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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끼리 사돈 된다?] [유전적 근친상간과 문화적 근친상간]

뚝섬 2024. 3. 9. 09:06

[사촌끼리 사돈 된다? 2030도 사랑보다 ‘족보’ 택했다]

[유전적 근친상간과 문화적 근친상간]

 

 

사촌끼리 사돈 된다? 2030도 사랑보다 ‘족보’ 택했다

 

근친혼 범위 축소 설문조사
압도적 반대, 20代가 최다

 

“사랑에는 늘 약간의 광기가 있다”(니체)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위험한 갈망, 법률로 제한해 왔다. 근친혼(近親婚). 최근 법무부가 민법상 혼인 금지 범위를 현행 ‘8촌 이내’에서 ‘4촌 이내’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이 크게 술렁였다. 혈족의 유대감이 현저히 감소했고, 유전 질환 발병과도 직접적 관련이 없으며, 세계 각국의 추세를 고려하자는 취지. 유림(儒林) 등의 반발이 거세지자 법무부는 지난달 28일 “아직 방향이 정해진 건 아니다”라며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 정서를 반영할 수 있는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냈다. 그래서 ‘아무튼, 주말’이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 ‘틸리언프로’에 의뢰해 20~60대 남녀 1500명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족 관계 파탄 두려워”

 

인생의 큰 관문 결혼. 가족 구성원이 크게 변화하는만큼 여전히 민감한 문제다. /게티이미지뱅크

 

세대 불문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68%. 이유로는 ‘가족 관계 파괴’(60.7%)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어제의 사촌 누나가 오늘의 장모님이 될 수 있는, 족보가 하루아침에 꼬이는 상황. 2세의 ‘유전병 위험’(50.4%)이 뒤를 이었다. 유전자 공유 정도를 일컫는 ‘근연도(近緣度)’가 8촌쯤 되면 0.78%에 불과해 유전병 발생과의 연관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의학적 분석이 있음에도 불안감을 잠재우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사회 혼란 야기’(42.5%)도 적지 않은 선택을 받았다.

 

사랑은 가슴이 시키는 것이라 누가 말했나. 젊을수록 더 뜨겁게 타오르는 열망. 그러나 20대(71%)가 가장 열렬히 반대했다. 30대(70.9%)도 만만치 않았다. 50대(67.3%)와 60대(65.9%)를 추월했다. 2030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앞장서 사랑 대신 ‘족보’를 택한 것이다. 미혼 직장인 박모(38)씨는 “솔직히 요즘 불처럼 사랑에 빠지는 경우보다 이것저것 따지고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으냐”며 “집안끼리 곤란해지는 분란까지 감수하면서 결혼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고 말했다. “6촌이랑 결혼할 수 있냐고 물으면 ‘상관없다’던 사람들도 4촌이랑 사돈 맺을 수 있냐고 물으면 ‘그건 좀…’이라더라”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은 한국인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먼 친척은 남남? 그래도 아직은…

 

법 개정 추진의 가장 큰 동력은 ‘사회 분위기 변화’다. 친족 간 서로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고, 사실상 남남인데 결혼한들 뭐가 문제냐는 주장. 그러나 설문 조사 결과는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친족 중 누구까지 알고 지내나”라는 질문에 전체의 14%가 ‘8촌까지 안다’고 답했는데, 60대의 경우 그 비율이 30%에 달했다. 20대에서도 6촌과 5촌까지는 알고 지낸다는 응답이 16.3%, 14.3%로 나타났다. ‘4촌까지 안다’는 응답은 절반에 가까운 40.7%였다. “서로 잘 모르고 교류 없는 친족끼리는 결혼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문항의 반응도 ‘아니요’(71.8%)가 대다수였다. 세상이 변했으니 법도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잃는 결과인 셈이다.

 

법무부가 발주한 연구 용역 보고서는 우리 법의 보수성을 지적한다.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는 3촌까지, 미국·프랑스·일본뿐 아니라 대다수 이슬람 국가에서도 4촌까지 혼인이 허용되는데 8촌 간 결혼을 막는 곳은 한반도 말고는 찾기 힘들다는 것. 그러나 이번 설문에서 법 개정 찬성 이유로 제시된 ‘다른 국가도 허용하므로’(27.7%)는 함께 제시된 보기 중 가장 낮은 응답률을 보였다. 문화와 구성원이 상이한데 같은 잣대를 요구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서종희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도가 정착된 사회적 맥락이 다 다르기에 비교법적 고찰론은 설득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면서 “종중(宗中) 등이 실제 어느 정도 기능을 해온 한국적 현실을 감안한 설득의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결혼 뒤에야 친족임을 알게 됐다면?

