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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루이지애나였나… 현대제철은 이 땅에 묻힌 값싼 천연가스에.. ]

뚝섬 2025. 4. 10. 08:47

왜 루이지애나였나… 현대제철은 이 땅에 묻힌 값싼 천연가스에 주목했다

 

[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美 LNG 수출 거점 루이지애나
저렴한 천연가스로 전력 생산
산업용 요금, 한국의 절반도 안 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24일 백악관에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는 우리에게 낯선 곳이다. 우리나라보다 35% 더 넓은 땅에 460만명쯤이 살고 있는 루이지애나는 미시시피강이 아메리카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곳에 있다. 덥고 비가 많이 내리며 허리케인도 잦은 곳이다. 미국 전체를 보면 루이지애나는 가난하고 거친 주다. 1인당 소득이 5만7100달러로 50주 가운데 44위다. 인구 10만명당 살인율(16.1명)과 수감률(1067명)은 미국에서 가장 높다. 교육, 인프라, 보건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루이지애나는 하위권이다. 

 

이런 루이지애나가 요즘 국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지난달 현대차 그룹의 현대제철은 이곳에 58억달러를 투자해 연산 270만톤 규모 제철소를 건립하기로 발표했다. 현대차 그룹은 미국에 2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중 미국 내 공급망 강화를 위해 투자하기로 한 61억달러의 거의 전부가 제철소 건설에 투입되는 것이다. 주요 글로벌 자동차 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철강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현대차 그룹으로서는 점점 높아지는 미국의 철강 제품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서 자동차용 강판을 직접 생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 대상지가 루이지애나라는 건 뜻밖이었다.

 

현대제철이 루이지애나를 선택한 것은 에너지 때문이다. 철강 산업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철광석이나 고철을 전기로 녹여 강철을 만드는 전기로를 사용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 전기로 11기를 보유한 현대제철은 2023년에만 1조84억원을 전기료로 지출했다. 루이지애나의 전기 요금은 저렴하다. 미국 산업용 전력 평균 요금은 MWh당 80.1달러(약 11만8000원)인데 루이지애나는 52.8달러(약 7만7900원)에 불과하다. MWh당 18만2000원에 이르는 국내 산업용 전력 요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낮은 루이지애나의 전기 요금은 풍부하고 저렴한 천연가스 덕분에 가능하다. 루이지애나 전력 생산의 73.5%는 천연가스가 맡고 있고, 17.1%가 원자력이다.

 

루이지애나는 ‘천연가스 허브’다. 미국 50주 가운데 천연가스 매장량 7위(6%), 생산량 3위(10%) 수준이다.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인 미국의 주요 수출 거점이 루이지애나다. 2023년 미국이 수출한 전체 LNG의 61%가 이곳에 있는 LNG 수출 터미널 3곳에서 처리됐다. 미국 전역을 가로지르는 천연가스관이 집결하는 장소를 말하는 ‘헨리 허브’도 이곳에 있다. 뉴욕 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천연가스 가격은 이곳에서 결정된다. 루이지애나는 텍사스(3129만명)와 캘리포니아(3943만명)보다 인구는 훨씬 적지만 천연가스 사용량은 이 두 주 다음 3위다. 루이지애나에서는 천연가스의 75%를 산업 부문이 직접 사용하고, 전력 생산에 20%를 쓴다. 저렴한 천연가스가 루이지애나 산업의 버팀목인 것이다.

 

루이지애나는 석유 산업도 발달했다. 1901년부터 원유를 생산한 루이지애나는 1947년 세계 최초로 상업용 해상 원유 채굴을 시작했다. 미국의 거대 유전 가운데 다수는 루이지애나 해안에서 뻗어나간 바깥쪽 대륙붕에 있다. 이곳에서 생산한 원유 가운데 상당량은 해저 송유관을 통해 루이지애나의 정유소로 향한다. 15곳에 이르는 루이지애나 정유소는 미국 전체 정유 용량의 6분의 1인 하루 300만배럴의 원유를 처리하고 있다.

