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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김정은 “대한민국 궤멸”] [한반도 ‘프리 워’ 위기.. ] ....

뚝섬 2024. 3. 7. 08:16

[불안한 김정은 “대한민국 궤멸”]

[한반도 ‘프리 워’ 위기 경고와 김정은의 전쟁 협박]

[키이우까지 1150㎞, 가자까지 1151㎞… 이스탄불은 오늘도 ‘지정학적 고민 중’]

[더 멀리 보는 사람]

 

 

 

불안한 김정은 “대한민국 궤멸”

 

압도적 美 핵능력 앞에 차선의 ‘인질 협박’
한미 확장억제 강화로 의연하게 대응해야

 

북한 김정은의 대남 ‘제1의 적대국가’ 선언 이후 그 배경을 놓고 국내외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 쏟아졌다. 자체 핵·미사일 개발 진전과 러시아와의 밀착에 따른 모험주의 발동, 내부 불만과 동요를 잠재우기 위한 체제 결속용, 나아가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을 내다본 전술적 카드 등 저마다 해석이 다양하다. 사실 그 모든 요인이 계산된, 자신감과 위기감 사이 어디쯤에서 내려진 전략적 선택일 테지만 뭔가 충분치 않다.

이런 분분한 논의 속에 북한의 노선 변경을 생존의 핵전략 차원에서 짚은 동아시아연구원(EAI) 하영선 이사장과 김양규 수석연구원의 이슈 브리핑 ‘북한의 대남 노선전환 바로 읽기’는 눈여겨볼 만하다. 이 글은 미국이 북핵 위협에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경고하며 맞춤형 확장억제 전략을 강화하는데도 그에 맞설 실질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북한이 선택한 차선의 대응책이 바로 “대한민국의 궤멸”을 내세운 ‘북한식 맞춤형 핵위협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북한이 핵무장을 했다지만 보유 핵탄두가 미국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기술적 한계도 분명한 처지에서 ‘공포의 균형’을 통한 상호 억제는 이뤄질 수 없다. 더욱이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F-35 전투기에 탑재할 수 있는 신형(B61-12)으로 교체하는 등 한층 첨단화한 억제력을 구축했다. 그러니 대미 억제라는 북한 핵무기의 ‘제1사명’은 작동 불가능해졌고, 결국 ‘제2사명’에 매달리며 동족을 적국으로 겨냥했다는 진단이다.

 

사실 이런 대남 위협 전략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미 30년 전 미국의 외과수술식 정밀타격 위협에 맞서 휴전선 일대에 밀집 배치된 장사정포를 들먹이며 “서울 불바다”를 위협했던 북한이다. 특히 김정은이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수십 년 통일 노선까지 폐기한 것은 제아무리 핵무기로 무장해도 정권 생존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군사적 현실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위기감이 전부는 아니다. 날로 격화하는 신냉전 기류에서 지금이야말로 판을 흔들 절호의 기회라는 호기로운 계산도 엿보인다. 나아가 한미 동맹을 ‘방기와 연루’의 딜레마에 빠뜨리려는 이간책도 숨어 있다. 연말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일수록 한국에선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불신이, 미국에선 북핵을 사실상 용인하는 협상론이 고개를 들 수 있는 수상한 시절이니 더욱 그렇다.

당장 김정은의 거친 협박에서 ‘전쟁하겠다는 결심’을 읽었다는 미국 전문가도 있지만 그런 무모한 공멸(共滅)의 길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무력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다분하다. 그래선지 요즘 미국에선 한국의 과도한 대응이 자칫 확전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한국의 ‘몇 배 응징’을 말리되 조심스럽게 설득할 것을 주문하는 전문가도 있다.

올 한 해 한반도는 어느 때보다 아슬아슬한 위기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가 세운 기념물마저 “꼴불견”이라며 철거를 지시한 김정은의 불경스러운 언사도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EAI 보고서 진단대로 북한은 스스로 미국의 압도적 억제력 앞에 무력함을 드러냈다. 정권 종말의 위기감을 대남 인질 위협으로 버티고 있지만 그 한계도 곧 깨달을 것이다.

경찰 총에 조준된 강도보다 칼부림을 협박당하는 인질의 처지가 더 괴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북한 위협의 칼끝에 있지만 그럴수록 의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자체 핵무장론에 흔들리며 우리 내부, 나아가 동맹 간 균열을 내기보다는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더욱 강화하고,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되 절제된 대응으로 긴장을 관리해야 한다.


