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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종착점 ‘킬 스크린’] [점점 현실이 돼 가는 게임] ....

뚝섬 2024. 1. 6. 06:40

[게임의 종착점 ‘킬 스크린’]

[점점 현실이 돼 가는 게임]

[게임의 聖地 한국]

[게임 중독은 정신질환]

 

 

 

게임의 종착점 ‘킬 스크린’

 

30년 전쯤 초등학생 시절 한 친구는 오락실에서 죽치고 살았다. 100원 동전 하나면 한두 시간은 거뜬했다. 친구가 게임을 하면 갑자기 화면이 멈추거나 꺼지는 현상이 자주 벌어졌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마다 오락실 주인이 수상쩍었다. 이제 그만하고 꺼지라는 일종의 ‘킬 스크린(Kill Screen)’이었던 셈이다.

 

▶지난달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13세 소년 윌리스 깁슨이 인류 최초로 ‘테트리스’를 정복했을 때도 킬 스크린이 떴다. 킬 스크린은 게임의 특정 레벨에 도달하면 더는 플레이가 불가능한 지점이다. 게임기 메모리가 작아 플레이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 화면이 멈추거나 깨지는 것을 말한다. 깁슨은 테트리스 게임 레벨 157에 도달했고, 그대로 화면은 멈췄다.

 

▶킬 스크린은 테트리스에만 있는 게 아니어서 고전 게임의 실질적 엔딩으로 여겨진다. ‘팩맨’은 레벨 256에서 왼쪽 화면은 정상적으로 나오지만, 오른쪽 화면은 숫자와 문자가 뒤죽박죽돼 깨진다. 8비트로 저장된 게임 데이터가 255번까지만 가능하고 256번째 값은 불러올 수 없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풍미한 ‘갤러그’도 255스테이지를 깨면 다음 스테이지가 0으로 바뀌면서 게임이 강제 종료된다. ‘동키콩’은 22번째 레벨에 도달하면 게임 스테이지를 완료할 시간을 4초밖에 주지 않는다. 당연히 깰 수 없다.

 

킬 스크린은 개발자가 게임을 설계하며 게이머들이 실제로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본 지점이다. 설마 이 지점까지 플레이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프로그래밍적 오류를 방치한 결과다. 하지만 인간은 한계를 뛰어넘었다. 테트리스 게이머들은 엄지·검지·중지로 빠르게 방향 키를 누르는 ‘하이퍼 태핑’과 오른손 엄지를 방향 키에 대고 조이스틱 뒷부분을 왼손으로 빠르게 치면서 그 반동으로 방향 조절을 빠르게 하는 ‘롤링’ 기법으로 테트리스를 공략했다. 2020년엔 테트리스 최고기록이 레벨 34에 불과했지만 숱한 시도와 노력으로 2년 후엔 레벨 95를 기록했고, 드디어 깁슨이 이 게임을 정복했다.

 

테트리스의 킬 스크린이 세계적 화제가 된 것은 인공지능(AI)만 가능했던 것을 인간도 이뤄냈다는 점에 있다. 바둑·체스는 물론 레이싱 게임을 포함한 각종 비디오 게임에서도 AI는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도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테트리스 게이머들은 ‘하이퍼 태핑’이 벽에 부닥치자 ‘롤링’ 기술을 고안해 결국 킬 스크린의 종착점까지 갔다. 상상력과 창의력, 도전 정신으로 한계를 돌파해가는 것이 인류라는 종(種)이 진화해온 방식이다.

 

-김성민 논설위원·디지털기획팀장, 조선일보(2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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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현실이 돼 가는 게임

 

11년 차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인 루카스 지올리토(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소속)는 등판 전날 꼭 야구 컴퓨터 게임 ‘MLB 더 쇼’를 한다. 선발진과 유니폼, 구장을 실제 경기와 똑같이 설정하고 진지하게 버튼을 누른다.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통산 61승 62패의 이 투수는 “실제 경기에서 위기를 맞으면 전날 컴퓨터 게임 속에서 호투한 공을 떠올린다”고 했다. ‘라이언킹’ 이동국도 “축구 컴퓨터 게임은 이미지 트레이닝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자주 즐기고 있다”고 했다.

