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로 향하는 17번 국도에서 ‘정송강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여 3~4km 오창∙문백방향으로 들어서면 얕으막한 고개를 넘게 된다. 이 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문백면 봉죽리 어은마을이다. 고개를 넘어 잠시 내려갔을까, 우측 환희산 아래 깔끔하게 조성된 정송강사가 시원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그곳에 350년 수령의 군나무(은행나무) 뒤로 정송강사가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초입에는 진천군청 문화체육과에서 관리하는 정송강사 관리사무사무소가 있다.
[환희산 아래 깔끔하게 조성된 정송강사]
정송강사는 조선 선조(재위기간 1567~1607: 40년) 때의 문신이자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최고봉인 송강 정철(鄭澈)(1536~1593)을 배향한 사우(祠宇)이다.
정철은 정치사적인 면에서 강직-청렴-원리원칙에 입각한 정치가라는 긍정적인 면과 한치의 타협도 없는 우직-독선-소통부재와 그의 파당을 위하여
정적 1000여 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잔인함까지 보였던 극단적인 양면을 보이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문학사적으로는 시인으로서 천부적인 재질을 나타내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훈민가」 등 주옥 같은 가사와 많은 단가를 남겼다.
[350년 수령의 군나무(은행나무). 정송강사 앞에 자리하고 있다]
사우 영내에는 송강의 영정을 배향한 송강사, 선조가 송강에게 하사한 은배/옥배, 송강의 친필편지 등을 전시보관하고 있는 송강기념관과 작품비 등이 있다.
작품비 이면에는 많은 가사와 시조를 남겨 세계적인 시성의 반열에 오른 송강의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1편, 아래의 「사미인곡」이 당시의 원문으로 인각되어 있다.
이 몸이 태어날 때 님을 따라 태어나니 한 평생 연분을 하늘이 다 알고 있구나
나는 젊었고, 님은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다른 곳에 전혀 비할 수가 없구나
평생을 한 곳에서 지내고 하였는데, 늙으니 무슨 일로 외롭게 두고 님을 그리워 하는가
엊그제(옛날에는) 님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랐는데,
그 사이에 어찌하여 (내가) 하계(인간세상)에 내려오니
올 때에 빗은 머리가 엉클어진지 삼 년이 지났구나
연지분(화장품)이 있지만 누구를 위하여 화장을 할까
마음에 맺힌 시름이 겹겹히 쌓여 있어,
짓는 것이 한숨이오, 지는 것이 눈물이구나
인생은 끝이 있으나 시름(걱정, 그리움)은 끝이 없구나
(중략)
하루도 열두 때, 한 달은 서른 날, 잠깐 생각 마라
이 시름을 잊고자 하니 마음에 맺혀 있고 골수에 사무쳤으니,
편작(뛰어난 의원)이 열명이 와도 이병을 어찌할꼬
아아 내 병은 님의 탓이로다
차라리 죽어서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곳 족족 앉아있다가 향이 묻은 날개로 님의 옷에 옮으리라
님은 나인줄 모르겠지만 나는 님을 좇아가려 하노라
[송강 정철의 묘. 고양시 원당면에서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오늘을 사는 특히나 바쁜 현대인에게는 그처럼 애닯게 읊었던 그에게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가 읊은 ‘님’이 그의 가족이나 사랑하는 연인이 아닌
임금(선조)일텐데,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누구에 해당될까. 대통령? 직장의 회장이나 사장? 팽(烹)당한 사람이 읊은 가사가 애닯기 그지없다.
마을현안이 없는 편안하고 풍요로운 마을
이곳 정송강사에서 남쪽으로 500미터 떨어진 곳에 어은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정송강사와 어은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환희산(해발 402m)은 ‘기쁨을 안겨 주는
산의 의미’이며 충남 천안시와 충북 진천군의 도경계이다. 1979년 진천군에서 이곳 환희산 자락에 정송강사 신축정화사업을 하였고 이곳에 거주하던 어은마을
원주민 30 가구가 새롭게 이곳으로 이주를 하였다. 나머지 20 가구는 타지로 떠났다. 지금은 마을 안쪽의 작은은골 5 가구를 포함하여 24 가구에 52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어은마을 토박이는 14가구이고, 나머지는 외지에서 이주해온 가구이다. 영일정씨는 송강의 종손인 정구성씨를 포함한 4 가구이다.