 

저렴하고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보유한 루이지애나는 에너지를 아낌없이 사용한다. 루이지애나의 에너지 소비량은 50주 가운데 4위, 1인당 에너지 소비량으로는 2위에 해당할 정도로 많다. 롯데케미칼이 31억달러를 투자해 지난 2019년 루이지애나에 세계 7위 규모인 초대형 석유화학 단지를 조성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루이지애나엔 석유화학, 정유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 기업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제철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루이지애나의 저렴한 에너지를 이용한 제조업에 도전하고 있다. 거대한 미시시피강을 끼고 있는 루이지애나는 내륙까지 선박을 이용해 원자재 대량 운송이 가능하다. 브라질에서 수입한 철광석을 풍부한 천연가스로 환원한 다음 저렴한 전기를 이용한 전기로를 이용해 자동차용 고품질 강판을 생산한다는 구상은 매력적이다. 미국 남부에 집중되어 있는 대규모 자동차 공장들은 이렇게 생산된 제품의 주요 수요처가 될 것이다. 완성차뿐 아니라 부품·소재 등으로 점점 확대되는 미국의 관세 장벽에 대응해 미국 내에 강판 생산부터 조립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수직 계열화함으로써 경쟁사에 비해 우위에 서겠다는 구상은 흠잡을 곳 없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에너지와 전력 요금의 나라로 만들어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그런 트럼프에게 현대차그룹의 대미 투자 계획은 구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모범적 사례인 것이다.

 

현대제철의 루이지애나 진출은 1980년대 이래 우리나라 제조업을 떠받치고 있는 중화학 산업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의 모든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가 석유화학, 정유, 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대규모 투자를 통한 효율적 생산 시설 건설과 더불어 저렴한 전력, 좋은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공급됐기 때문이다. 이런 기반에서 만들어진 가성비 좋은 우리 제품들은 세계 어디에서든 환영받았고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력 요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중국은 물론 미국보다도 비싸졌다. 산업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송전망과 수도 등 인프라의 적기 공급도 불가능해지고 있다. 여기에 고임금과 경직된 노동시장, 부족한 인력까지 고려해 보면 대한민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한 시장과 저렴하고 풍부한 에너지를 가진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나서고 있다. 관세로 장벽을 쌓고 풍부하고 저렴한 에너지라는 장점에 더해 정치적 압력까지 곁들이면서 해외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를 빨아들이려는 미국의 시도는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미국의 의도와 장점을 우리의 이익과 결합할 방법은 없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탄소 배출 줄인 루이지애나 제철소, 친환경·가격경쟁력 두 토끼 잡는다

 

철광석은 지구 지각의 약 5%를 차지하는 흔한 광물이다. 하지만 이런 철광석으로 철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철광석은 대부분 철과 산소가 단단히 결합된 산화철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순수한 철을 얻으려면 산소를 철에서 떼어내야 한다.

 

철과 산소를 분리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석탄을 가공한 코크스와 석회석을 철광석과 함께 고로에 넣고 섭씨 150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일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일산화탄소는 철광석 속의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가 되면서 철과 산소가 분리된다. 이것을 가리켜 환원 반응이라고 한다. 고로와 코크스를 이용하면 저렴하게 질 졿은 철을 생산할 수 있지만, 철 1톤을 생산하려면 이산화탄소가 2톤 발생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원인이 된다.

 

코크스가 아닌 수소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수소를 철광석과 고온에서 접촉시키면 산소가 제거된 직접환원철(DRI)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직접환원철을 전기로에 투입해 녹이면 이산화탄소 발생 없이 철을 생산할 수 있다. 이 방식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소와 전력을 대량으로 저렴하게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수소 가격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성이 없다.

 

현대제철이 루이지애나에 건설하는 제철소는 수소 대신 훨씬 저렴한 천연가스를 사용해 직접 환원철을 만들고 이를 전기로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철 1톤을 생산하는 데 이산화탄소가 약 1.3톤 만들어진다. 수소를 이용하는 방식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많지만 그 나름대로 친환경성과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식이다.

 

미국의 루이지애나는 저렴한 전력과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천연가스 직접환원철-전기로의 조합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이런 생산 공정을 대규모로 적용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생산 효율 및 품질 확보 등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조선일보(2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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