 

▶올 9월 출간된 머스크 전기에는 그의 스마트폰 게임 활용법이 나온다. 그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폴리토피아를 하며 휴식하고, 자신의 사업 계획을 정교화·고도화했다.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전략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게임을 통해 배웠다. 전기 작가 아이작슨은 “머스크에게 컴퓨터 게임은 ‘인생의 전략을 실천하는 은유적 전쟁터’”라고 했다.

 

지난 주말 서울 고척 스카이돔과 광화문에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롤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은 게임이 오락을 넘어 산업이 됐음을 보여줬다. 전 세계 게임 산업 규모는 322조4000억원에 이르고, 미 캘리포니아대 어바인과 스탠퍼드대에 전문 e스포츠 팀이 있을 정도다. 2018년 WT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서 코너에 몰렸던 컴퓨터 게임은 이제 현실과 결합해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군사 분야다. 미 공군은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를 기반으로 한 비행 게임을 실제 전투기 조종사 훈련에 사용한다. 조종사들은 게임 속 가상 세계에서 동료와 상호작용하는 법과 합동 전술을 익힌다. 이스라엘이 개발한 최첨단 장갑차 카르멜도 게임이 현실로 넘어온 경우다. 장갑차 조종석엔 파노라마 모니터와 게임 조이스틱이 있다. 장갑차 운전병은 게임을 하듯 조이스틱으로 모니터를 보며 탱크를 조종한다. 18~21세 운전병이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실제 게임 디자인을 적용했다고 한다.

 

게임은 정신 질환 치료법도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라크전 참전 군인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게임과 가상 현실이 활용된다. 당시 끔찍했던 전장 상황을 게임 속 가상 현실로 재구성하고 환자가 게임을 하면서 당시 상황과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테크 업계에선 가상 현실과 결합한 게임이 현실의 새로운 확장판이 될 것이라고 본다. 미래에는 현실과 게임의 구별이 모호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게임이 현실을 어떻게 보완하고 바꿀지 궁금하다.

 

-김성민 논설위원·디지털기획팀장, 조선일보(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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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聖地 한국

 

1998년 생겨난 한국 최초의 컴퓨터 '게임팀'은 한 PC방 소속이었다. 특정 PC방에서 게임을 하면 월급을 받는 방식이었다. '프로게이머'란 말도 이때 처음 선보였다. 당시 게임 대회 하나가 우승 상금 1000만원을 내걸자 '천문학적'이란 반응이 나왔다. 당시 프로게이머 수입은 불로소득으로 분류돼 높은 세율이 매겨졌다.  


▶지금 한국은 세계 최고의 게임 환경과 프로게이머를 갖춘 나라다. SK텔레콤과 KT 같은 대기업이 프로 게임팀을 운영하며 스타 선수에게 수십억원 연봉을 지급한다. 6조4000억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게임 산업 규모는 중국·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4위다. 게임 전문 채널도 우리나라에서 맨 먼저 탄생했고 전 세계 게임팀 코치의 30%가 한국인일 정도다.

▶프로게이머 92명이 소속된 미국 최대 게임팀 선수들이 한국에 전지훈련을 와서 하루 10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빠른 인터넷 환경에서 한국 팀들과 붙으려고" 왔다고 한다. 서울의 전망 좋은 50평대 아파트 두 채에 선수 10명이 나눠 지내며 내년 1월 시즌 개막을 준비 중이다. 한국 선수들을 닮겠다고 매끼니 김치도 먹는다. 포브스가 추산한 이 팀의 가치는 3500억원이다.

 

국내 컴퓨터 게임은 IMF 외환 위기가 키웠다는 말이 있다. 당시 PC방이 고소득 창업 아이템으로 꼽히면서 전국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마침 출시된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달인들이 이 PC방들에서 탄생했다. 이때 임요환이라는 게이머가 때맞춰 출범한 게임 채널 덕을 보며 프로게이머 최초의 스타로 떠올랐다. 근래 몇 년간 세계 최고 스타 게이머는 올해 스물두 살 한국 선수 이상혁이다. 그의 연봉은 3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고 중국 팀에서 105억원에 스카우트를 시도했을 정도다. 그가 인터넷으로 개인 방송을 하면 500만명가량이 동시 시청한다.

