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외]

[‘남친’ 빌리러 일본 갑니다]

뚝섬 2024. 2. 18. 05:44

‘남친’ 빌리러 일본 갑니다

 

日 이색문화 ‘렌털 친구’
한국 관광객도 체험 중

 

우리나라 여성 유튜버가 일본에서 렌털 남친 서비스 업계 1위에 오른 남성과 만나자마자 손을 잡고 있다. 이 남성과 데이트하는 데 시간당 10만원가량을 지불했다. /유튜브

 

“우리 손잡을래?”

 

“벌써? 너무 빠르지 않아? 난 손에 땀도 많아서.”

 

“그럼 내 손이 촉촉해지겠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누가 봐도 연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만난 지 5분밖에 안 된 ‘오늘 처음 본 사이’였다. 일명 ‘렌털 남친, 여친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수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애인 역할을 대신해줄 사람에게 돈을 주고 데이트를 하는 게 유행이다. 일본 여행을 간 한국인들도 재미 삼아 이를 체험하고 있다.

 

일본의 렌털 친구 서비스는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쉽게 예약이 가능하다. 얼굴 사진과 나이, 키, 혈액형, 사는 곳, 직업, 취미 등이 적힌 프로필이 올려져 있고, 지명도 등에 따른 인기 순위도 집계돼 있다. 이용자가 이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채팅으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면 데이트가 성사된다. 비용은 시간당 10만~20만원 안팎. 직접 현금을 지급하거나 사전에 카드 결제도 된다.

 

매주 100건 이상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는 한 업체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고객이 있다”며 “데이트 연습이 필요한 분들, 남자 또는 여자를 만나는 데 고민, 상담이 필요한 분을 위한 서비스”라고 했다. 스킨십 가능 여부는 업체마다 다르다. 대부분 손을 잡거나 포옹까지는 허용하지만, 그 이상은 ‘절대 불가’라고 공지돼 있다. 일부 업체는 손을 잡으려면 5만원가량 추가 비용을 요구했다. 수영장이나 밀폐된 공간인 노래방 등도 돈을 더 내야 함께 갈 수 있다.

 

사진은 관련 업계 사이트에 올라온 남성들의 프로필 사진 /카레시하켄닷컴

 

최근 유튜브에는 “일본 여행 가서 렌털 친구를 만나봤다”는 후기가 자주 올라온다. 일본어가 유창한 어떤 유튜버는 업체 지명도 1위에 오른 20대 남자를 만나 레스토랑에서 피자도 먹고, 공원을 걸으며 사진도 찍는 일상을 공개했다. 2시간에 20만원가량인 렌털비를 포함해 모든 데이트 비용도 여성이 냈다. 이 유튜버는 “솔직히 만나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호스트처럼 생긴 가벼운 남자가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수줍음도 많고 젠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이용 안 할 거 같지만, 상대방에게 맞추는 게 귀찮은데 데이트는 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가끔 이용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30대 렌털 여친 서비스를 체험한 유튜버는 2시간에 30만원의 이용료를 냈다고 했다. 해당 여성에게 “스킨십이 가능하냐”고 묻자 “손잡는 건 되지만 안는 것 이상은 안 된다”고 했다. “한국인은 처음 만난다”는 이 여성은 “영어가 가능한 분은 외국인도 만나더라”라고 했다.

 

데이트 후 유튜버는 “유료 서비스였지만 정말 친구같이 친절하게 대해줘서 편했다”며 “대화하고 싶을 때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댓글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주네요” “외로운 사람에겐 진짜 친구 같은 느낌이겠다” “그냥 친구 없이 밥 먹지, 30만원 내고 2시간짜리 친구 사는 건 아니다” 등의 반응이 달렸다. 꼭 남친, 여친이 아니라도 혼자 일본에 여행 가서 동성 친구를 렌털해 함께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영상도 있다.

 

일본의 렌털 친구 서비스는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일본은 1990년 정점에 달했던 버블 경제가 붕괴한 이후 개인주의적 성향이 더욱 가속됐다. 당장 나의 생활이 불안정한데 연애를 한다고? 일본 젊은 층은 상대방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럴 이유도, 필요도 못 느낀다고 답한다.

 

최근엔 20∼30대 독신 남성 10명 중 4명은 연인을 사귄 경험이 없다는 일본 정부 조사 결과도 나왔다. 20∼30대 독신 여성 24.1%도 연인으로 교제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일본의 젊은 남성들이 ‘초식남(草食男)’을 넘어 ‘절식남(絶食男)’이 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성에 소극적인 걸 넘어 아예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 간 접촉을 귀찮게 생각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더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가 아닌 가상의 연애라도 경험하려는 젊은이를 위한 렌털 친구 서비스가 생겼고 인기를 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가 국내에도 스멀스멀 퍼지고 있다. 문제는 음성화 가능성이다. 한 애인 대행 서비스 업체 홈페이지에는 “커플이나 여성 고객만 있는 예쁜 카페에 혼자 가기 어렵지 않은가요? 혼자 가기 힘들어 망설일 때 연락 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친구 결혼식에 혼자 가기 싫을 때, 여자 친구 생긴 척하고 싶을 때, 클럽에 가고 싶을 때 적극 이용하라는 팁도 함께. 안내문에는 데이트 중에 드라이브는 안 되고 대중교통만 탈 수 있는 데다 팔짱 끼기 등 성적 터치는 절대 금지라고 돼 있다. 다만 서비스는 시간당 5만, 6만, 7만원으로 가격이 달랐다. 왜 다른지는 알 수 없었다.

 

-김아진 기자, 조선일보(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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