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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 [박정희의 죽음을 목격한 술의 정체]

뚝섬 2024. 4. 14. 05:50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옷장이 술장이 됐다]

[박정희의 죽음을 목격한 술의 정체]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옷장이 술장이 됐다 

 

술 창고가 된 옷장. 어느 날 세어보니 100병이 넘었다. /김지호 기자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옷을 넣어두던 장이 술 창고가 됐다. 사고 마시고 비우고, 또 사고 마시고 비우고. 어느 순간 술 마시는 속도가 술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느 날 잠깐 정신 차리고 술병을 세어봤다. 100병이 넘었다. 화들짝 놀라 옷장을 조용히 닫았다.

 

회사 입사 후 주야장천 소맥만 말았다. 갓 입사한 신입 사원이 말면 얼마나 맛있겠는가. 엉망이었다. 맛없게 말아진 술은 스스로 해결했다. 다음 날 숙취는 덤. 5년 차가 넘어가니 주변에서 마실 만하다는 평을 받았고 10년 차 때는 너도나도 말아 달라고 잔을 들이밀었다. 앉은뱅이 술을 제조하는 연금술사가 됐다. 다 좋은데 숙취는 견딜 수가 없다. 전날 밤에 좀 놀았다고 이튿날 고통받을 일인가.

 

그런데 위스키는 달랐다. 위스키는 도수가 최소 40도 이상이다. 두세 잔, 많게는 다섯 잔이면 적당히 기분이 좋다. 소맥처럼 들이붓는 것도 아니니 숙취도 없는 편이다. 보통 국내에서 유통되는 위스키 한 병에 담긴 양은 700mL다. 미국의 경우 750mL, 몰트 바에서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위스키 한 잔은 30mL다. 병당 대략 23~24잔이 나온다. 와인은 따면 하루 이틀 안에 다 마셔야 한다. 위스키는 한두 잔만 마시고 보관했다가 일 년 뒤에 마셔도 무방하다. 이쯤 되면 다른 술에 비해 가성비도 그만이다.

 

위스키를 ‘양주(洋酒)’라고 많이 불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양주란 사전적인 의미로 ‘서양에서 제조한 술. 증류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지금처럼 서양 주류 문화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 주종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 보드카, 데킬라, 위스키, 브랜디, 럼 등을 모두 양주라고 부른다. 모든 위스키는 양주지만, 모든 양주가 위스키는 아니다.

 

위스키, 참 맛있고 재밌다. 혼자만 알고 무덤까지 가져가기는 아쉬워 위스키 구매에 참고가 될 만한 정보를 이 코너에 공유하고자 한다. 취향을 찾는 데 지름길이 있다면 한 번쯤 이용해 보시는 것은 어떠실지.

 

-김지호 기자, 조선일보(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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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죽음을 목격한 술의 정체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40분쯤.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집니다. 첫발은 차지철 경호 실장 손목에 박히고, 나머지 한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슴팍에 맞습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 상황을 현장검증하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조선일보DB

 

이날 박 전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뒤 KBS 당진 송신소 개소식을 마치고 궁정동 안가에서 연회를 가졌습니다. 참석자들은 당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인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었습니다. 연회 도중 김재규는 총으로 차지철의 손목과 복부를 쏴 죽이고, 박 전 대통령의 가슴과 머리에 방아쇠를 당겨 시해합니다. 현장에서 긴급히 벗어 난 김계원은 목숨을 건집니다. ‘서울의 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사건 현장에는 전복무침, 송이버섯, 장어구이 등 30접시가량의 음식과 위스키가 놓인 술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간경화를 앓고 있던 김 부장과 독실한 기독교인인 차 실장은 술잔에 입만 대는 시늉을 했고 술은 박 전 대통령과 김 실장만 마셨다고 합니다. 이날 밤, 사건 현장을 목격한 위스키의 정체는 다음 날 합수부가 찍은 현장 사진에서 밝혀집니다.

 

죽음을 목격한 술의 정체

 

사건 발생 약 10시간 후인 10월 27일 오전 5시 육군 과학수사 연구소가 채증한 시해 현장 사진. 우측에 시바스 리갈 병이 보입니다. /육군과학수사연구소

 

궁정동 안가에서 온더락 잔에 오갔던 위스키는 바로 ‘시바스 리갈 12년’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가 고작 12년 숙성밖에 안 되는 엔트리급 위스키를 마셨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시바스 리갈 18년도 있고, 25년도 있는데 말이죠.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침대 머리맡에 두고 소중히 아껴 마셨던 로열 살루트 21년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혈흔이 낭자한 연회 술상 위에 놓여 있는 술은 틀림없이 시바스 리갈의 병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이 흐릿해 숙성연수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정답은 생각보다 쉽게 도출됩니다. 시바스 리갈 18년은 1997년에 출시됐고, 25년은 1909년대 출시됐지만, 전쟁과 금주법 등의 영향으로 단종되고 2007년이 돼서야 재출시됐기 때문입니다. 즉, 사건 당일에는 1939년대에 출시된 시바스 리갈 12년과 1953년에 출시된 로열 살루트 21년 밖에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 중 병 모양부터 달랐던 로열 살루트 21년은 아닌 것으로 결론났죠.