-이철희 논설위원, 동아일보(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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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프리 워’ 위기 경고와 김정은의 전쟁 협박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가운데)이 지난달 14일 신형 지대함미사일(바다수리-6형) 검수사격 현장을 참관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불법적 유령선”이라며 도발 협박을 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최근 210년간의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확정한 스웨덴의 행보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거듭된 핵전쟁 위협은 작금의 국제정세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앤서니 코튼 미 전략사령관은 며칠 전 미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과 러시아, 북한, 이란의 군사밀착으로 (미국이) 다수의 핵무장 국가와 동시에 전쟁을 치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포스트 워(post-war·전후)를 벗어나 프리 워(pre-war·전전)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올해 초 그랜트 섑스 영국 국방장관의 진단이 심각하게 와닿는다. 섑스 장관은 러시아와 이란, 중국과 함께 북한을 향후 5년 내 분쟁 예상지역으로 콕 찍었다. 새로운 ‘악의 축’으로 지목된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파괴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살얼음판 같은 정세를 직시하고 대비하라는 경고음으로 들린다. 북한 김정은은 연초부터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이라고 맹비난하면서 적개심 고취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핵 공격을 불사하고 대한민국을 점령· 평정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미사일 도발과 핵무력 고도화에 몰두하고 있다. 일부 해외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전쟁 결심을 했다고 주장하고, 러시아 외교 당국자까지 나서 “한반도의 직접 군사 충돌 가능성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경고하면서 ‘한반도 위기설’까지 부상하고 있다.

 

과도한 의미 부여에 대한 경계 목소리도 나온다. 김정은의 내부 결속용 ‘엄포 전술’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다량의 탄약을 제공하고, 대북제재로 피폐해진 경제 사정을 감안하면 김정은의 전쟁 결행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나친 위기 증폭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방심은 더더욱 금물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전쟁 결행의 ‘의지’와 ‘능력’ 측면에서 김정은의 협박을 ‘말 폭탄’으로만 넘겨선 안 된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대남 적화 의지를 노골화하고, 이를 도발로 현시한 게 다반사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숱한 도발이 그 증거다.

2017년 8월 김 위원장은 백령도와 연평도에 대한 대량 포격과 특작부대의 대규모 기습 점령 훈련을 참관한 뒤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북한의 노동당 규약은 여전히 적화통일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능력’은 더 확연하고 노골적이다. 6차례의 핵실험과 다량의 핵물질 생산, 핵탄두를 어디서든 투발할 수 있는 미사일 시험발사 등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핵 무력 증강에 골몰하고 있다.

일각에선 김정은의 협박과 핵 무력 증강을 자위용이자 대미 협상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 하지만 한미가 북한을 먼저 공격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것은 김정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3대에 걸쳐 경제를 망가뜨려 가면서 핵·미사일 고도화에 ‘올인(다걸기)’하는 것은 북한 주민을 탄압하고, 김씨 왕조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남적화의 결정적 시기를 노려보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전을 김정은이 고강도 대남도발의 교과서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두 전쟁의 양상과 구체적 사례를 한반도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실제 도발 시나리오에도 반영할 공산이 크다. 이들 전쟁에서 ‘게임체인저’로 부상한 드론(무인기)의 전방위적 활용과 이스라엘-하마스전에서 실증된 기습 배합전을 대남 공략에 극대화하는 전략 전술을 획책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전에서 보듯이 미국의 직간접 지원도 국내 정치에 발목이 잡히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도 간파했을 것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한국 전역과 미 본토를 동시에 때릴 수 있는 핵 무력을 달성했다고 자만한 김정은이 위험한 오판을 할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북도서를 기습 강점한 후 핵 사용을 위협하거나 최전방 지역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대규모 국지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 무력을 앞세운 속전속결식 서울 점령 시나리오를 작전계획으로 구체화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여러 차례 김정은이 한국 지도를 펼쳐 놓고, 핵 공격 훈련을 실시한 것도 그 일환으로 봐야 한다.

