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초도 갯것 한 상
[김준의 맛과 섬]
이런 밥상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며,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연인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아침에 같은 배를 탔던 분들이다. 눈에 튀는 옷차림이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초도에 식사를 해결할 다른 식당이 없으니 피해갈 수 없는 만남의 장소다. 그런데 상차림이 예사롭지 않다. 아쉽다면 초도에서 만든 막걸리가 빠졌다. 몸이 편치 않아 막걸리를 내리는 할머니가 치료차 뭍으로 나가셨다. 초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 섬이다.
초도 섬 밥상의 내력을 보자. 우선 금년에 채취한 미역으로 국을 끓이고, 물 건너온 쌀로 밥을 지었다. 지금 초도에는 쌀농사를 지을 논이 없다. 반찬으로 고둥, 똘장게, 문어, 군부, 삿갓조개, 갈치 속젓, 톳, 거북손, 돌문어, 학꽁치 그리고 삼치 조림까지 모두 초도산이다. 여기에 주인이 직접 키운 오이, 배추, 산에서 꺾어온 두릅순도 올라왔다. 바다에서 나는 것은 대부분 갯벌이나 갯바위가 내준 것이다. 이곳을 여수에서는 ‘갱번’이라 하며, 그곳에서 채취한 것을 ‘갯것’이라고 한다. 갯것은 주로 돌김, 돌미역, 톳, 가사리, 미역 등 해조류와 거북손, 게, 문어, 군부, 고둥류, 연체류와 갑각류 등이다. 텃밭에서 채소를 뜯는 것처럼 갱번에서는 갯것을 얻는다. 그렇게 갱번은 섬사람들의 ‘바다 텃밭’이고 곳간이다. 특히 보릿고개처럼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갱번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돈이 필요할 때는 미역과 김과 톳을 뜯고 말려서 뭍으로 보내 돈과 바꾸었다.
갯것을 식재료로 올리려면 하나하나 뜯고 씻고 삶고 말리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손이 참 많이 가는 일이다. 고둥 무침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 고둥을 한 개 두 개 줍고, 여러 번 씻고 삶아야 한다. 그리고 작은 바늘로 살을 꺼내야 비로소 무침을 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군부나 거북손이나 삿갓조개는 갯바위에 딱 붙어서 서식하기에 채취하는 일부터 고역이다. 갯것으로 한 상을 차리려면 물때에 맞춰 수차례 갱번을 드나들어야 한다. 이렇게 번거롭고 수고로움을 거쳐야 ‘갯것 한 상’이 차려진다.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조선일보(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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