 

1970년대 한국에서 마실 수 있었던 위스키는 많지 않습니다. 정체 모를 밀주와 유사 위스키를 제외하고 조니워커와 시바스 리갈, 로열 살루트 정도였을 것입니다. 이조차도 군인이나 외국을 다녀온 친지, 지인이 큰맘 먹고 사다 준 선물이거나 누군가 호의를 얻기 위해 건네준 술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조니워커가 아닌 시바스 리갈과 로열 살루트를 선택했을까요?

 

박 전 대통령은 평소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병원이나 요오드 맛으로 느껴지는 피트 위스키보다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위스키를 선호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둘 다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지만 조니워커의 경우 원액에 피트가 살짝 섞여 있어 스모키한 맛이 특징입니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반면 시바스 리갈이나 로열 살루트는 논(Non) 피트에 가까운 제품들입니다. 피트보다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위스키가 박 전 대통령의 취향이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한편 이 사건으로 ‘대통령의 술’로 우리나라에서 명성을 얻은 시바스 리갈 12년은 산뜻한 과일 향과 캐러멜 맛, 부드러운 목 넘김이 특징입니다. 어르신들 술장에 꼭 한 병씩은 고이 모셔져 있는 술이기도 하지요.

 

식료품점에서 시작된 역사

 

제임스, 존 시바스 형제가 운영하던 에버딘 지역 킹스트리트의 상점 모습. /chivas.com

 

시바스 리갈의 역사는 1801년 제임스 시바스 형제가 운영한 스코틀랜드 에버딘의 식료품점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식료품점들은 다양한 식자재 외에 홍차와 위스키도 취급했습니다. 이 시기에 판매됐던 위스키는 대부분 품질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균일화된 상품을 내기 위해서는 블렌딩 작업이 필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홍차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던 제임스는 위스키 블렌딩에도 두각을 나타냈고 식료품점을 성공궤도에 올리게 됩니다. 이들의 사업은 귀족들에게 입소문이 나고 영국 왕가에 물건을 납품하면서 1843년에는 영국 왕실의 품질 보증서와 같은 ‘로열 워런트’를 하사받습니다.

 

시바스 형제와 자식들이 세상을 떠나고 1893년 이후로 동업자인 알렉산더 스미스와 찰스 스튜어트 하워드가 회사를 인수해 운영합니다. 1909년 시바스 형제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25년 숙성의 원액들을 블렌딩해 지금의 ‘시바스 리갈’이 탄생합니다.

 

하지만 1935년 두 동업자의 죽음과 함께 미국의 금주법, 세계대전까지 겪어야 했던 회사는 결국 1949년 샘 브롬프먼 회장이 운영하던 시그램에 의해 인수됩니다. 인수 직후 시바스 브라더스의 키 몰트를 담당하고 있는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까지 매입하게 되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탄생한 위스키가 로열 살루트 21년입니다. 당시 샘 브롬프먼 회장은 영국 해군이 왕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21발의 축포를 쏘는 데서 영감을 얻어, 최소 21년 이상 숙성한 위스키 원액만을 엄선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식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그램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2000년에 파산하면서 시바스 브라더스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인 페르노리카에 인수됩니다.

 

◇1970년대 시바스 리갈이 지금과 다른점

 

박 전 대통령이 즐겨 마셨던 1970년대 시바스 리갈 12년은 현재 유통 중인 제품과는 맛에 차이가 있습니다. 70년대 출시된 제품의 알코올 도수는 43%지만 현재는 40%로 내려와 있습니다. 최종 병입 단계에서 물을 타서 원액을 희석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70년대 위스키 숙성 시 사용되었던 셰리 오크통도 지금과는 차이가 있어서 맛이 일치하기 어렵습니다. 현재는 해외 옥션 등을 통해 200달러 선에서 구매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단, 올드 보틀 특성상 보관 상태나 출처 등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맛은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친척들이나 아버지의 술장에서 찾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시바스 리갈 12년은 주류 숍이나 마트 등에서 4-5만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시바스 리갈 12년 모습. /whiskyauctioneer 캡쳐

 

순수하게 맛 관점에서 봤을 때 시바스 리갈은 개성이 강하거나 새로운 맛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인 사건까지 더해져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위스키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한 번쯤은 바에서 잔술로라도 최후의 만찬에 쓰였던 술을 경험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개인적으로는 얼음과 함께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김지호 기자, 조선닷컴(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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