[어은마을]
연령적으로는 90세의 할머니가 가장 고령이고, 남 24명, 여 28명, 이중에서 고교생 3명, 중학생 3명, 초등학교생 1명이다. 주민의 직업은 다른 농촌마을과 달리
공무원(3 가구), 회사원(3 가구), 개인사업(4 가구) 등 다양하고, 전업 농업종사자는 이장, 노인회장을 포함한 4 가구 뿐이며, 주로 논농사를 하고 있다.
이곳 어은마을은 주변환경이 좋아 주민가구수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마을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축사 한 곳과 자원재활용센터 한 곳이 있을 뿐 공장 같은
산업시설은 전혀 없다. 봉암, 석복, 어은의 3개 마을로 구성된 봉죽리 어은마을의 이름도 나름 독특하다. ‘어은’의 유래는 ‘물고기가 숨어있는 듯한 지세’의 뜻이라고
한상인 노인회장(83)은 말하는데, 이 말의 원조는 원래 고양시 원당면에 있던 송강 묘소를 1665년 이곳으로 이장할 때 당시 정철이 속하여있었던 서인파의 우두머리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현재의 장소를 정하며 ‘어은지형’이라 하였다 하는데에서 유래한다.
마을의 살림을 꾸리고 있는 한상열 이장(64)과 마지막까지 인터뷰를 사양한 임경은 부녀회장에 의하면, 어은마을에는 우친계, 고향계, 대동계의 3대 계모임이 있다.
이중 우친계는 상조의 목적이며 마을주민 전원 참석을 위하여 해마다 12월 24일에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고향계는 1979년 정송강사 신축정화사업 당시 마을을
떠났던 30가구 주민들과의 해후를 위하여 1년 1회 6월 회합을 한다. 대동계는 다른 마을처럼 주민의 단합을 위한 모임으로 매년 말 결산을 위하여 모인다.
부녀회원은 18명으로 마을의 힘들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지난 10월12일에 개관한 정송강사 안의 ‘시집 만권의 도서관-온시숨터’도 마을의 자랑이다. 온시숨터란 ‘모든(온) 시가 살아 숨쉬는 터전’이란 뜻으로, 1만권의
시집 등 문학서적을 갖추고 있으며 정송강사를 찾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환희산 자락에서 시와 문학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이 되고 있다.
['시집 만권의 도서관', 온시숨터]
어려운 마을의 현안문제는 작은은골 진입로 포장문제와 인근 유기질퇴비공장에서 발생하는 악취문제 두 가지이다. 진입로 850미터 가운데 200미터는 나름 포장이
되었는데, 남아있는 650미터가 비만 오면 드나들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한다. 악취문제와 함께 두 현안문제를 여러 경로로 행정기관에 건의를 하였지만,
아직 미해결의 문제이다.
정송강사(鄭松江祠):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자 시인인 송강 정철(1536~1593)의 위패를 배향한 사우이다. 1976년 충청북도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으며 영일정씨 종중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원래 묘소가 경기도 고양시 원당면에 있던 것을 1665년(현종 6)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현재의 장소로 정하고, 후손 정포(鄭浦)가 이장하여 사우를 건립하였다.
1973년 보수하였다가 1979년 진천군에서 다시 전면 신축정화 작업을하였다. 경내에는 송강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규모는 사당 19평, 유물전시관 32평이다.
2년 째 이곳 관리를 맏고 있는 신순복(52: 진천군 문화체육과)씨에 의하면 주말, 공휴일에는 해설사가 주재하며, 봄, 가을 주말에는 유치원으로 부터의 소풍객 등
하루 5~60명이 찾으나 요즘 같은 동절기에는 탐방객이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동네 사람들
한상열 이장(64세)
“다른 마을에서는 어은마을을 어려움이 없는 마을이라고 하지만 작은은골 안마을 비포장도로가 조금만 비가와도 들어갈 수가 없을 정도”라며, 행정기관에서
관심을 갖고 조속히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또한 진천광역단지 내의 유기질퇴비공장에서의 악취 문제도 “시설보강 문제 등 어려움이 있겠지만 조만간
해결이 되었으면.. “하고 덧붙인다. 작년부터 2년째 어은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한상인 노인회장(83세)
연세에 비하여 무척 건강한 모습의 한 노인회장은 “작은 마을이어서인지 주민화합과 단결이 잘 되고 있는 것이 어은마을의 자랑”이라고 했다. “한 이장이 마을 일을
다 잘하고 있다”며, “타지에서 이주해왔지만 어은마을은 공기 좋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도 했다. 게이트볼을 무척 좋아하여, 금년 게이트볼후원회장기 쟁탈
진천군면대항대회에 출전하였었다.
-진천자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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