 

이번 법무부의 근친혼 범위 축소 검토는 2022년 헌법재판소 판결에 기반한다. 2016년 혼인신고를 하고 정식 부부가 된 A씨와 B씨.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이 6촌 관계임을 알게 된 B씨가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8촌 이내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현행 민법 809조 1항에 의거해 혼인 무효 판결을 내렸다. 서류상 이력조차 남지 않는, 애초에 서로 결혼한 적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자 A씨는 해당 민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냈다. 결과는? 재판관 5대4 의견 합헌 결정. “혼란을 방지하고 가족 제도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

 

다만, 이들의 결혼을 무효로 처리한 민법 815조 2호(무효 조항)에 대해서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혼인 당사자가 서로 8촌 이내의 혈족임을 우연한 사정에 의해 사후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이는 당사자나 그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되레 “가족 제도의 기능”을 흔드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는 오는 12월 31일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근친혼 허용 범위’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고 “국회의원 및 국회 상임위원회의 입법 지원에 의견을 참고할 예정”이라고 했다.

 

결혼·출산율 영향 미미… 진통은 불가피

 

성균관유도회총본부 관계자가 5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법무부의 근친혼 범위 축소 검토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에 부모님한테 남자 친구 소개했는데 알고 보니 8촌이었네. 2년 정도 연애 중이고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양가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하시고. 어처구니없네.” 지난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이 사연처럼, 법이 개정되면 복잡한 제약은 확 줄어든다. 그러나 결혼 및 출산율 상승을 이끌 거라는 기대는 적었다. 설문에서 69.4%가 ‘아니요’, 19.6%가 ‘모르겠다’고 답했다. 지난 3일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 결과처럼 현재 결혼·출산을 가로막는 결정적 변수는 집값 등의 경제적 장벽이기 때문이다.

 

성균관유도회총본부가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는 등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는 4촌 이내도 혼인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온 힘을 다해 저지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동성동본 금혼제(성씨와 본관이 같으면 촌수와 관계없이 혼인 불가)’ 폐지 당시에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그렇지만 ‘뿌리’가 같은 이들의 결혼을 막는 동성동본 금혼제는 그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다른 걸 다 떠나 족보를 위조하거나 사들인 경우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에는 피해 규모가 수십만 쌍으로 추정됐다. 1997년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이후에도 입법 과정에서 격론이 이어졌고 2005년에야 공식 폐지됐다. 그해 민법 개정으로 제809조 ‘동성혼 등의 금지’는 지금의 ‘근친혼 등의 금지’가 됐다.

 

-정상혁 기자, 조선일보(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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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 근친상간과 문화적 근친상간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 가문 그리고 러시아제국의 로마노프 왕조. 거대한 영토와 부를 누렸던 이들 세 가문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근친상간을 통한 권력 유지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들은 누나나 여동생과 결혼했고 로마노프, 합스부르크 가문 역시 가까운 친척들 간의 혼인을 선호했다왜 하필 근친상간일까? 우선 순수 혈통에 대한 왕조들의 집착이 이유가 될 수 있다. 금수저가 흙수저와 결혼하는 순간 더 이상 순수 금수저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귀족들의 근친상간에는 그러나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다른 가족과의 혼인을 통해 가문의 부와 영토가 분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왕인 펠리페 4세의 초상화.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적 결함인 주걱턱의 흔적이 보인다. /조선일보 DB 

 

하지만 근친상간에 대한 자연의 논리는 명백하다. 양쪽 부모를 통해 생존에 불리한 열성 유전자를 동시에 물려받을 확률이 높기에 근친상간은 질병과 유전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로마노프 가문 아들들은 혈우병에 시달렸고, 합스부르크 자식들은 간질·통풍·수종에 시달렸다. 특히 '합스부르크 턱'으로 알려진 툭 튀어나온 아래 턱을 가진 카를로스 2세는 아래 턱이 너무 튀어나와 제대로 씹지도, 말도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류는 물론 더 이상 유전적 프레임에만 구속되어 있지 않다. 아이디어, 전통, 문화, 믿음 역시 현대인의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여기서 흥미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겠다. 대부분 자신의 편견을 재확인하는 뉴스와 의견만을 들으려 하는 오늘날. 마치 유전자같이 퍼지고 세대 간 물려줄 수 있는 이런 소문, 믿음, 문화, 전통들의 '근친상간' 역시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동일한 유전자들의 혼합이 치명적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듯 너무나 비슷한 아이디어와 이데올로기의 혼합 역시 '사회적 질병'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과거 귀족들의 '순수 혈통'이라는 망상이 수많은 유전병을 만들어냈듯 여전히 '순수'를 고집하는 정치, 문화, 민족, 종교적 근본주의는 결국 문명적 근친상간인 것이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조선일보(1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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