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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덕산면 신척리-홍개마을] 경주 김 씨가 수백 년 살아온 집성촌

뚝섬 2014. 10. 31. 11:52

중부고속도로 아래로 덕산면과 이월면을 잇는 587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이월면 쪽에서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바로 좌회전하면 홍개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마을입구의 신척산업단지의 삭막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조용하고 평화로운 농촌마을 분위기의 홍개마을이다. 이 마을은 신라시대

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경주 김씨 문중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마을이름 부터가 경주 김씨로 부터 유래한다. 고려에 충성하던 경주 김씨들이 고려 패망 후 벼슬을 버리고 ‘홍포(弘布, 붉은 관복)’를 입고 이곳으로

향하였다고 하여 홍포로 불리웠다 하는데, 홍포를 입고서가 아니라 ‘홍포를 벗고 살았다’는 ‘진천군 지명유래’(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의 설명도 있다.

이 홍포가 후일 홍개 또는 홍깨로 변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확실한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마을입구에 제법 큰 규모로 자리하고 있는 ‘숭모사(崇慕祠)’는 경주 김씨 문중의 김상(金尙: 1586 선조 19~ ? : 인조 때 충청도관찰사, 병마절도사,

도순찰사 역임)봉안한 사당이며, 마을 62가구 중 40가구가 경주 김씨인 경주 김씨 집성촌이다. 마을 바로 옆에 신척산업단지가 있지만 마을 주민 누구도

이곳에 취업한 사람이 없는 마을 주민의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산업단지이다. 주민 대다수는 벼농사가 주업이며, 일부 가구가 단무지 무우, 인삼, 엽연초,

화훼 농사를 하고 있다.

 

 

  -홍개마을 입구의 숭모사. 경주 김씨 문중의 김상을 봉안한 사당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중심에 2002년 완공한 건평 100m2 규모의 마을회관(노인정)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고, 그 뒤로 얼마간 거리들 둔 주민들의 가옥 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건물 바탕이 불안하여 재건축을 고려하고 있다는 경로당도 외관이나 내부 시설 관리가 잘 되어있어 무척 깔끔하다. 마을회관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홍개낚시터가 있지만 지금은 오염이 되어 폐쇄되었다. 이 폐쇄된 낚시터는 여름철에 모기 등 벌레가 들끓어 마을의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홍개마을회관

 

 주민 62가구 150명 가운데 80세 이상 고령은 4~50, 나름 젊은 세대 가구는 12~3세대 정도이다. 2006년 홍개마을에 정착하여 6년째 마을이장을 맡고 있는

김병설(70)씨를 중심으로 마을살림이 꾸려지고 있다. 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는 김 이장에게는 적지 않은 고민거리가 있다. 주변 산업단지 내의 많은 공장으로부터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마을과는 관련이 없는 공장들과의 감정적·정서적 괴리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세수증대와 농촌의 경제를 부양하기 위하여 산업단지와 기업체의 입주는 필요하겠지만 마을 주민들로서는 이 산업단지에 적지 않은 이질감과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많은 공장시설이 들어섬으로 인한 환경문제이다. 조상대대로의 자연과 농경지가 잠식당하고, 그 자리에 화학공장이 들어서고,

또 그 공장들을 드나드는 컨테이너와 중대형 화물차 들이 뿜어대는 매연과 소음으로 인한 정서적인 피폐감·상실감.. 등 홍개마을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남의 일이

이제는 마을 주민들에게 피해를 직접적으로 주고 있다.

 

 

  -홍개마을 전경

 

 직·간접 인과관계가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마을 홍개저수지도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낚시터의 이름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군에서 낚시터를 폐쇄할

정도로 오염이 심각하다. 신척산업단지가 조성이 되면 홍개마을은 육지 속 오지마을이 될 것이라는 주민의 우려에 대하여 진천군에서는 토지수용보상, 환경

오·폐수 대책 등 나름의 보상책이 있었다. 하지만 그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면 주민들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사연이 많다. 지금은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산업단지 조성과 관련하여 군에서 약속하였던 마을 안 도로 개선과 홍개저수지 오염문제 만이라도 조속히 해결되었으면 하는 것이 마을 주민의 바램이다.

 

 다른 마을처럼 이곳에도 대동계가 조직되어 있어 1 1회의 모임을 갖고 있다. 봄에는 마을에서 거출하여, 가을에는 노인회에서 주관을 하여 마을주민 모두가

단합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고령화시대라고는 하지만 90세 이상의 고령인 주민은 없다.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에게 매일 마을회관에서 점심식사를 모시는데,

부녀회가 주관을 하며 재원은 초창기에는 방송국 등 외부기관에서, 최근에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거출을 하여 마련한다.

 

 주민 대다수가 경주 김씨인 마을에서 홍개마을로 귀촌한 타성바지 외지인-김병설씨가 이장직을 수행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취임 초에는

김 이장에 대한 배척감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심없이, 헌신적으로 마을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는 김 이장을 주민 모두가 신뢰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자랑할 것 없는 홍개마을”을 어떻게 주민 모두가 화합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이끌어 가느냐가 그의 양 어깨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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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사람들

 

김병설 이장

김병설 이장(70) 2006년 까지 서울에서 살다 홍개마을에 정착하였다. KBS1 제작팀의 조명감독이었으며, 2007년 까지 방영된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 852부작, 1990.9.9.~2007.10.10. 방영) 1회부터 종영 1년 전 까지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였다. 낚시를 좋아하여 인근 덕산낚시터에 자주 내려왔고, 오가며 눈여겨

보아두었던 홍개마을과 인연을 맺었다. 마을과 전혀 연고가 없는 그가 경주 김씨 집성촌인 홍개마을의 이장이 되고(2008 9), 또 이장 업무를 수행하면서 주민

모두의 신뢰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마을 자랑할 것은 없고, 현안만 많다.. ”는 그가 어떻게 홍개마을을 주민 모두가 살기 좋은 마을로 발전시켜 갈지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김낙경 노인회장

금년 76세 나이인데도 2000평의 인삼밭을 경작하는 무척 건강한 노인회장이시다. 경주 김씨 문중으로, 12대 째 홍개마을에 살아오셨다. 그에 의하면

‘숭모사’는 경주 김씨 조상사당이며, 시제를 그곳에서 지낸단다. 보통 산소에 가서 제사를 모시지만, 굳은 날에는 그 곳에서 제사를 모시기도 한다고. “마을에

자랑거리가 뭐 있나..? 바랄 것이라고는 그저 주민 모두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고, 단합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지..

  

박영희 부녀회장

 

-진천자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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