북한은 올해 고강도 도발과 예측불허의 무력시위로 확장억제(핵우산) 등 미국의 방위 공약과 우리 군의 대비태세, 우리 국민의 대응역량을 최대한 흔들려고 할 것이다. 재집권 가능성이 커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동맹 경시, 북한·중국·러시아의 전방위적 밀착, 한국 사회의 극심한 이념과 진영 갈등을 김정은이 호재로 판단할 공산도 크다. 한 치의 허점이나 빈틈도 보이지 않도록 경계의 고삐를 다잡아야 할 때다. 프리 워’ 위기의 최전선이 한반도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한 귀로 듣고 흘려선 안 될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동아일보(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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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까지 1150㎞, 가자까지 1151㎞… 이스탄불은 오늘도 ‘지정학적 고민 중’

 

[新중동천일야화]

 

이스탄불은 아름답다. 풍광도 수려하지만 이질적인 것들이 다투지 않고 어우러지는 공존의 미학이 핵심이다. 동로마 기독교의 심장이었던 성소피아 사원과 이슬람 술탄의 상징인 블루모스크가 나란히 서 있다. 중세 오스만 제국 유적들의 실루엣은 신도시 마천루들의 스카이라인과 이어지며 묘한 대비를 이룬다. 최대 번화가 이스티클랄 거리에는 이슬람 복식으로 몸 가린 여성들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이 거리낌 없이 섞여 걷는다. 도시는 두 대륙을 하나로 품는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대교와 두 개의 터널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다. 바다 위로 페리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시민들을 실어 나른다. 옆 동네 마실 가듯 대륙을 넘나드는 이른바 유라시아시(市)다.

 

공존의 미학에는 필연적인 긴장이 따른다. 이스탄불은 경계가 갖는 고단함을 품고 있다. 두 가지다. 하나는 지질학의 경계, 즉 충돌하는 지각판 위를 살아가는 지진의 공포다. 다른 하나는 주변의 이질적 국가들과 충돌하며 지정학적 경계를 살아가는 이의 부담이다.

 

작년 2월 튀르키예 남부 대지진은 이 땅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새삼 각인시켰다. 튀르키예는 유라시아판, 아라비아판 그리고 아프리카판 등 세 개의 거대한 지각판 사이에 자리한다. 작년 지진이 이 판들이 맞물리는 동아나톨리아 단층에서 일어났다면 다음 지진은 북아나톨리아 단층대에 있는 이스탄불을 덮칠 것이라는 공포감이 퍼져있다. 인구 1600만 이스탄불에 작년 수준의 대지진이 찾아온다면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의미한다. 25년 전 이스탄불 근처 마르마라 대지진의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은 내진설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전문가 중 일부는 아예 주민들을 안전지대로 이주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은 내진 테스트 이후 도서관 출입을 제한하고 있고, 기숙사도 흑해 지역으로 옮겼다. 지진의 빈도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주만 해도 마르마라 바다 서쪽 다르다넬스 해협 근처 차나칼레에서는 하루에 다섯 차례 이상의 약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갑자기 땅이 갈라지고 바다가 넘치는 지질학적 자연재해는 어찌할 도리 없는 천형에 가깝다. 내진 설비 보강에 최선을 다하면서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반면 또 다른 판의 경계, 즉 지정학의 단층선에서는 선택이 미래를 가른다. 리더의 전략과 비전에 나라의 흥망이 달려있다. 튀르키예는 국제정치의 지정학 판도상 중동판, 유럽판, 중앙아시아판, 그리고 러시아판의 단층선 위에 있다. 대륙 러시아를 머리에 이고 있고, 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와 이란을, 남쪽으로는 분쟁의 본산과도 같은 중동과 접해 있다. 서쪽엔 불구대천 원수인 그리스의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있다.

 

만만치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지진과 달리 이 지정학적 현실은 활용하기 나름이다. 잘 다루어내면 국운을 끌어올릴 수 있다. 반면 우매하게 처신할 경우 나라는 순식간에 추락한다. 냉전기 튀르키예는 자유진영을 선택했다. 한국전쟁에도 파병했고, 나토에도 가입했다. 견고한 반공 국가로 자리 잡았다. 흑해를 사이에 두고 소련의 붉은 군대와 마주하는 부담은 작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진영에 서는 것이 튀르키예 공화국이 사는 길이라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부 케말의 신념이었고 당시 그 선택은 옳았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이후 이념의 진영이 해체되자 환경이 달라졌다. 유럽 국가들이 튀르키예를 암암리에 멀리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세계적으로 퍼진 반이슬람주의는 튀르키예의 유럽 지향에 제동을 걸었다. 2002년 현 집권 여당의 등장 이후 튀르키예는 독자 외교 노선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정학적 환경을 활용하며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공세적 외교를 폈다. 이를 에르도안 정부 초기의 이른바 ‘분쟁 제로(zero conflict)’ 전략이라고 한다. 이 노력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마침 고속 경제성장과 맞물려 튀르키예의 소프트파워는 급등했다. 중견국 연대의 외교 공간을 직접 만들어내기도 했다. 2012년 아랍의 봄 당시 정권이 무너진 아랍 국가들의 국민들 다수는 자국도 에르도안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고 나아가 튀르키예처럼 되고 싶노라 말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분쟁 제로 전략은 틀어졌다. 미묘한 지정학의 그림을 염두에 두고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는 게 외교다. 튀르키예는 공세적으로 치고 나갔다. 속도가 너무 빨랐다. 오스만 제국의 향수를 연상시키며 전 방위로 관여하다가 여기저기서 분쟁에 휘말렸다. 지금은 믿고 의지할 만한 친구가 딱히 없다. 미국과 각을 세우고, 러시아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고, 신장 위구르 문제로 인해 중국도 경원하고 있다. 유럽과의 교역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나 상호 불신은 막을 길이 없다. 무슬림 형제단 등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을 물밑 지원하다가 아랍 국가들과도 척을 졌다. 하마스를 돕다가 이번 가자사태 초기에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우크라이나 문제에 뜨뜻미지근하다. 일부 전략가들은 이를 ‘값진 고독(precious loneliness)’이라는 희한한 수사학으로 정당화한다. 어색하다.

