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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단맛이 필요할 때 외친다… “나가사키가 부족해!”]

뚝섬 2024. 1. 8. 11:28

요리에 단맛이 필요할 때 외친다… “나가사키가 부족해!”

 

융합으로 성공한 도시… 日 나가사키 ‘슈가로드’

 

영감은 예술가와 창업자에게만 필요한 걸까? 천만의 말씀! 누구나 인생의 예술가이며, 자기 삶의 최고경영자이다. 나이 들면 영감 소리 듣기 마련이지만 그럴수록 정신적 영감은 더 필요한 법이다. 설렘이란 감각을 되찾고자 한다면 bmw 여행을 제안한다. 버스-지하철-걷기를 떠올리겠지만, 책(book)의 배경을 따라 음식(meal)도 즐기면서 낮에는 걷다가(walk) 저녁에는 포도주(wine) 한잔 나누는 일정이다. 비용이 과하지 않으면 금상첨화.

 

일본 나가사키는 딱 그런 곳이다. 본격 답사에 앞서 나가사키 짬뽕으로 육체의 허기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머리는 멀고 입은 가까운 법이니까. 그런데 차이나타운의 식탁에 나온 음식은 맵지도 않고 흰색에 가까운 ‘웃기는 짬뽕’이었다. 중국 푸젠성 이민자들이 개발한 음식이라고 하는데, 이것저것 뒤섞인 것을 짬뽕이라 한다면 나가사키야말로 짬뽕 문화, 즉 융합으로 성공했던 도시가 아닌가.

 

시카이로 식당의 나가사키 짬뽕. /손관승 제공

 

데지마는 한자로 출도(出島)라 표기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쇄국 일본이 해외를 향해 숨통을 열어놓고 있었던 부채꼴 모양의 작은 인공섬이다. 1636년에 건설하여 포르투갈을 거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관 건물이 있던 곳이다. 정문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의 이름은 데지마 표문교(表門橋), 일본어로는 ‘오모테몬바시’라 부른다. 길이 38.5m의 길지 않은 보행자 전용 다리다. 현재는 주변 해안지역이 매립되어 오래전의 낭만적 풍경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여행자의 상상력까지 제한하는 건 아니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미첼의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은 네덜란드 선진 학문을 도입한 난학(蘭學)에 러브스토리를 버무린 판타지 역사소설로 이 다리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다리는 두 세계에 걸쳐 있으니, 당신이 건넌 다리 중 가장 긴 다리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들도 이 다리를 통해 건너왔다. 외항선원을 뜻하는 마도로스는 ‘마트루스(matroos)’, 나이 든 분들이 컵을 가리키는 ‘고뿌’는 ‘콥(Kop)’, 심지어 가방은 ‘카바(kaba)’, 땅 파는 삽도 ‘스홉’(schop)이란 네덜란드어가 뿌리이며 데지마를 거쳐 변형 수입되었다. 네덜란드 상관장은 1년에 한 번 쇼군에게 인사하는 ‘에도참부(江戶參府)’ 의무가 있어 에도(도쿄)까지 왕복 몇 달 걸리는 길을 떠나야 했다. ‘오란다 풍설서’라 불리던 세계 정보를 전해야 했고 대포, 코끼리, 후추, 포도주도 가져갔다. 특산물을 선물하는 일본의 ‘오미야게’ 풍습을 활용한 전략으로, 덕분에 네덜란드는 220년 동안 교역특권을 유지했다. 반면 일본으로부터 은과 동 같은 광물자원을 사들인 뒤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비싼 가격으로 되팔았다. 아시아 역내무역(intra-Asian trade)은 유럽까지 가는 향료 무역 못지않게 많은 수익을 내면서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등 네덜란드 황금의 17세기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으니 비즈니스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길이다.

 

데지마와 나가사키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 /손관승 제공

 

데지마에서 규슈 북쪽 해안까지 223km의 길은 ‘나가사키 가도(街道)’라 하고 ‘슈가(Sugar) 로드’로도 부른다. 초기에는 포르투갈인과 기독교 선교사, 이후에는 네덜란드 상선이 싣고 온 설탕이 이 길을 따라 일본 전역에 전파되면서 음식 문화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독특한 디저트 문화를 탄생하게 만든다. 황금색 나가사키 카스텔라가 대표적이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의 배경인 구라바엔 언덕과 오우라 성당으로 들어가는 골목에는 카스텔라 전문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카스텔라 바닥에 굵은 설탕이 깔린 것이 특색. 이중 후쿠사야는 1624년에 창업했다고 하니 400년 역사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남만(南蠻)과자’가 나왔다는 기록은 카스텔라와 별사탕을 뜻한다. 팥을 재료로 한 양갱 역시 설탕이 추가되며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는다. 나가사키현 사람들은 요리할 때 단맛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나가사키가 부족해!”라 표현할 정도였다.

 

나가사키와 관련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헨드릭 하멜(1630~1692). 태풍으로 제주도에 난파해 한반도에 억류되어 있다가 13년 28일 만에 여수에서 탈출한 사람이다. 하멜 일행은 1666년 9월 나가사키에 도착한 뒤 일본 관리로부터 54개의 질문을 받는다. 일본 ‘통항일람(通航一覽)’에 나오는 하멜 관련 기록을 읽어보자. “본래 오란다 상인들인데, 일찍이 녹비와 설탕을 팔기 위해 일본으로 오던 도중 갑자기 폭풍우를 만났다.”

 

바닥에 굵은 설탕이 깔려 있는 나가사키 카스텔라. /손관승 제공

 

여기서도 설탕이 언급된다. 심문이 끝난 뒤 하멜은 돌다리를 건너 데지마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의 기쁨도 잠시, 일본 정부는 다음 달에 떠나는 네덜란드 선박에 하멜 일행의 탑승을 거부한다. 아무리 빨라도 그다음 배가 들어오는 1년 뒤에나 떠날 수 있다는 뜻이니 또다시 새장에 갇힌 새의 신세가 된 것이다.

 

고난이 닥치면 나훈아의 노래처럼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하고 울부짖기도 한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진짜 실력이 발휘되는 법이다. 하멜은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포착할 줄 알았다. 1년이 흘러 데지마를 떠나는 배에 오르게 되었을 때 그의 손에는 무언가 들려 있었으니 훗날 ‘하멜표류기’로 알려질 재난보고서였다. 불운한 인간 하멜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준 책이다. 그에게 데지마는 부활의 장소였다. 비틀거릴 때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긍정적 환상의 힘이다.

 

-손관승 근로생활자, 조선일보(2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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