▶중국 게임 업계에서 그를 데려가려는 것도 방송에 광고를 붙이고 이벤트나 캐릭터 상품 판매로 1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두 달 전 한국에서 열린 세계게임대회는 누적 인원 4억명 이상이 시청했고 결승전 시청자만 1억명이었다. 이 대회에 미국 스포츠 구단들이 투자하고 방송사와는 3년간 3500억원짜리 중계권 협상이 진행 중이다. 오락실에서 동전 넣고 외계인 무찌르던 게임과 본질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규모와 실력이 월드컵이나 메이저리그 못잖게 성장했다. 그 중심에 한국이 있다. 아직은.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1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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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독은 정신질환


"우리 아이는 축구도 잘하고 성적도 좋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방에만 틀어박혀서…. 게임에 빠지더니 완전히 딴 아이가 됐습니다. 밤새 게임하고 학교도 안 가려 해요." 게임 중독 중고생 아이를 둔 엄마들이 정신과 진료실을 찾아와 털어놓는 전형적인 이야기다. 디지털 폐인이 된 후 게임을 더 하려 도둑질도 하는 'IT 괴물'로 크는 경우도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는 게임으로 전쟁을 하고 부모는 그 아이와 전쟁을 치르는 집은 수두룩하다.

▶요즘 유행하는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은 인터넷을 통해 여러 사람이 같은 게임에 참여하고, 아군끼리 인터넷 전화로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작전을 짜고, 모험을 하고, 적을 무찌르는 게임이다. 시간이 갈수록 자기 분신(아바타)이 강해져, 순위가 올라가면 영웅 대접을 받는다. 현실 세계에선 맛볼 수 없는 희열이다. 자기가 빠져도 전쟁은 진행되기 때문에 궁금해 빠져나오기 힘들다. 이렇게 갈수록 중독성 큰 게임들이 출시된다

 

▶뇌에는 쾌락을 추구하는 신경 중추가 있다. 쥐의 뇌에 전극을 심고 스스로 스위치를 눌러 전극을 자극할 수 있도록 했다. 뇌 여러 부위에 전극을 옮겨 가며 어떻게 행동하는지 봤다. 그러자 어느 전극에선 쥐가 한 시간에 7000번이나 발판을 눌러댔다. 배가 고파도 먹이는 쳐다보지 않고 발판만 누르다 죽었다. 중독은 그곳 쾌락 중추가 흥분된 결과다. 생존 본능마저 마비시킬 만큼 무섭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중독을 정신질환으로 보고 세계질병통계 분류판에 올려놨다. 지나친 게임 몰입도 알코올·도박처럼 쾌락 중추를 자극해 중독 상태에 빠뜨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내년 총회에서 질병으로 공식 승인을 받으면, 각국 정부들은 게임 중독을 조기 발견하고, 치료하고 중독 유혹을 규제하는 보건의료정책을 짤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수억 명이 즐기고, 새로 출시되는 게임이 조 단위 매출을 올리는 게임 산업과 충돌이 예상된다.

▶중독은 심성을 황폐화시켜 가족의 살가운 눈빛도 외면하게 하고, 하늘의 푸른빛도 뒤로하고 세상과 담을 쌓게 만든다. 한번 중독돼버리면 일상에 대한 도피와 회피로 빠져든다. 게임 중독을 청소년 개인이 정신적으로 나약한 탓이라고 볼 게 아니다. 그 아이들을 중독으로 모는 사회 환경의 문제로 봐야 한다. 수천·수만 명의 청소년이 정신질환으로 빠져들고 있다면, 그것보다 더 해결이 급한 사회문제가 또 뭐가 있겠는가.

-김철중 논설위원·의학전문기자, 조선일보(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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