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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이란 빈자리에 이스라엘·튀르키예… 시리아의 봄은 가능할까]

뚝섬 2024. 12. 30. 11:01

러·이란 빈자리에 이스라엘·튀르키예… 시리아의 봄은 가능할까

 

이, 시리아 접경 골란고원 진주… 쿠르드계 시리아민주군과 연대
튀르키예는 쿠르드 분리주의 막으려 압박… 지정학 갈등 재점화
돌아온 탕자인가 위장한 폭군인가… 새 정부 HTS에 세계가 주목

 

철옹성 같던 시리아 정부가 붕괴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모스크바 피신과 함께 13년간의 내전은 막을 내리고 있다. 자기 국민 50만명이 죽고 450만 난민과 700만 국내 피란민을 양산하면서도 태연하게 자리를 지키던 독재자가 창졸간에 무너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세 가지 원인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내부 요인이다. 분열 통치의 피로가 쌓여 한계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 시리아 인구의 11%에 불과한 소수 종파 알라위파가 75%에 달하는 절대 다수 수니파를 눌러왔다. 강압 통치는 필연적으로 피로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아사드가 내걸었던 통치 이념은 바티즘 즉 아랍 민족주의였다. 그러나 아랍으로 하나가 되기보다는 시아와 수니 종파로 갈라쳤다. 해안 라타키아 지방에 사는 시아파 변종 알라위 정체성으로 다수 수니파 국민을 누르며 권력을 유지했다. 마치 아랍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도 티크리트 지역 중심 수니파 20%에 의존하며 60%에 달하는 다수 시아파를 18년 동안 압제하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다를 바 없었다. 긴 내전으로 알라위파 정부군 청년 사망자 수가 13만명을 넘어서면서 이미 내부 균열은 심각한 수준에 있었다는 후문이다. 다만 워낙 입에 재갈 물린 통제 사회였기에 외부 세계는 물론 아사드 본인도 임계점으로 치닫던 내부의 피로도를 감지하지 못했던 듯하다.

 

둘째는 상대 요인 즉, 반군의 혁신이다. 아사드 정부를 무너뜨린 반군 주도 세력인 HTS (Hyatt Tahrir al Sham, 레반트해방기구)의 변신은 특이했다. HTS는 본래 알카에다 (Al Qaeda)였다. 2011년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이라크의 알카에다 지도자 아부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자신의 참모인 아부모하메드 알졸라니를 시리아에 급파해 만든 조직이다. 누스라 전선이라는 이름의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였다. 누스라 전선은 아사드 정부와 싸우며 반군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2014년 알바그다디는 시리아의 누스라 전선과 이라크의 알카에다를 하나로 묶어 이슬람국가(IS) 결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알졸라니는 이를 거부하고 시리아에서 독자 노선을 천명했다. IS의 극단주의는 이슬람이 가르침이 아니라고 선언하며, 자신은 온건하고 포용적 노선을 취할 것이라 밝혔다. 이름을 아흐메드 알샤라로 바꾼 그는 지난 8년 동안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에서 안정적 통치역량을 발휘했다. 아사드의 폭정과 분열의 정치, 그리고 IS의 포악한 극단주의에 신물이 난 시리아 주민들은 HTS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해방구였다. 이번 다마스쿠스 진격 작전의 성공 이면에는 HTS에 대한 시리아 국민의 긍정적 반응도 한몫했다.

 

셋째는 국제정치 요인 즉, 러시아와 이란의 약화다. 아사드 정부는 안보를 외주(outsourcing)주었다. 내부 권력을 다지고 반군을 눌러온 요인이 바로 러시아와 이란의 든든한 군사 지원이었다. 러시아의 공군력과 헤즈볼라를 통한 이란의 지상 작전 지원은 아사드 정부를 지탱하는 양대 축이었다. 유엔 등 외교무대에서도 러시아는 아사드 정부의 비인도주의적 범죄 행위 책임을 막아주었다. 아사드 정부가 소수 종파임에도 다수 반군 세력을 압박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그러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2024년 가자 사태로 인해 러시아와 이란은 곤경에 처했다. 러시아는 더 이상 시리아를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특히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지휘체계가 붕괴되자 여파는 바로 나타났다. HTS는 정부군의 안보 외피가 벗겨진 모습을 포착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다마스쿠스를 타격했다. 국제사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아사드 정부의 붕괴를 목도하며 경악했다.

 

위에서 살펴 본 시리아 아사드 정부의 붕괴 원인은 세 가지 교훈을 준다. 소수 세력이 통합 노력 없이 다수를 물리력으로 압박하는 정치는 반드시 망한다는 것, 반면 과거 테러 세력이었지만 자기 혁신과 변화를 통해 노력을 기울이면 집권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안보를 외세에게 맡기면 순식간에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집권 세력은 무리했고, 반군은 약진했으며, 외국 지원 세력 이란과 러시아가 흔들리면서 아사드 정부는 곧바로 붕괴했다.

 

이제 시리아의 봄,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오는 것일까? 낙관하기 어렵다. 또 다른 외세 경쟁의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란과 러시아가 물러간 자리에 이스라엘과 튀르키예가 밀고 들어왔다. 이스라엘은 골란고원 진주와 더불어 북동부 시리아 쿠르드족 시리아 민주군 (SDF)과 연대하려 한다. 이란 타격을 위한 공간 확보 목적이다. 반면 튀르키예는 자국 내 쿠르드 분리주의 준동을 우려하며 시리아 국민군 (SNA)을 내세워 쿠르드가 주축인 SDF를 압박하고 있다. 자칫 이스라엘과 튀르키예 간 우발적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사우디 등 걸프 및 여타 아랍 국가들은 HTS의 지도자를 설득, 아랍으로 하나 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튀르키예, 사우디,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지정학적 경쟁과 갈등의 공간으로 만들려 하는 중이다.

 

외세의 난입을 막고 시리아의 주권적 평화와 안정을 구축할 수 있는지 여부는 HTS에 달려있다. HTS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시리아는 지옥도를 펼칠 수도 있고, 아니면 아랍 문명의 시원과도 같은 영화를 회복할 수도 있다. 시리아 내부 다양한 정치 주체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HTS가 근본적으로 변했는지에 관한 의문이 있다. 일단 지도자 알샤라는 포용적이고 온건하며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정부를 만들겠노라 공언했다. 현재 과도 정부가 추진하는 시리아 내 제(諸)정파 연석회의 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국가 건설의 대계가 마련되면 곧바로 HTS를 해체하고 정당정치 제도를 뿌리내릴 계획이라고 알렸다. 8년 동안 이들리브에서 드러난 자신의 통치 역량을 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돌아온 탕자일 수도, 위장한 폭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리아 문제로 지쳐있는 국제사회는 그를 믿고 싶어 하는 눈치다. 주변 국가 주요 인사들의 다마스쿠스 방문이 이어지는 중이다. 비극의 땅 시리아에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 기대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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