맥도널드·서브웨이 같은 패스트푸드점을 찾곤 했다. 하지만 이제 무인 셀프 계산대에서도 팁을 강요받는다. 계산대에 서 있으면 점원이 마지막 단계에서 모니터 혹은 태블릿을 손님 쪽으로 돌린다. ‘15%, 20%, 25%, 스스로 결정’ 그리고 ‘노 팁(No tip)’ 중 고르도록 돼있다.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점원, 뒷줄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 눈치 때문에 ‘노 팁’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코로나 기간 고생하는 종업원, 배달 종사자에 대한 배려로 오른 미국의 ‘팁 인플레’가 고착됐다. 여기에 배달 앱과 태블릿 결제 시스템에 자동적으로 팁 결제 과정을 심어 놓으면서 팁은 더 이상 호의가 아닌 가격의 일부가 됐다. 팁 거품이 심해지면서 같은 식당 내에서도 팁을 받는 홀과 못 받는 주방 종사자 간에 수입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팁은 영국 튜더왕조 시절 귀족 문화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것이 런던의 커피하우스로 번졌고, 한 커피숍에서 ‘신속한 서비스를 위해서(To Insure Promptitude)’라고 적힌 박스에 동전을 넣은 데서 머리글자를 따와 팁(tip)이란 말이 탄생했다고 한다. 남북전쟁 후 미국인들이 영국을 여행한 뒤 돌아와 뽐내면서 이를 퍼뜨렸다. 엘리너 루스벨트 미 대통령 부인은 이를 못마땅히 여겨 “무분별하게 팁을 주는 것은 미국인의 저속한 습관”이라고 했다.
▶모빌리티 플랫폼 카카오T가 택시 기사에게 팁을 주는 시범 서비스를 도입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부정적인 반응이 월등히 높다.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사실상 가격이 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골프장에도 전 세계에 없을 무분별한 팁이 번지고 있다. ‘호의에 바탕을 둔 작은 성의’라는 기본을 벗어나고 있다. 골칫덩이가 된 미국의 팁 문화를 우리가 수입해야 할 이유는 없다.
-박종세 논설위원, 조선일보(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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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가 돼버린 미국 팁 문화
파리의 투르 다르장(Tour d'Argent) 레스토랑의 테이블 서비스. 팁 제도가 없으면서도 친절하게 손님을 배려하는 레스토랑에 비해서 항상 팁을 의식하면서 일을 하는 미국의 레스토랑은 서비스의 집중도와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팁(tip)은 오랜 세월을 거쳐 정착된 관습이다. 한편 좋은 서비스에 대한 봉사료의 명분이 변질되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문화를 형성한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급여는 중요하다. 하지만 레스토랑 직원들의 경우는 다소 차원이 다르다. 일을 하는 시간 내내 머릿속으로 팁을 계산한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메뉴와 와인을 물어보면 비싼 것 위주로 추천을 한다. 팁이 음식 값에 비례해서 책정되므로 수입이 늘기 때문이다. 팁이 후한 고객에게는 친절하고, 팁을 적게 주면 노골적으로 따지는 경우도 많다. 그야말로 ‘호의’로 시작한 관습이 ‘권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혹시라도 잘 모르는 관광객들이 팁을 주지 않을까 봐 계산서에 미리 팁을 포함시키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걸 모르는 손님이 중복으로 팁을 지불해도 말없이 받아 챙긴다. 눈앞의 이익에 양심은 뒷전이다.
레스토랑의 팁 관습은 다른 장소에도 확산되어 있다. 뉴욕에서 주차 요원에게 차를 맡기고 뺄 때 팁을 주지 않거나 적게 준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상대적으로 후한 팁을 주는 고객의 차를 앞에 주차시키고 우선적으로 빼주기 때문이다. 빠른 서비스를 원하면 팁을 더 주는 수밖에 없다. 호텔의 벨보이도, 아파트의 관리인도, 미용실 직원도, 음식 배달원도 모두 팁을 원한다. 안 주거나 적게 주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건 예측 가능한 일이다. 미국인들이 불만을 가지면서도 체념하는 부분이다. 정부는 노동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고용인은 직원 급여의 일부를 손님에게 부담시킬 수 있어서, 또 직원들은 급여보다 많은 팁 수익 때문에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근래에 팁의 비율이 오르고, 셀프 서비스 매장에서도 팁을 요구하면서 미국인들도 불편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건 바람직한 서비스 산업의 문화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우리나라를 포함, 많은 나라의 레스토랑들이 인력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혹시라도 팁 제도를 고려한다면 이는 ‘악마와의 거래’가 될 것이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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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못 말리는 조급함 취향(unstoppable taste for haste).' 영국 BBC방송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소개하면서 단 제목이다.
"관악구에 있는 한 식당에 들어갔다. 주문을 하면서(place my order) 타이머를 눌렀다. 2분 20초 만에 반찬(side dishes)이 차려졌다. 그리고 1분 30초가 채 지나지 않아 펄펄 끓는(steam furiously) 뼈다귀 해장국 뚝배기(clay bowl of pork-spine 'hangover' soup)가 놓였다.
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놀라울 따름이다(be remarkable enough). 한국에선 그냥 일상적인 신속함(routine speediness)이다. 인터넷 속도만이 아니다. 거의 즉시 효과를 보장한다는 집중 언어 강좌(intensive language classes promising near-immediate results), 초고속 결혼 중매 행사(superhigh speed-dating events), 1시간이 멀다 하고 신혼부부를 쏟아내는 예식장….
'빨리빨리'는 잘 살아보겠노라 바삐 바삐 뛰어다니던(be busy rushing around trying to better themselves) 절박함이 유전자처럼 굳어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제시된 일련의 5개년 경제계획에 착수한(embark on a series of five-year economic plans put forward by him) 격변의 시기(a time of intense change)에서 비롯됐다. 신속성(expeditiousness)이 기본 가치로 마음속에 깊숙이 각인됐다(be embedded deeply in minds as a basic value).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를 경제 대국으로 탈바꿈시킨(transform a war-ruined country to an economic powerhouse)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bring about the Miracle on the Han River). 너무나 놀랍게도(mind-bogglingly) 매년 30~40%씩 폭발적 성장을 했다(grow explosively). 생사(生絲)·철광석이나 수출하다가 가발·직물 등 공산품을 생산하는 나라로 도약하더니(leapfrog from exporting raw silk and iron ore to making industrial products like wigs and textiles) 어느새 가전제품·유조선·반도체로 나아갔다(graduate to consumer electronics, oil tankers and semiconductors).
서두르는 문화 덕에(thanks to the culture of hurry) 극히 짧은 시간에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be able to achieve marvelous economic progress and industrialization in a very short period of time). 올림픽에서 양궁·사격 등 속사 종목에 뛰어나고(excel at rapid-fire sports like archery and shooting), 쇼트트랙을 석권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be no coincidence).
한국인들도 요즘엔 느림의 미덕 운운하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휙휙 바뀌는(change with the blink of an eye)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be still frantic)."
-윤희영 편집국 편집위원, 조선일보(18-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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