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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유니클로’의 사투리 간판]

뚝섬 2024. 3. 1. 07:13

오사카 ‘유니클로’의 사투리 간판 

 

일본 오사카 신사이바시에 최근 문을 연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점포가 화제다. 내부 간판 문구가 전부 오사카 사투리로 쓰였다. ‘감사합니다(아리가토)’를 ‘오오키니’라고 적는 등 다른 지역에서 쓰지 않는 방언들이다. 지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지만, 가게는 외국인과 내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일본이 아닌 오사카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웃 도시 교토에선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의 간판 색이 온통 흑백이다. 다른 국가나 도시에서 스타벅스 간판은 초록 바탕에 그리스 신화 속 동물 ‘세이렌’이 그려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교토 특유의 목조 건물들이 이루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지역 당국이 규제한 결과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맥도널드’도 예외는 아니다. 맥도널드를 상징하는 빨간 바탕과 샛노란 ‘M’자 로고는 온데간데없이, 간판이 적갈색이거나 아예 검은 바탕에 M자 로고만 그려져 있기도 하다. 로손 편의점 등 일본 기업에도 같은 규정이 적용된다.

 

 

일본은 지난해 코로나 종식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급속도로 몰려들며 ‘오버투어리즘(관광 공해)’ 문제가 급부상했다. 거리는 관광객 노상 흡연과 쓰레기 투척으로 혼잡해졌다. 이대로 가다간 해당 지역에 내국인 발길이 끊겨 ‘외국인 전용 도시’로 전락하기 쉽고 나아가 관광 도시로서의 매력도 퇴색할 위험이 크다. 이에 위기를 느낀 도시들이 ‘지역 특색 사수’를 위한 자구책을 짜내고 있다.

 

한국 상황은 어떤가. ‘국내 최고 관광지’라던 제주도는 지난해 코로나 종식에도 관광객 수가 전년보다 4% 줄었다. 국내 관광객은 8% 떨어졌다고 한다. 국내 물가 상승과 엔저로 일본 여행이 유행한 탓도 있겠으나, 많은 이들은 제주도 여행을 꺼리는 이유로 바가지 물가 등 내부 요인을 꼽는다. 서울 광장시장은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며 코로나로 잃었던 활기를 되찾았다지만 외국인만 가득한 풍경과 가격을 부풀리는 ‘꼼수 장사’에 부담을 느낀 내국인 상당수가 방문을 주저하는 게 사실이다. 부산·통영·여수 등 어딜 가든 있는 ‘벽화 마을’은 외국인에겐 새로울 수 있으나 한국인 입장에선 좀처럼 지역 특색을 느끼기 어렵다.

 

여행 업계에선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을 놓고 봤을 때 한국을 고를 이유가 K팝, K푸드 정도 외엔 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과장된 면이 있지만, 현재 한국이 처한 관광지로서의 입지에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특색을 지키려 자구책을 마련한 일본 지방 도시들처럼, 한국도 관광 대국으로 올라서기 위해선 ‘우리 도시만의 즐길 거리’를 강구해야 한다. 외국인을 불러들이기는커녕 내국인 관광객까지 주변국에 빼앗기는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김동현 기자, 조선일보(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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