 

이스탄불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까지 1150㎞ 떨어져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까지 1151㎞다. 유럽과 중동 두 전쟁터와 신기할 만큼 같은 거리에 있다. 비행거리 3시간 이내에 전 세계 분쟁의 50% 이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스탄불은 지정학의 중심에 있다. 이를 공존의 미학이 작동하는 국제 정치의 공간으로 만들어낼 상상력이 절실하다. 분쟁의 문제를 다루기엔 제네바나 뉴욕, 빈 못지않은 곳이다. 역사와 문명을 품은 이스탄불이 제 몫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곳이 평화롭고, 사람들이 낙천적이어서가 아니다. 지진과 전쟁과 난민, 테러의 공포에 익숙하고 그 처참한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스탄불이기에 기대하는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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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멀리 보는 사람

 

[임용한의 전쟁사]

 

기원전 341년경, 진나라 군대가 섬서 분지를 나와 위나라를 침공했다. 위나라는 과거 은나라의 수도였던 안읍에 자리한 국가로 진나라 동쪽 국경을 마주한 나라였다. 진나라가 섬서 분지를 벗어나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압해야 하는 나라였다.

이 야심찬 원정을 지휘하는 사람이 상앙이었다. 상앙은 위나라 왕의 후궁의 아들이었다.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위나라 혜왕은 상앙을 등용하지 않았다. 출신이 미천하다는 것과 법가 사상가인 그의 생각이 너무 파격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앙은 진나라로 가서 진 효공에게 등용되었다. 진나라는 원래는 중원문화권 밖에 위치한 미개한 지역이었다. 이 진나라를 완전한 강국으로 변화시키고, 천하 패권의 한걸음을 내딛게 한 사람이 상앙이다. 그는 사회 체제와 군대를 개혁하고, 신분과 출신을 가리지 않고 군공을 공정하게 포상하고, 오직 능력을 기준으로 인재를 등용했다. 상앙의 정책으로 진나라 군대는 공포의 군대로 변모했다.

 

위나라는 공자 앙을 장수로 삼아 상앙을 막게 했다. 공자 앙은 과거에 상앙의 친구였다. 상앙은 공자 앙에게 사자를 보내 차마 ‘그대와 싸우지 못하겠다. 만나서 술을 하고 화친을 하자’고 했다. 공자 앙은 상앙의 제안에 찬성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상앙은 군대를 매복시켰다가 공자 앙을 습격해 포로로 잡고 지휘관을 잃은 위나라 군대를 섬멸했다. 이 승리로 진나라는 중원 진출의 교두보를 얻었고, 위나라는 수도를 동쪽으로 옮겨야 했다.

상앙이 비열했지만, 진나라의 야망과 변화된 세상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낭만에 사로잡힌 공자 앙의 잘못도 없다고 할 수 없다. 상앙은 승승장구했지만, 정치가 너무 가혹했다. 진 효왕이 죽자 상앙은 위나라로 도망쳤다. 위나라 사람들은 그가 공자 앙과 군대에 행한 일을 잊지 않고 상앙을 다시 진나라로 추방했다. 상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상앙은 구습을 버리고 혁신을 이루었다. 그러나 잔혹한 정치가 초래하는 미래를 보지 못했다.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 당장의 이익과 현실에 매몰된 사람. 패망하는 시기는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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